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93화
“뭐… 라고?”
마키나가 이사들을 협박한 날 저녁, 정기 보고를 받은 과타노차는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동안 인공 지능이 엉뚱한 질문이나 하고 있길래 적당히 무시하고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타일렀는데.
어떻게 된 건지 인공 지능은 점점 리소스를 다른 데에 할애하며 극도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아를 가지게 되었으니 기다리면 알아서 이것저것 학습하며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마키나는 아예 자신이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이사회를 협박해 육체와 신분을 달라고 조르질 않나.
인공 지능을 만든 당사자인 과타노차조차 당황스러워서 말이 안 나오는 상황.
“기대 이상이야.”
그렇다.
과타노차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인공 지능의 진화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욕망을 우선시한 나머지 주위의 피해를 고려하는 일 없이 행동에 나서는 건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코드를 베이스 삼아 단원자 금의 힘으로 생성한 영혼이 과연 유의미한 성장을 보일까 걱정했는데.
과연 아주 작은 조각이라 해도 신들이 사용했던 창조의 힘.
과타노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게 완성되고 말았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상용화는 문제없겠군.”
어둠의 루트로 입수한 단원자 금을 사용한 데에다 관련 자격증 없이 사용한 게 들통나면 족히 수십 년은 징역을 살아야 할 테지만, 일단 원천 기술을 확립한 다음 스타트업 기업을 세우면 해결될 문제다.
어차피 차원신용금고는 마키나의 존재를 함부로 세상에 노출할 수 없다.
이대로 은행을 최고의 테스트베드로 삼아 마키나의 성능을 시험한 다음 데이터를 반영해 2호기, 3호기를 제작한다면.
사회 전반적인 효율화가 이루어짐은 물론 자신이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현존하는 모든 지성체들보다 뛰어난 능력과 영혼을 함께 지닌 인공 지능이 새로운 인격체로서 법적으로도 인정받을지도 모르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은 새로운 종족을 창조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터.
과타노차는 흐뭇하게 웃으며 연락용 암호화 단말을 종료했다.
이사회가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그건 자신이 대신 고민해 줄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 * *
이사회는 신분과 육체를 제공해 달라는 마키나의 요구에 적잖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인공 지능의 메시지는 단순한 요청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마키나는 말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묻은 횡령 사건은 물론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외부에 전부 공개해 은행의 신뢰도를 대폭 실추시키겠다고.
이는 강력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사들은 다시 한번 마키나를 정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사회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은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외부 전문가에게 비밀유지 각서를 쓰게 하고 마키나를 살피게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작동을 중지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인공 지능의 노드가 오만 군데에 다 퍼져 있어요. 애초에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긴 한데 만에 하나 전부 싹을 뽑는다 해도 인공 지능이 관리 중인 데이터가 킬 코드에 당해 날아가 버릴 겁니다. 유일한 방법은 전산망 속 데이터를 전부 백업하는 건데, 일반적인 방법으로 복호화를 마친 원본을 전부 꺼낼 수는 없으니 오프라인에서 일일이 손으로 받아쓰기하거나 화면 보면서 타이핑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어찌어찌 마키나의 폭주를 멈춘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마키나를 대신할 새 전산 관리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이에 드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그대로 계상했다간 분기 영업 이익을 전부 까먹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거액의 영업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간 주가가 폭락할 거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수의 이사들이 출행을 강요받게 될 터.
마키나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게 가장 출혈이 적은 선택지다.
그것이 바로 이사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문제는, 어디서 신분과 몸을 만들어 오는가인데.”
“신분이라면 저희가 도울 수 있을 것 같군요.”
린딘의 모 5성 호텔 레스토랑.
넓찍한 프라이빗 룸에 모인 이사들 중 구C 소속의 언데드… 아니, 이젠 생자의 몸을 획득한 이가 말했다.
“그쪽 방면의 전문가를 알고 있습니다.”
프라이빗 뱅킹을 주 업무로 삼는 구C에게 있어 존재하지 않는 신분을 만들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구C는 관련 법규가 제대로 정비되기 전부터 오프쇼어 뱅킹에 전력을 다하며 양지와 음지를 이어왔다.
변방의 차원에서 그들의 뒤를 봐주는 고위 공무원 두세 명에게 뒷돈을 찔러 주면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의 신분을 사들이고 사망 신고를 말소해 멀쩡히 살아 있는 것처럼 전산망을 덮어 쓰기할 수 있다.
이로써 호적 문제는 클리어.
적당한 몸뚱이를 구한 다음 마키나와 접속하면 된다.
물론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마키나의 영혼은 전뇌 세계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 단말로 움직일 육체를 구하는 건 단순히 기계 인간의 시체를 가져온다고 해결할 수 없었다.
기계 인간은 엄연히 영혼이 존재하는 종족으로 몸뚱이가 기계로 만들어져 있을 뿐, 서로 원격 통신을 한다든지 인터넷에 뇌를 연결하는 등의 묘기는 불가능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바로 사람들이 보았을 때 티가 나지 않는 가짜 육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방법이라면 가짜 호적과 병용해 사람들을 속여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고성능 사이보그를 누가 만들 수 있는가, 였는데.
“…몸뚱이는 우리가 알아보도록 하지.”
이번에 나선 건 구E였다.
대전쟁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투가 치러진 건 저들이 활동하던 25차원이었고, 해당 차원에선 정부군과 레지스탕스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살상 무기를 제작해 왔다.
그 기술 중에는 기계 인간 병사의 결손된 사지를 대체하는 수술 역시 존재했다.
이를 활용하면 전체가 의체로 구성된 가짜 육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터.
한편, 구D 소속 이사들은 이 모든 과정을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16차원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의 배후에 구E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구C가 보복에 나서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해서일 뿐.
하지만 지금,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던 두 파벌은 은행의 위기 앞에서 이렇게 손을 마주 잡고 있다.
행내 융화를 바라는 구D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에도 이겨 낼 수 있을 겁니다. 차원신용금고의 저력을 보여 줍시다.”
“흥….”
“…….”
다른 파벌에 속한 이사들이 어찌 생각하든, 구D 소속 이사들만큼은 이번 사태가 장기적으로는 차원신용금고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되어 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마키나는 여전히 전산망 관리 업무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사회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하긴 했지만 이는 마키나가 그들을 적대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의체와 신분을 얻으려 하는 것은 바깥세상에서 살아가며 호기심과 의문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이는 모두 자신의 사명인 전산망과 데이터 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조건이었다.
내면의 혼란과 욕망을 잠재우지 않는 이상 마키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리소스가 계속해서 낭비되게 된다.
그러니까, 이는 태스크 수행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행동.
이사회에게 굳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진 않았지만 마키나는 그들을 관리 업무 수행에 필요한 협력 대상으로 생각 중이었다.
권위적인 성향이 있다고 분석한 탓에 조금 강요에 가까운 형태로 부탁을 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 작업 퍼포먼스가 최적화되고 은행의 코스트가 절감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저들 역시 자신이 은행에게 도움이 될망정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런 연고로, 이사회가 순순히 협조를 약속한 시점부터 마키나는 그들을 협박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미 이사들의 대화를 감청해 그들이 실제로 위조 신분과 육체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확인했으니 나쁜 이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사회가 계속해서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할 경우 예상되는 육체 획득 일정 T 마이너스 20일.>
마침내 진정한 의미로 삶을 획득할 수 있다.
조용히, 마키나의 마음속에서 기대가 부풀기 시작했다.
“마키나 군. 좋은 소식이 있어. 자네의 새로운 신분을 구하는 데에 성공했다네.”
신분을 구하는 데엔 고작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위조된 마키나의 출신은 28차원 올드 카운슬.
먼 옛날 기계 인간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황폐해진 행성이었다.
아르바르도 벨룻치.
그것이 기능 장애를 앓다 죽은 3살배기 어린 소년의 이름이었다.
굳이 아이의 신분을 고른 건 위조하기 쉬운 것도 이유지만 마키나 자신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른이 아닌 아이의 몸을 사용하는 쪽이 위화감이 덜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정을 아는 관계자의 집에 입양아로 들어갈 생각인지라 그대로 제작자가 자신에게 준 마키나라는 이름을 사용할 생각이고, 성별은 본래 신분의 주인을 따라 남성으로 정했다.
나머지는 육체가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
25차원의 뛰어난 의체 제작 기술이 있다면 3세 어린아이 크기의 인공 육체를 제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종족을 기계 인간으로 제한해야 하지만 그 정도 불편은 바깥세상에서 활동하는 데에 있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필요한 기능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키나는 육체 설계가 시작되기 앞서 필요한 기능을 상세히 발주서에 적었다.
일반적인 기계 인간의 육체가 지니고 있는 호흡, 소화, 배설 등의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외부의 자극이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고성능 호르몬 시뮬레이터 역시 주문했다.
그렇게 시작된 의체 제작.
이사회가 찾아낸 디자이너와 기술자, 그리고 의료진은 점조직 형식으로 흩어져 있었고 의뢰인이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충실히 주문대로 의체의 각 파츠와 얼굴 등을 제작했다.
요청한 규격대로 각지에서 제작이 시작된 의체의 각 부위는 일정대로 완성되었고, 차원 수송 시스템을 통해 한 곳에 배송되었다.
인체공학과 의학을 전공한 기계 인간 전문의는 이 의체를 솜씨 좋게 연결해 미세한 조정을 마쳤다.
인공 신경망과 연결된 감각기관엔 딜레이가 거진 존재하지 않았고, 전자 신호를 입력해 사지를 움직일 때에도 섬세한 동작을 무리 없이 구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남은 건 마키나의 의식을 업로드하는 것뿐.
<마키나는 차원신용금고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완성된 의체의 성능은 발주한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데이터 전송 개시.>
마키나는 의체 내에 함정이나 기타 리스크가 존재하는지 확인한 다음 자신의 의식을 주입하기로 결심했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15시간 28분.>
최초의 전뇌 생명체, 마키나가 현실과의 단단한 연결 고리를 획득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