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정성국은 새김포 근교에 마련된 새로 건설된 육군 훈련소를 찾았다.
군사청에 소속된 병사가 지속해서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병영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에 새김포 외곽에 새로운 병영을 짓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이 새로운 병영의 건설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에 이 새로운 병영을 육군 훈련소로 이름 짓고 병사를 훈련시키기 위한 만든 새로운 부대인 육군 훈련대의 건물로 배정한 정성국이었다.
정성국은 곧바로 이 육군 훈련소에 방문하고 싶어했지만 벌려놓은 일이 워낙 많아 일을 처리하다가 뒤늦게 방문하게 되었다.
새김포 외곽에 건설된 이 육군 훈련소는 기존 병영보다 몇 배는 커다란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이는 계속해서 병사들이 늘어날 것을 생각해 면적을 크게 잡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는 텅 빈 공터에 가까웠는데 바로 이곳에서 병사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한쪽에선 어설프게 말에 올라타 말 위에서 불안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병사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원주민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호쾌하게 말을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보고 정성국은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예전 서부영화에서 나오던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원주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서부영화에서는 원주민들이 악역으로 나오는지라 열차를 공격하거나 백인 마을을 약탈하다 정의로운 주인공이나 기병대에게 격퇴당하는 역할이지만 말이다.
'뭐 어차피 역사가 바뀌는 만큼 그런 영화는 나올 리가 없...아...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를 생각해보면 또 모르겠군. 다만 내가 기억하는 서부영화보단 전쟁 영화에 가깝게 되려나?‘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정성국은 자신을 따라온 군사청장에게 입을 열었다.
"승마 훈련을 꽤 열심히 하는군?"
"예. 전하. 지금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받는 병사들은 탐사대에 소속될 병사들인지라 승마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하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청에 소속되어 있는 병사들 가운데 탐사대에 소속된 병사들은 승마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탐사대의 주 임무는 주변을 정찰하거나 지형을 탐사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기에 승마 실력은 필수였다.
정성국이 생각하기에는 이 북미 땅은 워낙 넓은 만큼 모든 군사에게 말을 지급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이용할 수 있는 말의 숫자가 적었기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말은 탐사대에 우선하여 배정되었다.
덕분에 말을 타고 싶어 하는 수많은 원주민 병사들이 탐사대에 소속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았고 덕분에 병사들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부대의 서열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경비대에 소속되어 훈련받다가 성적이 좋은 병사들을 차출해 탐사대원으로, 그중에서도 뛰어난 병사들을 호위대로 차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제 육군 훈련소가 건설되었으니 육군 훈련대에서 훈련을 받고 성적순으로 차출될 테고.
이에 편재를 바꿔야 하나 고민했던 정성국이었지만 각 부대의 성격이 다른 상황이었기에 일단은 두고 보고 있었다.
정성국은 한쪽에서 불안 불안하게 말을 타다가 곧 말에서 내리고 다른 병사가 말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안색을 찌푸리며 군사청장에게 물었다.
"말이 부족한 건가?"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해서 저렇게 잠깐씩 말을 돌려 타며 승마 훈련을 하는 정도지요."
이에 정성국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군사청장을 바라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전령이 사용하는 말을 제외한 남은 말은 모두 탐사대에서 사용하지 않나? 헌데 부족하다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현재 이곳 북미에 존재하는 말은 500필가량이었다.
2차례 조선에서 말을 운송해왔고 더불어 이곳에서 태어난 망아지도 있었으니.
당장 망아지야 써먹지 못한다 할지라도 현재 탐사대원의 수가 많지 않은 만큼 개인에게 배정된 말이 있을 거로 생각했던 정성국은 말이 부족해 탐사대원들이 말을 돌려 타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아 물어보았다.
이런 정성국의 물음에 군사청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장은 말의 숫자를 늘리는 게 중요한 만큼 목부들의 요청으로 탐사대에 배정된 말 중에 종마로 사용할 수말들이 교배를 위해 목장에 가 있는지라..."
"아..."
가장 좋은 말을 탐사대에 우선 배정하라고 했더니 개중엔 종마로 사용해야 하는 말들이 있었나 보다.
이를 깨닫고 혀를 찬 정성국에게 군사청장이 덧붙여 말했다.
"덕분에 현재 수태한 암말들이 꽤 많다고 하더군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당장 말을 타고 출동할 수 있는 탐사대원은 몇인가?"
"당장은 50명입니다만...이용 가능한 모든 말을 끌어모으면 탐사대원 100명 모두 출동이 가능할 겁니다."
"그래? 근데 그 탐사대원 중에 저 친구들도 포함되는 거지?"
정성국이 한쪽에서 불안 불안하게 말 위에 올라있는 원주민을 가리키며 묻자 군사청장은 민망한 듯 대답했다.
"예. 저기 저 친구들은 아직 말에 익숙하지 않은지라...당장 저쪽에서 말을 달리는 병사들처럼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병사들은 50명 정도입니다."
"끙...숫자가 너무 적은데...이러면 그냥 주변을 탐사하는 임무 외에는 어렵겠는데..."
군사청장의 대답에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정성국은 혹시나 하며 다시 군사청장에게 저들의 수준을 물어보았다.
"그럼 저들의 승마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혹시 말 위에서 사격이 가능한가?"
"명중률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기사가 가능해지려면 말과 함께 지내며 말과 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단기간에 그런 능숙한 기병을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에 정성국은 입맛을 다셨다.
조선의 무관 출신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 탐사대에 소속된 병사들은 말에 익숙하지 않은 원주민이거나 조선인들뿐이니.
'결국, 생각했던 대로 승마보병으로 써먹어야겠네. 뭐 덕분에 기병총을 개발할 필요는 없어 다행...인건가?'
만약 이들의 수준이 높았다면 제대로 된 기병대로 만들기 위해 기병총을 개발하거나 혹은 기존에 만들었던 단총을 여러 정 지급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말에 이런 계획들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정성국이 이들 탐사대원을 신경 쓰는 이유는 북미 내륙으로 진출하려면 이들 외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 새김포에서 북미왕국의 최남단까지의 거리만 해도 400km였고 그곳에서 텍사스의 해안가까지의 직선거리만 해도 2400km였으니 말을 탈 수 있는 탐사대원이 아니라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꾸준하게 수를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군. 아직 프랑스 녀석들이 루이지애나 강을 따라 멕시코만까지 내려오려면 10년은 더 걸릴 테니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겠지.‘
그렇게 조급했던 마음을 가라앉힌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보고 당부했다.
"쩝. 하는 수 없군. 결국, 꾸준히 규모를 늘리는 게 최선인가. 알겠네. 일단 최대한 지원을 해줄 테니 꾸준히 탐사대의 수를 늘리고 최소한 탐사대원들은 능숙하게 말을 달릴 수 있게 훈련해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물끄러미 한쪽에서 신나게 말을 달리고 있는 원주민들을 바라보다 문득 그들의 얼굴이 꽤 익숙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아. 대추장의 자식들이로구나.'
당장 인력이 부족했던 정성국은 대추장의 자식들이 유창하게 조선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붙잡아 일을 시키려 했지만 하얀 들꽃을 제외한 그들은 말을 타고 싶다면서 군사청에 소속되길 원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군사청에 배속시키면서도 제대로 훈련시키라고 따로 언질을 주었는데 덕분인지 어느새 탐사대원이 되어 자신들이 원하던 대로 신나게 말을 달리며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정성국은 해맑은 표정을 짓는 그들을 보면서 묘한 부러움을 느끼며 저들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의 평판은 어떤가."
"저들 말입니까? 다들 괜찮은 편입니다. 훈련도 착실하게 받는 편이고 영리한 친구들이죠. 그리고 주변 병사들과도 잘 지내구요."
"그래? 저들은 지금 조원인가?"
"이번에 다들 조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군제 개혁을 하지 않은 관계로 개척촌에서 사용하던 편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군사청장은 저들이 이미 10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조장으로 승진했다고 대답했고 정성국은 저들이 군사청에 소속된 시기를 계산해보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설마 배경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
이에 군사청장은 빙긋 웃으면서 부정했다.
"물론입니다. 뭐 워낙 급격하게 규모를 늘리는 상황이라 손쉽게 승진했을 뿐이죠."
"하긴."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수긍했다.
더불어 계속해서 병사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었으니 다른 청에 비해 군사청의 경우는 승진의 기회는 더 많아질 것이다.
"저들을 키우실 생각입니까?"
슬쩍 정성국의 의사를 묻는 군사청장에게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그건 저 친구들의 능력에 달린 문제겠지. 내가 군사청의 인사에 개입할 마음은 딱히 없네."
"알겠습니다. 전하."
* * *
정성국은 기다리고 있던 3차 이주 선단이 보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무실을 박차고 나와 마차에 올라탔다.
정성국과 호위대장을 태운 마차는 곧바로 새김포 북쪽으로 향했다.
마차가 새김포 북쪽에 새로 만든 선착장에 도착했고 마차가 멈추자마자 마차에서 내린 정성국과 호위대장은 새로운 선착장으로 유유히 들어오는 날렵한 모습의 거대하면서도 기다란 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허어."
육중한 지급 함선과는 또 다른 모습의 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라보던 둘은 새로운 배가 선착장에 정박하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뒤에 있던 호위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저 배는 설마...?"
"그래. 천급이로군."
"오! 정말 대단하군요. 괜히 천급이라고 명명한 게 아니었군요. 지급 함선과는 모습부터 다른 것 같습니다. 전하."
"아무래도 속도를 위해 설계를 변경했으니 인급, 지급 함선과는 모습이 매우 다르지. 헌데 이건 좀 의외군."
"예?"
눈앞에 보이는 천급 함선을 보고 살짝 흥분한 호위대장과는 달리 정성국은 오히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천급 함선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천급 함선을 따라 선착장에 정박하려는 지급 함선들을 바라보았다.
정성국은 순수한 범선인 지급 함선을 바라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지급 함선은 아직 개조한 것처럼 보이질 않는데. 뭐지? 설계만큼 천급 함선의 속도가 나오지 않은 건가? 아니면 천급 함선의 건조가 늦어져서 뒤늦게 출발해 합류한 건가? 이주 선단의 도착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살짝 빠르긴 한데...'
설계한 대로 천급 함선이 건조된다면 그 속도는 지급 함선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속도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그렇기에 천급의 건조가 진작 완료되었다면 천급이 먼저 도착하고 후에 지급 함선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도착했어야 할 텐데 속도가 다른 두 함선이 한데 뭉쳐 도착한 것이다.
'뭐 자세한 사항은 저 친구에게 들으면 되겠지. 저 친구는 결국 천급 함선의 함장 자리로 옮긴 건가? 어휴...'
천급 함선에서 가장 먼저 내려 정성국을 향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다가오는 김봉길을 보고 피식 웃는 정성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