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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0화 (50/850)

50화

박경수가 부 지휘관 실에서 여러 서류를 살펴보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고 투로시노가 들어왔다.

박경수는 살펴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투로시노를 바라보았을 때 그가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경수. 준비는 끝났나?"

"아아. 출전 준비는 이미 다 해 두었네. 곧 개척촌에서 기선이 오면 그걸 타고 홋카이도로 이동하면 될걸세."

매서운 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서 겨우내 조용했던 홋카이도에는 슬슬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에 투로시노는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로 구성된 소총 부대를 출전시키기를 원했고 박경수 역시 이번엔 출전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이에 동의하고 부대의 출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다만 아이누인들로 구성된 부대의 현 위치는 포로나이 인근이었기에 현재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이 집결하고 있는 홋카이도 중부와는 거리가 꽤 있었다.

거기에 홋카이도의 다른 아이누인들은 그냥 무기 하나 들고 자신이 며칠 먹을 식량만을 짊어지고 홋카이도 중부로 이동했다면 이들은 제대로 된 보급물자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 만큼 포로나이에 어선을 타고 홋카이도로 이동해 육로로 이동하기에는 고생할 것이 뻔했다.

해서 이들을 편안하게 이동시켜 줄 개척촌의 기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박경수는 투로시노에게 이를 상기시켰지만, 투로시노는 조급한 기색을 버리지 못하며 박경수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런가? 빨리 기선이 도착해야 할 텐데..."

이런 투로시노의 행동을 본 박경수는 한숨을 내쉬고 투로시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투로시노.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 어제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이 보낸 전령의 보고를 듣지 않았나. 아직 와진치에 아무런 지원 병력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으음...그렇긴 한데 슬슬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상황이니 걱정이 되어서 그러네."

"본토에서 오는 지원 병력이 배를 타고 와진치에 도착해 바로 북진할까 걱정인 건가? 허나 그럴 리는 없네. 적당히 휴식 후에 이동할걸세. 거기에 성급하게 덤벼들었다가 패배하기도 했으니 신중히 움직일 테고. 만약 저들이 먼저 움직인다 해도 이번엔 우리도 참전할 테니 혹시 그 전에 전투가 벌어지면 무리하지 말라고 이미 연락을 취하지 않았나."

다시 한번 박경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내쉰 투로시노는 심각한 표정으로 박경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후우. 그렇지. 헌데 경수."

"왜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저 샤모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출전을 앞두고 투로시노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깨달은 박경수는 그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를 위해서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우리가 합류하는 것 아니겠는가."

"으음...물론 신식소총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고작 400명으로 전장의 승패를 가를 수 있을까?"

처음 원상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200명을 모집했고 실제로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과 왜인들 간에 충돌이 일어난 이후 다시 원상에서 물자를 제공해 주어 200명을 추가로 모집했다.

그리고 원상에서 추가로 보내 준 경비대원들의 도움으로 추운 겨울임에도 땀이 날 정도로 죽어라 훈련을 했던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이었다.

덕분에 신식소총에 익숙해진 아이누인들이었고 새로 합류한 부대원들도 분당 4발은 충분히 발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들을 실질적으로 훈련시켰던 박경수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투로시노를 보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물론일세. 그를 위해서 겨울내내 열심히 훈련하지 않았나. 거기에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에게도 추가로 물자가 지원되었다고 알고 있네. 거의 1만에 가까운 아이누인들이 함께 할 테니 너무 걱정 말게나."

"으음..."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박경수의 말에도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 근심 어린 표정이 역력한 투로시노였고 박경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자신의 친구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장식장에서 자그마한 자기로 만든 술병을 꺼냈다.

마개를 열자 향긋한 주향이 방안에 퍼지기 시작했고 박경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신 후 이를 투로시노에게 넘기며 물었다.

"자네. 불안한가?"

투로시노는 박경수가 건넨 자그마한 술병을 받아들고 단숨에 마시기 시작했다.

이를 담담하게 바라보면서도 박경수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저거 그냥 소주도 아니고 무척 귀한 술인데...'

투로시노는 자그마한 술병에 담긴 술을 모두 마신 후 병을 내려놓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박경수를 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후우. 아무래도...이번 전투는 꼭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영 진정되질 않는군. 자네도 잘 알지 않나.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은 제대로 된 병력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을. 계속해서 승리한다면 모를까 한 번이라도 패배하는 순간 흩어질걸세. 특히 전례가 있지 않은가."

투로시노는 포로나이를 방문한 여러 홋카이도 아이누인들과 교역하면서 그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과거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이 왜인들에게 봉기했던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대략 들을 수 있었다.

약 200년 전에 있었던 아이누인들의 봉기는 1457년 왜인과 아이누인 소년 간의 다툼이 일어나 왜인이 이 아이누인 소년을 찔러 죽이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에조치 동부의 족장인 고샤마인을 중심으로 아이누인들이 집결해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왜인들과 맞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고 왜인들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해 왜인들의 거점인 무역 거점 대부분을 점령할 정도로 기세를 올렸다.

허나 본토에서 지원된 왜인들에 의해 아이누인들의 지도자였던 고샤마인 부자를 사살당했고 아이누인들은 새로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붕괴했었다.

이를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던 투로시노는 한 번이라도 패배하는 순간 현재 집결했던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이 예전처럼 붕괴할까 과도하게 걱정하게 되었고.

박경수 역시 투로시노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어차피 제대로 된 부대가 아닌 다음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신이 훈련한 부대를 믿고 있었을뿐더러 신식소총이라면 왜놈들에게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투로시노를 달랬다.

"물론 알고 있지. 하지만 생각해보게. 과거에 아이누인들이 왜인들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기마 부대 때문이었네. 허나 자네도 잘 알겠지만 기마 부대는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우리 부대원들을 당해낼 수 없을 거네. 거기에 아이누인들의 무장도 예전에 비한다면 충분히 좋은 편이고. 과거를 알고 이에 대비하는 것은 좋네만 자네는 지금 너무 과하게 걱정하고 있네. 투로시노."

박경수의 설득 때문인지 아니면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지 투로시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이거 차라리 다행이야. 자네가 실질적인 지휘관이라서. 만약 내가 실질적인 지휘관이었다면 이 부담감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에 박경수는 투로시노가 내려놓은 술병을 슬쩍 들어 그 안이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자네가 실질적인 지휘관이었다면 오히려 나처럼 일하기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을 것 같은데?"

"하하하! 자네의 일을 도우려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아서 말일세. 아무튼, 자네만 믿겠네."

이제야 밝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투로시노를 보고 박경수는 피식 웃고 대답했다.

"그러게나."

* * *

따사로운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집무실 안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을 무렵 집무실 문 바깥에서 호위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독 어르신. 기다리시던 손님이 오셨습니다."

"음. 모시게."

정성국의 허락이 떨어지자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푸른 안개와 함께 한 원주민 노인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를 보고 정성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푸른 안개. 그리고 이분이 바로 그?"

그러자 푸른 안개는 고개를 살짝 숙여 정성국에게 인사하면서 자신과 함께 들어온 원주민 노인을 소개했다.

"총독. 이 친구가 바로 요쿠츠 족의 대추장인 멀리보는 수리일세."

"반갑다. 나는 멀리보는 수리다."

살짝 어설픈 조선말에도 정성국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멀리보는 수리. 저희에게 합류한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멀리보는 수리는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푸른 안개에게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했고 푸른 안개는 이를 옆에서 통역했다.

"환영해 줘서 고맙다는군."

"아. 멀리보는 수리는 아직 우리 말을 잘 못 하나 보군요."

요쿠츠 족이 푸른 안개를 통해 합류 의사를 밝힌 후로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거로 생각한 정성국은 이를 전담할 부서인 외무청을 만들었다.

이 외무청은 일단 다른 부족과의 교섭이 주 업무였기에 다른 부족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동안 부족 간의 중재에 익숙한 대추장들이 놀고 있었고.

그래서 정성국은 대추장들을 설득해 그들 대부분을 이 외무청에 몰아넣었고 조용한 곰을 외무청장으로 임명하고 아예 그들에게 기준을 제시한 후 협상을 맡겼다.

덕분에 이번 협상은 요쿠츠 족과 친분이 깊은 푸른 안개가 직접 그들의 대추장과 이야기해서 협상을 끝냈고 결국 요쿠츠 족은 다른 4 부족처럼 이주민들에게 합류하게 되었다.

이 자리는 바로 옆 회의실에서 마지막 협상을 마친 요쿠츠 족의 대추장을 환영하는 자리였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멀리보는 수리를 보게 되었다.

"음. 우리와는 달리 아직 조선 말에 익숙하진 않다네. 요쿠츠 족 중에선 주로 새마포에 가까운 추장들이 주로 방문했을 뿐이고 이 친구는 주로 내륙에 머물고 있었으니."

"뭐 천천히 교류하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겠지요."

"그렇겠지. 음?"

정성국과 푸른 안개가 이야기가 길어지자 멀리보는 수리는 푸른 안개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푸른 안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보는 수리의 요청을 전해주었다.

"이 친구가 그러는군. 이제 곧 파종할 시기인데 자신들도 조선 민족에게 합류했으니 협상한 것처럼 다른 부족들과 차별 없이 파종할 작물을 내어달라고."

"물론입니다. 이제 저희와 합류한 만큼 이런저런 지원을 해 드려야죠. 저희는 약속한 대로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 말라고 전해주세요."

정성국의 말을 푸른 안개를 통해 전해 듣게 된 멀리보는 수리는 정성국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며 직접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이에 정성국은 미소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또 저에게 요청할 만한 일은 없습니까?"

푸른 안개의 통역에 멀리보는 수리는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약속만 지켜준다면 굳이 따로 요청할 것은 없다는군. 이제 같은 부족이 되었으니 이곳 새김포를 좀 살펴보고 싶다고 하네. 그리고 병사들이 훈련하는 병영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고."

이에 정성국은 흔쾌히 멀리보는 수리의 요청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이제 같은 부족이니 굳이 막을 필요가 없지요. 이런 일은 외무청에서 해야 하는 만큼 통역이 가능한 푸른 안개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푸른 안개가 고개를 끄덕이고 멀리보는 수리에게 무어라 이야기하자 그는 웃으면서 정성국을 바라보고 인사한 후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정성국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로서 내륙을 통해 로스앤젤레스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인가. 뭐 당장은 스페인의 눈을 피해야 하니 로스앤젤레스에 진출할 마음은 없지만...일단 석유는 확보한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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