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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1화 (51/850)

51화

석유.

현대 문명을 이루는데 빼놓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석유는 보통 산업혁명 이후에 내연기관을 돌리기 위한 연료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의외로 인류가 이 석유를 사용한 역사는 꽤 깊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추공을 통해 지표 아래에 있는 석유를 뽑아 사용하는 광경은 19세기 이후에나 가능했지만, 지표면에 가깝게 매장되어있거나 지표면 밖으로 흘러나온 원유는 역청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용됐다.

이 역청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물질이었지만 그 성질 때문에 방수용이나 포장용, 약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석유는 등불 연료로 사용되는 고래 기름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후 대체 연료를 찾는 사람들에 의해 원유를 정제한 등유가 등불 연료용으로 우수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인해 단순히 불을 밝히는 데 필요했던 물질이었던 석유의 가치는 급등하게 되고 내연기관이 발달하며 수많은 수송 수단이 생겨남에 따라 석유는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석유는 석탄과는 달리 매장된 지역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북미에는 이 석유의 매장량이 꽤 풍부한 편이었다.

흔히 미국의 석유 대다수는 텍사스에 매장되어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북미 땅 곳곳에 매장되어있었다.

오일러쉬를 일으킨 미국 최초의 유전은 텍사스가 아닌 북쪽의 펜실베이니아주에 있었고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베이커스필드 인근에도 막대한 석유가 매장되어있었다.

거기에 다른 지역에 매장되어있는 석유들과는 다르게 지표면에 가깝게 매장되어있어 석유를 뽑아내기도 쉬웠고.

애초에 캘리포니아 남부에 매장되어있는 석유는 포도 농사를 위해 땅에 말뚝을 박았다가 석유가 흘러나와 그 존재를 알았다고 하니.

그런 지역을 요쿠츠 족이 합류함에 따라 손쉽게 얻게 된 정성국이었다.

'물론 당장 석유를 뽑아낸다 해도 써먹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그렇다고 또 못 써먹을 건 아니란 말이지? 애당초 증기기관의 연료도 구하기 쉽고 효율이 좋아서 석탄을 쓰는 거지 꼭 석탄을 쓸 필요는 없고...이걸 석유를 사용할 수 있게 적당히 개조해보면...흐음.'

정성국은 잠시 이곳의 연구청에 소속된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뒤편에 책상 한쪽에 빼곡히 쌓인 보고서들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당장 연구청에 틀어박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긴 하지. 그렇다고 지금 연구청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만으로 새로운 연구는 어려울 테고. 결국, 개척촌에 있는 연구 인력들을 모두 이쪽으로 이주시켜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정성국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연구 인력들은 이쪽으로 옮기자. 장인들이야 좀 남겨둔다 하더라도 연구 인력은 이쪽으로 다 옮겨서 빠르게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게 나을 것 같네. 특히 요쿠츠 족이 합류해서 센트럴밸리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슬슬 이곳의 개발에 집중해야겠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자 수많은 식량의 생산이 가능한 지역이 바로 이곳 사람들이 중앙평원으로 부르는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다.

그리고 요쿠츠 족의 합류로 인해 합류한 원주민 영역을 다 합치면 이 중앙평원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게 된 상황이고.

그런 만큼 이곳을 제대로 개발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인구가 워낙 적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으니까.

정성국은 그렇게 결정을 내린 후 집무실 한편에 있는 서랍을 열고 안에 돌돌 말린 여러 지도 중에서 북미 전체 지도를 꺼내 들고 집무실 책상으로 가져와 펼쳐두었다.

'음...요쿠츠 족이 합류한 덕분에 북미 내륙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지만 당장은 무리지. 다만 지금처럼 원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호의를 베풀어서 주변 원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하게 해야 하니 남쪽에도 제대로 된 마을을 건설할 필요가 있긴 한데...흐음.'

정성국은 그러면서 캘리포니아 오른쪽에 있는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애리조나주는 원주민을 제외하면 스페인 세력은 없긴 한데...참아야지. 끙.'

이 시기 스페인은 북미 땅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막대한 은이 나오는 남미에나 관심이 있었지.

그렇기에 북미는 가끔 탐사대를 보내 지형을 탐사했을 뿐 북미를 개척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그런 북미 땅 가운데 유일하게 그들이 개척한 곳이 바로 뉴멕시코의 산타페.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를 거쳐 텍사스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뉴멕시코는 그들이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텍사스를 확보하기 위해선 꼭 지나쳐야 하는 땅이었다.

그런 만큼 적당히 자리를 잡은 후 스페인과 충돌할 시기에나 내륙을 탐사할 마음을 먹는 것이 나았다.

잘못하다 스페인에 우호적인 원주민 부족에 의해 스페인에 정보가 흘러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것을 잘 아는 정성국은 잠시 아쉬운 눈초리로 지도를 바라보다가 다시 지도를 돌돌 말면서 생각했다.

'넉넉잡고 딱 10년만 참자.'

* * *

회의실에서 행정청장이 정성국을 바라보며 강력한 어조로 주장했다.

"제대로 된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회의실 안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정성국은 그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면도를 하지 않아 까끌까끌한 수염이 나온 턱을 매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이름이라..."

행정청장은 회의실 안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예. 언제까지 부족 연맹이라고 불릴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 같은 부족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애초에 이주민들이 제대로 된 부족도 아니긴 하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나라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이주민들이 조선 민족이라는 것에 착안해 조선 부족으로 부르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 부족의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대부족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원주민들은 부족 연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소속감을 가지길 원했던 이주민들도 자연스럽게 부족 연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새로운 개척촌이나 새김포 소속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부족 연맹이 나았으니까.

그때부터 관료들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지만,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더 많은 일이 생길 것이 뻔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어서 잠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깨닫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절대로 일이 줄어들 리가 없다는 것을.

가뜩이나 행정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이 줄어들 만하면 새로운 이주민들이 도착할뿐더러 새로운 부족들이 합류해서 일거리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보니 나라의 건국을 미루기보다는 차라리 형식적으로나마 나라를 건국하는 게 어떻겠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행정청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번 요쿠츠 족의 합류로 우리의 영역은 이곳 중앙 평원의 절반 이상을 손에 넣은 셈입니다. 이젠 더는 이곳에서 우리와 맞설만한 부족도 없지요. 허니 슬슬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요쿠츠 족의 합류로 인해 중앙평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상황이었고 덕분에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이 부족 연맹에 대항할 만한 힘 있는 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행정청장이 보기에는 결국 하나둘 부족 연맹에 흡수될 것으로 보았고 그런 만큼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게 나았다.

거기에 인구를 부양할만한 비옥한 땅도 충분할정도로 확보했으니까.

그런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손가락으로 탁상을 치며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흠...인구가 너무 적지 않나?"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지?"

그러자 행정청장은 외무청장으로 이 회의실에 자리 잡은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이건 내가 말하겠다. 총독."

"그러시죠. 조용한 곰."

"우리 외무청은 부족 간의 교섭을 전담한다."

"그건 그렇죠."

"이번 요쿠츠 족처럼 우리 주변의 부족들과 교섭하여 합류시킬 계획이다. 그러자면 우리의 힘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니 부족 연맹보다는 하나의 대부족으로 알려지는 것이 협상에 더 유리하다."

그러자 조용한 곰의 옆에 앉아있던 교육청장이 조용한 곰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조용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대부족이 아니라 나라라니까요."

"비슷한 것 아닌가."

"달라요. 전혀."

정성국은 피식 웃고 잠시 생각했다.

정성국은 조금은 천천히 주변 부족들과 교류해나가면서 흡수할 생각이었지만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은 적극적으로 그들과 교섭해 흡수할 생각으로 보였다.

이에 정성국은 구미가 당기면서도 원주민인 조용한 곰은 파악하기 힘든 문제를 떠올리고 행정청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흐음...문제는 조선 아닌가?"

행정청장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문제가 될 것이 있습니까? 지금처럼 선원들의 입단속만 철저히 하면 되는 건데요. 실제로 조선 조정과 교섭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이곳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지금처럼 선원들만 잘 관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한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리고 아이누인들도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게 도와주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기본적으로 개척촌에서 전해오는 정보 대부분은 회의실에 참석하는 청장급들의 인사에겐 제공했었기에 이들도 아이누인들과 왜인들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누 섬과 포로시노 항은 꽤 중요했기에 이를 걱정하는 청장들에게 정성국은 정평국과 의논한 계획을 대략적으로 설명해두었기에 행정청장은 이를 거론했고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막부와 협상하려면 부족으로서 협상하는 것보다는 형식적으로나마 나라의 모습을 갖추는 편이 나으니까."

"예. 아이누인들도 명목상으로나마 나라를 세우는데 우리가 나라를 세우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주변에 눈치를 볼 나라도 없고. 그리고 추후에 저 남쪽에 자리한 남만인들과 대적하기전에 나라의 구색을 갖출 생각 아니셨습니까?"

"흐음."

정성국 역시 적당히 자리를 잡고 스페인에 시비를 걸 때쯤에는 명목상으로나마 국가의 형태를 갖출 생각이었다.

그래야 이후에 저들과 대등한 협상이 가능할 테니까.

물론 처음에야 제대로 된 국가라고 인정해줄 리는 없겠지만 계속 저들에게 피해를 주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기꺼이 협상할 것으로 생각했다.

스페인이 처음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에 진출한 후 그곳의 원주민 부족들을 손쉽게 이겨 필리핀을 장악했다.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강대한 아시아 국가들을 경험했던 포르투칼과는 달리 스페인은 아시아의 국가 수준을 파악하지 못해서 필리핀을 장악한 후로 주변 국가를 만만하게 여겼지만, 실제 명나라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후론 스탠스를 바꿔서 교역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왜놈들을 압박하고 협상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일단 나라를 세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정성국이 청장들에게 일러준 계획에는 필요하다면 지급 함선을 동원해 막부를 압박하는 방안도 있었기에 이를 거론하는 행정청장이었다.

"용병이 아니라 그들을 돕는 나라로 참여하란 소린가?"

"예."

이에 정성국은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그 부분은 좀 보류하도록 하지. 잘못하다간 조선에 알려질 수도 있으니. 아무튼, 알겠네. 다른 사람들도 다들 같은 의견인가?“

""예.""

회의실에 앉아있는 여러 청장이 대답하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일단 회의를 끝냈다.

"흐음...이건 좀 고민해보고 결정을 내리겠네. 그럼 이것으로 회의는 마치도록 하지.“

정성국이 결정을 미루자 살짝 실망하는 청장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려고 할 때 문득 정성국은 행정청장을 불렀다.

"아. 행정청장."

"예?"

"이걸 안 물어봤군. 혹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면 붙일 이름은 생각해 둔 것 있나?“

정성국의 물음에 회의실을 나가려던 청장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왔지만 행정청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요...그건 총독 어르신이 결정하셔야죠. 아! 전 새조선만 아니면 만족합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조용한 곰을 제외한 다른 청장들도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청장들의 반응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나도 딱히 그 이름을 붙일 마음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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