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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3화 (53/850)

53화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아이누인들은 포로나이 항에 도착한 기선을 타고 홋카이도 중부에 위치한 해안가로 이동했다.

현대의 삿포로 인근 해안가에 도착한 투로시노와 박경수를 비롯한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은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에게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 뒤에는 왜인들과 달리 폭리를 취하지 않고 공정하게 교역을 해 주어 그들의 숨통을 틔워 주었고 왜인들에게 저항할 수 있게 물자를 제공해주는 원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은 왜인들과 일정수준 교류를 해왔기에 화약 무기에 대해 모르지는 않았다.

이번에 마쓰마에 번과 벌어진 전투에서도 철포로 무장한 병사들을 상대하기도 했었고.

다행스럽게도 원상이 물자를 지원해주며 조언해준 대로 대나무방패를 만들고 가죽을 덧씌워서 철포에 의한 피해를 줄이긴 했지만, 철포는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에겐 부담이었다.

헌데 이번에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온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은 비록 수는 적지만 왜인들과 마찬가지로 철포로 무장했고 왜인들과는 달리 동작에 절도가 있어 정예병처럼 보였기에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은 그들을 환대할 수 밖에 없었다.

투로시노와 박경수는 현재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의 이끄는 샤쿠샤인과 오니비시와 회의를 통해 현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마쓰마에 번이 봉기한 아이누인들에게 패배한 이후 막부와 주변 지역에 병력을 요청했고 결국 며칠 전 그 지원병력이 마쓰마에 번에 도착했다는 정보였다.

"흠...마쓰마에 번에 지원병력이 도착했다라...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혹시 없습니까?"

투로시노의 물음에 오니비시가 부족원들을 통해 얻은 자세한 정보를 이야기해주었다.

"히로사키 번, 모리오카 번, 구보타 번에서 총 5천의 병력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중 철포병이 1천, 기마병이 1천이라고 하더군요."

"흐음...그렇습니까?"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철포병과 기마병이 모두 2천이었기에 막사 안에 있는 아이누인들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박경수는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고 이를 확인한 샤쿠샤인은 이채를 띠면서 박경수를 바라보고 말을 건넸다.

"음? 자신만만한 표정이시구려?"

"저희들은 왜놈들에 비하면 정예병이니까요. 비록 수에선 밀릴지언정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요?"

박경수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막사 안의 아이누인들도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박경수는 겉으로는 왜인들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속으로는 머리를 굴렸다.

'400명 대 1천명이라...무기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비슷할 것 같긴 한데...만약 갑오소총으로 무장했다면 그냥 압살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좀 아쉽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대방 어르신이 일러준 대로 진형을 짜고 천천히 왜놈들의 철포병부터 줄이면 되겠지.'

생각을 끝낸 박경수는 샤쿠샤인을 보고 입을 열었다.

"예. 다만 그러자면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말해보시오."

"철포병들을 상대하려면 저희를 보호해 줄 부대가 필요합니다. 방패로 무장한."

이에 샤쿠샤인은 선선히 박경수의 요청을 승낙했다.

"아. 그거야 뭐 어렵겠소. 우리 부족원들이 당신들이 다른 것에 신경 안 쓰고 철포만 사용할 수 있게 돕겠소."

그러자 옆에 있던 오니비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자네들에게 방패 일부를 넘겨주지. 그리고 우리는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가 저들이 흐트러지면 공격해 들어가도록 하겠소."

"그러시죠."

대충 중요한 이야기가 끝나자 진군로를 확인한 후 회의를 끝냈다.

그리고 현 위치에서 남하하여 해안가를 따라 마쓰마에 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박경수가 지휘하는 아이누인들과 호흡을 맞출 방패로 무장한 샤쿠샤인이 지휘하는 아이누인들과 훈련을 겸해서 이동했기에 진군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한 지 10일.

아이누인들이 남하한다는 소식에 마쓰마에 번에 머물고 있던 지원 병력이 북상하기 시작했고 결국 쿤누이 지역에서 맞붙게 되었다.

* * *

"북미왕국이라...국명을 통해 이번에 건국할 국가의 목표를 명확하게 알 수 있군요."

"하하하. 뭐 그렇긴 하지."

정성국이 이 대륙을 미주로 이름 붙인 이후 이 대륙은 정성국에 편의로 나누어졌다.

현재 누에바 에스파냐 그 위쪽의 북미와 그 아래쪽의 남미.

원 역사에서 파나마를 기점으로 북미와 남미를 구분하는 것과는 달리 문화적으로 구분하던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앵글로 아메리카가 북미였고 멕시코를 포함한 남쪽의 라틴 아메리카가 남미였다.

조선인들에게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라고 가르칠 수 없었던 정성국이 편의상 분류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이 대륙 전체를 미주로 부르는 원주민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은 주로 미주보다는 북미 대륙으로 말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식 국가 명칭을 북미왕국으로 한다는 의미는 명확했다.

북미 지역 전체를 지배영역으로 삼겠다는 뜻과 동시에 식민지 획득에 눈이 벌게진 여러 유럽 왕국에 이 땅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리겠다는 의미다.

또한 최소한 자신들의 기준으로 북미 지역은 모두 차지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릴 수도 있었고.

정성국은 현재 에스파냐의 식민지인 누에바 에스파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현재 북미왕국의 인구수는 10만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외무청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다른 대추장들에 의해 순조롭게 다른 부족들이 순차적으로 합류한다고 한들 잘해야 15만에서 20만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혹한 스페인의 식민 통치로 인해 인구가 줄어들었음에도 천만이 넘어가는 멕시코 지역이나 합쳐서 3천만이 넘어가는 남미 전체는 스페인이 그냥 가져가라고 넘겨주어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구수도 중요하지만, 그 비율도 중요해. 물론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이긴 하지만...대자연을 믿는 북미의 원주민과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전혀 다르지. 거기에 지금은 스페인의 강압으로 기독교를 믿는 원주민이고. 뭐 나중에 인력이 필요해서 적당히 받아들이면 모를까 남미 전체를 흡수하기 힘들어.'

정성국은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소수 민족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과 민족을 지배하려고 달려든 몽골족이나 만주족의 결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더 경계하고 있었다.

물론 중화라는 자부심이 무척이나 강한 한족과 남미의 원주민은 경우가 다르긴 했지만, 인구수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 언감생심 남미를 노릴 마음은 전혀 없는 정성국이었다.

그래서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북이라는 글자를 일부러 넣었던 정성국이었다.

허나 군사청장은 정성국과는 조금 다른 의견이었는지 이의를 제기했다.

"헌데 저 남쪽에 있는 스페인이라는 국가와는 결국 싸울 생각 아닙니까? 저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영토를 얻을 것을 생각하면 굳이 북미왕국이라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보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분명 적당히 자리를 잡고 나면 스페인과는 한판 붙을 생각이긴 하지. 허나 그렇다고 저들의 영역인 남미까지 침범할 생각은 없네."

"으음..."

군사청장은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고 다른 청장들도 이겼는데 굳이 저들의 영역을 빼앗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청장들을 살펴보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저들을 물리치고 저들의 땅을 우리가 차지한다고 치세. 남미 전체가 3천만이 넘는 인구를 관리할 자신이 있나?"

순간 군사청장도 움찔거렸지만, 그 옆에 행정청장이나 관리청장은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서 고개를 맹렬하게 흔들었다.

"어...음. 그건 좀..."

"그 넓은 땅에 3천 만의 인구라...어휴."

그와는 달리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옆에 있는 교육청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많은 건가?"

"지금 우리가 10만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요. 뭐 땅덩이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지만...그걸 관리하겠다고 곳곳에 관리를 파견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네요."

교육청장의 말에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조용한 곰과는 달리 행정청장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그런 청장들의 반응에 피식 웃은 정성국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자자. 뭐 정식 명칭은 북미왕국이긴 한데...이건 우리에겐 조금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거야. 그러니 백성들에겐 미, 미국, 미나라, 북미국, 북미나라 등등 편한대로 부르라고 하게. 이걸로 마무리하지."

정성국이 결론짓자 어차피 나라 이름은 왕국의 주인인 정성국이 짓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던 다른 청장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다만 행정청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알겠습니다. 헌데 건국 의식이라던가 왕위에 오르는 의식 같은 것은...?"

"글쎄? 그걸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뭐 물론 총독 어르신. 아니 이젠 전하께서도 실리에 치중하시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만..."

행정청장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나라를 구성한 상황도 아닌데 굳이 거창하게 일을 벌일 이유도, 능력도 없었던 정성국이었기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어차피 당장은 형식적인 절차인데 굳이 그런 의식을 준비할 필요가 있나 싶네. 거기에 원상 대부분이 아직 조선에 있는 상황에서 왕위에 오르는 의식을 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러니 그런 의식은 훗날 나라 이름에 걸맞게 북미 지역을 모두 장악하고 나서 그럴듯한 즉위식을 하도록 하고...일단 축제로 대체하도록 하지. 이보게 관리청장."

"예. 총독. 아니 전하."

정성국은 영 어색한 표정으로 관리청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끙...나중에 북미 지역을 다 차지하고 나서 즉위식을 올린 이후에나 전하라고 부르면 안 될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쩝. 아무튼. 적당히 길일을 잡고 백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열었으면 하는데...가능할까?"

이에 관리청장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식량도 충분하고요."

"그래. 그럼 행정청장과 함께 길일을 잡고 온 백성이 즐길 수 있게 축제를 열어. 음식과 술도 넉넉하게 풀고."

이에 관리청장과 행정청장은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끙...그래. 그냥 총독 어르신 대신 전하라고 호칭만 바꾸는 거로 하자. 괜히 조선처럼 이런저런 예법 가져올 생각 말고. 그리고 군사청장."

"예. 전하."

"새남포로 보낼 군사는 뽑아 두었지?"

새남포는 탐사대와 웅크린 늑대가 탐사한 시애틀 지역에 새롭게 건설한 항구 도시 이름으로 웅크린 늑대가 주변의 여러 원주민과 교섭을 통해 항구를 건설할 부지를 확보한 이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새남포의 경우 훗날 수많은 이주 선단의 중간 기착지가 되어야 하는 만큼 이런저런 물자를 보관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아예 항구 안에 병영을 지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생각이었다.

"예. 일단 100명을 우선 선발해 두었고 내년에 새로 100명을 추가로 모집해 보낼 계획입니다."

"관리청장?"

"새남포로 보낼 물자는 모두 준비해 둔 상태입니다."

"개척청장?"

"새남포로 보낼 개척단은 이미 대기 중입니다. 새남포로 가서 선착장과 병영을 먼저 만들고 병영 안에 식량 창고와 연료 저장고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미 모든 준비가 다 완료되었다는 말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바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게."

"예.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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