81화
정성국은 새김포에 도착하고 나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 회의가 끝날 때쯤 정성국이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아. 내년까지 군사청에 소속된 병사의 수를 1만까지 늘릴 생각이네.”
정성국의 선언에 기나긴 회의에 지쳐 빨리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청장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만이라니...”
그리고 군사청 소속의 병사가 늘어나면 군사청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오히려 이를 반겨야 하는 군사청장조차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을 흘렸다.
현재 군사청에 소속되어 있는 병사의 수는 5천이 조금 넘었지만, 이것도 단기간에 병사 수를 급격하게 늘렸기에 아직은 내실을 좀 다져야 하지 않나 싶은 군사청장이었다.
하지만 정성국은 청장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 모집하는 병사 대부분은 해군 훈련대에 배정할 생각이네.”
“으음...”
정성국의 말은 결국 해군을 급격하게 키우겠다는 소리였고 전선을 건조해야 하는 연구청장과 이를 지원해야 하는 관리청장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업무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국은 새남포의 발전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새남포와는 뱃길로만 이어져 있는 상황에서 새남포가 발전하면 새김포와 새남포 사이를 오가는 정기선이 더 많아질 거야. 그러다 보면 태평양을 건넌 스페인의 선단과 마주칠 수도 있고. 이 때문에라도 빨리 스페인과 결판을 내긴 해야겠어.’
지금까지야 새김포에서 웅크리고 있었지만, 북미왕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북미 서해안을 확실하게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해군의 확충은 필수였다.
아무리 지급 전선의 전투력이 뛰어나다 한들 고작 지급 전선 2척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전선이야 꾸준하게 건조한다고 쳐도 이를 운용할 해군을 키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만큼 일단 해군의 수부터 왕창 늘리고 이들을 꾸준하게 훈련시킬 생각을 하는 정성국이었다.
“그러니 군사청장 뿐만 아니라 연구청장도 해군 훈련대에 소속될 전선의 건조에 힘써주게. 관리청장도 신경 써서 지원해주고.”
“알겠습니다. 전하.”
관리청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의 명령을 받아들였지만 연구청장은 질문을 던졌다.
“전하. 허면 지급 전선을 건조합니까?”
“음...”
연구청장의 물음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중을 생각하면 다양한 배가 있으면 좋긴 한데...‘
분명 지급 전선의 전투력은 생각외로 강력했지만, 모든 전선을 지급 전선으로 통일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지급 전선을 건조하는 것뿐만 아니라...최주명에게 말해서 인급 전선을 새로 만들어보라고 하게. 지급 전선을 척후선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함대를 운용하려면 초계함이 필요한 만큼 이를 인급 전선에 맡길 생각이었다.
이에 일리가 있다는 듯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급 전선이라...알겠습니다. 개척촌에서 500톤급의 기선을 실험선으로 건조해 운용했다고 하니 좀 더 튼튼하게 개조해서 건조하면 되겠군요. 아. 전선이니 기범선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지급 전선이 기범선이었기에 연구청장이 물어보았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연구청장이 보기에는 만약 증기기관이 고장이 나더라도 움직일 수 있는 기범선이 기선보다는 나아 보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범선은 전투 시에 갑판 위에서 돛을 조정해야 하고 갑판 위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기에 전투용 함선은 기범선보다는 기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이었다.
“전선은 차라리 기선이 나아. 전투 시 갑판 위에 선원을 비울 수 있으니 말일세.”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전하.”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깜박했다는 듯 군사청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지급 전선의 활동 범위를 늘리도록 하게. 지금처럼 내해에서만 머물지 말고 가끔 새남포까지 돌아다니라는 소리네. 필요하면 새남포를 오가는 정기선의 호위도 가끔 하도록 하고.”
그동안은 혹시 모를 스페인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지급 전선의 활동 반경에 제한을 가했었다.
그렇기에 커다란 지급 전선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로 새김포의 선착장에 정박해 있거나 가끔 캘리포니아만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급 전선에 탄 선원들의 사기도 높은 편이 아니었고.
이번 여행으로 이를 알게 된 정성국이 겸사겸사 이를 풀어준 것이다.
“알겠습니다. 전하.”
* * *
정성국은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동생 정평국은 이곳에 도착하자 정성국의 배려에 따라 잠시 쉰 후 북미왕국의 실상을 파악하겠다며 길을 나섰다.
정성국은 2주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정평국은 거의 3달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성국은 이곳 새김포와 새마포, 그리고 새로 건설하는 수도 정도만 둘러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평국은 북미왕국 곳곳을 돌아다닐 기세였다.
이에 혀를 찬 정성국이 적당히 둘러보고 돌아오라고 연락을 했고 그래서 새김포로 돌아온 정평국이었다.
“허. 북미인이 다되었구나.”
정성국이 동생 정평국을 보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보통 이주민들은 이곳 새김포에 마련된 임시 거주구에서 지낼 때 상투를 자르곤 했다.
이는 이주민들이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배 안에서 하는 교육이 큰 영향을 끼쳤다.
비록 단발을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단발의 장점을 과장해서 설명할뿐더러 이곳에 먼저 도착한 이주민들이 상투를 잘라 조선인이 아닌 북미인으로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에 이미 고향을 떠나 북미왕국에 정착하려고 마음먹은 유민들이 도착하자마자 실제 북미인들의 모습을 보고 이를 따르는 것이다.
다만 정평국이야 그런 교육을 받을 위치는 아니었고 북미왕국을 둘러보기 위해 정성국에게 인사를 하러 왔을 무렵에는 분명 상투를 틀고 있었고 복식 역시 조선의 복식이었는데.
지금 정성국의 앞에 있는 정평국은 짧은 머리에 복식도 조선의 복식이 아닌 북미왕국의 복식을 하고 있었다.
이에 정평국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형님이 보시기에도 그렇습니까?”
“그래. 헌데 상투를 고집하는 것 아니었느냐?”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아...굳이 상투를 고집한다기보다는 혹시 조선에 갈 일이 생길지 모르니 상투를 자르지 않은 겁니다만...돌아다니려니 더워서 그런지 불편하기도 하고 남쪽으로 갈수록 상투를 튼 것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원주민도 많고 해서 그냥 잘랐습니다.”
정평국이 상투를 유지하는 것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괜히 물어보는 것이 그에게 압박을 줄 수도 있을까 봐 별말 하지 않았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런거였나? 그래. 꽤 돌아다녔다면서?”
“그랬습니다. 형님. 조선과는 확실히 풍광부터 다른지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원주민들과 대화하는것도 흥미롭더군요.”
그러면서 정평국은 자신이 둘러본 지역과 그곳에서 만난 원주민들에 대해 정성국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재미있게 듣던 정성국이 정평국이 언급한 마을 이름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새나주까지 갔다고?”
새나주는 현재 북미왕국 영역의 최남단에 위치한 내륙 마을로 전생에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북서쪽 베이커즈 필드 근처였다.
이곳을 남쪽의 거점 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 새남포를 건설한 개척단이 내려가 개발 중인 마을이기도 했고 이곳을 기반으로 탐사대가 열심히 주변을 탐사 중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새나주는 한 번쯤 직접 들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영역과 가깝기도 하고 훗날 동진을 위한 거점이기도 하잖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렇지. 그곳은 어떻더냐?”
정성국의 물음에 정평국은 고개를 저었다.
“뭐 황량한 편입니다. 아직 마을도 제대로 건설이 안 된 상황이니까요. 다만 입지는 나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만 문제라면 너무 멀어서 물자의 보급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겁니다.”
“그렇겠지.”
이를 잘 알고 있던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평국은 궁금한 듯 형을 쳐다보았다.
“형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해결책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철도입니까? 아니면 남쪽에 항구를?”
어차피 물자를 옮길 방도는 저 두 가지뿐이었기에 이를 언급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병행해야지. 다만 둘 다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생각외로 동진이 늦어질 것 같기는 해서 고민이야.”
이곳 새김포에서 새나주까지의 거리만 하더라도 400km에 가까웠다.
그런 만큼 단기간에 철도를 깔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당장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항구를 세우기도 어려웠다.
비록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통바 족이 우호적이라고는 하나 아직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또한, 만 안쪽에 자리를 잡은 새김포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결국 스페인과 결판을 낸 이후에나 그곳에 항구를 건설해 물자를 운송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러다 철도가 깔리면 철도로 물자를 운송하고.
이를 정평국에게 이야기하자 정평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음...그렇겠군요. 북미왕국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스페인과의 결전을 미뤄서는 안되겠군요. 허면 북미왕국의 최우선 과제는 결국 군비증강이 되겠는데요?"
이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그래서 최근 해군을 늘리고 있긴 한데...병사는 몰라도 선박은 단기간에 늘어나질 않으니 문제고.”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급 함선들을 모두 지급 전선으로 개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이주민을 실어나르는 것은 빠른 천급 함선과 지급 기범선에게 맡기고 지급 함선들은 이쪽에서 지급 전선으로 개조하시지요. 그게 효율적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천급 함선과 지급 기범선으로 인해 지급 함선의 위치가 애매해진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야 1천 톤급 함선이 많은 물자와 이주민을 실어나르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장 느린 함선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럴 바엔 지급 전선으로 개조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 정평국이었다.
분명 조선에서 데려오는 이주민은 북미왕국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긴 했지만, 개척촌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수를 고려해보면 고작 지급 함선 6척이 빠진다고 해서 크게 타격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이에 정성국은 잠시 동생의 말을 생각해보다가 구미가 당긴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으음...그럼 내년에 도착하는 지급 함선을 개조한다고 생각하면...내후년에는 스페인과 결판을 낼 수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형님.”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이곳의 지급 전선 2척과 개조될 지급 함선 6척, 그리고 내후년까지 이곳에서 건조될 전선까지 생각해보면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해안을 장악하기엔 충분해 보였으니까.
‘아니지. 이러면 오히려 넘칠 것 같은데...뭐 압도적인 전력으로 단기간에 승부를 내는 편이 피해를 줄일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