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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9화 (9/850)

9화

"자~! 이리 하면 되고. 이제 대장군전 가지고 온나."

천자총통을 쏴 본 경험이 있던 노선원이 총통 안에 장약을 넣은 후 격목을 넣고 기다란 나무 자루로 격목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노선원이 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젊은 선원들이 포 갑판 한쪽에 있던 대장군전을 들고 다가왔다.

그들이 들고 오는 대장군전의 생김새는 전체적으로는 일반적인 대장군전과 같았다.

다만 철을 아끼기 위해 대장군전 끝에만 뾰족하게 둘렀던 조선 수군이 쓰던 대장군전과는 다르게 대장군전 중간의 날개 부분까지 모두 철로 뒤덮여 있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성국이 처음 이 대장군전을 개발하고 나서 웬 미사일을 총통에 꽂아서 날리는 것 같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었다.

"거기! 조심! 살살 다뤄! 이 사람들아!"

노선원이 젊은 선원 둘이 운반하는 대장군전을 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끙차!"

젊은 선원 둘이 천자총통 앞부분의 구멍에 대장군전을 단번에 꽂아 넣는 것을 보면서 노선원이 다시 한소리 했다.

"그래. 이제 거기다 꽂으면 되는데...어허 이 사람들이! 조심하라니께!"

그러자 노선원 옆에 있던 기술자가 그런 노선원을 보면서 파안대소를 했다.

"푸하하하. 걱정 마세요. 강한 충격을 받지 않는 한 별일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저거 떨구면 그냥 폭발하는 거 아녀?"

"흠...고작 저 정도에서 떨어뜨려 봐야 터지진 않을 겁니다만..."

"어허! 확신도 없으면서 장담하기는!"

노선원의 큰소리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기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렇네요. 실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없으니 그 부분도 확인을 좀 해 봐야겠군요."

그러면서 기술자는 품에서 한지를 꺼내 연필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제 방포 준비는 다 끝난 거죠?"

"그렇제. 이제 이걸 쭉 밀어서 저 포구 바깥쪽까지 빼면 되는겨. 뭐하는가? 어서 밀지 않고."

젊은 선원 둘이 천자총통의 양옆에 서서 총통을 앞으로 밀기 시작했다.

포가에 철로 된 바퀴가 달려 있었기에 수월하게 밀 수 있었다.

천자총통이 올려져 있는 포가를 끝까지 밀자 천자총통의 끝부분이 포구를 통해 밖으로 내밀어졌고 당연히 천자총통에 꽂혀있던 대장군전 역시 배 바깥으로 불쑥 튀어나온 모양새가 되었다.

"이제 쏘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녀! 이거 그대로 쏘면 총통이 뒤로 씨게 밀려서 큰일 나제. 그러니 저기 저 밧줄로 포가를 적당히 고정해야 혀!"

"아!"

노선원이 일러주는 대로 젊은 선원들은 밧줄을 가져와 포가 양옆에 고리에 밧줄을 묶고 포구 아래쪽에 있는 고리에 넣어 결박했다.

"헌데 아재. 이거 밧줄이 너무 긴 거 아녀유? 아예 짧게 묶는 게 더 낫지 안 남?"

"그러다 잘못하면 그 고리가 망가질 수도 있는 겨. 그래서 적당히 묶는 거고."

"아하. 그럼 총통을 쏠 땐 절대 뒤에 있으면 안 되겠구만?"

"암. 그렇제."

"그럼 이제 방포 준비는 끝난 거유?"

"끝났제. 이제 방포 명령이 떨어지면 저 불쏘시개로 요기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되는 겨."

그러면서 노선원은 다른 젊은 선원을 보면서 말했다.

"뭐 하는 겨? 퍼뜩 올라가서 방포 준비 다 끝냈다고 알리지 않고?"

"예!"

그러자 노선원이 바라보았던 젊은 선원 한 명이 후다닥 하고 달려갔다.

노선원은 자신의 옆에 있던 기술자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근디 내 하란 대로 하긴 했는디...장약을 너무 적게 넣은 거 같은디?"

"괜찮습니다. 좀 색다른 화약이라서요."

"흠...뭐 그 전에 대장군전이 떨어져도 내 책임은 아녀?"

"그럼요."

* * *

"준비가 끝났답니다."

강평화가 정성국에게 다가와 보고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앞쪽에 있는 폐기 직전의 조운선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 배에 남은 사람은 없지?"

"예. 이미 다 작은 배로 탈출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쏴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스승님."

정성국의 말에 강평화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지급 함선의 선장인 김봉길 선장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봉길 선장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에 아래쪽 갑판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 있던 젊은 선원을 보면서 소리쳤다.

"방포 하라!"

그 소리에 계단에 서 있던 젊은 선원에 아래쪽 갑판으로 내려가면서 소리쳤다.

"방포 하랍신다!"

그러자 아래쪽 갑판에서 조그맣게 복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포 하랍신다~!"

"흠..."

그런 과정을 보면서 표정을 살짝 찌푸리는 정성국이었으나 곧 표정을 풀었다.

지금 시대에서는 인력으로 전달하는 게 최선이니 말이다.

'아니지. 전성관(傳聲管)이라도 만들어 볼까? 아니면 끈을 이용해서...아. 그건 배에선 어렵겠군.'

정성국은 그렇게 속으로 배 안에서의 효율적인 통신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펑!

쾅!

총통이 발사되는 폭음과 함께 커다란 대장군전이 순식간에 허공을 박차고 200m 정도 떨어져 있던 조운선의 측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이를 보면서 정성국은 감탄했다.

"오! 명중이군. 혹시나 했는데 다행이야."

"관통할까 봐 일부러 장약을 줄이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지. 헌데 이제 슬슬..."

콰아아앙!

정성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굉음이 들렸다.

대장군전이 꽂혀있던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그 주변 10m가량이 박살 나 목재 파편이 비산하는 것을 보며 정성국은 자신이 만든 대장군전의 위력에 감탄했다.

"허어. 제대론데?"

그러나 강평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꽤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면서 조운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군전을 천자총통으로 쏘는 만큼 연사력이 느려 한발의 위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만든 신무기였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서양의 배들은 이 인급 함선처럼 저 조운선보다는 클 테니 신무기의 위력을 몇 배는 더 올려야 하지 않나 싶었다.

"분명 위력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개발 의도를 생각해 본다면 장약을 더 넣어 폭발력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강평화의 말에 먼저 여러가지를 고려해보는 정성국이었다.

화력을 올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지금 대장군전 탄두 부분에 장약을 넣을 공간을 조금 더 늘리면 그만이니까.

다만 너무 과한 파괴력이 과연 필요한가 라는 생각과 더불어 대장군전의 생산단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기에 고민이 되는 정성국이었다.

'어차피 어지간한 위치라면 한 번에 2문의 천자총통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니 유폭을 고려하면 굳이 위력을 올릴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저 정도만 해도 지금의 서양인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하겠지.'

"흐음...글쎄?"

정성국의 반응에 강평화는 반파된 조운선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정성국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나 서양의 범선들은 대부분 인급 함선처럼 크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인급 함선 정도면 피해는 있을지언정 충분히 버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 강평화를 보면서 정성국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가 놓친 부분을 이야기해줬다.

"아니지. 지금 저 배는 비어 있는 배니까 2차 피해가 없어서 저런 거야. 만약 대장군전이 터진 자리에 화약이 있었다면..."

강평화는 바로 대장군전의 폭발로 인한 유폭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생각을 못 했군요. 그럼 측면을 노려 쏘는 게 낫겠군요. 근처에 화약통이 있을 테니."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좋긴 하겠지. 최소한 포 갑판에 대장군전이 꽂히면 유폭으로 인해 피해가 꽤나 클꺼야. 유폭으로 인해 침몰할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뭐 그게 아니라 그냥 갑판 위에서 폭발하더라도 마스트나 돛이 찢겨질테니 충분하다고 본다."

"허면?"

정성국은 어느덧 불타오르는 조운선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 정도면 위력은 충분해 보이네. 오히려 천자총통에 넣는 장약의 양을 좀 고민을 해봐야겠어. 사거리야 늘려봐야 오히려 명중시키는 게 더 힘들긴 한데 지금 서양인들의 쓰는 대포의 사거리가 200m~400m쯤 할 테니. 쇠구슬과는 다르게 이건 비싼 녀석인 만큼 피해를 감수하고 접근해서 싸워야 하나. 그리고 위력은 저 정도면 충분하니 미사일 형식은 굳이 만들 필요도 없어 보이네.'

그가 생각한 미사일 형식은 바로 그가 기억하던 미사일처럼 대장군전의 뒷부분에도 추진체를 넣는 형식인데 전장포의 한계인 장전속도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생각한 방식이다.

대장군전을 그대로 천자총통에 꽂아 넣고 격발시키기만 하면 발사가 되는 만큼 아무래도 방금 사용한 대장군전에 비한다면 발사 간격은 줄일 수 있긴 했다.

다만 아무래도 방금 시험해본 대장군전에 비하면 생산단가가 몇 배 이상 오르다 보니 설계만 해두고 시험제작은 미뤄둔 상태였다.

개발한 신무기가 생각보다 위력이 별로라면 먼저 장약을 늘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장전속도를 올릴 생각이었던 정성국이었기에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당분간은 이 녀석으로 충분하겠어. 양산하도록 하지."

정성국이 이대로 양산을 결정하자 반색을 하는 강평화였다.

"예. 허면 얼마나?"

"으으음...일단 지급 함선에 적재할 40발...곧 밀무역에 투입 될 인급 함선에 적재할 20발에 예비로 좀 더 만든다고 생각하면 당장 80발 이상은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가 예상하던 숫자와는 너무나도 괴리가 컸기에 강평화는 순간 당황했다.

"어...태평양에 그리 해적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강평화의 말에 정성국은 내심 동의했다.

그 넓은 태평양에 해적이 과연 있겠는가.

다만 문제라면 동남아 해역이다.

이런저런 해적도 많고 지금 시대엔 상선도 상대를 봐서 만만해 보이면 해적질을 하는 시대인 만큼 최대한 대비해야 했다.

"보급이 불가능하니 왕창 가져가는 수밖에. 그리고 태평양에는 해적이 없을지 몰라도 북미 서해안에서 혹시 모를 전투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해류를 타고 이동하면 결국 저기 동남아 해역에 도착해서 올라와야 하니 최대한 들고 가는 게 맞아."

"흠...역시 범선은 한계가 있군요."

"아무래도 바람과 해류를 타고 이동하지 않으면 워낙 느리니 별수 없지."

"결국, 스승님이 원하시는 개척을 위해서라면 기선만이 답이군요."

"그렇기야 한데...쉽지 않겠지."

증기선을 만들 생각을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정성국이었다.

당장 기선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드는 기선은 기껏해야 연안 항해나 가능할 뿐.

태평양을 무난하게 횡단하려면 최소 100마력 이상의 증기기관이 필요하니 앞날이 깜깜한 정성국이었다.

'아니지. 결국, 기선을 만들려는 목적은 원활한 수송이야. 그러려면 배의 크기도 키워야 할 테니 증기기관의 출력이 더 높아야겠고. 결국, 당장은 어렵겠군. 증기기관도 문제고 배의 크기를 더 키우는 것도 무리고. 그나마 북미의 산림자원을 믿던가 아니면 제철기술의 수준을 높여 철선으로 가던가 해야 하나. 이거 쉽지 않네.'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스승이 보기 안쓰러웠던 강평화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스승을 위로했다.

"그래도 곧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스승님께서 기동이에게 새로운 설계도를 주셨다면서요? 기동이 녀석 그것 때문에 눈이 벌게졌던데요?"

"그래도 쉽지 않을 거야. 쯧. 상황이 이렇지만 않아도 차근차근 준비하겠는데."

정성국은 박기동에게 현재 사용하는 증기기관의 발전된 형태 몇 가지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일단 초기의 증기기관을 운용하면서 어느 정도 기초를 쌓았다고 판단했고 자신이 없을 때도 별 사고 없이 증기기관을 조금씩 개량했기에 그를 믿고 설계도를 넘겨준 것이었다.

그러나 정성국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증기기관의 출력을 올릴수록 그만큼 증기기관이 대형화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사고가 나면 위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 때문에 무리하는 느낌이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피를 흘릴지도 모른다고. 허니 저희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만들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자신이 지고 있던 짐을 조금이나마 옮겨지겠다는 제자의 말에 정성국은 마음이 따뜻해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구나. 그래도 다들 안전수칙은 철저히 지키게 해라. 너희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나니 말이다."

걱정을 떨쳐낸 것처럼 보이는 스승의 말에 강평화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일 시킬 제자가 없어서 말이죠?"

"으하하하. 그래. 그러니 꼭 몸조심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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