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75화

초콜릿 명문가의 두 자제의 결혼식이 끝난 지 수 개월이 지난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

이곳의 진두지휘를 맡고 있는 소장, 슬리크 엘라마는 이른 아침부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인은 다름 아닌 김지안이 맡은 창구를 통해 접수된 대출 신청이었다.

“…정말이지 이 녀석은 매번 잘도 골치 아픈 건수를 물어 오는군.”

일단 본점에 안건이 보고되긴 했지만, 엘라마는 내심 본점에서 아무 대비도 없이 심사를 통과시킬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이번 대출이 차원신용금고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게 틀림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아니, 그 전에 본점 심사를 통과할지가 문제군.”

엘라마는 차라리 본점에서 이 안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거절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베르나데 박사가 치료법을 찾으려 하는 불치병이 어떤 것인지, 그 난병에 걸린 가엾은 사람이 누구인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언데드가 사회의 구성으로 받아들여진 걸 감안해 관련 질병이 연구된다고 발표가 나와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서지 않는 종교 단체들이 이번엔 죄다 들고일어났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마르쿠스 베르나데는 의료계의 종사하는 이들에게 있어 롤 모델로조차 삼기 어려운 성인군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사내.

비록 뇌의학 외에도 네크로맨시에 손을 대게 되면서 마냥 호의적이기만 하던 여론 중 일부가 돌아섰다곤 해도 그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의료계 역시 이번 연구엔 최소한의 지원만을 제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차원신용금고 행원들처럼 신의 힘을 빌려다 쓰는 의사들이 이번 연구에 강한 반발을 표한 까닭이었다.

제약 회사도, 의료 기구를 개발하는 기업도, 이전까지 베르나데 박사에게 거액의 연구비를 제공하고 있던 대학 병원의 실소유주인 재벌가들마저.

이번만큼은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어린 언데드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망가지고 있다.

이 증상의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려 한다.

대출 서류의 비고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증상이란 게 어떤 건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베르나데 박사가 제출한 분석 자료와 소견서가 있었지만, 은행에 이걸 알아볼 인재는 없다.

당연하지만 고객이 대출 신청을 위해 첨부한 자료를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보여 주는 건 금지된 짓이다.

액수가 크긴 하나 박사의 신용도는 높으니 그 범위 안에서라면 당연히 빌려줄 수 있는 돈.

하지만 이 대출을 아무 대책 없이 승인한 순간 벌어질 일은 금방 눈앞에 그려졌다.

엘라마가 짐작하기에 이번 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번 치료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일반적인 시술이 아닌 데에 있었다.

언데드는 수명을 무시하고 생명을 더욱 오래 유지하기 위해 본래 몸을 버리거나 모종의 방법으로 현세에 묶으며 생겨난 존재.

그들은 하나의 종족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언데드는 엘프든, 인간이든, 다른 종족 출신이든 상관없이 죽음을 속이고 섭리를 어긴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현대 사회에서 죽음을 거스른 그들은 생전과 다를 바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영유할 수 있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언데드를 차별하고 테러를 일으키는 자들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문명화된 세상이 이를 용납하지 않게 된 까닭이었다.

이 시대에서, 언데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인권을 보장받았다.

현대인은 망자라는 이름의 껄끄러운 이웃들을 울타리 안에 받아들여야만 했고.

한 번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방종과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죽음에 대한 경원의 소멸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언데드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정치적 올바름을 부르짖는 시민 단체에게 뇌물을 주고 연합하거나 정치가에게 로비를 진행하는 등.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뭐든지 동원해 입지를 다져왔다.

네크로맨시는 어디까지나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지성체들의 정당한 노력 중 하나이며 의학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죽은 자들과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게 된 생자들은 역차별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생겨난 분노는 거미줄처럼 엮인 정책과 여론 조작으로 인해 억눌려 왔다.

어느샌가 다양한 차원에서 혜택을 누리며 1등 시민처럼 대우받기 시작한 언데드와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에는 망자가 탄압받던 시절보다 더한 감정의 골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베르나데 박사의 이번 연구는 언데드 중 소수가 발병하고는 어떻게 손도 쓰지 못하고 영혼을 잃는 난병에 관한 것이다.

한 번 죽음을 기만하고 목숨을 연장한 것도 모자라 ‘신의 저주’라고 불리는 언데드들만이 걸리는 난병마저 해결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을, 그 이상으로 이 세계를 순환케 하는 삶과 죽음의 법칙에 대한 믿음을 잃을 것이다.

완전한 죽음의 극복.

만일 의학의 힘으로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은 더는 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병원은 사라질 것이고 의사들은 직업을 잃을 것이다.

언데드로 살아가는 쪽이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사람들은 병을 고치는 데에 의료비를 지불하는 것보다 생자의 삶의 끝자락에서 네크로맨시 시술을 받아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길 택할 것이다.

네크로맨시의 부작용으로 알려진 영혼의 파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망설일 이유는 사라지니까.

“대출 액수에 비해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게 되겠어.”

죽은 자의 영혼이 향하는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입증되어 있었지만, 그곳이 대체 어떤 장소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신들은 고대 시절부터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지배해 왔고, 이 방법은 문명과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부분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사후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신을 경외하는 이들의 숫자는 필연적으로 적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12차원 올림포스의 신들을 포함해 각 차원을 지탱하는 힘을 지닌 존재들은 필멸자들에게 사후 세계의 신비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이 결과, 사람들은 불투명한 미래가 아닌 확실한 생존과 관계의 지속을 바라게 되었다.

생자의 세계와 어떠한 교류도 불가능한 명계가 아닌, 망자의 모습이어도 좋으니 자신들이 살아온 익숙한 세계에 남길 선호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개입을 망설이는 건 무슨 생각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신이 직접 행장을 맡은 차원신용금고에서 일하는 엘라마에겐 신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격을 지닌 신에 대한 환상 따윈 처음부터 품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권능을 휘두르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창조하고 유지하는 세상에, 다른 지성체들처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고 있었다.

딱히 필멸자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서는 아닐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힘을 일부 제한하고 유희를 즐기고 있을 뿐.

그리고 신들이 기나긴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세상은 착실히 망가지고 있었다.

그 꼴을 계속 보면서 살아온 엘라마 입장에선 신앙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흐름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자신의 업무와 가족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 크게 흥미를 지니지 않는 엘라마라 해도 세상이 망자로 가득 차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엘라마만큼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 사람이어도 같은 이 정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네크로맨시에 지닌 두려움과 거부감의 대부분은 생리적인 것과 미지의 리스크에 관한 걱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만일, 언데드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고, 외모도 살아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유지 가능한 기술이 개발된다면.

만일, 베르나데 박사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네크로맨시의 위험인 ‘영혼의 소실’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어떨까.

영혼이 사라지는 건 언데드가 된 이들 중 소수에게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이 현상은 원인도 진행되는 속도도 제각각이라, 한 묶음으로 취급하기 어려워 더욱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고 있었다.

베르나데 박사의 이번 연구 역시 그런 괴현상 중 하나를 선택해 치료법을 간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정말 이런 연구들이 빛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영원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죽음을 향한 저항이 사라진다는 건 현대 문명을 움직이는 원동력 역시 소실한다는 것을 뜻한다.

네크로맨시의 추가적인 보급은 문명의 붕괴를 앞당길 게 틀림없다.

“나였어도 반대하고 싶을 정도인데.”

대출이 승인되면 차원신용금고와 거래 중이던 병원과 의료관계자 중 베르나데 박사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이 보이콧을 시작할 게 틀림없다.

그리고 시민단체 중에는 언데드들이 돈을 먹인 진영과 대립하는 집단 역시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이런 외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차원신용금고는 과연 베르나데 교수의 대출 신청을 승인하는 것이 옳을까.

“골 때리는군.”

엘라마는 고민했다.

연구가 진행되면 어린 나이에 언데드로 살게 된 가엾은 아이가 삶을 이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가 사회를 파탄시키는 것이라면.

“…생각이 과했나.”

이미 공은 본점으로 넘어갔다.

무엇보다, 고작 한 명의 소녀의 목숨이 연장된다 해서 그게 현대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황된 상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결심을 내리는 것은 이사회의 몫.

엘라마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해 고민하거나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신들조차 신경 쓰지 않는 거대한 세상의 흐름에 관해 고민하기에, 자신이라는 인간은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어 손이 닿는 거리에 있는 것들을 지키고 관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으니까.

“그 오지랖 넓은 자식이 허튼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기 아래에서 일하는 김지안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는 엘라마가 책임져야만 한다.

덕분에, 엘라마는 이번 대출이 어떤 후과를 불러올지 상상하는 것을 끝내 그만둘 수 없었다.

* * *

며칠 후, 차원신용금고 본점 개인여신부 부장이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에 연락을 넣었다.

내용은 이사회가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

사회적인 구도가 형성된 문제인 만큼 이번 대출 안건만은 개인여신부가 아닌 이사회의 판단에 승인 여부가 맡겨지게 되었고, 이사회의 표는 정확히 절반으로 갈렸다.

소수자인 언데드의 복지를 위한 훌륭한 연구라며 찬성하는 구C.

거센 후폭풍을 불러일으킬까 두렵다고 반대한 건 구E였다.

프라이빗 뱅킹 이용객들은 도덕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성향이 짙었기에 구C는 부담 없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고.

금융 상품 판매 등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 힘을 쏟는 구E는 반대를 표하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구D였는데, 구D의 수장인 디스파테르 행장은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의 행원이 대출을 신청한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의 병원으로 직접 실사를 나가도록 지시했다.

그곳에서 확인한 사실을 보고하기 전까지 이번 대출 안건의 행방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게 구D의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김지안의 출장 일정이 정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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