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82화
이로울의 의견은 나와 같았다.
그는 품고 있던 혐오와 걱정, 그리고 악몽까지 내려놓고 소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선택을 했다.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우리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최소한 이런 진심이 엘라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하여튼, 사람 입장 생각할 줄도 모르는 자식들 같으니라고.”
고객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엘라마는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실사 나온 행원 중 그의 다음으로 직급이 높은 라즈마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소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 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소한 라즈마라면 자신과 같은 언데드인 레이니가 겪는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구C 파벌 소속이니 이번 대출을 지지하고 있을 터.
이번 실사 보고서의 내용이 다수결에 의해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엘라마도 사람인 한 이런 작은 목숨을 보고 가벼이 넘길 순 없을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제겐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이 아이를 치료하고 싶을 뿐입니다. 은행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상상이 가지만. 저는 한 명의 의사로서 신이 이 아이를 데려가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생자든, 망자든 그 영혼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삶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런 과도할 정도로 순수한 소망을 지닌 의사의 신념을 부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잘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보고서를 작성하겠습니다.”
엘라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아시겠지만, 워낙 민감한 사항이라.”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체념한 표정.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설득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병원 실사를 마저 마치고 돌아오던 와중,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아까 받지 못한 연락을 확인했다.
채팅 앱에 온 메시지가 한 통.
발신인은 과타노차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건 메시지가 아니었다.
영상 파일이 하나 첨부되어 있을 뿐.
“이게 뭐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과타노차가 보낸 영상이라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어 다른 행원들 앞에선 열 수 없었다.
나는 키키와이 복귀 후 마저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고, 혼자 침대에 누운 다음에야 그 영상을 열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
나는 경악했다.
카메라는 상공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다.
찬란한 날개를 가진 광휘의 천사.
그가 휘두른 거대한 빛의 검에 쓸려나가 도시 하나가 사라졌다.
“뭐야, 이거….”
천사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상공에서 자신을 포착한 카메라를 주시했다.
그 얼굴은 몹시나 익숙한 남자의 것.
바로, 이로울이었다.
* * *
그레이트후리텐, 수도 린딘.
차원신용금고 본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모 호텔 로비에선 두 은행 간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둘 다, 네스먼토 준장의 지시를 받는 구E 소속 전직 군인 은행원이었다.
“엘라마가 보고서를 제출했더군요.”
“돌아오자마자 바로 시작했나. 한결같이 근면한 놈이로군.”
“구C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게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확인할 수 있으니 상관없어.”
직급이 낮은 안경의 사내는 몹시나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상사의 얼굴에선 걱정하는 기색 따윈 보이지 않았다.
“오늘, 감사부의 천사가 움직이는 게 아니었습니까?”
조급해진 부하는 상사의 기분을 해치는 것을 감수하고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 자네는 그렇게 알고 있었겠군.”
“예.”
“계획이 소폭 변경되었다네.”
상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폭탄은 확실한 때에 터뜨려야 가치가 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세상일에는 다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지. 16차원의 일은 신경 쓰지 말게. 자네가 몸담은 구E는 실수하지 않는 이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잡은 끈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실례인 거 알고 있지?”
상사의 느긋한 미소에 설득당한 사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어찌 감히….”
“준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니, 믿고 따르기만 하라고. 이번 기회에 그 역겨운 언데드 놈들을 이사회에서 쓸어낸다면 나도 내년엔 임원 자리를 바라볼 수 있겠지.”
“구D만 가만히 있어 준다면 확실히 가능하겠군요.”
두 행원은 비열하게 웃으며 잔을 기울였다.
“제대로 풀리기만 하면 구C 놈들 춤 솜씨를 구경할 수 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될 자신들만을 위한 쇼를 그리면서.
* * *
뜻밖에도, 구D 이사들은 엘라마가 제출한 보고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의 목숨을 구하면 차원신용금고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간 건 사실이지만, 구D가 반박할 거라고 짐작해 각종 자료를 준비해 온 구C 이사들은 허망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이사회의 의향은 개인여신 심사 부서로 전달되었고,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의 대출은 빠르게 승인이 완료되었다.
집행된 대출. 베르나데 박사의 계좌로 입금된 돈은 당일 곧바로 절반 이상이 빠져나갔다.
예산의 용도는 주로 기술자의 고용과 자재 구입.
레이니의 영혼을 완전히 육체에 고정시키기 위한 마도 공학 의료 기기의 설계는 진즉에 완성되어 있었다.
무균 시설이 갖춰진 공장에서 설계 도면을 따라 기계가 제작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10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베르나데 박사의 걸작은 당국의 엄격하지만 신속한 심사 절차를 거쳐,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한정적인 사용을 허가받게 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시술 당일, 16차원엔 다수의 구C 파벌 소속 행원이 포함된 차원신용금고 행원들이 모여 있었다.
베르나데 박사가 시술을 관람하고 싶다는 이들을 모두 배제했지만, 차마 돈을 빌려준 은행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던 까닭이다.
“그럼, 지금부터 언데드의 영혼박리증 치료를 위한 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어찌 됐든, 아이의 남은 삶을 이어 주기 위해.
의사는 다시 한번 칼을 집었다.
* * *
“벌써부터 무서운데.”
나는 솔직한 심정을 입에 담았다.
이곳은 수술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중인 원장실.
나와 이로울을 비롯해 열댓 명의 차원신용금고 행원들은 이곳에서 집도 중인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주문 제작한 특수 목적 의료 기구는 투명한 유리 수조와도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 주위에 도저히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개중엔 원통형의 수조와 이어진 투명하고 긴 호스가 있었는데, 그 끝에는 커다란 메스가 달려 있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써먹을 생각인지 알 수 없던지라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안 형제님은 상냥하군요.”
“음?”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이로울은 나와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묘한 소리를 하길래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지안 형제님이 나서 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을 거예요.”
“…….”
“저 아이에게 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참 우습죠? 이런 제가 천사라니. 사람들이 알면 비웃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이로울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안도감, 그리고 다른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괜찮아. 너랑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거야.”
“…그쵸?”
“뭐. 정확히는 그냥 이사회가 소장님 보고서 읽고 정한 거긴 한데. 솔직히 저런 아이를 어떻게 버려 두겠어. 도와줘야지. 은행 이미지 관리하는 데에도 좋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하긴, 당장 중요한 건 아이를 살리는 거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화면 너머에서 집도 준비를 마친 베르나데 박사가 기다란 관이 달린 메스를 집어 들었다.
“시작하나 보다.”
원장실에서 선 채로 화면을 바라보는 행원들 사이로, 대기 중이던 간호사 두 명이 오가며 정리된 자료를 배포했다.
수술 중인 베르나데 박사가 직접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사전에 작성된 문서를 통해 은행의 자금이 투입된 수술용 기계에 관해 설명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대단하네.”
서류에 적혀 있던 기계의 작동 원리는 단순했다.
일반적인 네크로멘시는 영혼이 이생에 대해 지닌 미련을 재료 삼아 ‘새장’을 만들고 영혼을 안에 가두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박리증 환자의 영혼은 반복되는 유체 이탈 시도를 통해 이 새장을 망가뜨리며, 그에 더해 육체의 죽음을 자각한 탓에 한 번 몸을 떠난 다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박리증을 앓는 언데드의, 영혼과 육체를 잇는 연결 고리가 다른 이들보다 얇고 가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베르나데 박사가 고안한 해결책은 간단했다.
바로 영혼과 육체를 잇는, 튼튼하고 끊어지지 않는 연결 고리를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기이이잉!!
다음 순간, 화면 너머로 보이던 커다란 메스가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왼손에 특이한 디자인의 금속 건틀릿을 착용한 베르나데 박사는 천천히 칼날을 움직여 레이니의 머리의 일부분을 도려내고 있었다.
“…음?”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진즉에 토했을 것 같은 광경. 하지만 나는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는 단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수술실 천장에 달린 카메라에 비친 레이니의 머리는 멀쩡했다.
메스를 쥐지 않은 박사의 왼손은 반투명한 안개와도 같은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저건… 수확도. 영혼을 직접 도려내는 천사의 검이군요. 대체 어디서 저 제작법을….”
영혼에 간섭 가능한 메스.
그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나는 계속해서 화면으로 보이는 수술실의 광경에 집중했다.
-고오오오
박사가 여전히 레이니와 이어진 가느다란 영혼의 일부를 메스의 날이 아닌 배 부분에 갖다 대자, 메스에 달린 투명한 호스가 빛을 발했다.
다음 순간 메스의 표면이 수면처럼 출렁이더니, 레이니의 영혼에서 잘라낸 일부가 호스를 통해 연결된 수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걸 어찌하나 궁금해진 나는 배포된 자료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단원자 금?”
설명을 읽은 다음 순간, 수조 안으로 빨려들어 간 영혼의 선단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거품.
자료에 따르면 박사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혼의 일부에게만 실체를 부여하는 ‘수육受肉’이라는 과정이었다.
오직 나노이에서만 채굴 가능한 모든 연금술사들의 꿈.
대량의 단원자 금이 뿜어내는 기적의 힘에 의해, 영혼의 극히 일부, 그 끄트머리만이 자그마한 살덩이로 변하고 있었다.
레이니가 송과체에 직접 전극을 꽂음으로써 받은 고통과 그 기억이 영혼과 육체를 잇는 가교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적힌 게 사실이라면, 베르나데 박사는 수라의 길을 걷더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는 미치광이가 틀림없다.
하지만, 그 결과가 옳은 이상 나는 영원히 그를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뽁
박사가 호스에서 메스를 떼어 내자 잘라 둔 레이니의 영혼이 다시 역류하듯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끝에 달린 자그마한 살덩이를 조심스럽게 레이니의 뇌에 묻었고, 잘라 둔 두개골을 다시 제자리에 되돌렸다.
영혼에 이어진 채 가공되어 육체와 영혼의 두 가지 성질을 지니게 된 ‘연결 고리’는 무사히 레이니의 머릿속에 닻과 같이 자리 잡았다.
이제 남은 건 그 끝에 달린 살덩이가 무사히 몸에 흡수되는 것뿐.
“…수술 완료.”
피곤함에 절은 베르나데 박사의 목소리와 함께 장장 세 시간에 달하는 대수술이 막을 내렸고.
그 즉시.
“이교의 의사는 심판을 받아라!!”
전신에 폭탄을 두른 미치광이가 수술실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든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