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43화
바리타스 군부의 비밀 벙커.
제2우주군 사령관과 참모진이 모인 회의실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잠입이 실패했다고?”
사령관의 노성에 참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작전은 군에 할당된 예산을 대폭 절약하기 위해 리스크를 무릅쓰면서까지 실행한 것이었다.
사실 작전은 중간까지 무척이나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제2우주군 참모진은 오래 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키워온 특작부대 중에서도 엘리트로 손꼽히는 여섯을 투입해 리베르토티 공화국으로 잠입시켰다.
그들의 목표는 리베르토티 어딘가에 감춰져있는 독재자가 만든 격납고를 찾아내 안에 정박 중인 우주 전함의 파츠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특작부대원들은 무려 두 달 동안 찾아낸 단서를 토대로 무사히 격납고의 위치를 발견해 잠입했다.
여섯 대원 중 세 명은 격납고에 근무 중인 군인들을 납치해 밖으로 빼내고,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장했다.
선발대 셋은 격납고 근무자로 위장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고, 후발대의 침투 루트를 확보했다.
선발대는 순조롭게 준비를 마쳤고, 후발대는 결행 당일 순조롭게 격납고의 환풍 장치의 함정을 제거하고, 내부에 잠입, 일회용 마도공학 결계와 폭발물을 사용해 크로노 급 우주 전함 머큐리 유니콘의 외부 장갑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침입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외부 알람 장치가 울리지 않도록 준비를 마쳤으니, 남은 건 부품을 뜯어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것뿐.
재머를 켠 탓에 외부에서 대기 중인 선발대와 연락이 끊어졌지만, 후발대는 희희낙락 작업을 진행했다.
인증 없이 함교로 진입한 탓에 시끄러운 침입자 경보가 울려댔지만, 어차피 함 내에 사람은 자신들 외엔 없으니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아무도 없어야 할 전함 내부에는 어째서인지 리베르토티 우주군 대령과 격납고를 관리하는 공무원, 그리고 네 명의 엔지니어가 있었다.
승강기에서 걸어나온 그들의 손에는 총기가 들려 있었지만, 후발대는 방심하고 있었다.
훈련받은 살인자 셋은 민간인 다섯과 군인 하나 정도는 능히 제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민간인’ 넷에게 손 쓸 새도 없이 제압당했다.
재머가 해제된 다음에야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선발대는 후발대가 전함 안에서 조우한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고, 탈출을 준비하는 동안 후발대의 바디캠 영상을 바리타스 우주군 본부로 전송했고, 그 직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당해 기절했다.
현지에 잠입한 특작부대원 여섯은 그대로 리베르토티 우주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리베르토티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밤 타국의 특작부대원이 경매로 내놓을 예정인 중요 자산의 일부를 탈취하려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말았다.
리베르토티에 특작부대원을 파견할 만한 동기를 지닌 국가는 바리타스와 아비아노뿐.
하지만 아비아노는 현재 바리타스 우주군에게 행성 밖으로 나가는 길을 모두 봉쇄당한 상태.
당연히 사람들은 바리타스가 유력한 범인이라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바리타스 측은 이러한 의혹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베르토티는 침입자의 국적과 고용주를 밝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비아노가 가만히 있는데 바리타스가 자신들이 벌인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되려 의심을 사게 될 가능성이 컸다.
리베르토티의 기자회견은 경고이자, 견제구.
만에 하나 다시 제 값을 치르지 않고 물건을 탈취하려 든다면, 그땐 모든 외교 관계가 박살 날 것을 각오하라는 뜻이다.
전쟁 중인 상대도 아니고 경매 참석 의사도 밝힌 거래 상대의 매물이 보관된 장소에 특작부대를 보낸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면 지금 외교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바리타스와 밀월 관계를 즐기고 있는 다른 국가들도 무역과 통화 스왑 등을 중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서 바리타스는 본래 적대 관계가 아니던 리베르토티에게 최악의 카드를 쥐여주게 되었다.
그들은 분명 이번 일을 빌미로 경매 시작 가격을 올려 바리타스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참모부가 저지른 잘못된 판단 하나에 의해 일어났다.
-쾅!
“대 바리타스 우주군에게 패배는 용납되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해도 이번 작전 행동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에 참여한 참모들은 이 실패를 만회하지 못할 경우 징계를 각오하도록.”
지엄한 제2우주군 사령관의 명령에 참모들이 얼어붙었다.
제2우주군의 징계가 뜻하는 바는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비현대적,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우주군의 처벌은 그들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끔찍한 것이었기에.
하지만 아직 한 줄기 희망은 있다.
이번 작전으로 잃은 것을 되찾고도 남을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단 한 번의 기회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다음 작전으로 제2우주군의 함대가 맞닥뜨린 문제, 그러니까 아비아노를 수호하는 차원 결계를 넘어설 방법을 찾아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건 징계가 아닌 특진.
군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황제 폐하께서 직접 훈장을 수여하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여전히 참모진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한 가지, 아비아노 놈들의 결계를 뚫을 방법이 있습니다.”
참모진 중 가장 젊은 소령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경매에 참가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히고, 이번 작전만큼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방법이.”
분노로 이글거리던 제2우주군 군단장의 눈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1시간 이내로 작전안 초안을 완성해 올리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충성.”
군단장은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회의실을 나섰다.
참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막내 소령에게 일제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무슨 자신으로 말한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위기는 넘겼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소령은 작게 웃으며 답했고, 선배 참모들은 감탄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이거라면 확실히 먹히겠어.”
초상집 같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단번에 밝아졌다.
하지만 참모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하나의 빈틈도 없다고 자부하는 작전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
* * *
아비아노의 대기권에 펼쳐진 반투명한 장막, 차원 결계.
이것은 아비아노 본성이 외적의 침공을 받게 되었을 때 대기권 안팎을 다른 차원으로 구분해 분리하는 대규모 방어 장치로 6-2 차원에서 이따금 목격되는 차원 태풍을 인공적으로 모방해 더욱 강력한 왜곡장을 형성하도록 발전시킨 것이었다.
차원 태풍의 경우 선박에 부착된 장치를 통해 왜곡된 차원 역장을 뚫을 수 있지만, 아비아노를 둘러싼 차원 결계의 경우 아예 특정한 패턴의 역장을 발생시키지 않으면 절대 뚫을 수 없는 것이었다.
차원 결계는 만일 무턱대고 진입했다간,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으로 무작위로 날아가게 되는 방어 병기.
바리타스 제2우주군의 함대가 아비아노의 대기권 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
진입은커녕 함포라도 사격했다간, 그 포격이 어느 차원으로 날아갈 지 알 수 없다.
함포 사격은 높은 확률로 전쟁과 아무 상관없는 국가의 영토로 날아갈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바리타스의 우방 혹은 바리타스 본성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제2우주군을 비롯한 바리타스 군부는 매일같이 이 결계를 뚫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이를 돌파하는 방법은 현 시점에선 단 하나뿐.
결계를 설계한 군수업체가 리베르토티를 지배하던 독재자의 주문으로 제작한 전함에 달린 결계 무효화 장치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군은 계속해서 상당한 예산을 들여 전함을 낙찰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거나, 아예 격납고에 잠입해 필요한 장치만 빼오려고 시도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어제 참모부에서 제안된 새로운 작전은 이러한 전제를 뒤엎어 버리는 것이었다.
“굳이 비싼 돈 들여서 전함을 낙찰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참모 중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소령 3호봉의 한 마디는 참모부를 말 그대로 뒤집어 놓았다.
“아비아노의 차원 결계를 관리하는 부서의 수장이 브로커를 통해 전향 의도를 밝혔습니다.”
“부서의 부하 전원, 이미 뜻을 함께하고 있다더군요.”
참모부는 그제야 자신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렇다.
굳이 결계를 직접 파훼하는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무릇 전쟁은 이기기만 하면 되는 법.
역사를 기록하는 건 승자의 몫이고, 승리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럽거나 부끄럽고 명예롭지 않은 행동과 결정에 관한 기록은 언제든 지워버릴 수 있었다.
굳이 결계를 무효화시켜 뚫고 지나가지 않아도 결계를 관리하는 이들을 매수하면 끝나는 일이다.
물론, 그들의 전향 의사가 거짓일 경우를 상정해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바리타스 제2우주군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가 재적 중이었다.
“브레바 중령을 호출하게.”
“알겠습니다.”
참모부의 작전 초안을 직접 확인하자마자, 군단장은 이를 승인하고 필요한 인재를 불러냈다.
“충성. 심문실 소속 브레바 중령입니다.”
“잘 왔군. 이번에 중요한 일을 맡아줘야겠어.”
군단장이 불러낸 자는 바리타스 우주군에 소속된 군인 중에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힘을 지닌 자였다.
브레바 중령은 어인이었는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악마를 섬기는 사제였다.
그는 상대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꿰뚫어보는 고대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고, 금제를 내려 대화 상대의 목숨을 인질로 진실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권능은 강력하기 짝이 없어, 직접 만날 필요 없이 영상 통화로 상대의 얼굴을 보고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발동 조건을 만족할 수 있었다.
아비아노의 차원 결계를 관리하는 건 방공사령부 직속의 공병 부대.
그 수뇌부가 정말로 전향 의사를 지니고 있다면 짧은 통화 한 번으로 그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을 터.
이미 브로커가 공병 부대의 대대장과 연락 중이니 새벽에 통화를 연결할 수 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형수의 심장 두 개가 필요하겠군요.”
“허가한다. 그들은 자연사로 처리될 것이다.”
군단장의 명령과 허락을 받은 브레다 중령은 자신이 모시는 악마에게 군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사형수의 목숨을 제물로 바친 다음, 약속 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제2우주군 사령관의 대리를 맡은 브레다 중령이다. 소속을 밝혀라.”
“아비아노 우주군 방공사령부 제13공병 대대 대대장 베신져 중령이오.”
“전향하겠다는 말은 사실인가.”
“그렇소. 휘하의 부하들도 나와 운명을 같이할 예정이오.”
브레다 중령이 속으로 웃었다. 대대장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조건을 말하게.”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