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42화

최소한의 조사만 통과의례처럼 받은 잠입조는 무사히 격납고를 빠져나왔다.

콜로서스를 회수한 그들은 처음에 리베르토티를 방문했을 때처럼 차원항공기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어우, 귀찮아 죽는 줄 알았네.”

물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멋대로 이탈한 자도 있었다.

“나는 이쯤에서 가볼게. 당신네들 은행의 그 자식한테 한 마디만 전해줘. 이딴 재미없는 일로 불러내면 다음엔 목을 가지러 가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협박을 던진 요하네는 감시카메라의 사각으로 이동하더니, 눈이 포착할 수 없는 속도로 세포를 조작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전해두겠소.”

그는 비슈티의 대답을 듣자마자 돌아서서 VIP 전용 통로로 향했다.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오.”

“당신들처럼 가난하지 않아서 말이야. 프라이빗 제트 정도는 갖고 있다고.”

“…….”

그렇게 요하네는 떠났다. 암살자답게, 아무런 흔적도 인상도 남기는 일 없이.

“가시죠.”

이로울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남은 셋은 예정대로 비즈니스석에 탑승, 항공기가 출발했다.

“후우.”

기묘한 부유감을 느끼며 좌석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기댄 비슈티는 CA가 권한 음료도 마다하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앞에는 다른 행원들에겐 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창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든 반반 직전까진 끌고 왔군.’

창에는 여러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끊임없이 다양한 공식을 통해 계산이 이루어지며 시시각각 표시된 내용이 변화하고 있었다.

불파사 비슈티 과장이 지닌 직무권능, ‘승리의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

비슈티는 이 직무권능을 통해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그 외에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싸움’에 관한 승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 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비아노가 바리타스 제국의 공세를 상대로 버텨낼 수 있는 확률이었다.

아비아노의 승률은 46%, 바리타스의 승률이 54%.

여전히 8%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모든 싸움엔 언제나 이기거나, 지거나, 비기는 세 가지 결과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역시 무수한 숫자의 결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비기더라도 배상금을 많이 내야 하는 케이스가 있고, 반대로 적게 물어주거나 돈을 받는 승리에 가까운 케이스가 있다.

승리 역시 가진 모든 자원을 바쳐 힘겹게 얻어낸 탓에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신승辛勝이 있고 적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압승壓勝이 있다.

패배 또한 빼앗기지 않고, 잘 싸워 얻어낸 명예로운 패배와 적의 노예로서 비참한 운명에 자신을 맡기는 참패가 있다.

직무권능이 보여주는 건 어디까지나 기계적으로 계산한 승률이지, 이와 같은 세세한 결과까지 예상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아니다.

이 힘을 사용해 모든 승패의 결과를 정확하게 점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률은 어디까지나 확률.

미래는 여전히 미지로 가득하고 사람의 힘으로는 이를 완벽하게 읽어낼 수 없는 법이다.

다만, 불파사 비슈티는 자신의 직감과 경험을 믿었다.

그는 지금까지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등 차원신용금고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족히 수천 번은 ‘승리의 여신’의 힘을 사용해왔다.

그리고 고객의 기분을 풀어주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고민을 이해하려 시도할 때마다 승률은 올라갔다.

그 ‘싸움’의 상대가 누군지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승률이 충분할 때 금융상품의 구매를 권유할 때마다 고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기에, 비슈티는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이 전쟁의 승패를 점치는 숫자들이 이번 잠입을 계기로 변화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삐빅

<46%>

<46.2%>

<46.45%>

<46.6%>

지금도 꾸준하게 상승하는 승률.

아까 바리타스의 특작부대를 잡아내고 장치의 탈취를 막았을 때 승률은 0.7% 상승했다.

감사부 이로울 대리가 김지안 대리가 준 기억 매체를 중앙 컨트롤 패널에 삽입해 정체불명의 프로그램을 전함의 시스템에 심었을 땐 무려 9%가 상승했다.

그리고, 그 후 격납고의 응접실에서 리베르토티 우주군 대령과 대화하고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승률은 추가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비슈티는 몇 가지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다.

첫째는 아무리 침입자의 정체가 바리타스의 특작부대원이라고 밝혀진다 해도, 당장 리베르토티가 고객인 바리타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진 않을 거란 사실이다.

둘째는 리베르토티 우주군 대령과 격납고에 있던 그의 부하들이 바리타스에 대해 심각한 반감을 품게 되었고, 이 사실이 적잖게 앞으로 벌어질 일에 영향을 줄 거란 사실이었다.

“인사人事는 다했다.”

나머진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뿐.

한 가지 소감이 있다면, 모처럼 머나먼 타국에서 참군인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는 것이다.

작전의 최종단계가 시작될 시간.

“와인을 한 잔 주겠소?”

지금은 키키와이로 돌아가 못 미더운 양복쟁이들의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전까지 잠깐의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 * *

출장 취급으로 본점에서 다차원 출장소에 왔던 이로울은 돌아갔다.

“고생했어, 이로울. 내키지 않는 거 시켜서 미안.”

“아닙니다. 전부 대의를 이루기 위해 필요했던 일이었는데요, 뭘.”

“다시 한번 고맙고, 고생했다.”

“그리고 제가 뭐 큰 도움 드린 것도 아니잖아요.”

이로울은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 말을 부정했다.

이로울과 요하네, 거기에 비슈티 과장과 구E 출신이라는 경비원 아저씨까지 넷을 전부 보낸 건 최악의 최악까지 상정해 내린 판단이었다.

필요하다면 전함을 한 번에 절반으로 갈라버리는 짓도 저질렀어야 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겼다간 아마 네 명이 무사히 리베르토티의 비밀 격납고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요하네를 끼워넣은 건, 그런 상황에서 벌어질 대인전투를 가정한 결정이었다.

가장 피하고 싶은 사태가 터졌을 때, 요하네라면 무사히 적들을 무력화시키고 나머지 셋을 꺼내줄 정도의 실력이 있다.

결과적으로 리베르토티의 군인들이 다치거나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인간인지라 가까운 사람들과 아닌, 이들의 목숨을 저울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누구 하나 죽지 않고 이번 잠입 임무가 끝났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해도 내 결정과 판단으로 인해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다면 평범한 은행원인 나는 그 무게를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꼭 성공하실 바랍니다, 김지안 형제님.”

이로울은 기도하듯, 깍지 낀 손을 가슴 앞에 내밀고 말했다.

“고마워.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

이로울을 공항에서 배웅한 나는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솔직히 말해서 심정은 여전히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일개 은행원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안건.

행장님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이런 일을 맡긴 건진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사람의 잠재력을 보는 능력과 유능한 동료, 선배 은행원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이 일을 마치는 수밖에.

이미 우린 달리는 호랑이 등에 매달린 꼬락서니다.

여기서 멈춘다면 아비아노는 물론 차원신용금고의 자산 역시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된다.

나의 직장이 존속하려면, 무사히 버티고 고객들의 자산이 지켜지기 위해선, 은행원이 할 만한 일인지 아닌지 따지기보단 일단 달려들어 해결하는 게 낫다.

애초에 지구가 아닌, 이상한 세계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를 마쳐두었다.

이제 와서 내뺀다면 아무 재주 없이 그림만 그리며 가난하게 반지하에서 고개 숙이고 살아가던 날 구해준, 이 은행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사지로 직접 향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엄살만 부리고 말았다.

기왕 시작했다면 끝을 봐야겠지.

작전을 마지막 단계까지 마치고, 바리타스 제국이 백기를 들면.

그날 밤, 기쁜 마음으로 축배를 들면 된다.

* * *

“어떻게든 2단계까진 무사히 끝났군요.”

이틀 밤을 내리 새운 우린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호텔의 회의실에 모였다.

그동안 우린 다양한 방법으로 수면 아래에서 뒷공작을 걸어왔다.

첫째로 우린 아비아노 정부와 연락해 현지의 물류 창고에 비밀스럽게 차원 관문을 열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공급했다.

전쟁 물자가 아닌, 생필품을 우선한 인도적 대처.

아비아노 정부는 충분한 대가를 치렀고, 행장 역시 이에 만족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우린 클렛을 설득해, 그에게 대량의 전쟁 채권을 발급해 팔아치웠다.

그 결과, 그가 차원신용금고의 일반 예금 계좌에 맡긴(이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비상식적인 일이다) 4조 굴덴(액수 역시 비상식적이고)은 모두 전쟁 채권 구매에 사용되었고, 이 돈은 고스란히 아비아노 정부의 예산으로서 그들의 국민을 먹여살리고 전쟁을 버텨내는 데에 사용되었다.

아비아노가 계획대로 승전국이 된다면 클렛은 전쟁 채권의 이자에 더해 배상금의 일부를 얻을 것이고, 추가로 아비아노에서 차후 사업을 전개할 경우 막대한 세제 혜택과 우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 우린 클렛을 통해 리베르토티 정부에게 융자 가능성을 시사해, 그들이 외교적 평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경매 일자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이로서 바리타스 제국은 조바심을 내게 되었고, 일찍 우주 전함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넷째인데, 어제 리베르토티에서 돌아온 잠입팀은 격납고에 보관된 우주 전함에 바이러스와 인격을 지닌 인공지능 마키나의 조각을 심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서, 만에 하나 바리타스가 예산을 갈아넣어 전함을 낙찰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중요한 타이밍에 전함을 셧다운 하는 등. 다양한 수단으로 그들의 대기권 진입 시도를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만에 하나 제국 측에 뛰어난 해커가 여럿 있어 사전에 이러한 시도를 차단하거나, 다른 우회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남아있으니 아직 승리를 속단할 수는 없다.

“이젠 마지막 단계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실 여기까진 전부 뒷공작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단계에서 우린 제국의 지갑을 직접 털어먹어 놈들의 여력을 고갈시키고, 추가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아껴두고 있던 최후의 작전은 바리타스 제국의 재정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며, 결국 놈들은 아비아노 침공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우리가, 차원신용금고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바리타스 제국 놈들에게 달콤한 미끼를 던질 시간입니다.”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앗아가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같은 고객일지라도 손을 쓰는 것이 모범적인 은행원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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