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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147/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47화

낙찰가 중 50%가 리베르토티 정부의 계좌에 입금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바리타스 제2우주군이 최후의 공세에 돌입했다.

더는 기다려줄 수 없다는 황제와 의회의 압력에 의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준비를 마친 우주군은 모든 전함과 전력을 아비아노 전선에 투입했다.

제2우주군과 견원지간으로 알려진 제1우주군 역시 함대를 차출했다.

제2우주군으로서는 공적을 독차지할 수 없어 아쉽게 되었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함을 낙찰해 막대한 지출을 발생시킨 실수를 만회해야만 하는 상황.

전력을 과도하게 투입해서라도 속전속결로 이번 전쟁을 마무리지을 필요가 있었다.

“머큐리 유니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선 별수 없지.”

제2우주군 6함대의 새로운 기함Flagship 머큐리 유니콘에 탑승해 우주군을 지휘하는 건 명문 귀족 출신 함장 오보엔 중령.

그는 군단장의 명으로 발탁된 희대의 기재로 함대전에선 겨룰 자가 없었다.

제국의 역량을 걸고 일으킨 이번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군인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역할을 맡게 된 오보엔 중령은 최고의 참모진과 오페레이터와 함께 새로운 기함에 배치되었다.

비록 실전 경험이 아직 없다 해도 시험 운용에서 보여준 화력과 기타 성능을 생각한다면 아비아노에게 화려한 불꽃놀이를 구경시켜줄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차세대 전함 머큐리 유니콘은 현존하는 모든 병기 중 유일하게 아비아노가 자랑하는 무적의 방벽 차원 결계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

기이한 책략으로 수적, 질적 불리를 뒤집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차고 넘칠 만큼 최고의 인재와 병기를 비롯한 가용 자원을 동원해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까지 줄인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이야말로 정석이자 왕도.

아비아노 공성전攻星戰이 길어지며 제국 내부에서 계속해서 치솟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완벽한 항복을 얻어내야만 한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브릿지에 메아리치는 목소리.

고무된 사기와 함께 빛을 발하는 전함의 에너지 실드가 우주를 밝게 비추었다.

“전 함대, 뉴럴 링크 개시.”

“뉴럴 링크 개시!”

“뉴럴 링크 스타트! 함간 교신 딜레이 감소 중! 함간 링크 완료되었습니다!”

부함장과 수석 오페레이터의 복명 복창을 따라 제국 우주군의 전함과 구축함 등 함대를 구성하는 선박들이 동기화를 시작했다.

제2우주군이 자랑하는 신경동조망은 생체 컴퓨터를 마도공학 통신 기술을 통해 연결하는 것으로 함대 전체가 하나의 생물처럼 별다른 소통 없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동과 전투를 수행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었다.

마치 초능력자들이 사용하는 텔레파시처럼 전함과 전함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딜레이 없이 소통이 가능하다보니, 적이 허를 찌르더라도 빠르게 대응해 피해를 줄이고 역습을 가할 수 있는 등.

뉴럴 링크가 제공하는 혜택은 무한대에 가까웠다.

경쟁 관계에 있는 제1우주군이 이러한 뉴럴 링크의 수혜자가 되는 건 탐탁지 않은 일이었지만, 황제 폐하와 제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머큐리 유니콘, 음수 차원 역장 발생 장치 가동 준비.”

“역장 발생 장치 가동 준비! 에너지 충전률 30%… 70%… 87%… 100%! 가동 준비 완료!”

“머큐리 유니콘 전속력으로 전진.”

“머큐리 유니콘 전속력으로 전진! 목표는 아비아노 본성 차원 결계 중심부! 전 승무원은 충격에 대비!”

참모부의 쥐새끼들이 적국의 결계 관리자들을 매수해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군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다면 군단장이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전함의 기능을 사용해야만 한다.

비겁한 방법으로 승리하는 게 아닌, 정면에서 적을 으깨버리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제국에게 어울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고오오!!

함선 전체에 울려 퍼지는 최첨단 마도공학 엔진의 기동음.

진동과 함께 최고의 방어력과 공격력을 두루 갖춘 머큐리 유니콘은 아비아노의 차원 결계 정중앙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와라. 겁쟁이 녀석들.”

이미 이쪽에 차원 결계를 해제할 병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아비아노 측은 포격으로 항전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어떤 무기를 사용하더라고 머큐리 유니콘의 에너지 실드를 뚫는 건 불가능했다.

최강의 창과 방패를 한데에 모아둔 궁극의 전쟁병기.

비록 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코스트 퍼포먼스 따윈 무시하고 혈세를 낭비한 리베르토티의 전직 총통은 어리석은 자였지만, 그가 국민에게서 착취한 고혈로 만들어낸 거함거포의 화신 머큐리 유니콘 호는 그야말로 제국의 기함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완벽한 전함이었다.

“흠….”

그런데, 뜻밖에도 머큐리 유니콘은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았다.

아비아노는 여전히 결사 항쟁을 부르짖는 중.

여기까지 기함이 다가왔으면 당연히 에너지 병기와 질량을 지닌 미사일 등으로 격추를 시도하려 들어야 정상일 텐데.

하지만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 것도 잠시, 이미 전함이 차원결계의 코앞까지 다다른 것을 확인한 함장은 명령을 내리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인카운트까지 남은 시간 5초…! 4…! 3…! 2…!”

“음수 차원 역장 발생 장치 가동!!”

“역장 발생 장치 가동!!!”

-콰직!

머큐리 유니콘의 충각이 결계에 닿으려 하는 순간, 함장의 지시를 받은 수석 오페레이터가 플라스틱 커버를 주먹으로 부수고 새빨간 기동 스위치를 눌렀다.

이대로 결계를 해제하고 대기권에 돌입, 대기 중인 적 병력을 섬멸하는 선제 공격으로 콧대를 꺾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장 발생 장치… 기동하지 않습니다!”

“역장 발생 장치에 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음수 차원 역장 발생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메인 시스템은?”

“정상 가동 중입니다! 다른 일체 기능이 제대로 작동 중이며 예외는 역장 발생 장치 말고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지 가동 준비를 마치고 에너지 충전까지 끝낸 머큐리 유니콘의 결계 해제 장비는 그대로 셧다운 되어 침묵하고 있었다.

“……설마!!”

사태를 파악한 함장이 눈을 부릅떴다.

“즉시 역분사를 개시, 함을 물린다!!”

“잘 못 들었습니다?!”

“머큐리 유니콘을 멈추란 말이다!”

하지만 그 고함은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던 거대한 전함의 속도를 늦추는 데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콰아아아!!

투명한 차원 결계를 통과하는 순간, 브릿지의 우주 유리 너머로 보이던 푸른 별 아비아노의 모습이 사라지며 알록달록한 빛이 시야 일면을 점령했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과 함께 브릿지의 승무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맨몸으로 겪는 게 아닌 안전한 전함 안에서 겪는 차원 도약의 후유증.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도약이 아니라 방어 병기인 차원 결계를 억지로 통과하며 겪는 현상이어서 평소 차원 항공기를 타고 겪는 것과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우웨엑!!”

참지 못하고 토악질을 해대는 자.

비틀대다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는 자.

게거품을 물고 좌석에 앉은 채 기절하는 자. 기타 등등.

함내 승무원들이 인사불성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함장 오보엔 중령은 굳은 정신력으로 도약 후유증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광과민성 증후군을 유발할 것만 같은 빛무리가 마침내 가신 다음.

함장은 보았다.

“…여긴… 대체….”

메인 네비게이터 AI가 현위치가 어딘지조차 알 수 없다며 토해낸 메시지를.

<위치 특정 불가능.>

<경로를 설정할 수 없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궁극의 방어 병기 차원 결계는 통과를 시도하려 하는 자들을 모조리 무작위 차원으로 날려보낸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들이 머큐리 유니콘과 함께 도착한 곳은 제국의 데이터베이스로도 확인이 불가능한 변방의 차원.

“맙소사.”

차원 미아가 되어버린 채 귀환할 길이 요원해진 전함의 함장은 의자에 몸을 묻고 마른세수를 했다.

억지로 차원 도약을 해버린 탓에 함의 연료는 고갈되었다.

바리타스 제국은 머큐리 유니콘 호를 되찾기 위해 차원 견인을 시도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막대한 지출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 * *

제1우주군 4함대의 기함에 탑승 중이던 군인들은 2우주군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불만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2우주군의 엘리트들과 비교당하며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건 그들의 일상이었고, 언젠가 혁혁한 전공을 세워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게 1우주군 장교들의 공통적인 심정이자 인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전은 1우주군 입장에선 몹시 끔찍한 것이었다.

지휘를 2우주군의 중령이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놈의 잘난 뉴럴 링크로 인해 1우주군의 전함은 2우주군의 생체 컴퓨터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대로는 들러리는커녕 남은 부스러기만 줍다 끝날 게 확실했다.

그런데, 하늘이 제1우주군의 노고와 불만을 알고 도우신 걸까.

제2우주군이 18조 2,000억 굴덴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낙찰해온 최첨단 기함 머큐리 유니콘 호가 차원 결계를 해제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다.

“제1우주군과 제2우주군을 가리지 않고 전 함대의 전 승무원에게 알린다. 제2우주군 6함대의 기함 머큐리 유니콘의 신호가 로스트. 뉴럴 링크의 연결이 살아있지만 연료가 고갈된 채 좌표 특정이 불가능한 변방의 차원에 고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시간부로 작전 지휘권은 제1우주군 4함대 기함 파르나바 스피드의 함장인 나, 레베루 중령이 승계하기로 한다.”

“전 함선, 뉴럴 링크의 주도권을 재설정 완료.”

레베루 중령은 알고 있었다, 작전회의에서 언급된 플랜 B의 존재를.

만일 전함의 힘으로 차원 결계를 해제하는 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참모부가 긴급 수단을 발동할 수 있다고 들었다.

제2우주군은 싫지만 놈들의 참모들은 확실히 유능했다.

분명 비상시를 대비한 작전을 준비해두었을 터.

“참모부의 긴급 방안인지 뭔지 하는 거, 지금 당장 필요해졌소.”

함장의 연락을 받은 제2우주군 참모부 수석 참모는 머큐리 유니콘이 변방 차원에 좌초되었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긴급 수단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하여튼,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괜히 비싼 돈 주고 들여왔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장비를 사용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시험 운용에서 정상적으로 음수 차원 역장 발생 장치가 기동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참모부는 곧바로 아비아노에서 그들의 지시를 대기하고 있을 방공 사령부 소속 배신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리고.

“큰일입니다!”

사태를 모니터링 중이던 차석 참모가 스마트폰을 들고 뛰어와 비보를 알렸다.

<아비아노 정부, 바리타스 전향을 희망해 적과 내통 중이던 장교 스무 명을 현장에서 체포.>

“뭐어?!?!”

결계를 열어줄 예정이었던 자들이 모조리 끌려갔다.

무려 5조 굴덴에 달하는 예산이 또다시 허공으로 증발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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