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76화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의 대출 신청에 관한 본점의 답변이 도착한 건 일주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개인의 대출 신청치고는 이례적으로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제는, 그 답변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웠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라고요? 이게?”
“그래.”
엘라마의 설명을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네놈이 살던 차원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쪽 세상은 신이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는 곳이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도 다를 수밖에.”
신이고 나발이고 지구에는 언데드가 없고 언데드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려 하는 사명감 투철한 의사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토를 다는 것처럼 보일까 봐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이번 대출에 관해 이사회의 의견은 완전히 둘로 나뉘었다. 구C는 지지를 표명했고, 구E는 반대했지. 딱히 신념 때문에 고른 건 아니야. 각자의 이득을 생각했을 뿐.”
“구D 소속 이사님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생각한 거겠지. 현장 실사 후 마저 결정하겠다는 게 이사회의 의견이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윗선에선 의견이 갈렸고 대출을 통과시키고 싶으면 직접 박사의 병원을 찾아가 이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건져오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무언가’가 사회적인 반발과 기존 고객의 이탈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출을 승인할 근거가 되어 주는지, 이다.
“어질어질하네요.”
현장 실사에 나가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즉, 내가 이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주장을 펼치지 못하면 이번 대출은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이번 일이 이쪽 세상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실패할 경우 환자가 하나 죽을 것이다.
물론, 아직 불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 언데드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하지만 대출 심사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구르든 내 어깨에 무거운 책임이 실리고 말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베르나데 박사와 연락해 실사 일정을 잡아 두도록.”
“…알겠습니다.”
이번 대출이 엘라마가 말한 대로 차원신용금고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얼추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 한편에선 이 대출이 승인되길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난 이쪽 세상에 적응한 지 얼마 안 된 외부인인 주제에 멋도 모르고 큰일을 저지르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언데드도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데.
“너 혼자 보내진 않을 거다. 이번 일은 대리 하나가 어떻게 해 볼 만한 일이 아니니까.”
결국 여럿이서 가게 되었군. 저번엔 엘라마랑 같이 갔었는데 이번엔 대체 몇 명이 함께하려나.
그나마 부담감은 줄었지만, 같이 가는 게 누구인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구D 소속 이사들이 이번 건에 관해서 정말로 중립을 지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간을 보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판단 재료가 부족하다고 생각 중인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와 함께 실사에 나서게 될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직급이 높을 것이고 나보다 발언력이 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출의 성사를 결정하는 건 함께 동행하는 다른 행원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어떤 속내를 품고 나왔을지에 따라 베르나데 박사의 연구는 문명의 쇠퇴를 불러일으키는 악의 씨앗이 될 수도, 의학의 역사에 길이 남을 희망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쪽 분야에 관해선 아는 게 없는 나는 확신을 갖고 무조건 박사가 하려는 일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대의 자체는 그럴싸해 보여도 도의적으로 해선 안 되는 연구라는 게 있었고.
이쪽 세상에서도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수단을 사용해 연구를 진행하는 광기의 과학자는 존재할 테니까.
결국은 이 모든 것을 직접 우리의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약속 잡겠습니다.”
나는 엘라마에게 대답하고 창구로 돌아갔다.
* * *
베르나데 박사와 상의 끝에 정한 실사 일정은 사흘 후였다.
그의 개인 병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네크로맨시가 완전히 합법인 16차원, 행성 이졸데의 대도시였다.
3일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필요한 준비를 마칠 수 있는 시간.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16차원의 문화와 법률, 그리고 예절 등을 넓고 얕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곳이네…”
16차원에 거주하는 언데드의 숫자는 다른 차원에 비해 몇 배는 많았다고 하니, 그만큼 6-2차원과 달리 까다로운 매너를 지켜야만 했다.
생자와 망자를 구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순간 아웃.
차별주의자로 몰리게 된다.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
-지이이잉
계속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내 입행 동기이자 감사부에 소속된 대리.
“이로울?”
천사 이로울이었다.
* * *
<평강! 지안 형제님 오랜만입니다!>
기괴한 인사말로 통화를 시작한 이로울의 목소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어어, 오랜만. 그때 네 덕에 고기 배부르게 먹었다.”
이로울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저번 린딘 출장이었다.
그날 나는 모처럼 본점에 근무 중인 입행 동기 모두와 만나 식사할 수 있었다.
과타노차와 이로울, 그리고 밀라까지.
각자 일정이 바빠 다 같이 모이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멤버.
아이작까지 다섯이 모두 모였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문 들었어요. 형제님이 가져온 대출 안건 때문에 본점 이사회가 뒤집혔다면서요.>
“알고 있었어?”
<그럼요! 감사부에 직접 통보되었거든요.>
아무리 부정부패를 비롯한 행원들의 잘못을 감시하는 감사부라 해도 개인의 대출 안건에 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누구한테 들은 거야?”
<저희 부장님께 직접 들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본점에 소문이 돈 것도 아니고 감사부 부장이 직접 이로울에게.
그렇다면 이 일에 감사부가 끼어들 만한 이유는―
“부장님이 뭐라셨는데?”
<다음 현장 실사 때 저도 같이 다녀오라던데요.>
“…….”
이로울을 비롯해 천사들이 주축을 이루는 감사부는 인사부와 더불어 가장 행원들이 두려워하는 부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이 왜 감사부를 두려워해야 하나 궁금할 거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위로 올라가길 원하는 차원신용금고의 행원들은 세 파벌 중 하나에 속해 있거나 최소 그 입김이 닿는 위치에 있었다.
그 말은 즉 자신이 타고 있는 ‘라인’에 속한 누군가가 감사부에게 잡혀가는 순간 은행원의 커리어가 박살 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감사부는 평소 본점과 지점의 행원을 상대로 똑바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 은행과 고객을 속이고 있진 않은지 정기적·비정기적 감찰을 실시한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대출 현장 실사 팀에 굳이 끼워 넣다니.
이런 일은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고, 다른 은행에서도 일어난 적이 없을 것이다.
이번 실사에 동행하는 감사부 행원의 역할은 아마도 박사 개인이 행원들에게 뇌물을 주려 하거나 행원들이 편파적인 판단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리라.
일반적으로 심사는 대출을 담당하는 행원과 본점 개인여신부의 심사역이 동행하는 정도가 정상.
그런 의미에서 본점의 이러한 판단은 이사회가 이번 대출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내가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만전을 기하는 거겠지.
어디까지나 이번 실사를 토대로 구D 소속 이사들이 대출 심사를 통과시킬지 결정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었다.
사람을 대체 뭐로 보고.
<어쨌든 그렇게 됐습니다. 지점 감사 외에 업무차 본점 밖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 설레서 잠도 오지 않습니다.>
“…어. 잘됐네.”
<지안 형제님?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 별거 아니야. 동기끼리 실사 나가는 게 처음이라 좀 얼떨떨해서.”
<그러게 말입니다.>
본점이 미치지 않은 이상 꼴랑 대리 둘만 보낼 리 없다.
아마 출장소장인 엘라마를 비롯해 다른 직급이 높은 행원도 함께 보낼 터.
“어쨌든 같이 가게 되었으니 잘해 보자고. 다 끝나면 밥이나 한 끼 어때?”
<바람직하군요. 그럼 그때 뵈어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로울과 대화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털썩
“후우….”
침대에 몸을 묻자 순식간에 정령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지 열렬하게 몸을 비벼 대고 있었다. 아마도 딴에 마사지를 해 주려는 생각이겠지만 오늘따라 크게 효과가 느껴지지 않았다.
“일이 이상하게 커지네.”
이번 대출, 액수야 예전에 맡은 안건들보다 적어도 결과가 세상에 끼칠 영향이 생각보다 커질 것 같다.
그저 아픈 사람이 있대서 치료가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류를 작성해 올렸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고 만 걸까.
나는 마저 공부를 마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세상이 너무 복잡한 게 아닐까.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16차원 이졸데.
수백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수도권 도시의 변두리.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개인 병원에서, 소녀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레이니.
성은 딱히 없었다.
성을 물려줘야 했던 부모가 그녀를 버렸던 까닭이다.
병약하게 태어나 고아원 문 앞에 버려진 레이니는 원장의 극진한 도움 덕에 병을 지닌 채로도 연명할 수 있었지만, 고작 다섯 살의 나이에 심각한 발작 증세로 인해 사망했다.
그녀가 여전히 넓은 의미에서 살아 있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있던 건, 그 특별한 행운 덕분이었다.
작년, 원장은 고아원을 후원하는 정체불명의 신사가 내준 비용으로 레이니가 네크로맨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비록 범차원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는 수술 일정이 차 있던 탓에 모실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유명한 다른 네크로맨시 전문의에게 돈을 내고 긴급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전부 간절히 이생에서 삶을 살아가길 원하던 레이니의 의사를 존중한 결과였고 레이니 또한 이에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네크로맨시 시술을 통해 만들어진 영혼을 담는 그릇은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다.
존재를 유지하는 영혼의 힘이 사라지기 시작한 이상, 레이니는 머지않아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섭리를 거스른 대가로 그 영혼은 신들이 관리하는 명부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 아닌 영원한 소멸을 맞이하게 된다.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소녀에게 손을 내민 건 혈연도, 그 다른 어떤 관계도 없는 의사였다.
“…선생님.”
“안심하려무나. 분명 잘될 거다.”
허름한 실내.
강연료와 인세로 유지되는 병원에 소녀를 치료하는 데에 사용할 장비를 들여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평소 베르나데 박사를 존경한다고 떠들던 언데드들조차 이번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기부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제 기댈 곳은 차원신용금고의 대출뿐.
언데드 행원들이 많은 이 은행이라면, 어쩌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지도 모르니까.
“저주받은 지옥의 의사는 물러가라!!”
또다시 밖에서 들려 오는 시위대의 함성.
레이니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
의사는 말없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어디서 몰려온 건지 알 수 없는 시위대가 병원 앞에 진을 치고 계속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소녀의 존재를 용납 못 하는 세상은 차가웠다.
아이가 오기를 부리고 싶어도 그 죽음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고 레이니를 지켜 주는 건 병원의 콘크리트 벽뿐이었다.
“나… 살면 안 되는 거야…?”
울상을 짓는 창백한 소녀의 물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살아선 안 되는 사람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는 자신이 믿는 유일한 신념을 계속해서 소녀에게 들려 주고 있었다.
이는 또한, 흔들리는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은행 아저씨들이 도와줄 거야. 믿고 있으렴.”
분명, 활로는 있을 것이다.
베르나데 박사는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고, 레이니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길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