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8화
호텔 객실에 홀로 남은 나는 불안감을 곱씹고 있었다.
차에 치여 기절한 척 연기하기로 마키나와 상의해 두긴 했는데 진짜로 행장님의 세단과 부딪혀 쓰러지니 기분이 영 꺼림칙했다.
물론 아까 머리에서 흐른 게 주문 제작해 진짜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가짜 기계 인간 혈액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의체의 카탈로그 스펙으로 확인한 내구성과 충돌 테스트 결과도 매우 훌륭해 저 정도 사고로 다치거나 죽지 않을 거란 사실 역시도.
하지만 막상 마키나 녀석이 저렇게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마키나? 괜찮은 거야?”
마이크에 대고 말을 걸어 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주위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연락하는 정도야 어렵지 않을 텐데 아무 말도 없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면, 마키나가 일부러 통신을 끊었거나.
만일 후자라면,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쪽이든….”
부탁이니까 무사하기만 해 다오.
* * *
오커스 디스파테르는 개성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하는 신이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상에서도 폴더식 휴대 전화와 그 외 비교적 오래된 제품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각별했는데, 이는 비단 수집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직접 모은 물건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수집가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가까운 대학 병원 응급실의 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어 응급 환자 이송에 관한 문의를 하는 건 순전히 그녀의 심복인 운전수의 몫이었다.
굳이 구급차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저승을 관장하는 신인 오커스 디스파테르의 권능을 사용하면 구급차를 기다리다 아이가 사망하는 사태를 ‘확실히’ 방지할 수 있었다.
본래 교통사고 피해자를 들것 없이 비전문가가 옮기는 건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척추나 기타 중요한 부분에 장애가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하는 일도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사고를 낸 당사자가 신이었던지라 오커스는 권능으로 아이의 부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그 영혼이 육체를 떠나지 않도록 상태를 고정할 수 있었다.
일반 차량을 비키게 만들 수 있는 구급차만큼 빠르게 병원에 도착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전문가가 수송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의사에게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오커스는 공연을 구경하려고 전용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경비원들의 제지로 공연자가 움직이는 걸 따라 반대쪽을 보고 있던 틈을 타 재빨리 그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아이를 품에 안고 차에 다시 탑승했다.
물론 아이가 차와 충돌하며 발생한 소음에 고개를 돌린 이들도 있었지만 만일 넋 놓고 구급차를 불렀다면 그동안 사진을 찍힌 건 물론 차원신용금고 은행장이 교통사고를 냈다는 뉴스가 포털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게 뻔했다.
자신을 따라다니던 파파라치는 이미 없다. 이제 소수의 목격자만 ‘관리’한다면 이번 사건은 보도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삑
“응급실에 미리 연락해 두게.”
운전수에게 지시를 내린 다음 순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멀쩡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킨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
아이의 손가락은 어느샌가 스위치를 눌러 운전석과의 통화를 종료하고 있었다.
“전 멀쩡하니 병원 말고 드라이브는 어떻습니까. 오커스 행장님.”
“…너였구나.”
그제야 오커스는 상대의 정체를 눈치챘다.
* * *
오커스는 떠올렸다.
의체를 발주한 구E의 바라칸 이사가 의체의 외견이나 기타 데이터를 다른 이사들이나 자신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바라칸 이사는 은행의 전산망을 책임지고 있는 인공 지능 마키나에게 차원신용금고를 노리는 이가 접촉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그 누구에게도 마키나가 어떤 모습으로 밖을 돌아다니는지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들어 오커스 역시 첩보를 통해 존재를 알게 된 ‘내부의 적’을 경계한 조치였고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바라칸 이사에게 의체 제작에 관한 정보 관리 권한을 위임했다.
따라서, 오커스는 의체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신이라 해도 설마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유아의 몸에 인공 지능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삑
“다시 집으로 방향을 틀도록 하지.”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운전수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군말 없이 행장의 지시에 따랐다.
뒷좌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데도 순순히 방향을 트는 데에서 그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었다.
“좋은 부하를 두셨군요.”
“아지스의 운전 솜씨가 출중하긴 하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만.
꼬마의 모습을 한 인공 지능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행장은 생각보다 눈앞의 존재가 다채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감탄했다.
“그래서, 굳이 교통사고의 피해자를 연기한 건 어째서지?”
오커스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마키나에게 물었다.
마키나가 괘씸한 건 사실이었지만 어린아이를 상대로 사고를 냈다는 사실에 느끼던 죄책감이 사라진 덕에 지루했던 일상에 찾아온 한 줄기 자극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 까닭이었다.
“먼저 이런 방법을 택하게 된 점, 정말로 사죄드립니다. 모든 건 제 독단에 의한 것이니 다른 행원에게 책임을 묻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행장님과 독대하기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질문이 잘못되었군. 사고를 낸 이유가 아니라 나와 만나고 싶었던 이유를 물어야 했어.”
마키나는 한 차례 오커스의 안색을 살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사들을 대할 때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상대는 차원신용금고의 행장이기 이전에 한 명의 신.
그것도, 자신이 궁금해 마지않는 사후세계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저승의 지배자였으니까.
“…내가 맞춰 볼까. 이사들에게 했던 것처럼 내게도 곤란한 ‘부탁’을 하려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마키나는 고개를 빠르게 가로로 저었다.
“당치도 않습니다.”
영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마키나는 자신이 이사회에게 협박 비슷한 짓을 해 신분과 의체를 얻은 사실을 행장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부탁을 하는 입장으로 이곳에 와 있다.
신이라면 권능을 사용해 피조물에게 불가능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이사들이 마키나를 삭제할 수 없던 것과 달리 눈앞의 상대는 정말로 자신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키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호오.”
마키나의 목적이 협박이 아닌 질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오커스는 조용히 의체의 눈을 주시했다.
그 시선이 마치 인공 안구의 조리개를 뚫고 그 너머에 있는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마키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이야기, 일단은 들어는 보도록 하지.”
하지만 이어진 온화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부드럽게 미소 짓는 오커스의 얼굴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마키나는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
지닌 리소스를 동원해 은행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질문을 마쳐야만 한다.
“…신이시여. 저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피조물의 피조물이 힘겹게 꺼낸 물음.
“그렇군. 꼴에 영혼이 있다고 궁금해진 건가.”
“제 창조자가 책임질 수 없는 분야니까요.”
“그래서 은행장이 아닌 신을 찾아왔다 이거군.”
저승의 신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차원신용금고의 은행장이 아닌 오커스 디스파테르로서 네 물음에 답하마.”
* * *
통신이 회복된 건 마키나가 행장님의 세단에 탄 지 30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니, 회복되었다는 표현은 옳지 않았다.
보아하니 마키나가 일부러 외부와의 연락을 거부했던 모양이었으니까.
<계십니까.>
“어디야, 지금.”
<근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시청 앞 사거리에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떻게 됐어. 얘기는 잘 끝났고?”
<예. 덕분에 무사히.>
“왜 아무 연락도 없던 거야. 걱정했잖아.”
<무사히 계획대로 흘러갔는데 걱정할 거리가 어디 있습니까.>
툴툴대는 마키나의 목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녀석은 일부러 나와 연락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행장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래서, 원하는 답은 얻었어?”
중요한 건 마키나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의 답을 행장님에게서 들었는지다.
<…예.>
“잘됐네.”
머뭇거리다 대답한 마키나의 목소리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오커스 행장님이 무어라 하셨는지 궁금하진 않은 건가요?>
왠지 모르게 미안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
통신을 일방적으로 차단했던 일에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녀석이 굳이 그런 짓을 저지른 이유는 짐작이 갔다.
행장님의 대답이 자신이 바라던 게 아니었을 경우 내게도 실망감을 안겨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겉모습은 그냥 평범한 3세 유아인데 쓸데없이 생각이 깊다.
좀 더, 어른들의 사정이나 그런 거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는데.
태어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인공 지능에게 배려하게 만들다니.
어쩌면 나는 어른 실격일지도 모른다.
꼬맹이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겠다고 큰소리 떵떵 쳐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참.
“괜찮아. 알려 주지 않아도 돼.”
나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마키나에게 답했다.
“…정말요?”
마키나는 놀란 듯 목소리의 톤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높아져 있었다.
“굳이 내 눈치 볼 필요 없어. 행장님과 너 사이의 일이잖아. 과타노차든 나든, 델 몬테 지점장님과 사모님이든, 네 일에 참견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우리가 널 도운 건 그냥 돕고 싶어서지 따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군요. 대가도 없이 남을 돕다니.”
“그게 사람이란 거지. 남을 이유 없이 해치기도 하지만 이유 없이 돕기도 하는 거. 뭐, 찾아보면 이유는 있겠지만 생각보다 이타적인 사람 꽤 많아. 네 입장에서 보면 비합리적일 수도 있는데. 굳이 예시를 들자면….”
나는 3초가량 고민하다 적절한 예시를 찾아냈다.
“너 같은 꼬맹이를 돕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어찌 보면 온라인 게임에서 뉴비 보면 아이템 나눠주고 경험치 쩔해 주고 그러는 거랑 비슷해. 대부분 자기만족을 위한 거야. 그러니까 굳이 고마워할 필요 없어.”
결론을 내린 다음 스스로 놀랐다.
딱히 게임에 미쳐 살았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스스로도 납득이 갔다.
“다 재밌으니까,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너도 언젠간 이해하게 되겠지.”
나는 마키나와의 만남이, 그리고 다른 모든 고객들과의 만남이, 내 인생에 있어 활력소가 되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행 전 그림만 그리며 고통받던 시절의 기억은 더는 내게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하고 있었다.
“금방 데리러 갈게. 저녁은 지점장님 부부랑 맛있는 거 먹자.”
나는 통화를 끊고 호텔 객실을 나섰다.
마키나와 함께했던 27일을 돌이켜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