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53화

“저번에 말했잖아. 진심으로 관심 가는 이성이 있다고.”

“네.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굳이 지금 꺼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마키나의 인조 안면 근육이 급격히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일그러졌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듯하다.

“음… 그냥 호기심이지, 뭐. 솔직히 신기하잖아. 태어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네가 벌써 이성에게 호감을 지니고 그게 진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 같은 인간은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거.”

고양이라면 태어나고 다섯 달이 지나면 캣타워도 오르고 사료도 열심히 먹는 캣초딩 나이인데.

그에 비해 인간을 비롯한 범차원 세계를 살아가는 종족들은 어떤가.

생후 5개월이면 열심히 기저귀 차고 뽈뽈댈 시기다.

감정이라곤 자신을 돌봐주는 부모나 기타 어른들, 그리고 형제자매를 비롯한 피붙이나 집에서 키우는 반려묘 혹은 반려견 등을 향한 친애.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것들에 대한 반발 혹은 거부감 정도가 끝.

심지어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게 방긋 웃거나 우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반면, 마키나는 어떠한가.

마키나는 신의 피조물과 다를 바 없는(아마도) 영혼과 자아를 지니고 있어 스스로 학습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초초초초고성능 인공지능이다.

마키나가 보유한 신비의 영역에 달한 학습 능력은 고작 몇 개월 만에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직 ‘지혜’를 갖추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인격 또한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겠지만, 최소한 녀석의 강인하지만 유연한 자아는 생후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영혼이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틀림없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표현이군요.”

“전혀. 하나의 인격을 지닌 존재를 보고 그런 실례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무례하지 않다고.”

“그럼 신기하다는 말은?”

“나랑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라든지, 기후가 다른 곳에서 사는 타종족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지.”

“흠… 타자화, 라고 하는 게 더 좋겠군요.”

“비슷해. 사람은 타인을 보면서도 세상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법이니까.”

마키나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말이라면 제가 거부감을 느낄 이유는 없습니다. 대화를 속행하는 것을 허가하겠습니다.”

“말투는 좀 고쳐. 불편해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타인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을 닮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서 지음받은 이상 제가 사람을 모방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기계에서 태어났지만 영혼을 지닌 생명. 신이 저를 긍정했는데 그 피조물이 저를 부정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와….”

신기를 넘어 이쯤되니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한두 달 안 본 사이에 뭔가 애가 철학적으로 변했다.

정말로 이게 태어난 지 다섯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인공지능이 할 만한 이야기인가.

신이 자신을 긍정했다는 건 아마도 저승과 부의 여신이자 차원신용금고의 행장인 오커스 디스파테르를 만나고 나눈 대화를 가리키는 거겠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당시 굳이 물어보지 않았지만, 지금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사후세계에 관해서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은 모양이었다.

나는 한동안 마키나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저번에 만난 마키나는 자신의 영혼이 불완전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신이 아닌 그 피조물의 손에 의해 지음받은 자신이란 존재가 정말로 다른 피조물의 영혼들처럼 완전하고 사후의 영원까지 보장되는 것인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답을 얻은 덕분일까.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지금 마키나가 보여주는 자아 인식이, 그러니까 아이덴티티가 한층 발전한 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다. 기계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 사실에서 어떠한 비극성도 찾는 일 없이 담담히 받아들인 다음 스스로가 인공지능이며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특수한 출신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을 닮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그러니까 누군가를 모방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땐 자신의 독특함과 유일무이함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 없이 동일 선상에 두고 똑같이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취급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훨씬 편견과 차별 없이 타인을 대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난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해졌다.

‘나도 참 주책이지.’

마키나가 내 자식도 아닌데,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마키나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른이 되었으니, 녀석과 대화할 때 나도 이 사실을 계속 상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벌써 자아를 긍정할 수 있게 된 이상 마키나는 예전보다 더욱 넓은 범위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전까진 델 몬테 지점장과 사모님이 일방적으로 애정을 주는 관계였고, 딱 그 시절까지가 마키나의 유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키나가 가족 외의 타인에게도 더욱 흥미를 갖고 접하는 방식을 연구할 수 있는 상황.

마키나가 어떤 삶을 보내고 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연애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아무래도 불편해 보이니까. 일단은 요즘 어떻게 사는지나 좀 알려줘.”

“그야 상관없습니다만….”

-기이잉

마키나는 곧바로 검지를 펴서 유리창을 가리켰다. 손끝에서 조사된 홀로그램이 유리창을 화면삼아 영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녹화된 영상은 마키나의 자취방을 촬영한 것이었다.

효율적으로 가구가 배치된 실내. 주방에는 세 살의 신장으로도 사용 가능한 높이로 조절된 가스레인지라든지 싱크대가 존재했으며 거실에도 크기가 작지만 아늑한 소파와 기타 인테리어 소품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직 뚜렷하진 않지만 효율 외에도 마키나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실내.

누군가가 사람의 집은 그 내면을 비춘다고 하더니 집의 영상만 보아도 마키나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을 이륙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색깔은 어쩌다 고르게 된 거야? 커튼 진짜 예쁜데.”

“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계산에 따르면 벽지와 창틀의 색깔을 고려해 다른 커튼을 고르는 것이 합리적인 배색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걸 결제하고 있더군요.”

“너한테도 무의식이라는 게 존재했구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본래는 집을 꾸미는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델 몬테 지점장의 집에서 지낸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요.”

“혹시 지점장님 댁에서 묵을 때 너 있던 방 커튼 색이 저랬던 건 아니야?”

“…오?”

마키나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그 집에 묵었던 경험이 네게 있어 즐겁고 행복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확실히 납득이 가는군요. 무의식에 관해선 아직 논문을 읽고 있는 중인지라 데이터가 부족했지만 실제로 겪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합니다.”

“근데 어쩌다가 인테리어 같은 것도 바꿀 생각을 한 거야?”

궁금했다. 효율만을 추구한다면 인테리어에 괜히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까 영상에서 주방을 비춘 부분만 보아도 마키나는 필수 영양소만 섭취할 것 같은 성격인데, 직접 요리까지 시작한 것 같아 흥미가 생긴 참이었다.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까지 들으니 이 녀석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난 구체적인 이유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그것도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업무를 마쳤을 때 느껴지는 정신적인 피로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는 데에 휴식 공간의 배치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죠. 논문과 통계는 무척이나 유용한 도구입니다.”

다만 마키나의 대답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제가 묵고 있는 숙소는 차원신용금고 측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제 의사가 반영된 부분이 면적과 내부 배치를 포함해 무척이나 적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곳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하기 위해선 제가 사비를 들여 개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키나는 자신의 판단에 만족하는 듯 영상 속에 비춘 자취방을 가리키고 말을 이었다.

“제가 묵고 있는 숙소는 업무 공간과 생활 공간이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통계에 의하면 작업 공간과 휴식 공간이 같은 곳에 존재할 경우 프리랜서의 업무 능력은 대폭 하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작업 공간인 데스크에 앉았을 때 시야를 칸막이로 차단하고 업무에 집중해야 하고, 또한 한 번 휴식할 때 최대한 릴랙스하기 위해 주위를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 심신을 편안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키나가 말한 대로 책상 주위에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무리 전뇌의 컴퓨팅 파워를 사용해 업무를 처리한다 해도 일에 몰두해 고속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일반적인 행원과 차이가 없다.

이 과정에서 마키나 역시 적잖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겠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휴식 공간을 자신이 느끼기에 보기 좋은 것들과, 자신이 향기롭다고 느끼는 향기로 채우고,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건.

무척이나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스스로의 몸에게 자신이 지금 업무를 마치고 쉬고 있다는 실감을 주어 더욱 편안하게 쉬기 위한 방침인데, 이런 건 나도 배워야 하지 않나 싶었다.

“와. 이거 반신욕 머신이랑 마사지 체어 아니야?”

“맞습니다. 각각 12개월과 36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매했습니다. 일시불보다는 이자 없이 나눠서 내는 쪽이 최근 우상향 중인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굴릴 자금을 확보하기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튼 이런 부분도 구구절절 합리적이다.

어지간한 어른보다 일도 휴식도 따박 따박 구분해서 지내는데 몸뚱이는 3세 어린아이다.

기묘한 괴리감이 느껴지지만,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건 잘 알 것 같다.

“이 정도면 진짜 좋아하는 여자애 불러서 맛있는 거 해주고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도 되지 않을까?”

괜히 뿌듯해진 탓일까.

나는 무심코 미루기로 했던 연애에 관한 화제를 다시 한번 꺼내고 말았다.

문제는 이게 정곡을 찌른 모양인지, 마키나가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키나가 집을 꾸민 이유, 앞서 말한 업무 효율이니 효율적 휴식이니 그런 건 어디까지나 우선순위가 낮은 항목이었다는 사실을.

“너, 여자애 데려오려고 집 꾸몄구나.”

“기밀사항입니다.”

“그, 혹시 좋아하는 여자가 집에 관해 뭐라 한 걸 들은 거야?”

“그건―”

마키나는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마침내 감추고 있던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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