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이제 슬슬 개척촌에서 이주 선단이 도착할 텐데 그들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나?”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물음에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행정청장을 보고 잠시 의아하다는 듯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정성국이었다.
“그래? 전에 김봉길 선장이 이야기한 것을 생각해보면 올해는 이주민이 더 많이 도착할 텐데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래?”
정성국은 행정청장을 묘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미리 준비한다고는 하나 단기간에 이곳에 도착한 수많은 이주민을 분류하고 먹이고 재우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벌써 몇 번이고 경험했음에도 말이다.
헌데 저런 자신감이라니.
물론 작년의 일로 2척의 지급 함선이 이곳에 남게 되었으니 이주 선단의 규모가 조금은 줄어든 셈이지만 그것 가지고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건가 싶을 때 행정청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작년에야 천급 함선이 고작 한 척이고 처음이라 같이 선단을 구성해 온 듯싶습니다만...올해는 따로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천급 함선을 제대로 이용하는 셈이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김봉길 선장도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었고.”
“예. 그런 만큼 오히려 한 번에 도착하는 인원수가 분산되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이주민들 대부분은 아무래도 연구원이나 장인들의 비율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겠지.”
“그런 만큼 그들을 바로 연구청 소속으로 분류하면 그만이라...아무래도 다른때보다는 일이 적을 것 같습니다.”
“호오. 그럼 다행이군. 믿겠네.”
다른 때와는 달리 안색이 나쁘지 않은 행정청장과는 대조적으로 몹시 피곤해 보이는 연구청장을 바라본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연구원들과 장인들이 일할 공간은 마련해두었나?”
“물론입니다. 전하. 그들이 도착하면 바로 일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다 끝내놓았습니다.”
이번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연구원들과 장인들을 위해 작년부터 그들이 일할 공간을 마련하느라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노고를 위로했다.
“그렇군. 고생했네.”
“아니옵니다. 전하.”
그러면서도 정성국은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어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개발청장. 예정대로 3년 후에는 연구소를 비롯해 각 청의 이전이 가능하겠지?”
“그렇습니다. 전하.”
개발청장의 답변에 정성국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이주민들은 이곳 새김포에서 잠시 쉬다가 대부분 개척단에 소속되어 각지로 흩어졌던지라 그나마 이곳의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이주민 중에 연구원과 장인들은 연구소들과 공방이 밀집되어있는 이곳 새김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곳 새김포가 북적거릴 수밖에 없었고 혹시 모를 전염병의 위험 때문에 인구의 집중을 꺼렸던 정성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거기에 이곳 새김포의 건물들은 목조건물이라 대부분 건물이 작은 편이었고 이 때문에 불편을 느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대거 유입된다면 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3년 후에 새로운 도시로 이전할 예정이면서도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곳 새김포에도 건물을 올리는 실정이었다.
특히 연구청은 당장 연구원들이 일할 공간과 그들이 지낼 공간을 위해 작년부터 이곳에 여러 건물을 올리느라 바빴고.
그런 만큼 3년 후에 예정대로 이전이 가능하다는 개발청장의 확답에 정성국을 비롯해 이 회의실 안에 있던 청장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를 파악하고 다들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구나 싶어 피식 웃은 정성국은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어 보이는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군사청장. 보고할 내용이라도 있는가?”
“그렇습니다. 전하. 북쪽을 탐사 중이던 탐사대가 새로운 지역을 찾았다고 합니다.”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흥미를 나타냈다.
“그래? 북쪽 산맥을 넘었단 소린가?”
“아. 아닙니다. 아직 북쪽 산맥을 넘지는 못했고 일단 우회로를 찾던 중에 동쪽으로 광활한 황무지를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해서 남아있는 탐사대를 모두 동원해서 그곳을 탐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아...”
정성국은 이번에 탐사대가 찾은 곳이 그가 기억하는 네바다 주임을 직감했다.
‘그런데 그곳에 원주민이 살긴 하나? 분명 풍경은 꽤 장관이었던 것 같은데...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니지 않나? 물론 현대에야 도시가 들어서고 수많은 사람이 산다지만...’
정성국은 네바다주를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 탐사대가 발견한 곳은 동쪽엔 로키산맥이, 서쪽엔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높은 산간분지로 강우량이 적어 대부분이 사막이나 반사막 형태의 건조한 지역이었다.
그런 만큼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고 그런 만큼 과연 그곳에도 원주민이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보단 그곳을 탐사하려면 어지간한 인원으론 턱도 없지 않나? 고작 네바다뿐만 아니라 오리건, 아이다호, 유타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잖아?’
산간분지는 몹시 광활했고 그곳을 고작 소수의 인원으로 탐사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사대원의 인원은 고작 500명.
그중에서 현재 남쪽으로 200명가량이 내려가 있는 만큼 북쪽에 남아있는 탐사대원의 수는 300명에 불과한데 이들을 동쪽으로 보낼 필요가 있나 고민되는 정성국이었다.
특히 탐사대는 승마술에 능숙했기에 활용도가 무척 높았다.
그런 이들을 원주민의 수는 적고 광활한 지역에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곳에 묻혀있는 수많은 광물이 좀 아쉽긴 한데...어차피 이곳에 묻혀있는 광물들도 손이 부족해서 내버려 두고 있는 판에 네바다 지역을 시작으로 그 주위를 열심히 탐사해봐야 뭐하겠어. 시기상조야.’
그가 기억하기로 캘리포니아 지역이 금으로 유명했다면 네바다 지역은 은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은광도 일손이 부족해서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개발할 여력은 없었다.
거기에 은을 채굴하더라도 이곳까지 운송하는 것도 일이고.
그나마 원주민들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 만큼 현재 시에라네바다 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스페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확장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훗날 스페인과의 충돌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탐사대를 북쪽에 처박아둘 수는 없지.’
그렇게 마음먹은 정성국은 대답을 기다리는 군사청장에게 답했다.
“광활한 황무지라...크게 매력적으로 들리진 않는군.”
“그렇기야 합니다만...허면?”
“북쪽에 남아있는 탐사대원이 300명 정도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그들을 모두 남쪽으로 이동시키게.”
정성국의 명령에 군사청장은 이 명령으로 훗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깨닫고 살짝 흥분했다.
“오오. 허면?”
“그래. 어차피 뱃길로 새남포와 연결되어 있으니 당장 육로로 새남포로 향하는 것이 급한 일은 아닐세. 그보다는 남쪽에 근거지를 두고 동쪽을 탐사하도록 하게. 그리고 누에바 에스파냐의 영역을 발견하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고.”
스페인이 보기에 북미 땅은 그리 매력적인 땅이 아니었다.
노예로 삼을 원주민의 수가 많지도 않았고 반항적이었다.
그렇기에 북미에도 식민지를 만들려고 몇 번 시도했었지만 실패하고 결국 플로리다와 멕시코 위에 뉴멕시코의 산타페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정성국은 탐사대원들보고 이 산타페를 찾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 명령은 결국 스페인과 한판 붙기로 정성국이 마음을 굳혔다는 것이었기에 군사청장은 속으로 환호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당장 명령을 내려서 탐사대들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혹시 모르니 최남단에 조그마한 병영을 세우고 경비대원을 좀 보내도록 하지. 일단은 200명 정도?”
“알겠습니다. 전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 * *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열심히 올라온 서류를 처리하고 있을 때 호위대장이 집무실에 들어와 이주 선단이 보인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시기를 가늠해보고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벌써 도착했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전하.”
지금껏 이주선단이 도착했던 시기보다는 확실히 일렀다.
하지만 작년 천급 함선을 직접 운용한 김봉길 선장은 다음에는 천급 함선끼리 따로 움직여야겠다고 투덜거렸던 것을 기억했다.
정성국 역시 대규모 선단을 구성하면 결국 선단의 속도는 가장 느린 배의 속도를 따라가는 만큼 그러는 게 낫다고 조언했었고.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천급 함선이 확실히 빠르긴 한가 본데? 알겠네. 마차를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명령에 호위대장이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정성국은 현재 살펴보고 있던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 사인하고 한쪽에 놔두었다.
그리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가려는 찰나 다시 누군가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어? 전하?”
품에 한 아름의 서류 뭉치를 들고 있던 하얀 들꽃은 집무실을 나가려는 정성국을 보고 멈칫했다.
정성국은 하얀 들꽃이 가져온 서류 뭉치를 피곤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뒤쪽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급한 서류가 아니면 저기다가 놔두거라.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이에 하얀 들꽃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어디 가시나요?”
“이주 선단이 도착했다는구나. 마중 나가야지.”
“아. 알겠습니다. 바로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정성국의 대답에 하얀 들꽃은 바로 마차를 준비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가려는 듯 움직였고 정성국은 급히 그녀를 말렸다.
“아니다. 이미 호위대장을 통해 말해두었다.”
“아...알겠습니다. 그럼 시키실 일은 없나요?”
“없구나. 교육청까지 다녀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이곳에서 쉬고 있으렴.”
그러자 하얀 들꽃이 정성국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저도 이주 선단을 구경하면 안 될까요?”
원주민들은 이주 선단을 구경하길 좋아했다.
볼거리가 적은 이곳에서 커다란 배가 줄지어 오가는 이주 선단은 아주 진귀한 볼거리였다.
특히 이주 선단은 1년에 한 번 오가는 만큼.
이를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하얀 들꽃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자꾸나.”
정성국의 말에 하얀 들꽃은 활짝 웃으면서 품 안에 들고 있는 서류 뭉치를 재빠르게 정성국의 집무실 책상 한쪽에 올려놓고 정성국을 따라왔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마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하길 잠시.
정성국의 예상대로 천급 함선으로 보이는 선박들이 선착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와! 저 커다란 배가 더 늘었네요? 작년에는 고작 한 척뿐이더니.”
“그러게 말이다.”
마차의 창문을 통해 천급 함선들이 줄지어 선착장에 정박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하얀 들꽃이었다.
정성국은 천급 함선의 수를 파악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4척이라...1년에 3척을 건조했다는 건데 생각보다 개척촌의 생산력이 나쁘지 않은데? 특히나 천급 함선은 두 차례 오갈 수 있어 더 많은 이주민을 태울 수 있으니까 이렇게 꾸준히 숫자를 늘려나가면...’
경신 대기근까지는 앞으로 6년 남은 시점에서 생각보다 개척촌의 건조 능력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흡족했다.
거기에 이번에 이주하는 장인들도 있으니 이곳 북미왕국에서도 더 많은 배를 건조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그때 마차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도착했습니다. 전하.”
“아. 내리자.”
“예. 전하.”
정성국과 하얀 들꽃이 마차에서 내려 선착장 쪽으로 잠시 이동하자 선착장에 정박한 천급 함선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맨 처음으로 선박에서 내리는 김봉길을 보고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을 때 김봉길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정성국의 의아한 표정을 짓자 김봉길이 슬쩍 몸을 틀면서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전아라가 눈망울을 글썽거리면서 정성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어?”
정성국이 오랜만에 본 전아라의 모습에 흠칫했을 때 전아라가 정성국에게 달려들었다.
“보고 싶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