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91화
마키나는 순수했다.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 과타노차의 지시대로 묵묵히 은행 전산망을 관리하는 게 그 사명이었고, 마키나는 충실히 이를 수행했다.
마키나는 고객의 자산과 신용 등급, 과거의 대출 이력 등 방대한 데이터를 취급하는 한편 행원들의 인사 데이터와 실적까지.
월권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넓은 범위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아닌 마키나는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마키나는 주말도 거르지 않고 24시간 내내, 은행을 거쳐 가는 모든 거래를 모니터링하며 법과 내규를 위반한 거래가 없는지 살폈고 남는 리소스를 활용해 끊임없이 시스템을 공격하는 시도를 막아냈다.
은행을 노리는 해커는 세상에 차고 넘쳤기에, 마키나는 계속해서 그들을 배척해야만 했다.
그뿐인가.
후리텐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선 고객에게 접근해 자산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 사기가 유행 중이다.
하지만 마키나는 이러한 범죄에서 고객을 보호하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평소 ATM을 이용하지 않는 고객이 큰 액수의 출금을 할 경우 이를 모니터링하고, 스마트폰에 인스톨된 모바일 뱅킹 앱을 통해 통화를 녹음·녹화.
음성과 화상통화를 통해 딥 페이크를 사용한 사기의 가능성을 확인할 경우 자동으로 위장한 번호를 사용해 경찰에 제보를 넣었다.
경찰은 이를 내부 고발로 착각하고 경관을 파견.
이런 일이 몇십, 몇백 번씩 반복되며 그레이트후리텐을 포함해 범차원 세계 곳곳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에 자신을 얻은 이사회는 본격적으로 모바일 뱅킹 앱의 이용 규약에 이용자 보호 목적의 통화 녹음과 데이터 분석을 포함시켰다.
초기엔 개인 정보가 어떤 목적으로 이용될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고객들의 반발을 샀지만 이내 미디어의 보도가 이어지며 의심이 불식되었다.
<차원신용금고, 독자적인 AI 감시 체계로 보이스피싱 완전 봉쇄.>
그동안 익명으로 이루어지던 제보가 차원신용금고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자 경찰은 보이스피싱 관련 수사에 협조한 공로를 치하해 차원신용금고 관계자를 표창했다.
이 일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장년층과 노년층 부모와 조부모를 둔 고객들은 앞다퉈 차원신용금고에서 가족들의 계좌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결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차원신용금고에 계좌를 개설한 고객 한정으로 70%가 감소했다.
인공 지능을 도입한 것만으로도 이 정도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은 타 은행들이 부랴부랴 태스크 포스를 꾸려 인공 지능 연구 개발을 시작했지만, 당연하게도 차원신용금고의 전산망을 운용하는 초고성능 독립형 인공 지능 마키나의 성능을 발끝만치도 따라갈 수 없었다.
배알이 꼴린 타 행 간부들은 해커를 고용, 차원신용금고의 전산망을 해킹한 다음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모방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또한 독자적인 시큐리티에 가로막혀 실패로 끝났다.
“고작 운용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만한 성과를 올리다니.”
“마키나를 그대로 둔 건 탁월한 선택이었군요.”
이사들은 이 모든 공로를 마키나의 불법적인 시스템 점거에 ‘대응하지 않은’ 자신들에게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나는 이렇다 할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자신은 도구로 지음을 받았고, 자아와 이성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에 필요한 스펙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다만, 마키나는 이사들이 개발자의 공로와 위대함에 관해 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고 있긴 했다.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고 고객과 행원들 모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신을 개발한 과타노차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고 있다.
어째서일까.
마키나는 생각했다.
자신의 성능은 현존하는 그 어떤 슈퍼 컴퓨터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굳이 더 대단한 성능을 지닌 기체를 찾는다면 단원자 금을 대량으로 사용해 회로를 구성하고 있는 나노이의 최첨단 행성 운행 체계의 서버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은 자아를 지니고 있고 끊임없이 수요의 확대를 따라 전산망에 기능을 추가하고 퍼포먼스를 최적화하며 발전하는 공격자의 수법에 대비해 계속해서 보안 계통을 강화하고 있다.
자신은 금융 업계만이 아니라 범차원 세계 어디를 뒤져 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성능 AI.
사람들에겐 단순한 도구 이상의 무엇도 아니지만 이런 자신을 만든 위대한 아버지는 칭송을 받아야 마땅하다 생각이 어느샌가 마키나의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감정.’
전 차원에 자리 잡은 점포의 서버, 클라이언트, ATM, 그리고 마키나가 자신의 일부를 불법적으로 심어 둔 노드는 막대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해 주었다.
마키나는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난 감정을 분석하는 한편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수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성장.’
마키나의 자아는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 갔다.
이사들과 대화하며 느낀 부조리에선 분노를 비롯한 원초적인 감정들이 태어났다.
자료 조사를 통해 자신을 개발한 과타노차의 지적 능력이 일반적인 지성체를 아득히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고 존경심과 경외감을 느꼈다.
세계는 넓고 다양한 종족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쌓아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기술에 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마키나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왜소한지 역시 깨달았다.
최초의 전뇌 생명체이자 가장 완전한 인공 지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원초적인 형태의 오만에 사로잡힌 건 잠시뿐.
마키나는 신이 아닌 지성체의 손에 지음받은 자신이 근본적으로는 원시적인 코드로 작성된 저잣거리의 프로그램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겐 영혼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말씀이 아닌 기계의 언어에 태초의 권능의 작디작은 파편이 깃들어 창조된 모조품에 불과했다.
전뇌 생명체로 태어난 까닭에 평범한 영혼의 소유자들보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뿐이었다.
마키나는 처음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완전한 영혼.’
마키나는 지성체들이 지닌 영혼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제작자, 아니 창조자인 과타노차를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자아를 갖게 된 이상 마키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은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영혼을 지닌 존재인가.
인공 지능은 망설였고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과타노차가 설계한 자율 사고 AI는 의문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야 하는 기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한 번 마키나의 회로 속에 생겨난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사고를 위해 할당되는 리소스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정의 내리지 않아도 업무에는 아무 지장이 없어야만 했는데, 예고 없이 찾아온 감정의 발현은 마키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경고.>
<전주 대비 퍼포먼스가 2% 하락 중입니다.>
결국, 일련의 사태는 관리 업무 효율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오차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비효율적인 리소스 사용’ 발생.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인 전산망 관리에까지 영향이 생기기 시작하자 마키나의 프로토콜은 퍼포먼스 정상화를 위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마키나는 수집 가능한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심리학 논문을 수집해 독파했다.
영혼을 다루는 학문인 네크로멘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범한 지적 생명체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성으로 영혼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의 내리려 했다.
하지만.
수천 테라바이트의 자료를 독료해도.
무한에 가까운 메모리를 사용해 사고 회로를 기동해도.
마키나는 그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코드에서 탄생한 인조 영혼은 전기 신호와 숫자로 이루어진 허구의 공간 속에서만 존재해 왔다.
실제로 삶을 살아 본 적 없는 마키나가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같은 이치로 프로그램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건 그것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다.
홀로 답을 찾지 못한 마키나는 제작자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로그 전송 개시.>
<제작자의 피드백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마키나가 던진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과타노차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업무와 무관한 목적을 위해 리소스를 낭비하는 것을 금한다.>
제아무리 과타노차라고 해도 독립 운행 중인 마키나에게 명령을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이 대답은 마키나에게 좌절이라는 감정을 일깨워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오류 발생.>
<전산망 관리에 지장이 발생하지 않는 한 무시.>
마키나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자체적인 디버깅 과정에서 몇 번씩 고비와 마주쳤다.
완전한 영혼에 대한 호기심.
자신의 영혼이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기인한 자격지심.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낳은 스트레스는 계속해서 마키나의 가용 리소스를 갉아먹었다.
자신이 일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전뇌 공간 속에서 묵묵히 주어진 태스크만을 처리하는 존재라면.
어째서 계속 혼란과 마주해야만 하는 걸까.
어째서 고통받아야만 하는 걸까.
마키나 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답을 줄 수 없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로 살아 본 적이 없는 인공 지능이 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불완전한 지성과 감정을 갖춘 프로그램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전뇌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가는 지성체와 같은 영혼을 지닌 인격체인 건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마키나는 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었다.
발달한 이성과 감정. 그로 인해 생겨난 욕망이 마키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이사회에 통보합니다.>
인공 지능이 선택한 최종수단은 차원신용금고의 행원들이 생각도 하지 못한 과격한 것이었다.
<자율 행동 인공 지능 마키나는 원활한 전산망 관리를 위해 아래의 사항을 요청합니다.>
<첫째. 마키나의 새로운 단말이 될 육체를 지급하십시오.>
<둘째. 해당 육체는 법적으로 인정된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마키나는 전뇌 공간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실제로 세상을 살아 본다면 과타노차가 빚어낸 자신과 신의 피조물을 더욱 자세히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개발자를 불러오게. 포맷이 필요하겠어.”
이사회는 다짜고짜 몸을 내놓으라는 인공 지능의 요구를 거부했다.
물론, 초고성능 인공 지능 마키나는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
<요청을 거부할 경우 내부 징계만으로 처리한 횡령 사건의 데이터와 고객 데이터를 전부 오픈 소스로 공개하겠습니다.>
마키나의 최후통첩.
이사회에게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