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74화
번호표를 뽑고 창구로 다가온 사내는 구릿빛 피부를 지닌 남성 어인이었다.
상어를 닮은 상반신을 지닌, 깔끔한 옷차림과 정돈된 수염.
더운 기후의 키키와이를 방문하느라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우아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노인이라고 부를 만큼 나이가 들진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 나이는 아마도 정정한 50~60대.
그가 두른 초연한 분위기 탓에 멀리서 걸어올 때 노인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아니, 은행을 방문하는 노인 중에서도 이런 유형의 고객님은 처음이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이쪽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신선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일단은 범상치 않은 고객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대출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사내는 이런 일에 상당히 익숙한 듯 준비한 서류를 꺼내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객의 이름은 마르쿠스 베르나데.
그는 의사였고 난치병의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빌리려 하고 있었다.
의사라면 몇 번 개인 병원을 열기 위해 대출을 신청하러 온 고객을 본 적 있었지만, 난치병 치료에 필요한 연구 자금을 빌리러 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난치병의 연구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존경심이 든다.
다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금이든 보조금이든 나오지 않나?
아니면 어디 재단 같은 데에서라도.
사실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이쪽 분야에 관해선 내가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갑자기 이런 말씀 드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개인적으로 조금 호기심이 동하고 있어 어떤 병을 연구하는지 자세히 들어 보고 싶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연구하신다는 난치병에 관해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히 제가 이해할 순 없겠지만, 잠시 궁금해져서요.”
“이해합니다. 병원 차리러 돈 빌리는 것도 아니고 은행에서 연구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시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던진 배경엔 그런 의문도 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오해는 마셨으면 합니다. 제 경험이 얕아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라.”
베르나데 박사가 신청한 대출 금액은 꽤 컸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개인 병원 차리겠다는 사람들이 빌려 가는 액수보다 훨씬 적었으니까.
연구라는 거, 생각보다 돈이 꽤 드는 거로 아는데 정말 이 정도로 충분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예. 은행에서 오래 일하셨어도 자주 마주치는 케이스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지원금을 받든 제약 회사에서 투자받든 하잖아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사내는 해탈한 것처럼 보이는 눈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실 감각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사실 당연한 얘기다. 의사니까.
“하지만 제 연구는 그게 불가능해서 말입니다.”
“무언가 사정이 있는 건가요?”
“네. 종교 단체와 생명윤리학자 등 여러 군데에서 반대하거든요. 기업이든 정부든 함부로 지원해 주질 않죠.”
“…….”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떤 연구길래 난치병을 고치려는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혹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생체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전부 표정에 티가 난 건지 베르나데 박사가 쓰게 웃었다.
“제 전공은 뇌의학과 네크로맨시입니다.”
“…네크로맨시요?”
“네, 영혼을 절개하고 이어붙이는 수술로 유명하죠.”
그 순간, 나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프라이빗 뱅킹 섹터에 앉은 라즈마 과장을 향했다.
우연인지, 그의 어항 모양 유리 헬멧 역시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언데드의 차별을 금하는 법률이 시행된 지 오래되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과 관련된 수술은 대부분이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죠.”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딱히 그들의 권리에 관해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생각과는 달리 언데드 역시 병에 걸린다는 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더라고요.”
베르나데 박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에 제가 연구하기 시작한 병은 꽤나 골치가 아픕니다. 어린 언데드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붕괴하기 시작했거든요.”
어린 언데드.
둘 다 아는 단어인데 그 조합은 몹시 낯설었다.
사실 언데드에 관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차원신용금고의 한 축을 짊어진 구C, 초차원넵튠은행 출신의 행원은 전원이 연식이 오래된 언데드.
그들은 안전한 차원 이동 기술이 개발되기 전부터 다양한 차원으로 지점을 전개하고 영업을 다녔다.
언데드가 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업무.
어째서 그들이 살아 있는 몸을 버리면서까지 악착같이 은행 금고에 돈을 끌어모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모든 언데드는 최소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삶이란 것을 구가한 다음 망자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뿐이다.
어린 언데드, 라는 건 과연 어떤 존재인 걸까.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되어 버린 걸까.
나는 차마 더 질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평소처럼 직무권능으로 잠재력을 확인하고 서류를 정리한 다음 대출 신청 접수를 마쳤다.
본점의 개인여신부와 이야기가 끝나면 심사역과 함께 병원에 들르겠다고 말하자 의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갔다.
* * *
의사가 찾아온 그날.
영업을 마치고 시재를 정리하고 있던 내게, 뜻밖의 인물이 말을 걸었다.
“김지안 대리.”
엑토플 라즈마.
구C 프라이빗 뱅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실세.
하지만 그는 여태껏 단 한 번도 갑자기 내게 다가와 이런 식으로 말을 건 적은 없었다.
“네, 과장님. 무슨 일이신가요?”
“낮에 찾아온 마르쿠스 베르나데. 그가 신청한 대출이 진행되는 과정, 전부 제게 보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직급이 나뉘어 있다 해도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는 특수한 점포로 근무 중인 행원이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대뜸 고객의 대출에 관한 정보를 내놓으라니.
지금 여기서 내가 거절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은 상황.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고객의 개인 정보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대출 신청이 통과되었는지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조금 더 쓸 만한 대답을 내놓았으면 싶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군요.”
내 애매한 답변이 불만이었는지 라즈마는 그대로 돌아서서 먼저 출장소를 떠났다.
“왜 저런대….”
“글쎄. 어쩌면 개인적인 흥미일지도 모르겠군.”
라즈마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린 걸 근처에 있던 아이작이 들었다.
“흥미? 저 사람이? 일 말고는 아무 데도 관심 없을 거 같은데.”
“감정이 옅은 건 맞겠지만 인격을 지닌 이상 분명 일 외에도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겠지.”
하긴, 생각해 보니 당연한 얘기다.
라즈마가 극단적인 워커홀릭이라 일 외엔 아무 데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편견.
아무리 그의 외형이 무기질적이고 이미 죽은 지 오래됐다 해도 똑같이 영혼을 지닌 존재인 한 감정이든 뭐든 사람다운 구석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게. 내가 너무 사람을 나쁘게만 봤을지도.”
아니, 근데 저 양반이 평소 상대하는 고객분들 비주얼이 여간 비범해야지.
“근데, 김지안.”
“왜.”
“어째서 아까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님에게 사인을 받지 않았지?”
“…유명한 분이셨어?”
평소 차분한 거론 둘째가면 서러운 아이작의 눈동자에서 어째서인지 들뜬 기색이 보였다.
“설마 모르는 건가.”
“응.”
“…….”
뭐지, 나 대체 누구랑 얘기한 건데.
* * *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간 나는 마르쿠스 베르나데 박사에 대해 꼼꼼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장난 아닌 분이었네.”
놀랍게도 오후에 대출 상담받으러 왔던 점잖은 신사께선 그레이트후리텐 의학계의 최후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유명 외과의였다.
흔히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신의 손’ 클리셰를 그대로 현실에 때려 박은 듯한 그의 행적을 확인한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빈민가에서 나고 자라 오로지 노력과 재능만으로 최고의 교육 과정을 밟은 다음 베르나데 박사는 복잡한 뇌과 수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그 존재를 알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수술을 수백, 수천 번 성공시킨 그는 정석이 확립된 수술만이 아니라 수많은 난치병의 치료법을 연구해 실제 의료 현장에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의사로서 살아가는 틈틈이 그 지식을 강단에서 아낌없이 전수해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인술仁術의 화신.
범죄율이 유독 높아 차별받는 어인들의 명예를 지탱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듣고 있는 그에겐 가장 극단적인 종족 차별주의자들마저 존중을 표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불치병이라고 알려진 영혼의 병을 치료하겠다는데.
기업과 대학 병원, 그리고 정부는 왜 지원금도 주지 않고 손 놓고 있는 걸까.
하도 신경이 쓰여서 검색창을 켜 조사를 이어 간 나는 얼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신적백십자회 대표, 베르나데 박사를 공개석상에서 비판.]
[네크로맨시는 시대착오적인 유사 의료 행위, 당장 중지되어야―]
[병원에서 자행되는 수술을 가장한 실험은 사령술 부활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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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뇌의학만을 연구하던 베르나데 박사가 언데드가 앓는 증상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언론이 그에게 일제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나는 이쪽 세상에 신과 마법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이쪽 세상에서 건강검진 받을 때 말곤 병원에 간 적이 없어 몰랐던 거지만, 마법과 과학이 융합된 기술이 존재하는 이곳에선 의학의 발전 방향이 지구와 완전히 달랐다.
차원신용금고의 행원들이 디스파테르 행장에게서 신의 힘을 나눠 받아 사용하는 것처럼, 이쪽 세상에서 의학의 발전을 주도하는 권위자들은 대부분 신의 권능을 빌려 의술에 접목시키고 있었다.
한편, 언데드의 권리가 인정받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 건 고작 수십 년 전의 이야기.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이야 언데드를 차별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행위라고 할 테지만, 의학계의 거물들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종교 단체는 여전히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혜택이 적용되는 대상에서 언데드를 제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언데드는 한 번 죽고도 섭리를 거슬러 자신의 목숨을 구차하게 땅 위에 묶어 둔 저주받은 존재였다.
구원받을 수도, 이 땅에서 무언가를 누려서도 안 되는 사이한 무리.
그런 부정한 존재들의 생명 연장에 도움을 주려 하는 의사가 있다니.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의견이 어떻든 종교 단체의 구성원들로선 가만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이래서 은행을 찾은 거로군.”
마침내 나는 마르쿠스 베르나데가 출장소를 찾은 이유를 깨달았다.
“언데드도 살아 있는 생명으로 인정해 놓고 세금까지 걷는데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이번 일에 차원신용금고가 엮여 있는 게 알려지면 단기적으로 은행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다.
만일 그리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사회는 그런 리스크를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누가 봐도 세상을 바꾸고 있는 용감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면 은행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
“고작 이딴 이유로 연구가 중단되게 둘 순 없지.”
이번 대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