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정평국은 막 개척촌에 도착한 박헌수가 직접 건네준 보고서를 쭉 살펴보았다.
이 보고서에는 마쓰마에 번과 홋카이도 아이누 간의 충돌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마쓰마에 번이 단독으로 병사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대로 마쓰마에 번은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무참히 패배했다.
물론 그런 결과를 위해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을 통해 무기와 식량을 지원했던 것이었지만 보고서를 보아하니 너무 일방적인 결과라 정평국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다행히 큰 피해는 없나 보군?"
계속해서 아이누섬을 오갔던 박헌수 선장은 아이누인들이 큰 피해 없이 왜인들을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로 계속해서 밝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충돌이 예견되어 있었음에도 새로운 부대의 출전을 미뤘던 만큼 만약 이번 충돌에서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이 승리를 했더라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더라면 투로시노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전 마쓰마에 번주가 무슨 생각으로 병사를 일으켰는지 모르겠더군요. 전에도 크게 봉기해서 피해를 본 것으로 아는데요."
이에 정평국은 형인 정성국이 자신에게 이야기해준 내용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그 이후에 본토에서 지원이 와서 확실히 제압했잖나. 그 이후로 아이누인들은 별다른 반항을 하지 못했고...그랬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폭리를 취했던 거겠지. 뭐 보아하니 마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적당히 제압할 생각이었나본데...그것보단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들이 일제히 봉기했다는게 좀 의외군. 같은 동족이라고는 하나 제대로 된 지도부도 없고 마을마다 족장이 따로 있으니 눈치를 보거나 왜놈들과 친한 부족도 있었을 텐데?"
박헌수 선장은 포로나이에 머물면서 수집했던 정보들을 풀어놓았다.
"물론 왜놈들과 친한 부족도 있긴 하겠지만 그들이라 할지라도 왜놈들의 영역인 와진치에 들어가 교역을 할 때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 교역하는 상황이니까요. 거기에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돈이 궁한 마쓰마에 번이 더욱 폭리를 취하는 상황에서 병사를 소집해 추가로 세금을 걷는다는 소식에..."
"왜놈들과 친한 부족이라 할지라도 더는 못 버텼단 소리군."
"예."
형인 정성국은 아마 몇몇 부족은 왜놈들과 결탁할 위험성이 있었기에 그 부분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했었다.
이에 정평국은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 중에 절반이라도 봉기한다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헌데 결과는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인 전체가 왜놈들에게 반기를 든 셈이다.
만약 이들 뒤에 원상이 없었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왜놈들에게 반기를 들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홋카이도 아이누인들도 바보는 아니었고 특히 부족장들은 포로나이를 한 번쯤은 방문했었기에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 뒤에 대단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특히 왜놈들의 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배를 소유하고 아이누인들에게 꽤 호의적인 세력.
거기에 그들의 사정을 듣고 무기와 식량까지 지원해주었으니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도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정평국은 보고서와 박헌수의 보고를 통해 이런 흐름을 깨닫고 계속 이 기세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생각외로 물자가 많이 부족하겠군?"
"뭐 풍족한 편은 아니지요. 아무래도."
정평국은 박헌수 선장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흐음...그럼 추가로 창 촉 5천 개와 식량도 더 내어주지."
박헌수 선장은 그런 정평국의 지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원이 많아질수록 아이누인들이 이길 확률이 늘어나긴 하지만 아직 비장의 카드가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을 위해 지원을 하겠다니.
"허어. 아예 이 흐름을 타고 왜놈들을 홋카이도에서 내쫓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 말에 정평국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겠지."
이에 박헌수는 회의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아이누인들을 지원해서 홋카이도에 왜인들을 몰아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숨에 진행될 일은 아니었으니까.
실제 박헌수가 알고 있기로는 꽤 장기적인 계획의 일환이었다.
원상이 직접 개입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된 배가 없는 아이누인들로서는 왜놈들을 몰아낸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침공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해서 왜놈들의 전진기지라 할 수 있는 마쓰마에 번을 내버려 두고 저들의 지원병력을 계속해서 물리치는 것.
그렇게 계속해서 왜놈들에게 피해를 줘 아이누인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결국 막부와 교섭해 전쟁을 끝내고 홋카이도를 비롯한 왜놈들이 에조치라고 부르는 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성국이 세웠던 원래의 계획이었고 그에 대한 계획을 정평국을 통해 들었던 박헌수였기에 물었다.
"당장은 쉽지 않을 텐데요?"
그에 정평국은 피식 웃으면서 일단 말을 돌렸다.
"물론 쉽지 않겠지. 왜놈들의 반응은?"
보고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마쓰마에 번의 사정을 묻는 정평국의 물음에 박헌수는 투로시노에게 들었던 여러 정보를 알려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주변에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흐릿한 미소를 지은 정평국이었다.
"그래?"
"하지만 시기가 겨울이다 보니 함부로 병력을 움직이긴 어려운가 봅니다. 특히 홋카이도는 춥지 않습니까."
마쓰마에 번의 출정이 생각보다 늦어졌고 그러다 보니 아이누인들과 충돌한 시점은 초겨울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마쓰마에 번이 깨지고 나서 허겁지겁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가 혼슈 북쪽에 주변 영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바로 병력을 움직여 홋카이도로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누섬도 그렇지만 홋카이도도 겨울엔 매우 추웠고 그런 겨울에 병사를 움직이는 멍청한 번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또 모를까 아이누인들 역시 물자를 제공해준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의 권고에 따라 당장 왜놈들의 마을로 쳐들어가 그들을 공격하지도 않은 만큼 주변 영지의 번주들은 무리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허면?"
"보고에 의하면 주변 지역에서 병사를 일으키는 건 우리가 예상한 대로 날이 풀려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답니다. 거기에 저희의 권고에 따라 무작정 왜놈들의 마을로 쳐들어간 것도 아니다 보니 다른 주변 번주들은 여유가 있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은 그동안 왜놈들과 불공정한 교역을 해오면서 그들에 대한 불만이 꽤 컸었다.
그런 상황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그동안 폭리를 취해오던 마쓰마에 번의 병사들을 물리쳤다.
당연히 이다음은 왜놈들의 마을을 공격하고 싶어했지만 원상은 투로시노를 통해 이를 막았다.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은 약간의 불만이 있긴 했지만,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왜놈들의 마을을 공격해봐야 분이 풀릴 뿐이지 딱히 이득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왜놈들의 마을도 가난하긴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럴 바엔 무기와 식량을 지원해준 아이누섬의 권고를 따르고 혹시 모를 지원을 기대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 시간을 꽤 번 셈이군. 허면 박경수가 훈련시키는 아이누인 부대는 어떻던가?"
정평국의 물음에 박헌수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뭐 일단 자신이 쏜 총소리에 놀라 총을 떨어뜨리는 촌극은 더는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아무래도 화약 무기에 그나마 익숙한 조선인들과는 달리 아이누인들은 아직도 화약 무기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저번 박헌수의 보고에 따르면 부대 창설 후 처음 사격 훈련을 시작했을 때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총소리에 놀라 총을 떨어뜨리거나, 총의 반동에 놀라거나, 공포심 때문에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거나.
그 보고를 듣고 혀를 찬 정평국은 결국 추가로 총알을 지원하면서 일차로 가져간 총알은 사격 훈련으로 모두 소모해서라도 최소한 부대원들을 화약 무기에 익숙해질 정도로 훈련하라고 박경수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 덕분인지 더는 그러한 촌극은 없다는 박헌수의 보고에 정평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질문했다.
"그럼 혹시 더 많은 아이누인들을 훈련하는 게 가능할까?"
"으음...글쎄요. 그건 경수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쉽지 않을 텐데요? 부대원들을 더 늘릴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신식소총만으론 한계가 있지 않나. 갑오 소총도 아니고 고작 200명으로 계속해서 막부의 지원을 물리치긴 쉽지 않을 거야. 허니 신식소총도 200정을 더 내어주지. 그리고 도와줄 경비대원들도 더 보내줄 테니 꾸준히 병사를 늘리라고 경수에게 전해주게."
정평국은 아이누인들로 구성된 부대원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나갈 생각이었다.
이들이 무장한 소총이 갑오 소총이 아니라 열화판인 신식소총인지라 전투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실질적으로는 원상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무력 단체인지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대방 어르신."
* * *
회의실에서 회의중이었던 정성국은 옆에 앉은 군사청장을 보고 물었다.
"흐음...병사는 다 모집한 건가?"
"예. 총 400명을 새롭게 모집했습니다."
"지금 이들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경비대?"
"예. 뭐 그곳 외엔 소속될 곳이 없지 않습니까."
"하긴..."
군사청은 정성국을 호위하는 호위대, 주변 지역을 정찰하는 탐사대, 마을을 경비하는 경비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만큼 신병의 소속은 자연스럽게 경비대로 소속될 수밖에 없긴 했다.
호위대며 탐사대며 신병을 직접 받아 훈련시키기엔 힘든 구조였으니까.
이에 군사청장은 조심스럽게 정성국에게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총독 어르신. 계속해서 신병을 모집할 계획인 만큼 차라리 신병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부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성국이 생각하기에도 계속해서 신병을 모집할 생각인 만큼 제대로 된 훈련소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에 정성국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슬슬 해군을 창설하는 전 단계로 먼저 해군 훈련소도 같이 만들기로 했다.
"으음...그러지. 이왕 만드는 김에 해군을 훈련시킬 부서도 만들고."
일거리를 늘리는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생소한 명칭에 의문을 표했다.
"해군? 수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우리는 수군 말고 해군이라고 하지. 조선의 수군과는 달리 커다란 바다를 누벼야 하니까."
"그럼..."
잠시 명칭을 고민하던 정성국은 이내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육군 훈련대, 해군 훈련대 이렇게 2개 대를 더 만들지. 육군 훈련대야 경비대에서 적당히 차출하면 될 테고 문제는 해군 훈련대인데...능숙한 뱃사람이 많진 않지?"
"아무래도 그렇죠."
가뜩이나 개척촌에서 배가 꾸준히 건조되면서 뱃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이곳에 능숙한 뱃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인원들도 이곳에서 건조한 기선 2척을 운용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정성국은 일단 해군 훈련대의 편제는 뒤로 밀었다.
'뭐 당장 해군 훈련대에서 사용할 만한 배도 없으니.'
"흐음...뭐 어차피 해군은 제대로 된 배가 있어야 하니 일단 서류상으로만 편제해 두고 천천히 만들자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군사청장이었고 오히려 행정청장이 질문을 던졌다.
"허면 해군을 관리할 부서도 따로 만드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기야 한데...뭐 아직 해군 훈련대도 서류상으로 편제만 해둔 상황이니. 거기에 제대로 된 뱃사람을 키우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러니 일단 그 문제는 차후에 결정하자고."
"알겠습니다. 총독 어르신."
행정청장이 수긍하자 정성국은 바로 고개를 돌려 한쪽에 있는 연구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구청장?"
"예."
"새로운 기선을 하나 건조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한가?"
정성국의 물음에 연구청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해군 훈련대에 배속할 선박입니까?"
"글쎄? 이번에도 100톤급 기선을 건조할 생각인가?"
"음...이번에 개척촌에서 가져온 증기기관 중에 가장 큰 녀석이 100마력짜리입니다. 허니 크기를 좀 키워도 상관은 없지요. 원주민들도 실력이 좀 늘었고."
연구청장의 답변에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훈련용으로 사용할 배인데 굳이 새 기선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
"허면 200톤급 기선을 건조해 지금 새김포와 새마포를 오가는 배를 교체하고 남는 100톤급 기선을 사용하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총독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