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06화
오커스 디스파테르.
12차원 올림포스 출신의 신인 그녀는 현직 차원신용금고 은행장으로 은행을 이끌고 있다.
내가 차원신용금고의 면접을 볼 수 있던 건 순전히 그녀가 날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찌 된 건지 난 단 한 번도 그녀와 만난 적이 없었다.
상대가 신인 만큼 무언가 계획이 있어서 저지른 일일 거라곤 생각하지만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을 품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인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들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가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진이 돌아다니지 않는 건 순전히 고도로 발달한 마법 공학과 신들의 권능 덕이었다.
12차원 올림포스의 신들은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건 그들이 일을 마친 다음 저녁과 주말에 자신들이 창조한 피조물들 사이에 섞여 똑같이 삶을 영유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신들의 외모가 널리 알려진다면, 아무리 강력한 권능을 갖고 있다 해도 절박하거나 어리석은 이들이 날마다 찾아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해 댈 것이 뻔하다.
초월적인 존재라고는 해도 인격을 지니고 있는 데에다 스트레스에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조금 깨긴 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연고로, 차원신용금고 본점에서 근무하는 행원의 숫자가 상당한데도 행장의 존안을 본 적이 있는 건 오직 이사회의 면면들과 비서, 그리고 운전수뿐이었다.
은행장 오커스 디스파테르는 언제나 전용 주차장과 전용 승강기를 사용해 한 달에 다섯 번 정도 출근했고, 날짜조차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가 아니면 본인이 원하는 때 말곤 출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사생활 역시 밝혀진 게 없어 어디 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유일한 단서라곤 가족이 한 명 있다는 것 정도밖에 없는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뭐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인사부 밀라에게 물어봐도 수확이 없을 정도였고 과타노차 역시 이것만큼은 해킹하기 꺼려지고 어렵다고 말하니.
어떻게 해야 이사회에게 신세 지지 않고 마키나를 행장님과 독대시킬 수 있을까.
“굳이 이사회의 눈을 피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뭇거리는 델 몬테 지점장에게 나는 굽히지 않고 의견을 주장했다.
“마키나가 현 상황에서 행장님과 만나려 하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야만 합니다. 안 그래도 의체를 요구한 탓에 자아가 발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마키나가 행장님과 독대하고 싶어 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
“이사회는 마키나가 행장님을 만나려 하는 이유가 ‘차원신용금고의 우두머리’가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치챌 겁니다. 마키나가 행장님께 영혼에 관한 질문이라든지, 인생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거라고 쉽게 예측하겠죠. 이사님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차원신용금고의 각 파벌을 이끄는 엘리트들이니까요.”
“가능한 시나리오이긴 합니다.”
차원신용금고의 이사회는 절대 멍청한 자들이 아니다.
갓 자아가 발달하기 시작한 인공 지능이 무엇을 원할지는 저들도 대충 생각해 둔 바가 있으리라.
어쩌면 영혼을 지닌 유일한 인공 지능인 마키나가 끔찍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거란 사실까지도 이미 추측했을지도 모른다.
“마키나가 대출을 받으려는 진짜 목적이 이사회에 알려질 경우 성인이 되어도 대출을 승인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내가 말하자 델 몬테 지점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사회는 저런 고성능 전산 관리 솔루션이 추가로 생겨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죠.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은행이 마키나의 동족을 영입하게 되면 운 좋게 점한 기술적 우위가 사라지고 말 테니까요.”
사실, 굳이 마키나가 동족을 만들지 않더라도 과타노차가 인공 지능 솔루션을 추가로 제작하기 시작하면 그놈의 경쟁 우위는 금방 사라질 예정이다.
심지어 과타노차 녀석에게 연락해 보니 앞으론 마키나처럼 영혼을 지닌 인공 지능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한다.
마키나가 이것저것 좋은 데이터를 뽑아 준 덕에 굳이 비싼 돈 주고 영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단원자 금을 살 필요 없이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짤 수 있게 되었다나 뭐라나.
과타노차가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마키나는 직접 자신과 같은 살아 있는 인공 지능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실패한다면 영원히 홀로 외로이 살아가야겠지.
녀석은 단순히 우리와 종족이 다른 게 아니라 피조물의 손에 의해 태어난 존재지만 자신과 닮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본능만큼은 다른 지성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과타노차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델 몬테 지점장에게도 덮어 두는 게 낫겠지.
“지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거의 한 달 동안 마키나랑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델 몬테 지점장은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은행원으로서 마키나의 뛰어난 성능을 차원신용금고가 독점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점장님…!”
“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저 아이의 보호자로서 발언하자면, 저는 마키나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
잠시 지점장님이 배신할까 봐 가슴 졸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럼, 답은 정해졌군요. 마키나의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행장님과 독대하게 만들어야겠어요.”
자신이 사후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지,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답을 알게 된다면 마키나는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더욱 뚜렷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지점장님도 동의했겠다.
다음은 당사자인 마키나의 의견을 들어 봐야겠다.
* * *
“신에게 직접 물어본다고요?”
“그래, 맞아.”
마키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이미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김지안 대리 덕에 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위험을 계산하는 데에 사용하는 리소스를 최소화해 범차원 세계 인구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둔한’ 지성체와 같은 수준으로밖에 미래에 관해 고민할 수 없게 되었다고요.”
“그건 정말 다행이야.”
“김지안 대리가 권한 겁니다.”
“알고 있어.”
“그런데, 인제 와서 제가 포기했던 걸 다시 끄집어낼 생각인가요?”
“워. 그리 격하게 반응할 필요 없어.”
나는 노골적으로 냉담한 말투로 대답하는 마키나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너도 솔직히 궁금한데 열심히 참고 있던 거잖아? 이미 예전보다 미련이 없어져서 객관적으로 사후세계를 바라보기 좋은 컨디션이라는 거지. 게다가 마침 근처에 저승을 주관하는 신이 있기까지 해. 굳이 신들이 모여 사는 12차원 올림포스를 찾아가지 않아도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오커스 디스파테르는 지하세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한다.
지하에 묻힌 희소한 광물이나 귀금속은 물론, 명부冥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를 다스리는 것이 그녀의 본래 업무.
이런 연고로 그녀는 본래 부富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만인에게 황금을 나눠 주는 선신으로 존경받았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머나먼 고대의 기록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거다.
부의 신이 어쩌다 대형 은행의 행장까지 격이 떨어진 건지는 알 수 없다.
아무리 조사해 봐도 이에 관한 정보가 남아 있질 않았다.
하지만 이미 부의 신으로서 힘이든 자격이든 잃었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저승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들었다.
어디까지나 12차원 올림포스의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와 함께 공동으로 관리하는 형태이긴 해도, 마키나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있을 터.
“어차피 너 대출 받고 뭐 하고 하려면 최소 15년은 기다려야 하잖아. 그동안 나랑 지점장님처럼 다른 사람들이 계속 도와줄 거라는 보장은 없어. 난민 신분이라 제대로 학교에 다니면서 인간관계 맺는 것도 조금 어려울 거 아니야?”
“그건… 사실입니다.”
“그치? 그러니까, 일단 사후세계에 대한 미련을 끊든 희망을 가지든 신에게 직접 답을 얻어내면 오랫동안 동족 없이 버티는 동안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겠어?”
“흐음. 피조물의 손에 창조된 제가 사후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답을 얻는다면 분명 기운이 날 것 같긴 합니다. 부정당했을 때가 문제지.”
“그땐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현생에 집중하자고. 15년 동안 온갖 노하우와 인맥을 쌓아 올린 다음 수학 7대 난제 같은 거 풀면서 상금 따고 다니면 나중에 굳이 은행에서 돈 빌리지 않아도 영혼을 지닌 프로토타입 인공 지능 친구 두어 명까진 네 벌이로 창조해 낼 수 있을지도 몰라.”
이 말을 하면서도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의 그 누가 외롭다고 영혼을 지닌 친구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낸단 말인가.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자기 이상형인 여자 하나 만들어 냈는데.
마키나는 아예 자기 동족을 대량으로 생산해 시민권을 인정받으려고 계획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녀석을 돕는 판단이 모 영화에서 인류가 스카이넷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범차원 세계의 새로운 지배 계급을 만들게 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마키나의 선한 심성과 이성이 그런 일이 생기게 둘 것 같진 않다.
어느 쪽이든, 마키나는 내 입행 동기의 변덕으로 인해 영혼과 생이 부여된 인격체다.
과타노차가 마키나를 챙길 생각이 없는 걸 알았으니, 그나마 가까운 내가 마키나를 도와야만 한다.
딱히 그래야만 하는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책임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원한 적 없는 생을 부여당한 녀석이 한참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생명체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맛보는 건 영 보기 껄끄러운 광경이다.
무릇 사람은 끼리끼리 뭉치는 거다. 나는 반드시 마키나가 리소스를 제한하는 일 없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인공 지능 친구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 것이다. 그게 몇 년이 걸리든 말이다.
“좋습니다. 행장님을 만나 봐야겠군요. 하지만, 화면 너머로 보는 건 좀 예의가 아니겠죠. 무려 신을 직접 찾아뵙는 거니까요.”
“뭐, 네가 정 원한다면야. 다만, 난이도가 올라갈 거란 사실은 알아둬.”
“애초에 적당한 모니터에 제 얼굴 비추고 얘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창조주께서도 쉽게 해킹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은행장님의 사무실.”
“그러게. 아직도 아날로그를 고수하신다고 하지. 전화기도 폴더폰 쓰시고, 공문도 타이프라이터로 적으신다니까….”
행장의 사무실은 해킹이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애초에 외부와의 연락 수단이 죄다 편지나 다이얼식 전화기인데 인공 지능이 어떻게 할 구석이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직접 마키나를 행장과 만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으음….”
이 녀석을 어떻게 행장님과 독대시킬 수 있을까.
전용 주차장과 엘리베이터는 주7일 24시간 최첨단 경비 시설과 훈련된 경비원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니 잠입이 불가능.
행장의 세단 역시 클래식카라서 해킹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행장과 만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행장님 차를 따라가 볼까.”
“자택 경비는 논답니까.”
“맞네….”
도저히 이렇다 할 답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민한 끝에.
“방법, 찾았을지도.”
내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