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73화
키키와이에 돌아온 라즈마는 다시금 업무에 열중하는 틈틈이 개인적으로 어린 언데드 고아 소녀 레이니의 증상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한 번 죽음을 경험한 언데드가 영혼이 망가져 다시 한번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따름이었다.
오늘도 그는 숙소에 돌아와 관련 증상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다.
“흥미롭군요. 언데드가 아예 존재를 잃게 되는 불치병이라니.”
언데드가 된 이후의 삶만 따져도 어지간한 엘프의 수명과 비슷한 세월을 보낸 그에게 있어 이 사건은 몹시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사고와 살인 외의 원인으로 이미 한 번 목숨을 잃은 망자가 소멸하는 건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원장이 말한 권위자가… 이분인가요.”
언데드 중에서도 아예 몸이라고 할 게 존재하지 않아 영체를 특수한 용기에 담은 형태로 존재하는 라즈마에겐 수면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남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에도 고객의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흥미를 느낀 분야에 관해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오늘 찾아낸 건 레이니의 희귀한 증상에 관심을 가진 의사의 인적 사항이었다.
이 괴이한 병의 치료법을 찾아내겠다고 선언한 만큼 커리어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도덕성 역시도.
“…호오.”
의사의 이름은 마르쿠스 베르나데.
그레이트후리텐 최고의 명문 린딘 대학교 의과 대학에 고작 열네 살의 나이로 조기 입학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뇌의학과 네크로멘시라는 가장 복잡한 두 분야에서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거둔 천재였다.
바이넘 호수 바닥에 존재하는 슬럼가에서 태어난 검은 피부의 어인魚人 신동인 그는 살아 있는 자수성가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의 편린을 보였고, 어른이 되어선 학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에겐 사리사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흥미가 동한 라즈마는 계속해서 같은 언데드 프라이빗 뱅커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닥터 마르쿠스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마르쿠스는 평생을 마법 의학의 관점에서 영혼에 관해 연구하는 데에 바쳐왔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사적인 이득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거대 대학 병원에서 뇌수술과 네크로맨시를 응용한 소생술을 집도하며 받은 급여 중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금액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빈곤층과 불치병 환자들에게 기부했다.
남은 돈으로 차린 개인 병원 역시 찾아온 환자들에게도 간신히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급여를 지급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 말곤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환자들에게 대가 없이 나눠 주는 그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주기적으로 여는 강연을 통해 얻은 강연료와 집필한 전문 서적의 인세 덕분이었다.
60세가 되도록 배우자도 자식도 없이 외로이 의술의 발전에 기여해 온 그의 행적을 살펴보며 라즈마는 일종의 경이로움마저 느끼고 말았다.
“…비틀려 있군요.”
라즈마의 눈에 그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숭고한 자기희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위인전이나 종교 서적에나 나올 법한 의사의 행적에서, 라즈마는 어딘가 심하게 왜곡되고 뒤틀린 자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즈마는 성인군자가 현대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엑토플 라즈마는 프라이빗 뱅커다.
프라이빗 뱅커는 비밀 유지를 전제로 수많은 차원에 산재하는 고객들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직업.
당연히, 프라이빗 뱅커는 대중들의 앞에선 청빈을 가장하는 종교 지도자를 비롯해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자산을 감추는 사회 지도층과 전문가 등도 상대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라즈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세간에 알려진 모습과 다른 고객들의 실체와 욕망을 목격해 왔다.
이러한 경험 덕에 마르쿠스 베르나데의 정신에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을 꿰뚫어 보는 건 그에게 있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프라이빗 뱅커가 고객의 정보를 은밀하게 감춘다 해도 베테랑인 라즈마는 이름 하나로 상대가 보유한 자산의 총액과 유동 자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엔 라즈마 역시 마르쿠스가 어딘가에 거액의 자산을 감춰 두고 이미지 메이킹과 탈세 등을 하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보를 뒤져 봐도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거액을 기부한 대상은 모두 실제로 난치병에 고통받는 환자들이었다.
기부 영수증은 투명 그 자체.
탈세나 자금 세탁의 흔적도 없어 의심하려는 시도 자체가 마르쿠스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지경.
욕망이나 보신 같은 단어는 확실히 이 인술仁術의 화신과도 같은 사내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였다.
다만, 그러한 행적이 과연 선의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저와 비슷한 케이스인 걸까요.”
마르쿠스의 기부 기록에선 오랫동안 돈을 다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이 남아 있었다.
강박, 혹은, 편집증에 가까운 빈도.
기계적으로 치료에 필요한 금액을 계산해 정한 기부 액수에선 작위적인 향기가 났다.
라즈마는 의사가 계속해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계속해서 거액의 기부를 이어 가는 건 사명감, 보람, 명예 따위를 위한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자신이 기억도 나지 않는 먼 옛날 나눈 약속대로 고아들을 후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게 아닐까. 그런 의심마저 들었다.
“직접 만나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죠.”
라즈마는 수십 년 만에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경험했다.
이만큼 무언가에 관해,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어진 건 언데드가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시 한번 죽게 된 언데드와 이를 해결하려 하는 의사.
라즈마에게 있어선 대단히 흥미로운 조합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갇힌 이 지루한 영생의 고리를 부술 힌트가 그 사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다른 지점이 아니라 출장소로 와 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리고 라즈마가 별생각 없이 내뱉은 희망 사항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였다.
창구에 앉아 고객의 요청에 응하는 하루.
오늘도 비슈티 과장은 미친 듯이 금융 상품을 팔아치우고 있었고, 아이작은 원리원칙에 따라 보수적인 방식으로 고객들을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즈마 과장은 평소처럼 다른 행원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는 일 없이 한가한 프라이빗 뱅킹 섹터를 지키고 있었다.
저긴 소수의 부자만이 출입하는 구역인 데에다 대부분의 고객이 예약을 하고 오는지라 퍽이나 업무가 한가해 보였다.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엘라마는 소장실 문을 열어 둔 채 안에 틀어박혀 있는데, 딱히 안에서 뭘 하는지 보이진 않는다.
우릴 감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
저번에 전화로 본점의 높으신 분들과 싸우고 있던 걸 보았다.
예전엔 우리가 일하는 동안 반쯤 놀면서 큼지막한 대출 안건 당겨오거나 그런 줄 알았는데, 그보단 본점이 가하는 프레셔를 정면으로 튕겨내는 것 역시 그의 업무인 모양이었다.
실제로, 저번에 나노이 대출 안건이 진행될 때에도 타 파벌의 이사들을 설득한 건 그였다고 하지 않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또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맡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하들에게 티 내지 않고 조용하게.
“쌤통이다.”
그러게 평소 사람 작작 좀 굴릴 것이지.
앞으로도 적당히 엘라마가 정리해 줄 거라 믿고 막 저질러야겠다.
출장소 실적이랑 자기 모가지 때문이라도 날 도와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저절로 손님들에게 최고의 미소를 보이게 되었다.
“뭐, 재밌는 일 없으려나.”
“대리님 저번엔 당분간 잠잠했으면 좋겠다지 않았어?”
내가 모기만 한 소리로 중얼댄 걸 들었는지 옆 창구에 앉아 있던 플루토가 반응을 보였다.
“너란 놈은… 질리지도 않고.”
아이작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쉬었다.
둘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저번에 아디젠과 미놀리 부부의 대출 신청을 받았을 때, 암살자를 만나 죽을 뻔했을 때, 돌아와서 술자리에서 엄청 징징대고 말았다.
당시 나는 사실 필름이 끊어져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플루토가 그날 내가 보인 추태를 녹화한 탓에 한동안 출근해서 바닥만 보고 일했다.
플루토가 장난기가 심한 건 알고 있었는데 방심한 내 탓이다.
생명의 위기를 넘기고 방심한 타이밍을 노리다니. 비겁하다.
다음엔 반드시 플루토가 주사 부리는 걸 꼭 보고야 말 테다.
“암살자가 튀어나오는 건 좀 과했지. 근데 솔직히 요즘 너무 자극이 없었잖아.”
“넌 재밌자고 은행원을 하고 있나?”
“아… 그건 아니긴 해. 근데 뭔가 좀….”
확실히 아이작의 말대로였다.
은행원으로서 나는 모든 대출 안건을 소중히 여겨야 마땅하다.
대출을 필요로 하는 고객님에게 손을 내미는 게 나의 일이니까.
그런데, 입행 이래 계속해서 다양하고 기괴한 대출 안건을 맡아 온 탓에 어느샌가부터 나는 한 종족이나 세상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규모의 안건이 굴러들어오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안건으론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다른 지점이었다면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지만, 다차원 출장소는 그 특수함 때문에 훨씬 높은 확률로 세계수 담보 대출이나 슈퍼 로봇 대출 같은 말도 안 되는 규모와 액수의 대출 신청이 쏠리기 쉽다.
그러니까, 운 좋게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치부하면 되는 건데.
나는 철밥통에 안정적인 은행원 업무를 하며 자극을 찾고 말았다.
“괜히 헛바람만 든 걸지도.”
뭐가 됐든 고객을 도울 수 있고 은행이 든든한 국밥 같은 이자를 챙길 수 있다면 된다.
대출은 자극적일 필요가 없다.
은행 입장에선 안전하고 확실한 건수야말로 좋은 건수니까.
애초에 내 직무권능으로 고객의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으니 실패할 위험도 없다.
대리가 되고 나서 진화한 내 직무권능은 더욱 정확하게 고객의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었다.
이젠 전반적인 능력치가 부족하더라도 삶에 대한 희망과 대출 상환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여신판단의 권능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상환에 걸리는 시간이야 조금 더 걸릴진 몰라도 이들의 대출 신청 역시 받아들이고 싶다고 엘라마에게 말했고, 그는 조건부로 이를 승인했다.
전부, 그동안 큼직한 안건을 처리한 덕분이었다.
내가 은행의 수입이 줄어들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평범하다.
그들은 언제나 경제적인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고 은행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만일 짧은 시간에 대출을 갚지 못하더라도 성실히 살아가는 그들이 현실을 버티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애초에, 나 같은 반푼어치 재능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 나부랭이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잠재력이 높은 고객들에게 대출을 진행해 얻은 이자 수익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직업이 있고, 신용도를 지닌 고객이 신청한 대출 역시도 예전보다 더더욱 적극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소수의 천재를 지탱하는 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인 법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차원 관문이 열리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 은행 로비로 걸어 들어왔다.
무언가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기다리고 있던 자극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