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67화
암살자를 경계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행원들은 시설 관리자들과 함께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제자리에서 부부를 엄호했다.
상대는 암살자.
심지어 은행에 로켓을 쏘아 대는 미치광이.
전문가인 비슈티를 필두로 우린 만에 하나라도 콜로서스의 레이더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 신호를 찾아내기 위해 보안 담당자와 유기적인 연계를 이어 갔다.
“…아직까진 별문제 없어 보이는군요. 식사하러 가도 될 것 같네요.”
사실 내가 룸서비스를 부탁하지 않고 리조트의 뷔페로 가자고 제안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현재 아디젠 부부는 계속 한 곳에 갇혀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암살자가 주위에 없다고 확인된 지금, 그들의 심리 상태를 배려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는 건 정신 건강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하고 있긴 해도 콘택트렌즈에 표시된 부부의 데이터는 여전히 그들이 겁에 질려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만큼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는 건 이 상황을 오래 끌었다간 둘이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로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키키와이 경찰은 뭘 하고 있는지….”
출장소 근처에 있던 CCTV가 암살자가 타고 도주한 차량 번호를 찍었을 텐데 여태껏 작은 단서도 잡지 못하다니.
경찰은 상상 이상으로 무능한 게 틀림없다.
아니면 그 암살자의 실력이 뛰어나거나.
어찌 됐든 일단은 주린 배를 채우고 봐야겠다.
“이쪽입니다.”
엘라마를 선두로 아디젠과 미놀리 부부를 리조트의 뷔페로 에스코트한 우린 사각 없이 주위를 살필 수 있도록 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둥글게 앉았다.
리조트의 식사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메인 요리를 포함해 간단한 코스가 나오고, 이런저런 음식을 뷔페 식으로 각자 먹을 만큼 담아 오는 방식.
웨이터와 고객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정신이 없긴 하지만 남쪽 나라 리조트는 원래 왁자지껄한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휴가 내서 놀러 온 게 다들 점잖은 축에 속한 은행원들이라 비교적 조용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저어,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역시 방에 숨어 있는 쪽이….”
“별일 없으니까 마음 놓고 드세요. 여긴 안전합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나노이의 기술력만큼은 확실히 믿고 있다. 그리고 이 눈에 깃든 능력 역시도.
비슈티 과장 역시 근처에 저격이 가능한 스폿이 없으니 개방된 야외 테이블 쪽이 오히려 폭발물 등에 대비하기 좋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분명, 문제없을 거다.
“소고기와 열대 과일의 카르파초입니다.”
코스의 첫 번째 전채 요리가 서빙되었고, 우리는 서슴없이 포크로 얇게 저민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덜그럭
아디젠이 쥐고 있던 포크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 * *
요하네는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은행원들과 두 타깃이 식사를 시작한 걸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배가 고팠던 걸까.
그들은 석식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야외 레스토랑에 왔지만,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있었다.
“시작인가.”
벌써 웨이터가 전채를 나르고 있었다.
요하네가 갖은 증상을 유발하는 독을 넣은 건 뷔페 음식만이 아니었다.
독이 들어 있는 건 코스 요리의 모든 접시.
최종적으로 가가멜이 첨부한 설명서에 적힌 치사량보다 훨씬 적은 양만 섭취하도록 배려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타깃은 첫 점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는 중.
가가멜은 자신이 준비한 게 지효성 독이라고 말했다.
10분 정도 지나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터.
그런데.
-덜그럭
어째서인지 두 타깃 중 남자, 그러니까 아디젠 바이나우스의 손에서 포크가 떨어졌다.
“…….”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곤 있었지만, 자신이 넣은 것이 지효성 독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요하네는 적잖게 동요하고 있었다.
‘가가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타깃이 먹은 건 아마도 즉효성의 극독.
가가멜이 실수했을 리는 없다.
타깃을 죽여선 안 되는 미션.
그걸 실패하게 만든다는 건 가가멜이든 누구든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아,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져서.”
다행히도, 아디젠은 죽은 게 아니었다.
그는 멀쩡히 웨이터에게 새 포크를 받고 카르파초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휴우.”
잠시라도 가가멜을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워진 요하네는 다시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주문한 메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요하네는 다차원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소한 종족의 후예였다.
본 적 있는 생물이라면 무엇이든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는 원래 성별과 모습조차 잊고 살아갈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변해 왔고, 변신 가능한 모습 중엔 모든 독을 무효화하는 생명체 역시 존재했다.
요하네처럼 재능이 특출난 개체의 경우 신체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변신시키는 것도 가능했기에, 그는 식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의 장기를 독극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종족의 것으로 바꿔 두었다.
다른 고객들이 지효성 독의 효과에 고통받는 중에도 혼자 유유자적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고 상상하니 우월감과 쾌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행원들과 타깃은 아무 불편한 기색 없이 접시를 리필하고 코스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가가멜이 독극물이라고 말하고 맹물을 줬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저들이 독극물에 내성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저기 보이는 안경 쓴 리저드맨이나 이미 죽어 버린 언데드라면 모를까.
“뭔가 이상한데.”
손가락을 독성 피부를 지닌 다른 종족의 것으로 변신시킨 요하네는 조금 더 강한 독을 준비한 잔에 타고 술을 섞었다.
그러고는 기둥 뒤에서 곧바로 웨이터로 변신해 행원들의 테이블에 갖다주었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디저트를 드시기 전 입가심으로 한 잔 어떠실까요.”
타깃과 그 일행은 가져온 음료가 그리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반색하며 그것을 마셨다.
즉효성의 독.
분명, 3초도 지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제가 마셔 본 것과 맛이 조금 다르긴 한데 나쁘지 않군요. 다른 연도에 생산된 건가 봅니다.”
타깃도, 그들을 보호 중인 행원들도 모두 멀쩡했다.
‘제기랄,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거냐…!’
오기가 생긴 요하네는 더욱 강한 독을 섞은 치즈와 디저트 등을 차례차례 서빙했지만, 몇 번을 시도하든 결과는 같았다.
그는 심지어 스스로 독극물에 내성이 있는 장기의 변신을 해제하고 음독을 시도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독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모종의 신비로운 힘이 이 자리에서 누군가가 독에 당해 쓰러지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내가 의뢰를 실패하다니….’
요하네는 평소보다 훨씬 우울해 보이는 얼굴로 식당을 떠났다.
하지만 그 두 눈에는 여전히 승부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달러달러섬의 상공에선 김지안도 요하네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리조트 위에서 직접 레이더로 섬을 감시 중이던 콜로서스의 동력원인 단원자 금이 콜로서스를 중심으로 반경 10km의 범위 내에 신비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로지 0.1차원 나노이에서만 극소량이 생산되는 단원자 금은 다차원 세계의 연금술사들이 가장 원하는 신비의 물질.
단원자 금은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힘을 현실로 바꾸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영혼을 창조할 수도, 불로불사를 실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능력에 비해 초라한 몇 가지 기초적인 기능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자세히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 근방에 있는 지성체가 섭취한 독극물을, 몸 안에 들어온 순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강제로 그 양을 줄여 버리거나 소멸시킨다든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기적과도 같은 힘이지만 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적었고, 콜로서스 레플리카의 주인인 김지안 역시 비주얼에 혹해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탓에 이를 알지 못했다.
이런 연고로 사채업자의 협박에 굴한 가가멜이 요하네를 통해 투여한 독극물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콜로서스는 또다시 김지안을 비롯해 수많은 리조트 숙박객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단원자 금을 품고 있는 콜로서스의 AI마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긴 했어도 말이다.
* * *
“거참 깐깐한 사람이네….”
잠시 흡연 구역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무심코 중얼대고 말았다.
나는 콜로서스의 레이더와 내 눈을 통해 아까 웨이터 중 한 명이 괜히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던 걸 확인한 참이었다.
“사람이 음식 먹다 포크 떨어뜨릴 수도 있지. 그걸 왜 마음에 저리 담아 두고 계속 신경질을 내는 건지.”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웨이터는 끝까지 짜증을 참고 술과 디저트를 갖다주었다.
우리가 마신 건 도수가 낮은 스파클링 와인이었는데 평소보다 긴장해 있는 탓일까, 전혀 술기운이 전혀 돌지 않는다.
사실 이건 비단 오늘만 있던 일이 아니다.
요즘 숙소에서 맥주 까고 치킨 시켜 먹을 때마다 전혀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나, 이쪽 세상 와서 술이 굉장히 세진 걸지도 모르겠다.
* * *
불파사 비슈티는 살인의 베테랑이었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적군을 살해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승리로 이끈 전쟁의 프로.
그런 그였기에, 비록 살기를 품지 않은 자라 해도 암살자의 기척이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채고 있었다.
모습은 다르지만 걸음걸이와 눈빛만 봐도 감이 왔다.
바로 저자다.
아까 은행에서 로켓을 쏘아 댄 건.
‘웨이터로 변했군. 마법을 사용하고 있거나 특수한 종족인 모양이오.’
만나 본 암살자 중에는 살인을 업무나 취미로만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김지안이 레이더로 살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코웃음을 치고 경계심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목표를 독살할 생각인가.’
처음, 수상한 웨이터가 술을 가져왔을 때 비슈티는 누구보다 먼저 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애초에 그의 몸은 특수한 훈련을 거친 덕에 대부분의 독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리스크 없이 보호 대상인 아디젠 부부가 마실 음료에 독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아디젠과 자신의 잔을 빠르게 바꿔치기해 입에 가져다 댄 순간 깨달았다.
술에는 그 어떤 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암살자로 추정되는 웨이터는 음식을 가져왔지만 안에 독 같은 건 들어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슈티가 아는 독과 같은 냄새는 나는데 몸에 어떠한 부정적인 효과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사가 원한 건 비슈티가 김지안을 위기에서 구해 행장에게 생색을 내는 그림이었지, 콜로서스나 기타 자신과 상관없는 원인으로 인해 김지안이 암살을 피해 가는 게 아니었다.
이대로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야 만다.
직접 암살자가 김지안과 아디젠 부부를 노리고 무기라도 들고 달려들지 않는 이상은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
“…곤란해졌소. 암살을 저지하는 건 이 몸이어야만 하는데 말이오.”
그가 할 수 있는 건 기회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몇 번이고 알 수 없는 힘에 암살 시도를 저지당한 적이 인내심을 잃고 달려드는 그때야말로, 계획대로 스스로의 유용성을 증명할 찬스가 되어 줄 테니까.
“전우들의 영광을 위해.”
무장은행 출신의 행원은 감각을 곤두세우고 먹잇감을 기다렸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군인의 미덕이라는 금언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