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52화

지직거리며 전파 납치범이 보내고 있던 가짜 나노이인의 영상이 끊어진 다음, 카메라는 다시 멀리 보이는 0.1차원의 태양계를 비추기 시작했다.

차원 관문의 문틈으로 보이는 우주에선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모든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짊어지고 우주로 출격한 파일럿이, 그가 타고 있던 콜로서스가.

0.1차원에 진입한 지 5초도 지나지 않아 우주 괴수에게 당해 폭발했다.

“방금 무슨 일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죽었어?”

“타고 있던 사람, 살아 있을까?”

“저기서 살아남으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 같은데….”

카메라가 비추고 있던 차원 관문 주위에선 스태프들과 방역 업체 직원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당장 구조 장치를!!>

<안 돼! 이미 늦었어―>

<그럼 파일럿을 내버리자는 소리야?!>

아비규환이 된 촬영 현장.

방송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중계되는 영상은 끊어지지 않았다.

어느샌가 카메라는 굳은 표정으로 우주를 주시하는 매스터한트 감독을 비추고 있었다.

“짜고 치는 거 아니지…?”

“사이코패스냐.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건데.”

시청자들은 방금 일어난 불행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일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파일럿이 괴수에게 당하기 전 화면에 흐른 영상이었다.

이미, 파일럿이 누군가가 선동을 위해 만들어 낸 새빨간 거짓이라고 밝힌 영상이 중계 중 갑자기 화면에 끼어들었다.

몇몇 역사에 정통한 어른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들을 떠올리고 합리적인 추측을 내놓았다.

“전파가 재킹당했군.”

비행기를 납치하는 하이잭처럼, 전파를 납치해 원하는 내용을 덮어씌우는 전파 재킹.

비단 지구가 있는 3-1차원만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도 과거 여러 차례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나노이가 구조를 요청하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막고 있던 거야.”

흔히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이들의 영상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신문 기자들의 속보까지.

합리적인 추측은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폭발이 일어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콜로서스의 크라우드 펀딩이나 홈쇼핑 소식에 관심이 없었거나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던 이들조차 사건의 상세를 접하게 되었다.

[방해 전파가 문제였어! 분명 기체에 무언가 영향을 주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거야!]

[개자식들! 대체 왜 나노이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거야! 뭐가 맘에 안 들어서!!!]

[뻔하지, 곧 선거철이라 우주 괴수 흘러들어오면 사람들 난리 나서 지지율 떨어지잖아.]

[그럼 여당 잘못이란 거냐? 시발롬아.]

[뭐래 정치병자 새끼ㄷㄷ 그냥 기득권 욕한 건데….]

[닥쳐 씨발 지금 그딴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사람이 죽었다고! 전파 방해에 당해서!]

사람들은 모든 커뮤니티에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감정에 선동된 여론의 파도 속에서 ‘고작 방해 전파에 당할 정도면 별로 대단한 로봇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등의 의견은 그대로 파묻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생방송은 끊어지지 않았다.

방송 사고라고 알린 다음 멈춰도 좋을 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향해 돌아선 매스터한트 감독은 차분하게 시청자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은 사고가 일어난 점 사과드립니다. 현재 저희는 파일럿, 아프로 사스를 구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고성이 오가는 현장.

아직도 열린 차원 관문을 비추던 카메라는 차마 우주에서 일어난 참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콜로서스의 콕핏은 탑승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제작되었습니다. 부디 구출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감독은 눈을 부릅뜨고 카메라를 붙잡았다.

멱살이라도 잡을 것만 같은 기세.

완전히 달라진 표정과 기백에 영상을 보던 시청자들은 한 발짝 물러나야만 했다.

“…반드시 책임을 지게 만들 겁니다. 전파를 납치하고, 파일럿에게 테러를 시도한 자들과 그 배후에 있는 이들에게. 맹세코.”

호흡을 가다듬는 감독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뚝

끊어진 중계. 화면엔 다시 각각 홈쇼핑 채널의 쇼 호스트와 크라우드 펀딩 라이브쇼의 진행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청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인해 생중계가 중단된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홈쇼핑 채널의 스튜디오와 크라우드 펀딩의 라이브쇼 진행자는 방금 일어난 사건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태껏 저들이 마음 놓고 전파 납치를 자행할 수 있던 건 피해자가 머나먼 차원 저편에 있는 나노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파 납치 사건은 저희 포르테 스토어와 애디즈, 그리고 래리어트 호텔, 디멘션 유나이티드 항공 등 다수의 법인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범인과 그 배후 세력에겐 법률에 의거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선언이 긴급 자막과 함께 화면에 흘렀다.

전파 방해의 피해자가 나노이 사람들만이 아닌 다양한 차원에 근거지를 둔 기업들까지 번졌다.

어렵게 할당받은 공공의 전파, 사용료는 당연히 막대한 액수에 달한다.

그에 더해 인건비와 각종 비용까지.

피해를 입은 기업들은 범인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소송을 걸 수 있는 상황.

더군다나, 전파 납치는 형법으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는 범죄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것은 단 하나.

“신고 들어왔다. 출동해.”

키키와이 경찰청에 내려온 특명.

지시를 받은 경찰 특공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지안이 과타노차의 도움을 빌려 사전에 추적한 위치를 사우 박사와 매스터한트 감독이 곧바로 제보했고, 호텔을 포위한 특공대는 곧바로 객실로 돌입했다.

“용의자들이 도주한 모양입니다.”

현장을 급습한 특공대는 용의자를 놓쳤지만, 망가진 방해 전파 발신기를 발견했다.

도망친 용의자를 추적하던 경찰은 도로 위에서 반파된 차량과 조우.

그들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했다.

그리고 경찰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

“그럼, 후반전. 시작해 볼까요?”

전파 납치범들이 줄줄이 쓰러져 있는 병실에는 웃고 있는 김지안과 매스터한트 감독, 카메라를 챙겨온 촬영팀.

“진실을 밝힐 때로군요.”

그리고 범인들의 머리에 대고 총을 겨눈 비슈티 과장과 그의 옛 동료들의 모습이 있었다.

* * *

~15분 전~

키키와이 북부 해안, 차원 관문이 설치된 천막 내부.

[나노이는 마지막 방벽이 되어 우주 괴수와 함께 산화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의 앞길에 영원히 지식의 빛이 함께하길.]

화면에 생중계 영상 대신 거짓 선동 영상이 흐른 직후, 기동을 멈춘 기체가 우주 괴수의 주둥이에 꿰뚫려 폭발을 일으켰다.

충격에 휩싸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스태프들.

매스터한트 감독은 애써 침착하게 카메라를 향해 현 상황을 정리하고 복수를 맹세하며 중계를 마쳤다.

그리고 카메라가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한 다음.

“컷!”

“고생하셨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혼신의 연기를 펼치던 매스터한트 감독을 향해 조감독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하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근처에 준비해 둔 의자에 앉는 감독.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달려와 물을 건네고 부채질을 시작했다.

“역시 오랜만에 연기해 보니 쉽지 않네요.”

넉살 좋게 엄살을 피우는 감독을 보며 김지안이 곧게 엄지를 세웠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멀쩡한 모습의 콜로서스 마크 원이 부유하고 있었다.

<역시 원격 조종은 조금 더 익숙해져야겠네요.>

스피커를 통해 확대된 파일럿, 아프로 사스의 목소리를 들은 김지안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충분히 잘하셨어요.”

폭발한 건 아프로가 원격으로 조종한 양산형 기체였다.

방해 전파를 쏘아내는 장치는 진즉에 망가뜨려 놨기에 파일럿이 콜로서스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일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실력 발휘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네… 요. 아, 이 말투도 아직 입에 안 익어서.>

“천천히 적응하면 되죠.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으니 이해합니다.”

두 군필자는 조용히 킥킥대고 웃었다.

중계 도중에 끼어든 영상은 범인들을 납치하기 전 입수한 파일을 교묘하게 편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영상이 끼어든 순간 아프로는 원격 조종을 개시, 귀중한 원 오프 기체인 마크 원이 아닌, 미리 만들어 둔 양산형 기체를 우주로 보내 폭파시켰다.

외부 장갑이 똑같이 생긴 이상 시청자들은 두 콜로서스를 구별할 수 없다.

그 결과, 양산형 기체 하나를 터뜨림으로써 크라우드 펀딩과 홈쇼핑에서 콜로서스가 판매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모든 차원에 알려지게 되었다.

게다가, 나노이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도록 그동안 누군가가 전파 납치를 자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했다.

모든 건 완벽하게 짜인 각본 아래 연출된 상황.

그리고 바야흐로, 계획의 최종 단계를 실행할 때가 되었다.

“비슈티 과장님, 라즈마 과장님. 스탠바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지안은 무전기에 대고 속삭인 다음 천막을 나섰다.

역전극이 시작될 차례였다.

* * *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만!! 제발 그만!!!”

키키와이 중앙 병원의 다인실.

라즈마가 주사한 혈청을 맞고 겨우 우주 괴수의 독에서 해방된 건달의 우두머리는 고문의 트라우마에 몸서리치며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그럴수록 비슈티 과장의 총구는 그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누를 뿐.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사내는 잠자코 은행원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가 시켰는지 묻고 있잖소.”

차가운 눈과 점잖은 말투.

비슈티 과장은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서 힘을 빼는 일 없이 계속해서 건달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 오미노이 의원! 그 양반이 시킨 일이야!! 이번 일만 마치면 평생 먹고살 돈을 준다고!!”

“허….”

뒤늦게 병실에 도착한 엘라마 차장이 그 이름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오미노이 발로마.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여당의 3선 의원.

그레이트후리텐의 전통 연극인 카르부크를 업으로 삼으며 대대로 워치의 예명을 계승하는 엘라마의 집안은 상류사회에 여러 후원자들을 두고 있었기에 오미노이 같은 중견 의원을 모를 수 없었다.

“하, 하하. 이제 좀 후회가 되나? 날 건드린 건 영감님을 건드린 거랑 다를 바 없다고!”

한편, 건달은 오미노이의 이름을 듣고 엘라마와 다른 이들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자동차 추돌 사고로 팔다리의 뼈가 부러진 사실 따위 잊어버린 것처럼.

“생각보다 거물이 엮여 있는 게 아니라 처리하기 수월해졌어.”

“그게 무슨…?”

하지만 이어진 엘라마의 말에 그는 말을 잃었다.

“감독님.”

“좋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김지안이 말하자 매스터한트 감독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금방 카메라를 직접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애디즈와 포르테 스토어를 이용하고 계신 고객 여러분께 급히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촬영팀은 전파 납치를 행한 용의자를 추적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교통사고를 당한 다음 이곳, 키키와이 중앙 병원의 다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던 게 과연 누구인지,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죠.”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모니터링 중이던 김지안이 엄지를 세우며 속삭였다.

“완벽합니다.”

김지안이 예상한 대로 15분 동안 시청자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대체, 당신들은 누가 시켜서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겁니까.”

대뜸 병상에 누운 건달에게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가장 대답해선 안 되는 치명적인 물음.

건달은 카메라와 감독, 그리고 주위를 차례대로 둘러보며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자신을 겨눈 비슈티 과장의 총구를 보고는 고개를 떨궜다.

“오… 오미노이 발로마.”

그레이트후리텐 의회 3선 의원의 이름이 정확히 전파 납치범의 입에서 나온 순간, 매스터한트 감독은 중계를 멈췄다.

“와, 타이밍 죽이네요. 채팅창 그냥 아수라장이에요 지금.”

병상에 누운 범죄자는 웃음을 금치 못하는 김지안을 쳐다보며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뭐야, 네놈들은! 3선 의원의 치부를 터뜨리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아?”

“당연히 그럴 자신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지.”

계획의 대부분을 수립한 장본인인 김지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과장님.”

“…프라이빗 뱅커는 신용이 생명이지만, 이런 경우는 달리 방법이 없군요.”

김지안의 뒤에서 일렁이는 안개에 휩싸여 있던 정체불명의 언데드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고위층 고객의 비밀이란 비밀은 전부 쥐고 있는 최고의 프라이빗 뱅커들로 구성된 구C의 실세.

엑톨프 라즈마 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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