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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화 (5/850)

5화

"헌데 대방 어르신. 먼 바다로 나가실 거면 무장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에 대방 어르신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쪽 남쪽 바다는 수많은 해적이 들끓고 있다고."

김봉길이 주변을 살피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정성국에게 물었다.

김봉길은 먼바다를 나간다는 뜻을 저쪽 동남아 지역으로 항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원상의 선장 정도가 되면 정성국이 만든 세계 지도 정도는 보게 된다.

그래서 대략적으로나마 지리를 파악하게 되고.

그런 김봉길이 보기에 정성국이 가려는 곳은 저 동남아가 아닐까 싶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런 큰 배를 건조한 이유는 밀무역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마도 지도로만 위치를 파악하게 된 마카오나 마닐라로 가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나 예전에 정성국이 이쪽 바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여러 해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을뿐더러 이번에도 무척이나 위험할 항해가 될 것처럼 이야기했으니 자신의 추측이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성국은 김봉길의 착각을 지적하기보다는 그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래야지. 그게 고민일세.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테고."

그의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성국은 후장식 소총을 개발한 이후 후장식 대포의 개발에 착수했었다.

다만 당장 전쟁할 일도 없는데 무리하게 개발한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리고 후장식 소총을 만들면서 경험했던 정밀한 금속 가공 문제와 강철의 품질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정성국과 함께 후장식 소총을 만들었던 장인들에게 대포의 개발을 맡기고 정성국은 증기기관이나 양질의 강철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제철방법을 구현하는 데 힘쓰고 있었고.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정성국은 동생인 정평국에게는 스페인을 별로 신경 쓸 것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만약 실제로 북미 서해안에 정착하게 된다면 스페인 제국은 그것을 절대 가만히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왜냐하면, 북미 서해안에 다른 세력이 정착하게 되면 스페인 제국의 목숨줄을 건드리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스페인 제국의 목숨줄은 바로 갤리온 무역이다.

지금 스페인 제국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갤리온 무역의 경로는 이렇다.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채굴한 은을 아카풀코 항에서 갤리온에 싣고 남회귀선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 태평양을 횡단해 필리핀으로 이동한다.

필리핀의 마닐라 항에 도착한 갤리온은 가지고 왔던 멕시코산 은으로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등 본국으로 보낼 여러 사치품을 사들인다.

여러 사치품을 가득 실어 보물선이 된 갤리온은 무역풍을 타기 위해 일본 근해까지 북상한 후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진로를 틀어 태평양을 횡단한다.

이때 무역풍을 타고 이동하는 갤리온이 도착하는 곳이 바로 북미의 서해안, 대략 캘리포니아의 멘도시노 부근이다.

거기서 해안을 따라 남하 하면 처음 갤리온이 출발했었던 아카풀코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카풀코 항에서 내려진 사치품들은 그대로 멕시코를 경유해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 본국으로 향하고.

헌데 여기서 캘리포니아에 다른 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그것을 과연 스페인 제국이 용납할 수 있을까.

유명무실한 조약이지만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들먹이면서 신대륙 전체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했던 스페인 제국이?

그것도 이교도의 개척촌을?

아무리 지금 시기가 스페인 제국이 이미 몰락하는 시기라고 한들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들이 판단하기에는 고작 개척촌이라고 여길 테니 말이다.

거기에 같은 백인도 아니고 무려 이교도들의 개척촌이고.

그렇다고 스페인 제국과의 충돌을 늦추기 위해 북쪽에 자리 잡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정성국이었다.

곧 소빙하기가 올 테니 최대한 남하해서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가 생각하는 초기 정착지의 위치는 로스앤젤레스나 혹은 샌프란시스코 정도.

문제는 이곳에 자리 잡게 되면 결국 스페인 제국과 한판 붙기는 해야 한다는 점.

그러니 전쟁에서 사용할 만한 무기가 필요했다.

정성국은 예전의 기억을 탐색해보았다.

제일 좋은 무기는 역시나 지금 연구 중인 후장식 대포겠지만 단기간에 양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빠르게 개발하려 해도 기본적인 강철의 품질, 금속가공능력 등이 전반적으로 더 올라와야 가능한 문제이니만큼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서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굳이 커다란 대포에 집착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하고.

애당초 그는 전생에 방산기업에 근무하면서 로켓의 추진체나 신관과 폭탄류를 개발하는 일을 했었던 만큼 이런저런 지식이 있었고 덕분에 니트로셀룰로오스를 합성해 무연화약을 어렸을 때 이미 만들어놨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후장식 소총에 들어갈 탄환도, 후장식 대포에 사용할 작렬탄도 이미 어느정도는 만들어 두었고 말이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사용할 후장식 대포가 없는 만큼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박격포 정도인가?'

애초에 대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상대의 대포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사거리가 긴 대포뿐이기 때문이다.

전장식 소총을 들고 몰려올 스페인 제국의 병사들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비록 수에서 밀리더라도 전열을 이루어 무려 적의 눈 흰자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사격해야 하는 현시대에서 아무리 숫자가 적다 한들 후장식 소총을 가지고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끌고 올 대포는 달랐다.

그저 쇳덩이를 날리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멀리서 날린 그 쇠 구슬을 맞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비록 제대로 맞아야 죽는다지만.

그러니 대포병용으로 사용할 박격포를 만들어 보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그가 다녔던 방산기업에서는 박격포의 포탄도 생산했었기에 어느정도 지식이 있었고 그런만큼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또한, 지금 연구소에서 대포를 개발하고 있는 인원을 조금 차출해 전장식 대포도 몇 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일단은 배에도 기본적인 무장이 필요하니 말이다.

다만 어차피 원상에서 건조하고 있는 함선의 경우 후장식 대포를 설치할 생각으로 포구 수를 극단적으로 줄인 만큼 전장식 대포의 위력을 올려야 했다.

'아예 미사일처럼 대장군전을 개조해봐야겠네.'

정성국은 현대의 함대함 미사일을 떠올렸다.

이 시기의 함선에 장착된 함포들은 실질적으로 대인 공격형 무기에 가까웠다.

목선의 특성상 무거운 무게의 대형 대포를 장착할 수는 없었기에 포탄을 날려 선체를 파괴하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상대측 선원을 향해 발사해 피해를 주거나 마스트를 부숴 상대의 기동력을 없애는 방식이었다.

다만 정성국은 이러한 해전을 시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후장식 대포를 장착할 목적으로 포구도 줄이고 서양 선박과는 다르게 1층 갑판에만 칸을 나누어 아주 적은 공간을 할당해 두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후장식 대포에 작렬탄을 사용해 해전을 치를 생각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전장식 대포를 사용하는 대신 한발의 포격에 큰 피해를 주어야 했다.

그러니 조선에서 사용하던 대장군전을 베이스로 안에 지연신관을 장착하고 탄두 부근에 한계까지 작약을 넣어 날린다면...갤리온이라 하더라도 대장군전이 명중하기만 하면 반파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지. 아예 미사일처럼 만들어봐?'

정성국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탄두 부근에 작약과 지연신관을 장착한 대장군전과 그 대장군전을 쏘아낼 전장식 대포였다.

즉 조선의 천자총통에서 대장군전을 사용하는 방식과 동일하지만 대장군전 탄두 부근에 작약을 넣어 한발의 파괴력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근데...미사일처럼 대장군전을 둘로 나눠서 탄두 부근엔 폭발력을 더해줄 작약을, 밑부분엔 추진력을 만들어줄 장약을 넣으면...생각해보니 그냥 길다란 박격포의 포탄이잖아? 가능하겠는데?'

정성국이 지금 떠올린 방법대로 박격포의 포탄처럼 추진체인 장약을 대장군전 하부에 넣어 만든다면 발사 순서를 줄일 수 있으니 그나마 연사속도가 조금은 올라갈 것 같았다.

'문제라면 각도 때문에 박격포처럼 뒤쪽에 격침으로 추진 장약을 발화시켰다간 사고가 날테고...추진 장약 안에도 지연신관을 넣으면 되려나?'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둘 다 만들어보고 비교한 후 선택하기로 말이다.

* * *

"오오! 대방 어르신!"

"대방 어르신! 오셨습니까!"

정성국이 타고 있던 배에서 먼저 내리자 그를 알아보고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이 조선의 땅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직간접적으로 원상에 고용되어 있는 형태였으니 말이다.

거기에 원상에서는 고용된 사람들을 위해 조그마한 방도 내어주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정성국이 자신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셈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인파에 묻혀 이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웃으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고 있을 때 멀리서 몰려든 인파를 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척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경비대원들이었다.

"좀 비켜주세요! 지나갑시다!"

"아. 거 밀지 좀 마소!"

경비대원들은 고생 끝에 정성국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대방 어르신! 이제부터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경석이구나. 잘 지냈느냐."

"예. 대방 어르신. 이미 행정청에는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

"그래. 행정청으로 가자꾸나."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경석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대방 어르신을 조심히 모셔라!"

""예!""

8명의 경비대원이 정성국의 주변을 둘러싸고 인파를 버티자 그제야 한숨을 돌리는 정성국이었다.

곧 경비대원들의 도움으로 항구를 벗어나 행정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성국이 개척촌에 돌아왔다는 소식이 이미 퍼졌는지 항구에서 개척촌 행정청으로 가는 대로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리도 사람이 많았던가.'

원상을 만들어 돈을 벌다가 여러 기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한적한 땅을 골라 만든 것이 바로 개척촌이었다.

하지만 초반에만 신경을 썼을 뿐 대부분의 일은 개척촌을 전담하는 윤휴에게 맡기고 연구소로 이동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던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연구를 진행하느라 연구소에서만 숙식을 해결했었다.

그러다가 상(上)이 승하했다는 소식과 동생이 관리해왔던 여러 양반이 계속해서 상단의 주인을 찾는다는 이야기에 자리를 박차고 말을 달려 한성으로 향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개척촌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나게 발전한 듯했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졌고.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일거리가 많았기에 늘 손이 부족했었고 그렇기에 보부상을 통해서 유랑민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여러 소문을 흘렸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개척촌을 별다른 잡음 없이 관리하는 것을 보면 윤휴 그 양반이 능력이 있긴 하단 말이지. 끌어들이길 잘 한 것 같아. 유학자라는 게 좀 걸리기는 하지만. 문제라면 내 기억에 이 양반이 예송논쟁에 끼어든다는 건데...이걸 막으려면 일거리를 더 몰아줄까? 상소를 쓸 시간도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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