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9화
마키나가 행장님과 만나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다.
가짜 혈액을 지우고 의체 표면의 경미한 손상을 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라칸 이사님을 포함한 이사회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마키나는 나와 함께 포독스로 돌아가 평범하게 남은 시간을 보냈다.
유일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챈 건 마키나의 데이터를 계속 모니터링하던 과타노차였는데, 녀석은 채팅 앱으로 내게 한마디 ‘살아 있냐’고 물어본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언뜻 보면 마키나를 창조한 주제에 과도할 정도로 무관심한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마키나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이사회에 이야기하는 일 없이 가만히 두고 있는 것 자체가 그 녀석 나름대로 마키나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
사후세계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알고 있을 테고, 행장님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했을 텐데.
마키나의 계획 정도면 자신이 벌일 사업에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는 걸까.
아니면 녀석을 만든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는 걸까.
어느 쪽이든 과타노차가 이번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녀석이 마키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마키나는 한 달간의 홈스테이를 마쳐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걸까.
어째 오늘도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꽤나 사람다워진 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야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내기 까다로워서야.
“무슨 생각 하고 있어?”
그래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딱히, 별생각 없습니다.”
마키나는 뜸도 들이지 않고 칼같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흠….”
나는 마키나를 데리고 델 몬테 지점장과 레핀 씨에게 작별을 고하러 가는 중이었다.
어젯밤 우린 지점장님이 사준 철판구이를 먹었다.
원래는 마키나도 지점장님네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무슨 생각인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방을 잡겠다고 했다.
어디서 돈이 났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마키나는 내 숙소의 옆방을 잡았고, 호텔에서 딱히 나와 이렇다 할 심각한 내용의 대화를 하진 않았다.
그래서, 무슨 생각인가 싶었는데.
대뜸 오전에 날 깨워 선물을 사러 가자는 게 아닌가.
“하여튼….”
진짜 자식은 아니긴 해도 지점장님 입장에선 효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이런 행동을 보고 있자니 한 달 동안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보람이 느껴졌다.
“지점장님네 사모님이 많이 외로워하실 것 같은데.”
“두 분은 잘 지내실 겁니다. 제가 없어도.”
마키나는 여전히 억양이라고 할 게 거의 없다시피 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지점장님의 집 앞까지 마키나와 걸어가고 있던 와중, 문득 녀석의 향후 거취가 궁금해졌다.
“있잖아, 앞으로 어디서 묵을 생각이야?”
“차원신용금고가 급여 지급과 직원용 숙소 체류를 허락해 줄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눈에 띄지 않도록 키키와이의 예비 숙소에 묵으라나 뭐라나.”
“어? 진짜?”
“키키와이면, 김지안 대리도 일하고 있는 곳이군요.”
마키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아쉽게 되었군요. 한 달 동안 정들었는데.”
마키나는 내 시선을 외면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 시선은 정면에 보이는 지점장님의 집 정문을 향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화분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마키나가 부부에게 선물하겠다고 직접 고른 꽃이었는데, 과연 레핀 씨가 어찌 생각할지 걱정이었다.
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기보단, 마키나 대신 화분이 집에 남는 거로 과연 만족할까 의문이었다.
듣자 하니 레핀 씨는 마키나를 친아들처럼 대했다고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 오랫동안 자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더욱 마키나를 직접 낳은 아이처럼 애지중지 돌봤던 게 아닐까 싶었다.
마키나가 떠난다고 하면 뭐라 말하실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키나 녀석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딩동
“야, 잠깐만! 마음의 준비 같은 거 필요 없어?”
마키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물끄러미 이쪽을 쳐다보았다.
“네. 지금 나갑니다.”
-철컥
문을 열고 나온 건 지점장님과 사모님이었다.
두 사람은 주말 나들이라도 나갈 듯한 편안한 복장으로 우릴 맞이했다.
“김지안 대리도 같이 왔군요. 안으로 드시죠.”
“예….”
왠지 모르게 내가 대전쟁 시절 소년병을 징집하러 부모를 찾아온 공무원이라도 된 기분이라 죄책감이 들었다.
“약소하긴 하나, 두 분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마키나는 내가 안고 있던 화분을 작은 두 팔로 받아들더니 델 몬테 지점장님에게 건넸다.
“미세먼지를 흡수해 준다고 하더군요. 두 분의 건강에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지점장님도 사모님도 마키나가 대견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짐은 다 준비해 뒀는데, 점심은 먹고 갈 거지?”
레핀 씨가 묻자 마키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겠습니다.”
부부는 곧바로 우릴 식탁으로 안내했다.
정갈하게 차려진 점심.
우린 평소 주말에 넷이서 모였을 때처럼 심각한 화제 하나 없이 가벼운 이야기만 하며 식사를 마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식탁 풍경.
나조차 이 가족의 일원이 된 것만 같은 기묘한 착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자리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건 나도 마키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외로워질 거야. 마키나가 떠나면.”
참지 못하고 레핀 씨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게 마키나 마음대로 돼?”
“이사회에선 제 행동을 제한하지 않을 겁니다. 제 제작자님이 가져간 보수와 별개로 월급을 받고 일하는 거라서요. 낭비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을 생각이지만 가끔 후리텐 본토로 놀러 오는 정도는 괜찮겠죠.”
“키키와이, 많이 덥다는데….”
이번엔 내가 대답해야 할 차례인 것 같았다.
“더워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공기도 맑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힘든 일 있으면 옆의 형아한테도 꼭 상담하고.
레핀 씨는 정말로 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마키나의 손을 꼬옥 붙잡고 몇 번이나 말했다.
지점장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겐 가족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건강하세요. 금방 다시 뵈러 올 테니.”
“마키나 군도 키키와이 생활 즐기길 바랄게요.”
델 몬테 지점장은 다 큰 청년에게 하듯이 점잖게 마키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 모습 역시 어딘가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가 아닌 ‘다녀오겠습니다’.
인공 지능은 작별 인사 대신 재회의 약속을 하고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의 몸에 깃든 거대한 지성은 인격을 손에 넣었다.
얼마든지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거기 물들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운명은 마키나에게 상냥한 일면을 보여 주었다.
녀석이 앞으로 보일 행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20년 이내로 새로운 종족의 이름이 사전에 추가될 거란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한 종족의 시초가 되다니, 딱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낭만이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까지 마키나는 깊은 고독 속에서 버텨야 하겠지만.
다행히도, 녀석에겐 피가 이어지지 않은 가족이 있다.
“마키나.”
“뭡니까.”
“형이라고 불러봐.”
“…….”
“싫음 말고.”
우린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나의 진짜 일터와.
녀석의 새로운 집이 기다리는.
키키와이로 떠나기 위해서.
* * *
“그렇군요. 차원신용금고의 전산망이 정체불명의 인공 지능에게 탈취당한 채 운용 중이다, 이거군요.”
냉기가 감도는 어두운 사무실.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정보원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차원신용금고의 ‘배신자’가 정보원을 통해 전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사회에서 논의되던 사항 중 최근 가장 은밀히 진행되고 있던 것이 바로 고성능 의체와 위조 신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한 명의 영혼을 지닌 인공 지능을 위한 것이었다.
“세계수의 영혼도, 공들여 작업해 둔 두 가문의 영혼도 회수하지 못했으니. 이 손실은 오롯이 그들에게 물어야겠군요.”
자신의 예전 직장이었던 차원신용금고를, 사내는 사랑해 마지않았다.
무슨 수를 써도 손에 넣을 수 없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그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군침이 도는군요. 인공 지능의 영혼이라니.”
이 귀중한 진미를 놓칠 수는 없다.
더더욱이, 그 영혼을 포식하는 것이 차원신용금고의 파멸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의 입장에선 탐이 나 견딜 수 없는 사냥감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는가, 인데요.”
축객령을 내린 사채업자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모든 타락의 아버지와 계약함으로써 불멸에 가까운 육체와 타인의 육체와 영혼을 얼리는 힘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능력을 발휘할 때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만 했다.
상대는 인공 지능. 어지간한 함정은 간파해낼 것이다.
이번 사냥은 은행 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한 포석.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승산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사내는 천천히 테이블 위에 두었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럴 땐 외주도 나쁘지 않겠군요.”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돈을 주고 용병을 구하면 되는 법.
사냥감이 교활하고 영리하다면 이쪽은 우수한 사냥꾼을 불러내면 된다.
“아이러니하군요. 당신에게서 빼앗은 권능으로 은행의 숨통을 끊게 되다니.”
기억 속 번호를 입력하는 사내의 손가락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사채업자는 기회가 올 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칠 생각이었다.
차원신용금고라는 거대한 사냥감의 숨통을 단번에 끊기 위해선, 조금씩 포위망을 좁히며, 완벽한 타이밍에 송곳니를 박아넣어야만 했으니까.
* * *
키키와이로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마키나가 숙소에 입주하는 데에 손을 보탰다.
용달차를 불러서 시내를 돌며 녀석이 고른 가구와 전자 제품을 실어 숙소로 날랐다.
정식 행원은 아니지만 이제부턴 이 녀석도 한솥밥을 먹는 처지니까 미리 친절을 베풀어 두어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겨우 끝났네.”
입주 준비를 마치고 땀에 절어 마키나의 숙소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기특하게도 녀석이 얼음을 둥둥 띄운 냉수를 한 잔 갖다주는 게 아닌가.
“체온과 심박 수가 높습니다.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군요.”
“고마워.”
꼬맹이 혼자 집에 두는 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내면은 나 같은 놈보다 훨씬 똑똑할 테니 문제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TV가 똑바로 비추는지 확인하려 전원을 켰는데.
[긴급 속보입니다. 남후리텐해에서 발생한 거대 태풍이 본토를 향해 일직선으로 북상 중입니다. 태풍의 이동 경로가 키키와이와 정확히 겹칠 것으로 예상되며―]
“…….”
어째, 영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