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50화
소문은 산불처럼 순식간에 퍼져 갔다.
“비켜 봐! 나 TV 봐야 해!”
각지의 가정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말 오전에 일어난 아내, 혹은 딸이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다가와 느닷없이 리모컨을 빼앗는 사건이.
“빨리! 놓치면 안 돼!!”
독신 여성 가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집에서든 똑같은 타이밍에 켜지고 있는 TV 화면.
비추고 있는 건 수십 개의 차원에 전파와 행복을 송출 중인 대형 홈쇼핑 채널 포르테 스토어의 여행 특집이었다.
[황금 연휴 전용 키키와이 여행 초특가 패키지.]
[남국의 낙원으로/키키와이 기획전.]
“더 래리어트 키키와이?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 포함인데 이 가격에?”
오전에 시작된 특집 프로그램은 말도 안 되는 호화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7성급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럭셔리 호텔 체인 래리어트.
개중에서도 6-2차원 최고의 휴양지 키키와이섬에 자리 잡은 더 래리어트 키키와이는 가장 널리 알려진 지점이었다.
키키와이는 다양한 차원에서 셀럽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찾아오는 남국의 낙원.
더 래리어트 키키와이는 모든 방에서 아름다운 오션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지닌 데에다 그 설비와 서비스 역시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쇼핑 도우미, 넬리입니다. 금일은 여행 패키지 특집 방송으로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황금 연휴가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 비용은 늘 만만치 않은 법이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상품은 특별히! 유명 호텔 체인과 항공사와 제휴한 초특가 패키지인데요.>
<연휴 당일… 은 당연히 안 되지만 그 전후에 포르테 스토어를 통해 예약하시는 고객님 한정! 정가의 10%에 이 모든 것을 제공해 드립니다!>
그리고, TV 화면 속 홈쇼핑 호스트는 그런 럭셔리 호텔의 객실과 비즈니스 항공권을 정가의 10%에 제공한다고 선언했다.
“이게 무슨….”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규모의 할인.
무언가 함정이 있는 건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의심만 하다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포르테 스토어의 상담 번호엔 문의가 쇄도했다.
<아, 네 고객님. 믿기 힘드신 점 이해합니다. 다만 정가의 10%로 패키지를 제공 드리는 건 사실입니다.>
<네. 중간에 여행사 끼지 않고 진행하는 거고요.>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건 맞습니다. 네.>
상담사들의 확언까지 받은 사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식을 실어 날랐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예약에 사용되는 전용 상담 번호는 프로그램 후반에서 다뤄질 특별 상품을 안내한 다음 나온다든가.
특별 상품과 같이 예약하면 추첨으로 객실이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된다든가.
기타 등등 홈쇼핑 특집 프로그램과 전화 상담을 통해 들은 정보를 전부, 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시청률 역대급으로 잘 나왔습니다!!>
감격에 겨운 담당 PD의 전화를 적당히 받다 끊은 아이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라우드 펀딩과 홈쇼핑을 동시에 진행하는 건 김지안의 부탁을 받아 아이작이 계획한 일이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조부, 래리어트 그룹 회장에게 0.1차원에서 벌어지는 일과 거물들의 여론 조작에 관해 알린 다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바로 나노이인들이 콜로서스 대량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회장의 자산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게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평소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던 회장은 생각보다 순순히 아이작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회장은 친히 홈쇼핑 채널과 항공사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특별 패키지를 판매하자고 제안해 주었다.
패키지의 내용은 숙박 비용과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정가의 10%에 내놓는 것이었다.
이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가격.
하지만 이를 미끼로 쓰면 여행에 굶주린 고객층, 특히 홈쇼핑의 주요 소비자인 여성층에게도 콜로서스를 정가로 끼워 팔 수 있다.
바로 그렇기에, 아이작은 콜로서스 판매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애디즈와 홈쇼핑 채널 포르테 스토어에서 동시에 진행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잘 만든 로봇 프라모델로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을 수십 개의 차원에 팔아치우기 위해 짜낸 말도 안 되는 계획.
협조해 줄 기업 이사회를 고작 몇 시간 내에 설득하는 데엔 회장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했다.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아이작은 전쟁이 끝난 다음 하나의 차원을 구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점을 어필해 기업 이미지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 설득이 통하지 않았더라면, 회장은 움직여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의 조부는 철저한 사업가니까.
“내 역할은 여기까지…. 나머진 맡겨야겠지.”
더 래리어트 키키와이의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프레지덴탈 스위트룸에서 아이작은 TV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틀어 둔 홈쇼핑 채널에선 마침 쇼 호스트가 특별 게스트를 소개하겠다고 말하며 화면이 전환되는 참이다.
“이제 뭘 보여 줄 생각이냐, 김지안.”
이제부턴 입행 동기가 짜 둔 각본대로 흘러가길 바라는 수밖에.
* * *
키키와이 북부 해안.
나는 차원 역장을 차단하는 대형 텐트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작되었군요.”
설치된 TV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자, 차분한 표정의 매스터한트 감독이 보였다.
그는 직접 카메라를 점검한 다음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생방송이라고 들으니까 조금 긴장되는군요.”
“전혀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익숙하신 줄 알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부터 시작되는 건 내가 준비한 계획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후우.”
속을 차리기 위해 챙겨온 찬물을 들이켰다.
딱히 거물을 앞에 두고 있어서 긴장한 건 아니다.
12차원에서 연수받을 때 진짜 신들하고도 독대한 적도 있었으니까.
내가 긴장해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금부터 이곳에서 찍게 될 영상이 수십 개의 차원으로 송출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홈쇼핑 채널만이 아니다.
지금부터 촬영할 영상은 실시간으로 홈쇼핑 채널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중계되어 수억, 수십억 시청자의 눈에 닿게 된다.
감독의 역할은 유명세와 발언력을 통해 콜로서스가 완판되도록 이 프로젝트의 간판이 되는 것이다.
그에 더해 나노이의 진실을 알리고, 전파 방해에 관한 진실까지 알릴 수 있다면 여론은 완전히 뒤집힐 것이다.
물론, 소비자들의 마음을 이 생중계를 통해 완벽하게 사로잡는 것이 전제.
실패했다간 나노이에 미래는 없다.
“감독님은 안 떨리시나요?”
“떨리죠. 작다고는 해도 하나의 차원을 구하는 일이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감독의 눈은 웃고 있었다.
꽤나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며 나는 혼란에 빠졌다.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이번 사건을 엔터테인먼트, 혹은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재료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수많은 목숨이 걸려 있으니 제 책임을 다해야 마땅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괴리감이 느껴진다.
일류 엔터테이너는 이런 중요한 순간마저 즐기고 있는 걸까.
어쩌면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된 걸지도 모르겠다.
“예.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말해서 난 매스터한트 감독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가 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정말로 부탁을 들어줄 거란 확신이 없었을 정도로.
그래서 감독이 키키와이까지 직접 도우러 와준다고 했을 땐 꽤나 감동했다.
근데 이렇게 사람 좋게 웃고만 있을 줄이야.
“…….”
한 차원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이제부터 카메라 앞에 설 그에게선 티끌만큼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많이 걱정되시나요?”
“…네. 사실은.”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전파 납치범들을 실제로 납치하는 데에 성공한 시점에서 계획의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봐도 좋다.
다만, 실제로 소비자들이 생활에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비싼 로봇을 선뜻 구매해 줄진 여전히 미지수였다.
“너무 걱정은 마세요. 잘될 겁니다.”
감독은 확신에 찬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계획의 입안자인 내가 조력자에게 이런 얘길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우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시청자들에게 사태의 긴박함을 알려 주셔야 합니다. 나노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자, 광고 끝나갑니다. 스탠바이 부탁드립니다.”
“시작 30초 전!”
노파심에 튀어나온 걱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태프들이 매스터한트에게 사인을 보냈다.
“괜찮아요, 지안 씨.”
말을 하다 말고 물러나던 나에게, 어느샌가 장난기가 사라진 매스터한트 감독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직업은 대상에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전해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영화는 설득의 예술이라는 거죠.”
그리고 저는 영화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감독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덧붙였다.
-하나, 둘
-짝!
무언가 답해 보려 했지만 내 시도는 슬레이트가 발하는 경쾌한 소리에 가로막혔다.
허나 다행히도, 나는 금방 그가 보이던 자신감에 충분한 근거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번 카메라가 매스터한트 감독을 겨눈 순간, 그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안녕하십니까, 베르게네프 매스터한트입니다.”
온화한 얼굴을 한 작은 체구의 드워프가 정중하게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느샌가 그의 눈에선 강렬한 기백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 분야의 정점에 선 장인.
명감독의 아우라를 두른 사내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쾌적한 쇼핑 생활의 동반자 포르테 스토어, 그리고 혁신을 세계로 발신하는 크라우드 펀딩 대표 플랫폼 애디즈를 이용 중이신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고작 몇 마디.
사전에 정해 둔 인사말을 뱉었을 뿐인데, 차원 관문이 설치된 특수 소재 텐트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와 편하게 대화하던 드워프 아저씨는 3초도 지나지 않아 무게감이 느껴지는 중후한 목소리를 발하는 거장의 모습으로 변했다.
“신작 상영을 앞두고 인터뷰할 때 외엔 카메라 앞에 서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더군요.”
내겐 아직 없는 자질.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
좌중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그 힘은 단순히 기교나 화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생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베르게네프 매스터한트라는 사내의 격과 삶의 궤적이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도록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영화는 설득의 예술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매스터한트 감독의 말.
다른 사람이 말했다간 오만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소리일 텐데.
예술의 신에게 가호를 받는 거장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설득당한 건 나였던 모양이다.
이 남자라면 분명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차원의 고객들을 설득하고 말리라는 확신이 차올랐다.
“그런 거였군.”
어느샌가 적절한 밝기로 조도를 낮춘 조명.
감독의 목소리 말고는 그 어떤 잡음도 포착되지 않도록 준비된 저소음 장비.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해 오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세심하게 조절된 환경.
감독을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눈에는 강한 신뢰의 빛이 어려 있었다.
여태껏 그가 이뤄 온 모든 결과물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팀을 하나의 생물처럼 만들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피사체인 베르게네프 감독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집중된 자원.
홈쇼핑과 크라우드 펀딩에 동시에 자신의 영상을 내보낸다는,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를 포기한 파격적인 결심과 행보를 봤을 때 깨달았어야 했다.
매스터한트 감독은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지닌 모든 자원을 동원해 나노이를 구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다시피,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본래 하나의 ‘상품’을 소개해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시청자의 집중력을 끌어낸 감독은, 다시 예상치 못한 화두를 던져 주의를 환기시켰다.
“하지만 저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보여 드릴 물건이 단순한 상품 이상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시청자의 집중력이 최대로 높아진 타이밍에서.
“지금 이 방송을 보시는 분은 대부분 이미 콜로서스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셨을 겁니다.”
“나노이의 기술력의 정수. 손바닥만 한 슈퍼 로봇. 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구매하려 하는 물건입니다.”
감독은 시야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콜로서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저는 물건을 팔고 인센티브를 받으러 12차원 로렐트리에서 머나먼 키키와이까지 날아온 게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우리가 평소 잊고 사는 ‘고귀함’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보는 이의 집중력을 더 끌어올리는 화법.
한 차례 쉬고, 숨을 가다듬은 감독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린 알고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귀하고 존귀하다고 떠들어 댔지만, 그중 정말로 고귀한 영혼을 지니고 있던 자는 극소수였다는 것을.”
“진정한 고귀함은 핏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삶의 모든 과정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지 가운데에서 고귀함을 택하는 것. 그 외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장의 이목구비 사이에는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믿을 수 있는, 열중할 수 있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성질에 대해 논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려 하고 있었고, 그 시도는 점점 먹혀드는 중이었다.
영화는 설득의 예술.
과연, 이 분야의 전문가다운 발상이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리는 건 앤티크한 수집품이나 그럭저럭 볼 만한 로봇, 혹은 전자동 해충 퇴치 기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께 선택할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모른 체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더욱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요.”
콜로서스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혹은, 끼워팔기 상품인 걸 알면서도 하는 수 없이 생중계 영상을 튼 이들도.
눈앞에 나타난 뜻밖의 거물 게스트, 베르게네프 매스터한트 감독.
그는 시청자의 양심 중 가장 말랑말랑한 부위를 거침없이 찔러 대고 있었다.
마냥 손을 놓고 나노이가 멸망하든 말든 방관만 하던 이들에게 불편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아직도, 거기서 팔짱 끼고 서 있기만 할 거냐고.
방관자로 남아 있을 거냐고 묻는 중이었다.
“애디즈의 이번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거나, 포르테 스토어에서 예약 주문을 하시는 건. 단순히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겐 나노이를 멸망에서 구해 낼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차원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감독이 말을 이어 가는 동안 콜로서스는 멋들어진 수집품이나 여행 패키지의 추가 할인을 위한 끼워팔기 상품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여러분의 영혼이 지닌 색깔을 직접 증명하실 차례입니다.”
“우린 다른 이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니까요.”
지금쯤 사람들은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콜로서스를 구매하는 건.
전쟁을 마치고 수리를 거쳐 집에 배송된 로봇을 수령하는 것은.
그 표면에 레이저로 음각된 자신의 이름을 손끝으로 쓰다듬는 것은.
나노이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전쟁에 동참한 것을 증명하는 최고의 훈장이자.
그들의 작고 작은 전쟁에 동참해 역사의 목격자가 되었다는 징표라는 사실을.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고귀함을 일깨우는 겁니다.”
제아무리 돈을 쌓아도 얻을 수 없는, 궁극의 도덕적 우월감.
이런 수준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물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궁극의 사치품이 틀림없다.
한 차원을 멸망에서 구해 냈다는 자랑거리를, 죽을 때까지 술자리 안주로 써먹을 수 있다.
이를 마다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이 든 아저씨의 설교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죠.”
“판촉 활동 같은 건 젊은 친구들이 훨씬 잘할 테니까요.”
카메라 너머에서 영상을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의 심리를 가늠하듯 카메라를 주시하던 매스터한트 감독은.
자신에게 쏟아지던 모든 시선을 붙잡아 맨 채, 바통이라도 넘기듯 조심스럽게 다음 주자에게 건네주었다.
“제 작은 친구를 소개합니다. 고향을 위해 목숨까지 내려놓고 우주 괴수와 맞서는―”
천막 안을 쏜살같이 가로지른 멋들어진 디자인의 콜로서스가 카메라와 감독 사이에서 정지했다.
정비된 무대 위에 나타난 주인공.
“나노이 최고의 파일럿. 아프로 사스 씨입니다.”
전쟁터 밖에서 벌어지던 우리의 싸움은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