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80화

그레이트후리텐 린딘.

6-2차원부터 시작해 다양한 차원에 지점을 전개해 범차원 세계의 금융을 이끌어 나가는 거대 은행 차원신용금고 본점.

이 웅장한 황금의 거인의 머리라고 부를 수 있는 20층의 이사회실에선 차가운 눈을 가진 세 파벌의 간부들이 집결해 있었다.

이들이 모인 건 정례 회의 때문이었지만, 모두가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있던 건 금일 논의될 안건 중에서도 두 가지뿐이었다.

첫째, 과거 구E의 주도로 거액의 대출이 진행된 행성급 리조트의 채무 상환 기한 연장 여부.

이는 한 세대 전 구E 출신 행원들이 다른 파벌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대출로, 차원신용금고가 관리하는 자산의 상당한 비율이 할애되었다.

하지만 해당 리조트는 창립 후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어 이자조차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까진 구E가 힘써 온 덕에 어떻게든 채무 상환 기한을 늘리고 재무 건전성을 가다듬는 중이었지만, 여전히 상환할 자금은 없었고, 만에 하나 이번 정례 이사회에서 기한 연장이 실패할 경우 구E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추궁이 시작될 경우 구E가 이 대출을 진행하며 감춰 둔 큰 비밀이 드러나는 건 덤.

구D의 우두머리인 디스파테르 행장의 의중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적대 관계에 있는 구C 이사들이 이 약점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으려 할 건 틀림없다.

고로, 네스먼토 준장을 필두로 한 구E 이사진들에게 있어 이번 정례 회의는 사활이 걸린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

금일 논의될 안건 중에는 16차원의 거물 의사 마르쿠스 베르나데의 개인 대출 신청에 관한 결정 역시 포함되어 있던 까닭이다.

16차원은 범차원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언데드 인구 비율을 자랑하는 곳.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곳에는 구C가 초차원넵튠은행이었던 시절부터 거래하던 부유한 고객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 그 고객들의 자산은 초차원넵튠은행에서 분리된 프라이빗 뱅크 몇 곳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 프라이빗 뱅크는 표면상으로는 구C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이었다.

즉, 해당 은행에서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차원신용금고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은행의 자산 역시 차원신용금고의 소유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구C에서 분리된 16차원의 자잘한 프라이빗 뱅크는 여전히 구C 간부들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파벌을 지탱하는 자금줄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구C 간부들은 주기적으로 16차원을 방문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투자 안건을 소개하거나 네트워킹 파티를 열어 친목을 도모하는 등.

자신들을 지탱해 주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쏟고 있었다.

그들이 이번에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가 신청한 대출을 승인하려고 기를 쓰는 이유 역시 같았다.

마르쿠스 베르나데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유형의 의사가 아니다.

게다가 신약 개발도 아니고 난병의 치료법 연구라면, 아무리 돈을 빌려줘 봤자 일정 이상의 이자 수익 말곤 기대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연구가 성공한다면 구C 이사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언데드의 사망률을 낮추었다고 생색을 낼 수 있다.

심지어는 프라이빗 뱅크의 고객 중 같은 증상으로 고통받는 이가 생길 경우, 마르쿠스를 압박해 남들보다 일찍 시술 일정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프라이빗 뱅크를 이용하는 상류층은 잃을 것이 많다.

그들은 리스크를 무엇보다 꺼렸고, 잠재적인 위험을 줄이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구C 행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영원한 생명을 이어 가고 싶어 하는 16차원의 부유한 고객들에게 있어 이번 연구의 성공은 이따금 일어나 언데드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는 영혼의 소멸을 완벽히 막을 단서가 될 수 있다.

프라이빗 뱅크가 박사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지 않은 건 프라이빗 뱅크의 존재 이유가 일반적인 은행과 달리 부자들의 프라이버시와 자산을 지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고로 구C 행원들은 이번 대출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차원신용금고가 사회 각계의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이번 대출을 승인할 경우,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건 자신들이 될 예정이니까.

구E에 속한 이사들은 이러한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불행한 어린 소녀에게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주지 않는 은행이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요?”

리조트의 부채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먼저 논의되기 시작한 박사의 대출 안건.

베르나데의 환자가 어리다는 사실을 들먹여가며 다른 이사들을 설득하려 하고 있는 구C 소속 언데드의 본심은 너무나도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전부, 구D가 정한 수순대로였다.

지금쯤 살아 있는 폭탄이 베르나데 박사의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정례 회의가 끝나기 전 구D가 설치한 ‘시한폭탄’이 터져 준다면, 대출을 실행할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구C는 16차원의 지지 기반을 모두 잃게 될 터.

“언데드든, 누구든. 영혼을 지닌 이가 죽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요.”

네스먼토 이사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구C 소속 이사의 의견에 동의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16차원에서는 다수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예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 *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우린 이 병원을 책임지는 베르나데 박사가 기다리는 5층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일반 환자들과 이미 죽었지만 병원 신세를 지닌 언데드 환자가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광경을 본 나는 새삼스럽지만 16차원에서 네크로맨시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깥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병원 내부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경찰의 보호, 그리고 병원 정문을 지키고 있는 듬직한 경비 대원과 창문에 걸린 소음 차단 마법 덕이었지만.

어쨌든 이곳의 환자들은 서로를 생자와 망자로 구분 짓고 미워하는 일이 없었다.

아마 16차원의 다른 장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언데드의 외관이 다른 종족들과 무지막지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기괴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한몫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육체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금속과 유리로 만들어진 사람 형태의 그릇 속에 영혼을 가둔 채로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라즈마 과장조차 멀리서 보면 그저 쿨하게 생긴 기계 종족과 비슷하게 보인다.

하물며 육체가 온전한 언데드들은 어떨까.

최소한, 이쪽 차원에서 마주친 언데드는 다들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기 힘든 비주얼을 갖추고 있었다.

한눈에 살아 있는 지성체와 구별할 수 있긴 해도, 지구의 서브컬처에서 접할 수 있는 혐오스럽고 악취가 나는 썩은 몸뚱이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뼈만 남은 언데드의 경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약품 처리를 마친 건 물론 그 복장부터 사소한 디테일까지 어지간한 사람보다 위생적이고 청결하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구C 출신 행원들 외엔 언데드와 그리 많이 마주칠 일이 없는 6-2차원에서 주로 지내던지라, 이곳에 오기 전까지 병든 언데드라고 들으면 마냥 부패한 시체가 걸어 다니는 걸 상상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들이 한 번 죽음을 경험했다는 걸 모른다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죽은 자가 거리를 돌아다니든 말든 잘만 굴러가는 세상.

이곳의 언데드들은 딱히 자신들이 섭리를 거스른 존재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없었다.

진정으로 자신들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

어쩌면 저들에게 있어 사후의 삶이란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타임’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16차원의 사람들은 무사히 네크로멘시 시술을 견딜 수 있도록 생전에 건강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시술에 필요한 자금을 모은다고 한다.

개중에는 부활 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노력을 거듭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더는 아프지 않은 몸으로 노후 생활의 연장선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메리트로 꼽을 만했다.

“…….”

나는 그제야 자신이 네크로멘시 시술이 안겨 주는 다양한 메리트에 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를 먹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텔로미어가 저 먼 곳을 향해 끝없이 이어진 길이 아닌 쉴 새 없이 타들어 가는 폭탄 심지와도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네크로멘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태어날 이들에게 약간의 민폐를 끼칠지는 몰라도 ‘나 하나 정도 어때’ 혹은 ‘내겐 가족이 있으니까’ 같은 생각을 하며 망자로 살아가는 결심을 하게 되는 거겠지.

이는, 분명 견디기 힘든 유혹이 틀림없다.

얼굴도 모르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일자리와 자원을 먹어 치우는 죄책감을 개개인이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개개인의 선택이 쌓여 사회의 순환이 멈추고 고착화가 일어난다 해도, 그 영향을 느끼게 될 때까진 적잖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나는 16차원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필연적인 개인의 비극을 모두가 피해간 세상.

지금은 모르겠지만 수십 년 후에 이 차원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설 자리는 과연 남아 있을까?

박사의 대출 신청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싶었던 나의 마음속에 서서히 의문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딩동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5층에 도착한 우린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원장실로 향했다.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작고 간소한 문을 열자 책과 자료로 가득 찬 실내의 풍경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르나데 박사는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위장한 분주함이 아닌, 차분한 모습.

평소부터 저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란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괜찮으시면 차라도 한 잔 어떠십니까?”

은행에서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에게선 현세의 번뇌를 버린 자 특유의 초연함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만, 이미 도착하기 전에 커피 한 잔씩 하고 왔습니다.”

사무적인 태도를 일관하며 엘라마는 실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박사님께서 연구 중인 치료법이 영혼 소실 증상 중 몇 가지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공한다면 대출 상환에는 문제가 없겠군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은행에 폐를 끼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라마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갈 것을 재촉했지만, 박사는 전혀 기분이 상한 티를 내지 않았다.

은행이 환자의 목숨을 걱정해 대출을 승인할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저, 비즈니스를 위해 온 우리에게 걸맞은 방식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군요.”

“환자의 데이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같이 확인하러 가시겠습니까?”

박사는 천천히 원장실 문을 열고 같은 층에 있는 연구 시설로 향했다.

우린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에어 샤워와 마력 샤워를 마친 다음에야 무균실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살려… 줘….”

강화 유리로 만든 벽 너머에서 오열하는 어린 소녀.

그 두개골은 깔끔하게 도려져 나가 내용물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분노에 휩싸인 천사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려앉은 박사의 대답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신에게 승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 얼굴에는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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