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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7화 (77/850)

77화

정성국이 증기기관차의 개발이 아닌 증기기관차의 상용화라고 이야기 한 이유는 간단했다.

애당초 증기기관차의 개발은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성국은 북미 대륙을 제대로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통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수많은 물자를 옮길 대량 운송수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량 운송수단 중에 가장 유용한 것이 바로 선박을 통한 해운이었지만 파나마 운하가 없는 현시점에서 남미를 빙 돌아가야 하는 해운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파나마 운하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만큼 대안은 철도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전부터 박기동에게 증기기관에 대해 알려줄 때 철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 박기동은 이에 흥미를 갖고 개인적으로 연구를 좀 했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나마 꽤 진척이 있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이 그것을 기초로 해서 트랙터까지 연구해보라고 권했던 것이고.

“증기기관차의 상용화라...이른 시일 내에 북미왕국에 철도를 부설할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북미 대륙을 장악하려면 철도는 필수다. 철도가 있어야 손쉽게 동서 간의 교류가 가능해질 테니 말이다.”

“음...여력이 되겠습니까?”

박기동은 정성국을 보고 현재 북미왕국에 철도를 부설할 여력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박기동이 북미왕국에 막 도착한 만큼 아직 이곳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을 안내해주던 하얀 들꽃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현재 북미왕국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이 바로 새로운 수도의 건설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철도라니.

철도를 부설하려면 많은 인력과 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기동이 스승님도 잘 알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이에 정성국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과연 여력이 될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무리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철도를 부설해야 한다고 보았다.

북미왕국의 인구수가 넘쳐나서 단번에 인력을 동원해 전 지역에 철도를 부설할 생각이 아니라면 최대한 빨리 철도를 부설하고 차츰 그 길이를 늘려나가야만 했으니까.

“쉽지 않겠지. 하지만 빠를수록 좋다고 본다. 하루아침에 북미왕국 전역에 철도를 깔 수는 없으니 조금씩 철도를 부설해야 하는 만큼.”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증기기관차를 빠르게 발전시키려면 어쩔 수 없어. 결국, 실제로 운용해보고 거기서 나오는 단점을 파악하고 보완해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요. 기선도 그랬으니. 스승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일단 연구원들과 장인들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헌데 철도까지 제가 신경 써야 합니까?”

“흐음...철도의 건설이야 개발청의 일이긴 한데...일단 철도에 관한 연구는 좀 해야 할 것 같구나.”

“아. 알겠습니다. 일단 모형을 만들어 증기기관차나 객차의 크기부터 정해서 철도의 폭을 결정해야겠군요.”

박기동의 말에 정성국은 슬쩍 기억을 떠올렸다.

전생에 표준궤는 1435mm이긴 한데 굳이 이를 따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물론 이 표준궤가 엄청난 연구를 통해 나온 수치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세계 최초로 여객 철도를 발명하고 철도 부설 기사로 활동했던 조지 스티븐슨이 건설한 철도의 폭이 1435mm였는데 그의 유명세 덕분에 다른 기술자들이 따라서 같은 폭으로 철도를 부설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가장 긴 궤관이 되어 표준궤가 되었을 뿐이니까.

이 궤관은 넓을수록 좋기는 했다.

폭이 넓을수록 더 커다란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고 이는 대형, 대출력의 증기기관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거기에 고속에서의 안정성도 향상되고.

다만 이 폭이 넓을수록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지긴 하지만 크게 차이 나지도 않았고 비용 중 상당수가 땅값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좀 넓게 폭을 잡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해서 정성국은 슬쩍 박기동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1.5m를 기준으로 실험을 해 보아라.”

이에 박기동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그건 너무 폭이 좁지 않습니까? 차량의 폭이 겨우 1.5m면...”

박기동의 생각을 짐작한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트랙터와는 또 다르다. 굳이 차량 바깥쪽에 바퀴를 달 이유가 없고 철도의 폭과 차량의 폭을 동일시할 필요도 없지.”

“흐음...”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의 눈빛이 깊어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일단 적당히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해보아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낸 정성국은 제자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더 나눌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 보아하니 너희들도 좀 피로해 보이고. 일단은 좀 쉬어라.”

이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박기동이 투덜거렸다.

“끄응...뻔히 일이 왕창 쌓여있는데 제대로 쉴 수는 있겠습니까.”

“하하하.”

* * *

제자들이 회의실을 나간 후 정성국은 집무실로 돌아와 미뤄두었던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잠시.

하얀 들꽃의 안내를 받아 주변을 구경했던 전아라가 집무실을 방문했다.

정성국은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 같이 들어올 거라 생각해 내심 긴장했지만, 집무실에 들어온 것은 전아라 뿐이었다.

이에 살짝 어리둥절했을 무렵 전아라가 쿡쿡거리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하얀 들꽃은 이곳까지 안내해주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갔어요.“

“아. 그렇구나. 잘 구경했니?”

“예. 오라버니.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음...”

‘좋은 시간? 무슨 좋은 시간?’

전아라의 말에 정성국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지자 전아라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다시 쿡쿡거리며 웃고는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별일 없었어요. 그냥 이야기를 좀 했을 뿐인걸요.”

정성국이 내심 안도하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심성이 고운 여인인 것 같았어요. 오라버니의 배필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고요.”

“그런...가?”

전아라의 말에 정성국이 몹시 어색해하자 전아라가 괜찮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참. 미안해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군왕은 무치라잖아요. 그리고 전 이미 오라버니와 혼인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이미 각오했어요.”

“...”

“그러니 필요하다면 다른 여인을 받아들이는 것도 주저하지 마세요. 북미왕국을 위해서라면요”

말은 이렇게 해도 전아라의 내심은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어느 여인이 자신의 남자를 다른 여인과 나누고 싶겠는가.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자신들이 북미왕국을 세웠다고 한들 북미 대륙에서 자신들은 이방인에 가까웠고 소수였다.

그렇기에 북미왕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을 포용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원주민 여성과의 혼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아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대업을 그르치지 말라고.

정성국은 이런 전아라의 마음에 고맙고도 미안해서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고맙다.”

“오라버니.”

잠시 정성국의 품 안에서 오랜만에 정성국의 온기에 취한 전아라가 이내 얼굴을 붉히고는 살짝 그의 품 안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참. 그것보다 애들이랑은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왠지 모르게 말을 돌리는 듯한 전아라가 귀엽게 느껴진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좀 하고...이곳에서 해야할 여러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했지.”

“아하. 오라버니. 그럼 전 뭘 해야 하나요?”

“음? 흐음...”

전아라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긴 했다.

바로 석유에 관한 일.

정성국의 기억을 통해 원유를 뽑아 이를 증류한다고 해도 아직 제대로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연료로는 이용할 수 있겠지만 원유를 이용해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석유화학제품을 기억하고 있는 정성국으로서는 이 원유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분석하고 연구할 사람으로 내심 전아라를 낙점했다.

하지만 아직은 남쪽에 제대로 된 마을조차 건설하지 못했고 석유도 없는 만큼 일단은 그녀가 개척촌에서 하던 일을 먼저 맡기기로 했다.

“일단은...이곳에 화약 제조 공방을 세우고 관리를 하렴.”

“일단은? 그리고요?”

“나중에 석유라는 물질에 관해 연구를 좀 해줬으면 한다만...그건 시간이 좀 흐른 이후에나 가능할 게다. 일단 남쪽에 새로운 마을도 만들어야 할 테고...네 업무를 감당할 평화가 이쪽으로 이주한 뒤에나 가능하겠지.”

정성국의 말에 개척촌에서 자신의 업무까지 맡느라 고생하고 있을 강평화를 떠올리면서 웃었다.

“쿡쿡쿡. 평화는 개척촌에서도 이곳에서도 편하게 쉬지는 못하겠군요.”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쩌겠느냐. 그게 그 녀석의 팔자려니 해야지. 그리고 너도 이곳에서 편히 쉬지는 못할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할 뿐이고.”

전아라가 정성국과 혼인을 한다고 해서 규방에서만 지낼 수는 없다는 의미였지만 전아라는 오히려 연구를 통해 정성국을 도울 수 있었기에 만족했다.

“괜찮아요. 오라버니. 이미 각오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전아라를 보고 정성국은 그녀가 몹시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전아라는 슬쩍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거렸다.

“오...오라버니? 좋기는 한데...아직 해가 중천이고 여긴 집무실인데...”

정성국은 전아라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군왕은 무치라고.”

“흐읍.”

* * *

정성국은 집무실에서 김봉길이 건네준 서류를 살펴보았다.

그 서류의 한쪽 끝부분엔 지장이 찍혀있었다.

“이거 원주민들이 제대로 이해한 것 맞지? 지장은 부족장의 것이고?”

이에 김봉길은 걱정 말라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몇 번이고 설명해주었으니까요. 원주민들도, 부족장도 충분히 이해했고 대표로 부족장이 지장을 찍었습니다.”

“저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이에 김봉길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크게 상관없다는 반응입니다. 애당초 자신들의 영역도 아니니까요.”

“쩝...”

이번에 이 서류에 담긴 내용에 동의한 원주민들의 입장에선 당연했다.

자신들의 영역도 아니고 다른 부족의 영역을 북미왕국에 넘기는 대가로 그동안 자신을 핍박하던 부족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한다고 했으니 맺힌 게 많았던 원주민들은 당연히 이 제안을 승낙했으리라.

하지만 정성국은 왠지 모르게 입맛이 썼다.

제국주의 시절 열강이 하는 행동과 비슷했었으니까.

그런 정성국의 표정을 보고 김봉길은 정성국이 개입을 결정함으로써 원주민들간에 피를 흘릴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라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았다간 우리에게 식수와 과일을 제공했던 원주민 부족이 오지로 쫓겨나거나 저들의 노예가 되었을 겁니다. 전하.”

애당초 하와이 쪽엔 개입하지 않으려 했었지만, 이주 선단이 식수를 보충하기 위해 들렀던 호놀룰루에 사는 원주민들이 이주 선단이 식수에 대한 대가로 주는 물자 때문에 주변 부족에게 핍박받는 중이라는 이야기에 개입하기로 결정을 내린 만큼 정성국은 마음을 다잡았다.

탐욕스러운 부족보다야 선의로 자신들에게 식수를 제공한 부족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이 섬을 장악했으면 했다.

개입을 안 했으면 모를까 개입한 이상 확실하게 챙길 것은 챙겨야 했다.

“후우. 그렇겠지. 허면 자네가 보기엔 무기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저들이 섬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나?”

이에 김봉길은 자신이 호놀룰루에서 떠날 무렵 원주민 부족의 분위기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비록 작은 부족이지만 이쪽에서 건네준 무기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충분히 섬을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이번에 가보면 섬을 장악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혹시 모르니 이번에도 여러 지원물자를 가져가게.”

“그 친구들이 좋아하겠군요.”

히죽거리며 웃는 김봉길을 보고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원주민들과 꽤 친해졌나보군.”

“뭐 그 친구들도 꽤 순박한 친구들이라서요. 마음에 들더군요.”

“그래? 허면 나중에 그곳에서 외무청의 관리로 일하는 것도 괜찮겠군?”

“글쎄요...그것보다는 가능하다면 저도 전선의 함장직을 맡고 싶습니다.”

“응?”

“일신이 녀석이 왜놈들을 상대로 공을 세웠다면 전 스페인 놈들을 상대로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훗날 스페인과 붙게 되면 저를 꼭 전선의 함장으로 임명해주십시오. 전하.”

정성국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김봉길을 바라보다가 씩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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