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정성국이 응접실 한쪽에 놓여있는 책상에 앉아 개척촌을 떠나기 전에 여러 문서를 정리하고 확인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강평화와 이상돈이 목함을 들고 응접실로 들어와 정성국이 앉아있는 책상으로 다가왔다.
"스승님."
강평화와 이상돈이 다가와 묵례하며 인사하자 정성국은 이를 받아주면서 그가 보고 있던 문서를 한쪽으로 치우며 그들을 바라보고 용건을 확인했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스승님께 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으래? 둘 다?"
""예. 스승님.""
그러더니 강평화와 이상돈이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먼저 이상돈이 자신이 들고 온 목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목함을 열었다.
"이번에 생산된 망원경입니다."
"좋구나. 몇 개나 만들었느냐."
"일단 20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더 만들까요?"
그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다.
'선장에게는 기본적으로 지급해야 할 테고...나중에 최소한 지휘관급에게도 줘야 할 테니.'
"흐음...그래. 꾸준히 만들어 두긴 하되 총기류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외부로의 유출을 금하거라. 그리고 선장들은 수정을 깎아 만든 망원경이 아직 있지?"
"예."
그러면서 정성국은 목함에 담겨있던 망원경을 꺼내 성능을 확인해 보고 평가했다.
"음...성능은 이게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러자 이상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아무래도 그렇더군요."
"허면 모두 회수하고 이 유리로 만든 망원경을 보급해. 각 배에 2개씩. 다만 선장들에게 전해. 철저하게 관리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비울 동안 작은 망원경과 커다란 망원경, 그리고 현미경과 여러 모양의 유리로 된 실험기구를 좀 만들어 보거라."
"어...망원경은 알겠습니다만...현미경과 실험도구는?"
"망원경이 먼 곳의 사물을 관측할 때 사용하는 도구라면 현미경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미세한 물체를 관찰할 때 사용하는 도구란다. 그리고 실험기구는 이런 모양으로 만들면 되고.
정성국은 그가 전에 그려두었던 현미경의 대략적인 모양과 원리가 쓰여있는 문서와 실험기구들의 모양이 그려진 문서를 찾아 이상돈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한쪽에 새 종이를 꺼내서 연필을 잡고 망원경도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일단 이 녀석은 나중에 총기에 달아 저격용으로 쓸 테니 좀 작게 만들고...이건 천체 망원경으로 쓸 수 있게...'
순식간에 대략적으로 모양을 그려낸 정성국이 그 종이마저 이상돈에게 넘기자 이상돈은 그 종이를 받으면서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알겠습니다.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모두 과학 발전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물품들이다. 허니 최선을 다해다오."
"알겠습니다. 스승님."
종이를 다 받아든 이상돈이 한 발자국 물러서자 강평화가 자신이 들고 있던 목함을 내려놓고 자신 있는 얼굴로 목함을 열었다.
목함 안에 담겨있는 물건을 확인한 정성국은 순간 감탄을 토했다.
"호오. 이건...“
"먼 길을 떠나시는 만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들어 보았습니다."
정성국은 홀린 듯 목함 안에 있는 물건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물건을 매만졌다.
"허어. 정말 멋지구나."
강평화가 가지고 온 목함 안에는 두 자루의 단총이 붉은색의 비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이런 고급스러운 느낌의 포장은 정성국이 처음 물건을 팔 때 사용했던 방식인데 그걸 보고 응용한 듯싶다.
그가 개발했던 후장식 소총의 총열 부분을 자르고 개머리판을 변형한 것으로 보이는 단총은 장식 때문인지 몹시 화려해 보였다.
특히나 총열 아래쪽을 감싸주는 부분과 손잡이 부분의 나무는 흑단목을 사용했고 그 위를 자개로 장식해 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그뿐 아니라 총몸에 해당하는 중심부의 금속 위에도 금 입사 기법을 사용해 장식해 두었기에 무척이나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뿜는 단총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성국은 그 화려함에 감탄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엄청 비싸 보이니 팔아먹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단총에서 시선을 떼며 그의 반응을 보고 싱글벙글하는 강평화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이거 생산단가가 얼마냐?"
그러자 강평화는 순간 움찔하면서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어...좀 비쌉니다."
"그러니까 얼마냐고."
"쌀 50섬에 가깝습니다."
"뭐? 이거 후장식 소총을 변형해 만든 단총 아니냐?"
"흑단목에 금 입사와 자개로 장식을 하다 보니..."
말을 흐리는 강평화를 보고 혀를 차는 정성국이었다.
"장식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태반이라는 소리구나. 허면 그냥 후장식 소총처럼 장식 없이 만든다면?"
그러자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던 강평화가 대답했다.
"흐음...그래도 쌀 18섬 정도는..."
"흠...그래?"
"혹시 이 권총을 보급하시려는 겁니까?"
정성국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개발한 후장식 소총의 생산단가가 대략 쌀 20섬이다.
조선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조총이 대략 3섬인 것을 비교해보면 비싸기야 하지만 성능이 차원이 다른 만큼 충분히 감수할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정성국이었다.
하지만 이 단총은 다르다.
이걸 어따 써먹겠는가.
지휘관에게 지급해서 자살용으로 쓰면 모를까.
장식품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리볼버라면 모르겠는데 이건 한번 쏘면 재장전하기 전에 적이 달려들어 죽기 딱 좋지 않은가.
이런저런 이유로 일부러 롤링 블록 방식을 채택한 정성국은 입맛이 썼다.
'지금이라도 리볼버를 개발해볼까? 아니다. 지금도 한계에 가까워. 여기서 새로운 총기를 만드는 건 무리지...쯧. 믿을 만한 장인의 수가 너무 적어. 어서 교육받고 있는 아이들이 커야 할 텐데...'
"글쎄다...효용성이 있을까 싶구나. 총신이 대폭 줄어들었으니 원거리에서는 쓸모가 없을 테고...결국 근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뽑아서 쓴다 해도 장전되어있는 한 발을 쏘면 끝일 것 같다만. 재장전할 여유가 있겠느냐? 근접전을 대비하려면 차라리 환도를 보급하는 게 나을 게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 양산할 생각은 접었습니다. 다만..."
"다만?"
"혹 그 단총과 환도의 날을 결합해서 만든다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강평화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생각해 본 정성국은 순간 놀랐다.
'사람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완전 게임에서 나오는 총검 아닌가 그거? 멋있어 보이기는 한다만...'
잠시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총검을 상상하며 침을 흘릴뻔한 정성국은 헛기침하면서 강평화를 바라보고 말했다.
"쓰읍...크흠. 양산을 생각하면 썩 끌리지는 않는구나. 근접전을 생각한다면 그냥 환도를 보급하던가 차라리 후장식 소총 끝부분에 단검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적당한 크기의 단검을 함께 보급하는 편이 낫겠지."
"아. 확실히 그편이 더 싸게 먹히겠군요."
"그래. 차라리 그 방향으로 연구해 보거라. 그리고 이 녀석도 한 50정 정도 만들어 놓고. 아. 이렇게 화려한 장식은 자제하고 적당히 문양만 넣어 최대한 생산단가를 낮춰 보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헌데 어디에 쓰시려고?"
"선물용으로 써야겠다."
정성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평화는 몹시 놀라했다.
정성국이 얼마나 기술 유출에 신경 쓰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에? 이걸 말입니까? 그동안 그렇게 기술 유출을 꺼리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야 하다만...어차피 북미로 이주해 스페인과 붙게 되면 어느 정도 알려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렇기야 합니다만...?"
"어차피 유럽에도 후장식 소총에 대한 개념은 다 존재한단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방식의 후장식 소총은 이미 존재하기도 하고. 다만 신뢰성이 낮고 생산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 널리 사용되지 못할 뿐."
"허면...아예 가져다 팔 생각이십니까?"
강평화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애초에 정성국이 레버 액션이나 볼트액션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롤링 블록 방식을 채택한 이유가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현시대에 사용하는 총은 전장식 머스킷인 만큼 장전속도가 무척이나 느리다.
숙련된 사수라고 한 들 1분에 2,3발이 한계였으니.
그에 반에 정성국이 개발한 후장식 소총은 비록 롤링 블록 방식을 채택했다고는 하나 숙련된 사수라면 분당 10발은 거뜬히 쏠 수 있으니 화력은 충분하다고 보았다.
거기에 롤링 블록 방식은 구조적으로 단발 소총이 한계라 어떻게 개조를 한다 한들 탄창을 사용할 수 있는 연발 소총으로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특히나 롤링 블록 라이플의 원형이 되는 브리치 블록 방식을 사용한 사냥용 총이 유럽에선 이미 존재하기도 했고.
그런 만큼 유럽에 기술이 유출되든 직접 팔아먹든 큰 부담은 없었고.
물론 저들의 총기 발달이 더 빨라질 수는 있겠지만 개척하려면 수많은 자금이 들어갈 테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정성국이었다.
거기에 원래 다른 곳에 무기를 팔아먹을 때는 다운그레이드가 정석 아니던가.
추가로 총알도 지속해서 팔아먹을 수 있으니 꽤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저들이 총알을 수입해 그 안에 들어있는 무연화약이나 뇌관을 분석한다 한들 과연 따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정 뭐하면 어차피 다운그레이드로 팔아먹을 테니 총알도 다운그레이드할 겸 흑색화약으로 바꿔서 팔아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도 나쁠 것은 없다 싶다. 어차피 더 중요한 건 탄환 아니더냐? 소총이야 어찌어찌 복제한다고 한들 탄환을 복제하진 못할 게다."
"그렇기야 하지요. 허면 갑오 소총보다는 성능이 떨어지는 무기도 개발해봐야겠군요. 하지만 외관은 비슷하게 말이지요."
정성국의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곧바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강평화였다.
그런 강평화의 말을 듣자 정성국은 역시나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며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그래. 바로 그거다. 나중에 적당히 성능이 떨어지는 무기도 팔고 탄환도 팔면 돈이 꽤 되지 않겠느냐."
"헌데 그러려면 연구소의 인원을 좀 대대적으로 충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화약을 제조하는 게 문제입니다. 인력 좀 충원해 달라고 아라가 난리를 치더군요. 연구할 시간도 없다고. 아라가 직접 스승님께 따지겠다는거 간신히 말리고 오는 길입니다."
보안 때문에 자리를 옮겨 연구단지 외곽에 위치한 비밀 연구소에서 화약 제조에 열중하고 있는 전아라의 이름이 나오자 정성국은 멈칫했다.
"어...그건 그렇지. 다만 워낙 중대한 기밀이라 함부로 사람을 들이기는 쉽지 않은 게 문젠데...휴. 어쩔 수 없지. 평화야. 네가 정말로 믿을 만한 사람들 좀 충원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나중을 생각해서 계속해서 충원하겠습니다."
강평화의 대답에 정성국은 표정을 굳히면서 보안을 강조했다.
"그러렴. 단 무연화약의 전체 공정은 절대 모르게 해야 한다. 아라와 너를 제외하면 말이다."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