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168/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68화

구급차 안에서 필로아는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응급 의료 기기에 표시된 마키나의 바이탈 사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이 치였어야 했다. 마키나가 아니라.

마키나는 필로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어 차에 치였다.

자동차 범퍼가 완전히 우그러질 정도의 충격. 3세 유아 마키나의 몸은 굉음과 함께 하늘을 날아 벽에 충돌했다.

전신의 뼈가 우그러지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

실제로 지금도 마키나의 입에선 붉은 혈액이 울컥대며 나오고 있었다.

“환자, 심장 박동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 놔! 아직 골든 타임이 지나지 않았어!”

가짜 혈액과 구급대원으로 변장한 배우들의 박진감 넘치는 연기에 필로아는 깜빡 속아 넘어가 이 상황이 실제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필로아가 달려오는 차량에 한눈판 사이 마키나가 장착해 차에 치여 날아가는 연기를 하며 사용했던 가늘고 투명한 와이어는 진즉에 제거되었다.

덕분에 이 모든 것이 의도된 연출이라는 사실이 들키는 일 없이 구급차는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보호자분은 여기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필로아는 서늘한 병원 복도에 홀로 남겨졌고, 마키나는 집중치료실로 이송되었다.

-기이잉!

-철컹!

집중치료실의 문이 닫히고 붉은 등이 점등된 직후, 수술대에 누웠던 마키나가 조용히 상체를 일으켰다.

“…여기까진 어떻게든 잘 끝났군요.”

마키나가 입을 열자 곁에서 수술 장갑을 끼고 있던 두 의사가 마스크를 내렸다.

“2주 동안 고생 많았어.”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소년.”

의사로 변장해 수술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김지안과 매스터한트 감독이었다.

“필로아한테 걱정 끼친 게 조금 불쌍하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겠어.”

김지안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두 아이의 관계를 진전시키고 진실을 털어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라 해도 고작 다섯 살 어린아이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건 어른이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묘수가 있던 것도 아니고.

“이번 일 마무리하고, 필로아한테 잘해.”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요.”

현실과 타협하는 건 언제나 어른의 일이었으니까.

* * *

수술실 세트에 만들어 둔 뒷문을 통해 옥상으로 빠져나온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평소보다 담배 맛이 썼다.

마키나가 실제로 차에 치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필로아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작은 날붙이로 팔뚝에 상처를 낸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체 가능한 인공 의체라고 해도 자신의 몸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마키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른으로서 응당 말려야 하는 일이었던 것 같지만, 이제 마키나는 혼자 사리 분별을 하고 리스크와 그에 따르는 보상을 판단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했다.

그게 녀석이 한 사람의 남자로서 정한 각오라면, 마음대로 하게 두는 수밖에 없다.

“사랑이 뭐길래 저러나.”

사실 내가 함부로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나는 저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고 저런 감정도 품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림을 그릴 때에도 같았다.

광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릴 때에도 묘하게 커플 손님들에게 내 그림은 영 평이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은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내가 그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다만, 이번에 사용한 방식처럼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해결법을 떠올릴 수 있던 것도 내게 단 한 번도 그들과 같은 경험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지.

“어차피 평범한 방법 갖고는 끝을 볼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핑계일까, 아니면 변명일까.

담배 연기와 함께 입에서 새어 나온 짧은 문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머지는… 그래. 사랑의 힘인지 뭔지가 알아서 해 주겠지.”

나는 전화기를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이 2주 동안 대배우 플랫 샤펜도라에게 연기 수업을 받은 건 마키나만이 아니었다.

* * *

병원 관계자는 사전에 마키나가 평소 사용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모델의 스마트폰을 갖고 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필로아에게 건넸다.

“지금 환자분과 같이 오신 분이 둘 다 미성년자라 보호자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중요한 상황이라. 도와주시겠어요?”

다행히도 필로아는 마키나의 스마트폰 잠금 해제 패턴을 알고 있었다. 마키나가 직접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태껏 굳이 열어 본 적은 없었지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필로아는 마키나의 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했다.

그곳에는 딱히 많은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필로아와, 마키나의 보호자로 추측되는 사람의 전화번호.

“여보세요.”

<마키나의 번호인데, 누구시죠. 당신은.>

“그, 실은….”

곧바로 그들에게 연락한 필로아는 상황을 전하고 위치를 알렸다.

상대는 예의 바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출발하겠노라 말했다.

곧이어, 30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 상대가 아내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기계 인간 부부였다. 평범한 기계와 달리 생식 활동이 가능하고 몸이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뿐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계와는 달리 영혼과 자아를 지닌 생명체.

필로아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많이 보아왔던 종족이기에 겁은 나지 않았다.

“마키나의 신분을 보증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중히 명함을 건넨 두 사람에게 필로아가 고개를 숙였다.

필로아는 그들에게 일련의 상황을 설명하고 마키나가 자신을 구하려다 차에 치인 데까지 이야기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와 말을 더는 잇지 못하는 필로아의 머리를 남자와 같이 온 부인이 쓰다듬었다.

“마키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에요.”

자식과도 같은 마키나가 크게 다쳤음에도, 여인은 지그시 웃으며 필로아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두 분은, 걱정이 되지 않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다만, 마키나는 조금 특별한 아이인지라.”

델 몬테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계 인간 사내가 대답했다.

때마침, 멀리서 걸어온 간호사가 두 사람에게 서류의 작성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인을 마칠 즈음, 간호사는 목소리를 낮추고 셋에게 속삭였다.

“환자분의 용태는 안정되어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게, 그….”

간호사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필로아는 그 점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도 하시려나 보네요.”

필로아의 시선은 간호사에게서 델 몬테 부부에게로 옮겨갔다.

“아까 마키나의 팔이 찢어지고 ‘안에 든 걸’ 보았어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상황을 파악하고 냉정하게 묻는 필로아에게 델 몬테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마키나는 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인지 필로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리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마키나는 분명 외견만 보면 평범한 인간 아이다.

팔 안에 든 전자 부품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게 감쪽같이 만든 의수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고 없이 집중치료실의 문이 열리며 안경 쓴 드워프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보호자분들께선 소독과 환복을 마치고 안으로 따라와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죠?”

“보는 눈이 많아서 말씀드릴 수 없군요.”

필로아의 물음에 답하는 걸 거부한 드워프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고, 필로아는 하는 수 없이 델 몬테 부부와 함께 멸균 처리가 된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중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미안합니다, 필로아. 걱정을 끼쳐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쩡한 얼굴로 물을 마시는 마키나의 모습이었다.

수술대에서 상체를 일으키고 앉은 그 얼굴에선 어떠한 고통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델 몬테 씨, 델 몬테 부인.”

“오랜만이구나, 마키나.”

“…괜찮은 거야? 정말로?”

필로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뚱한 얼굴의 마키나에게 달려가 그 몸을 살폈다.

놀랍게도 마키나의 몸은 피를 닦아낸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정말로 급발진한 자동차에 치여 날아갔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럼요. 필로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튼튼하답니다, 전.”

씩씩하게 대답한 마키나였지만 필로아는 그 표정이 목소리만큼 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한테 감추고 있는 게 있지? 솔직하게 말해 줘. 지금 말해 준다면 화내지 않을게.”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마키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신호가 된 걸까, 실내에 머무르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가 전원 썰물처럼 밖으로 빠져나갔다.

-위잉

문이 닫히자, 집중치료실 안에는 마키나와 델 몬테 부부, 그리고 필로아만이 남게 되었다.

“계속 감추고 있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필로아가 날이 다르게 성장하는 데에 비해 저는 이 의체를 교체하는 것 말고는 외관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의체….”

마키나가 감추고 있던 진실의 편린을 직접 그 입에서 들은 필로아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너는… 대체 누구인 거야? 나 잘 모르겠어. 여태껏 내가 알고 있던 마키나는 가짜인 거야?”

“그럴 리가요. 저는 필로아가 알고 있는 마키나가 맞습니다. 당신과 함께 코드를 만들고, 웃고, 울고, 떠들고, 영화를 보다 곁에서 잠든 필로아에게 어깨를 빌려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걸까?”

“…….”

마키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지켜보던 델 몬테 부부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한마디만 말했다.

“마키나에게도 사정이 있었어요. 필로아 양이 받아들여 주면 고맙지만, 어려워도 이해할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사람도 집중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건 마키나와 필로아뿐.

마키나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침내 각오를 정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인공 지능입니다. 절 창조한 프로그래머는 연금술의 힘을 빌려 제게 영혼을 심었죠. 그렇기에, 저는 평범한 상용 인공 지능과 달리 자아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반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성장했죠.”

“…….”

필로아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키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약속대로, 그 표정에서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경악,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눈망울.

그 두 눈을 주시하며, 마키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대본에 없던 말들을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끌어내 문장으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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