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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83/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83화

시술이 진행되기 이틀 전.

병원 정문 앞에서 농성 중이던 시위대가 자취를 감췄다.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던 무리들이 어째서 떠난 건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피켓도, 텐트도, 돗자리도.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은 단 하나도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폭언을 쏟아 댔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퇴장.

그렇기에, 우린 치료법 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이 시위를 포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새 5층으로 올라와 수술실 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카메라에 비친 그 정체는.

저번 실사 때 목격한 한쪽 날개를 잃은 천사.

바로 그 사내였다.

“콜로서스…!”

이렇다 할 위협이 없었기에 자동 감시 모드를 켜 두지 않았던 콜로서스는 뒤늦게 내 가방에서 뛰쳐나와 수술실로 날아갔다.

빔 사벨로 벽을 베고 일직선으로 돌진.

최고 속도로 가속한 로봇이 최단 거리를 비행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였지만, 폭탄 조끼를 입은 천사가 스위치를 누르는 쪽이 더욱 빨랐다.

“네놈들의 야욕도 이젠 끝이다.”

-삑

다음 순간, 기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눈부신 섬광이 병원 5층의 모든 방과 복도를 가득 채웠다.

* * *

터진 건 폭약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폭탄 조끼를 차고 있던 천사의 몸뚱이는 날아가긴커녕 멀쩡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전혀 피해가 없던 건 아니었다.

“…제길.”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빛이 사라진 다음에야 시력을 되찾은 나는 자신의 팔다리가 멀쩡한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내 몸엔 상처 하나 없었고, 그건 옆에 있던 이로울과 다른 간부 사이에 끼어 있던 엘라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파사삭

주위에 있던 구C 출신 행원들의 몸이 하얀 알갱이로 변해 부서지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육체 중 기계나 다른 무기질의 재질로 만든 부분이 아닌 유기물로 이루어진 부위가 모조리 변한 것이다.

당한 건 죄다 언데드.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이미 문을 박차고 나가 수술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콰앙!

무균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수술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퍼억

그와 동시에 전기를 두른 콜로서스의 몸통 박치기가 천사의 관자놀이에 직격.

“커헉!”

테러범은 반응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박사님! 박사님!!”

나는 쓰러진 베르나데 박사를 부축해 일어났다.

어쩌면 이 사람 역시도 언데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으윽….”

베르나데 박사는 정신을 잃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눈앞에서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온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 나는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층에 있는 언데드는 비단 은행원들만이 아니었다.

수술대에 누워 있던 아이, 레이니의 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수북이 쌓인 하얀 알갱이뿐.

“…….”

-털썩

다리의 힘이 저절로 풀리며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대체, 이건….”

“…‘천사의 재’입니다.”

내 물음에 대답한 건 뒤늦게 따라온 이로울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 얼굴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 머리 위에 보이는 빛의 고리와 붉게 달아오른 날개는 그가 내면에 가둬 둔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사의 시체를 태워 만드는 무기입니다. 사용하면 성스러운 빛이 터져 나오는데, 노출된 사이한 존재는 모두 소금으로 변하게 되죠.”

이로울의 시선은 쓰러진 동포를 향하고 있었다.

기절한 천사의 머리 위에 있던 금이 간 빛의 고리는 이젠 아예 부서져 토막이 나 있었다.

천사의 생태에 관해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빛의 고리가 사라지는 조건 정도는 들은 적이 있다.

잔혹한 악을 행했을 때.

방금 저지른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천사의 무의식이 인정했다는 증거였다.

“이딴 결말… 납득할 수 없어….”

삶을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아이가 어른들의 증오에 희생되어 사라졌다.

수북하게 쌓인 소금 위에 남아 있는 건 단원자 금이 만들어 낸 조그마한 살덩이와 그것에 연결된 아이의 영혼이었다.

사라진 육체와 완벽히 일치하지만, 반투명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레이니의 영혼은 눈을 감은 채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육체를 완전히 잃어버린 그 영혼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하기가 그지없었다.

“…네. 저도 납득할 수 없군요.”

감정을 억누른 이로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 날개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과타노차가 보내 준 영상에서 본 것과 완벽히 같은 모습.

대전쟁 시대 당시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소멸시키고 네크로멘서에게 조종당하는 수천, 수만의 언데드를 소멸시킨 심판자의 형상이었다.

-우웅

이로울의 손에는 어느샌가 빛으로 이루어진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어 직시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안 형제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뭘 할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제발 그만둬. 이로울, 부탁이야.”

“…저는 많은 걸 포기하고 희생해 왔습니다. 다른 동포들 역시 그렇고요. 전쟁터에서 맞선 적들마저 용서했는데.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모든 걸 바쳤는데….”

무서울 정도로 가느다란 이로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이 싸운 동포들마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마다 절절히 묻어나오는 절망은 나를 감화시키려 들었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이로울의 몸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지안 형제님. 저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로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닿은 천장이 가루로 변해 소멸하는 게 보였다.

뚫린 구멍 너머로 보이는 구름 낀 하늘을 향해 천사는 승천하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 남겨 둘 가치가 있을까요?”

“…이로울.”

-톡

심판의 천사로 화한 이로울의 볼을 타고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콰아아아!!

이로울이 쥐고 있던 빛의 검이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갔다.

한 번 휘두르기만 해도 이 거리를, 도시를, 전부 휩쓸 수 있는 길이.

하지만 이 상황과는 정반대로.

그 검을 쥔 천사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들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무게라고 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 광휘의 검.

이로울은 자애와 자비로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휘둘렀다.

그 순간.

-콰아아앙!!!!

하늘로 날아오른 콜로서스가 이로울의 팔을 향해 돌진했다.

-콰득!

팔꿈치를 기준으로 반대로 꺾인 이로울의 팔.

순식간에 늘어났던 천사의 검이 원래 길이로 돌아왔다.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이로울은 부러진 뼈를 순식간에 원래대로 재생시킨 다음, 콜로서스 마크 2와 대치했다.

그는 짧게 줄어든 칼을 휘둘러 로봇을 베려 했지만, 크기가 작은 콜로서스는 빠르게 움직여 검격의 틈새를 비집으며 비행했다.

“대체 저건….”

뒤늦게 콘택트렌즈를 꺼내 끼웠지만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분명, 콜로서스의 AI는 이로울의 위협에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콜로서스의 상태는 자동 조종 상태가 아닌, 수동 조종 상태.

그 말은 즉, 로봇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인공지능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는 뜻이다.

“조종실 안에 누가 있다는 건가….”

서둘러 콕핏의 블랙박스를 활성화시킨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포착했다.

-뀨우우!!!!!!!

콜로서스를 조종하고 있던 건 나노이인이 아니었다.

네 마리의 정령들이 콕핏에 옹기종기 뭉쳐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콜로서스는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렌즈에 표시된 UI에는 평소 표시되던 단원자 금의 에너지 출력 외에도 다른 요소가 추가되어 있었는데, 적힌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정령들이 발하는 네 가지 힘이 더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설마, 단원자 금 반응로가 정령들의 의지력에 반응해서….”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콜로서스의 설계자, 사우 박사.

<지안 씨! 괜찮은 거예요?!>

“네, 아직까진요.”

거의 비명에 가까운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러하다고 답했다.

<콜로서스의 비상 운행 모드가 켜져 있길래 뭔가 일이 터진 게 아닌가 했죠. 그나저나, 각성한 심판의 천사가 상대라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설명하자면 길어요. 일단은 저기 있는 게 제 친구라는 것만 말해 둘게요.”

<세상에, 대체 누가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대전쟁 시대에나 벌어지던 일이… 어쨌든, 지안 씨 친구를 죽일 수는 없으니 살상 허가를 오프로 돌려 두는 수밖에요.>

상공에선 여전히 이로울과 콜로서스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로울은 콜로서스를 벨 수 있었고, 콜로서스는 이로울에게 반격할 수 없다.

자칫했다가 이로울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콜로서스의 여러 기능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PTSD로 미쳐 버린 천사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요?”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 대처법을 저에게 물으셔도 곤란해요. 원인을 안다면 모를까.>

나는 하는 수 없이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모두 사우 박사에게 간결하게 요약해 주었다.

베르나데 박사가 새로 개발한 시술의 상세에 관해 말하는 건 은행원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이었지만, 사우 박사는 전공이 다르고 이 정보를 악용할 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저질렀다.

<…잘 알겠어요.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요.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도시는 끝장이 날 거예요.>

“영혼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을 무슨 수로 되살리라는 겁니까! 심지어 그 영혼마저 금방 없어지려는 참인데!”

내가 소리치자 사우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

네크로멘시라는 기술이 존재하는 한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죽은 자를 이생에 묶어 둘 육체가, 그게 생전의 몸이든 다른 재료로 만든 대체품이든 존재해야 가능한 이야기.

지금 저곳에 남아 있는 건 소금 말곤 아무것도 없다.

레이니의 영혼은 이미 떠나려 하고 있었다.

아니, 말이 떠난다는 거지 아이의 영혼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다.

이미 한 번 언데드가 된 이상 사후 세계로 들어갈 자격은 사라졌다.

이대로 두면 아이의 삶만이 아니라, 그 존재까지 이곳에서 끝이 난다.

고작 6년의 짧디짧은 생이, 버림받고 병마에게 숨통이 끊어진 비참한 시간이, 그 뒤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희망의 편린조차 엿보지 못한 채 종지부를 찍으려 하고 있다.

<아직이에요. 포기하긴 일러요. 우리에겐 ‘신’이 남긴 힘의 파편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때였다.

사우 박사가 다시 입을 연 건.

<콜로서스의 반응로가 공명하고 있어요. 근처에 대량의 단원자 금이 보관되어 있는 것 같네요.>

“…아!”

나는 그제야 떠올렸다.

존재하지 않는 육체를 만들어 내며, 심지어는 영혼마저 창조해 내는 궁극의 물질이 수중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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