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18화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클렛은 경찰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본인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한 것이 아니든 은행에 트레일러 두 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의 위조지폐를 예치하려 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클렛 씨, 동행 부탁드립니다.”

“하. 귀찮게 구네 이것들이. 그런 건 변호사 온 다음 마저 얘기하자고.”

클렛은 일단 경찰이 요구하는 대로 차를 타고 조사를 받으러 출발했다.

물론 그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지만 전화기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린 걸 보니 뷔고인가 하는 양반을 조지게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한편 우린 클렛의 부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위조지폐의 일부를 경찰에게 증거로 제출하고 일부는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된 합금 금고에 감춰 두었다.

금고는 지폐를 폭탄으로 바꾸는 마법이 원격으로 기동되는 상황을 우려해 전파를 차단하는 물건을 골랐다.

여신판단으로 확인해 본 결과 클렛이 장래 우리의 좋은 고객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엘라마와 대화를 마쳤는데, 역시나 엘라마는 클렛이 출장소를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부터 나눈 대화를 모조리 녹음해 둔 모양이었다.

“…역시 용의주도하시네요.”

“사람을 무슨 범죄자처럼 이야기하지 마라.”

이 녹음이 얼마나 도움이 될진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우리 쪽에서 클렛을 범죄자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보여 줄 수 있겠지.

엘라마와 나는 만일 우리 행원 중 누군가가 증인으로 불려 나간다면 클렛 역시 지폐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듯했다고 증언하기로 논의를 마쳤다.

문제는, 돈을 폭발성을 부여하는 마도 공학 기술이 적용된 위조지폐로 바꿔치기한 ‘뷔고’인가 하는 작자가 잡힐지, 인데.

그 인간만 어떻게 족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가 일하는 직장에 조금 전까지 지폐로 위조된 폭탄이 대량으로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걸리기만 해 봐라. 차원신용금고 법무팀이 분명 형사 끝나고 민사로 화사하게 조져줄 거다.

* * *

클렛이 풀려난 건 경찰서에 도착한 지 5분가량이 지난 다음이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키키와이 중앙 경찰서장은 직접 1층 로비까지 내려와 떠나가는 클렛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클렛을 데려온 경관은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 듯 입을 다물고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대량의 위조지폐를 은행에 반입한 건 분명 제대로 조사를 받아 마땅한 일인데 어째서 저리도 빨리 풀려나는 걸까.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된 상황이라 딱히 누가 압력을 가한 것도 아닌데 서장이 저만큼 저자세로 나갈 줄이야.

취조가 시작되기도 전에 후다닥 달려와 풀어 주라고 난리를 친 걸 보니 어지간히 거물인 건 확실한 모양이었다.

하나 다행인 건 클렛이 떠난 이후에도 서장이나 다른 상급자가 자신을 문책하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쫄지 마, 새꺄. 할 일 한 거잖아. 당당하게 있으라고.”

“저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서장님까지 나와서 배웅하는 건가요, 선배.”

“키키와이 포함해 후리텐 해외 영토에서 큰 사업 좀 하려면 대부분 저 양반네 아버지 거쳐 가야 해. 지금은 죽었으니 그대로 가업을 물려받았다지. 의원들도 눈치 본다고 하더라고.”

“그렇다면….”

“굳이 위조지폐 찍어내는 이상한 짓거리 하지 않더라도 돈이 넘쳐나는 집안이라는 거지. 애초에 저런 일 저지를 동기 자체가 없어.”

“그래도 이대로 덮어 버리는 건….”

“집안 문제라잖아. 진범 갖다 바친다니까 우리야 좋지. 폭발물 처리반이랑 대테러 부대도 출동한다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

솔직히 말해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경찰이 경찰의 소임을 다하지 않으면 누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더군다나, 지금은 차원태풍 같은 말도 안 되는 자연재해가 불어닥치고 있는 상황인데.

“…이게 아닌가.”

잘 생각해 보니 가뜩이나 태풍 때문에 시민들도 다른 여러 정부 기관들이 골머리 썩히고 있는 와중에 이런 사건 물고 오는 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긴 했다.

만일 일을 크게 키우는 일 없이 해결할 수 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투둑

-콰드득

경찰서 창밖에 보이던 야자나무가 뿌리부터 뽑혀 나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아까도 순찰차 타고 돌아오는 동안 몇 번인가 강풍에 차가 들썩거리거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줄기 탓에 다른 차량을 들이받을 뻔했다.

이런 날에 움직이는 티 내지 않고 몰래 출동해야 하는 폭발물 처리반과 대테러 진압부대 동료들이 안타까워 형사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부디, 컨테이너 두 대를 가득 채울 위조지폐를 찍어 낸 진범이 무사히 잡혀 법의 심판을 받길 기도하면서.

* * *

뷔고는 리모컨을 쥔 채 다섯 시간 동안 항해하는 중이었다.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그와 부하들이 탑승한 요트는 방향을 헤매는 일 없이 키키와이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차원태풍의 영향권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목적지를 찾아내는 생체 나침반을 지닌 어인 선장과 항해사의 존재였다.

“역장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3… 2… 진입.”

흐릿한 안개 같은 차원 역장 안으로 돌입한 순간 기묘한 감각이 뷔고의 몸을 덮쳤다.

차원 항공기를 타고 다른 차원으로 출장을 나갔을 때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각.

차원태풍의 영향으로 태풍에 갇힌 키키와이는 하나의 특수한 차원으로 변해 있었다.

역장이 불안정한 탓에 외부와의 모든 물리적, 마법적 교류가 끊어진지라 운이 나쁠 경우 태풍의 범위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튕겨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뷔고가 탑승한 요트에는 역장의 간섭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신기술이 적용된 장치가 탑재되어 있었기에 차원태풍 내부로 무사히 진입할 수 있었다.

해적들이 클렛을 따라잡은 타이밍은 아직 태풍이 그리 크게 발달하지 않았기에 무난히 역장을 뚫을 수 있었겠지만 뒤늦게 출발한 뷔고가 그들을 따라가려면 기술의 힘을 빌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야 신호가 잡히는군.”

뷔고가 지닌 레이더엔 형인 클렛에게 위조지폐를 들려 보낼 때 설치한 위치 추적기가 붙어 있었다.

태풍의 권역 밖에 있을 때엔 발신기의 신호를 잡을 수 없었지만 같은 차원에 진입한 지금은 위조지폐의 위치를 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남쪽으로 이동 중, 인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폭발 마법이 부여된 위조지폐는 해안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해적들이 클렛에게서 위조지폐를 빼앗은 걸지도 모른다.

“칫. 타이밍을 놓쳤나.”

클렛과 해적이 조우한 타이밍에 싸움이 일어나고, 그 틈을 노려 위조지폐에 걸린 폭발 마법을 원격으로 기동시키는 게 뷔고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클렛에게 붙여 둔 위치 추적기와 돈가방에 붙여 둔 발신기 사이에 거리가 벌어진 걸 보니 아쉽게도 타이밍을 놓친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클렛이 해적들을 따라잡아 지폐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길 기다렸다가 둘 다 폭탄으로 날려 버리거나.

아니면 해적들만 날려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클렛의 밑에서 계속 일하며 다음 기회를 찾거나.

혹은 진짜 지폐를 들고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는 게 제일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이게 아니야.”

클렛은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완벽한 위조지폐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탄로 날 게 뻔하다.

이번에 클렛을 날려 버리지 않는다면 분명 자신이 의심받을 터.

도망치는 것도 하수가 하는 선택이다.

뷔고는 평생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며 자라왔다. 이대로 그의 모든 것을 빼앗지 못하고 현금만 갖고 다른 차원으로 도망치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클렛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형은 절대 머저리가 아니었다.

자신이 돈을 들고 튀어도 용납하고 넘어갈 정도로 동생을 아끼는 유형의 사람도 아니었고.

“제기랄….”

결국은 첫 번째 선택지만이 답이었다.

혈육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건 꺼려지는 일이었지만 이미 부하들을 데리고 시작해 버린 일인 이상 끝내지 않고 물러나는 건 정말로 최악의 결말을 불러들일 가능성이 컸다.

이만한 리스크를 짊어진 이상 앞으로 전진하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

해적들의 배가 정박한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를 세운 뷔고는 끈기 있게 레이더를 들여다보며 타이밍을 노렸다.

성난 파도가 배를 흔들고 있었지만 기다림의 결실은 몹시나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왔다!”

멀리 떨어져 있던 클렛의 발신기가 점점 위조지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하는 해적들을 따라잡아 족칠 생각인 게 틀림없었다.

-두근

뷔고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레이더에 표시된 클렛의 위치가 해적들이 운반 중인 위조지폐와 겹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다가왔다.

“지금…!”

-꾸욱!

-콰아앙!!

리모컨의 스위치를 누른 순간 멀리서 폭음이 울렸다.

항구 근처의 공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비가 내리고 있어 불은 금방 꺼졌지만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운반 중이던 자들이 모조리 사망했을 거란 사실 정도는 폭발의 규모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해냈다….”

몸서리칠 정도의 성취감에 취한 뷔고의 손에서 리모컨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2인자의 신세를 벗어던지고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느끼던 설움과 괴로움이 모두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미친 새끼.”

클렛은 직접 몰고 달리던 차의 액셀을 쇠막대로 고정하고 뛰어내린 참이었다.

그 은행원이 보여 준 것처럼 정말로 위조지폐에 위험한 마법이 걸려 있다면 동생이 무엇을 노리는지 쉽게 짐작이 갔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은행에 맡겨 둔 돈을 훔쳐 달아나던 강도의 차와 클렛의 밴이 가까워진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이로써 뷔고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는 건 확실해졌다.

“하아.”

가족의 배신.

입안 가득 차오르는 씁쓸함을 곱씹으며 클렛은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진행해.”

-타다다다닥!!

그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폭풍을 뚫고 경찰 대테러 진압부대의 헬기가 멀리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클렛은 직접 동생을 죽이거나 벌을 내릴 생각이 없었다.

배신자는 가족이 아니다.

나머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된다.

뷔고가 특수 부대의 총에 맞아 숨지든 말든, 클렛은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클렛은 사업가였고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이였다.

남의 손을 빌려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스스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잘 가라, 바보 같은 자식.”

아마도, 이번 생에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숨겨 둔 돈만 찾으면 더는 뷔고에게 볼 일은 남아 있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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