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18화
그레이트후리텐에서 남쪽으로 4시간 동안 항공기를 타고 내려가면 나오는 아열대의 낙원, 키키와이섬.
이사회가 후리텐의 수많은 해외 영토 중 이곳에 다차원 출장소를 세우려 공을 들인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키키와이엔 은퇴한 부유층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섬의 은행에 거액의 돈을 예금해 거주권을 얻고 있었다.
키키와이에 진출하면 지역 은행에게서 부유층 고객을 뺏어올 수 있을 거란 이사회의 예상이 이곳에 출장소가 생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키키와이가 차원 이동 기술 연구개발 특구라는 점을 들 수 있었다.
적도에 가까워 차원 역장의 영향을 적게 받는 키키와이에선 본토보다 차원 이동이 안전하고 쉬웠다. 완화된 금융 규제가 적용되는 건 덤.
이는 은행에만 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본점 간부들은 적극적으로 키키와이의 지역 유지와 정‧재계 인사를 설득할 수 있었다.
출장소가 생기면 그동안 차원신용금고가 진출하지 못했던 차원에서 대량의 외환이 흘러들어 온다.
아무리 키키와이 자치 의회가 지역 은행과 강력한 유착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해도 이런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다.
본토의 시중 은행이 섬에 진출하는 것을 반대하던 이들도 막대한 기대 세수를 보곤 출장소 유치에 찬성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환상의 섬 키키와이에 출장소가 세워진 데엔 다분히 현실적인 계산이 존재했다.
디X니랜드도 돈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것처럼, 꿈과 환상을 지탱하는 건 언제나 막대한 양의 지폐였으니까.
[다음 정거장은 다이아몬드 펄 헤드 동쪽 등산로 입구―]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날 현실로 끌고 온 건 버스의 안내 음성이었다.
기적적으로 제시간에 일어난 나는 버스를 타고 출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제의 숙취가 아직 남아 있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버스가 자꾸 흔들리는 탓에 토할 것 같았지만 참는 수밖에.
엘라마 소장이 본점에서 출장소 근무자에게 업무용 차량을 인당 한 대씩 준비해 줄 예정이라고 그랬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다른 차원에서도 운전이 가능하도록 범차원 면허를 신청한 지 꽤 지났는데 슬슬 나도 차 한 대 생겼으면 좋겠다.
알로하 셔츠 입고 오픈 에어링 마렵네.
“우욱.”
멀미할 땐 먼 곳을 보면 된다고 했나.
고개를 돌리자 차창 너머로 거대한 휴화산, 다이아몬드 펄 헤드가 보였다.
하얀 바위와 분홍빛 흙, 그리고 넓은 분화구가 인상적인 키키와이섬의 상징.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보석이 박힌 왕관처럼 보였다.
화산은커녕 동네 뒷산도 몇 번 올라간 적 없는 내가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제주도에서 본 한라산은 비교도 되지 않는 진심 개 쩌는 광경. 가슴이 웅장해지다 못해 늑골이 부러질 것 같다.
“여기가 극락인가.”
새삼스럽게도 내가 일하는 곳이 그레이트후리텐 굴지의 관광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따뜻한 기후. 매일같이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부는 이곳은 포독스시나 린딘과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남국의 낙원.
다차원 출장소가 승진 코스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많은 행원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날 부러워할 것이다.
“파벌 싸움만 없었으면….”
근데 경치가 예쁘면 뭐 하나.
내 직장이 행 내 정치의 최전방인데.
“하이고야.”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이따 또 셋이서 신경전 오지게 조질 텐데 옆에서 그 꼴을 지켜보게 될 거라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영업 첫날에 헬게이트가 열리는 사태는 피하고 싶은데, 어찌 되려나.
[다음 정류장은 안한다카이 비치입니다.]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환승 시 반드시 하차 태그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태그 시 추가 요금이 발생합니다.]
-삑
일단은 현판식에서 실수해서 트집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겠지.
“오늘도 무사히….”
작은 기도를 읊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교통 카드를 태그했다.
* * *
현판식을 앞둔 출장소는 상상 이상으로 분주했다.
음향 등의 점검을 마친 나는 케이터링을 맡은 업자들이 해변에 테이블을 세팅하는 동안 경비 회사 직원들과 함께 내·외빈을 자리로 안내했다.
어제 비슈티 과장이 주차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해서 무슨 묘수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본토에서 구E가 소유한 특수 격납고를 공수해왔다.
금속 셔터 너머에 존재하는 아공간은 본토와 키키와이의 귀빈들의 차를 수납하기 충분한 면적을 지니고 있었다.
“공군에서나 쓰는 물건인데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지….”
아공간 격납고를 본 아이작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구E가 어떤 파벌인지 생각하면 출처는 뻔하지, 뭐.”
“무슨 소리냐.”
“이따 시간 비면 말해 줄게.”
초대된 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가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차원신용금고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의 현판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모두 기립하셔서 단상의 국기를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작된 현판식. 국민의례를 마치자 오케스트라의 반주와 함께 모두가 두 개의 국가를 제창했다.
“후리텐에게 산업의 축복 있으라. 그 도시는 교역으로 번성하리니. 지배하라 후리테니아여. 차원을 지배하라―”
“키키와이, 나의 반석. 큰 기둥, 필요의 시대에 열린 항구. 참된 추장과 후예는 요동치지 않으리로다―”
그레이트후리텐과 키키와이 국가는 내가 몰라서 따라 부르는 척 넘기고 참석자의 얼굴을 살폈다.
다차원 출장소가 전략적 요충이어서 그런지 행사 참석자의 면모는 쟁쟁하기 그지없었다.
다차원 본부장을 비롯한 차원신용금고의 주요 간부.
어제 아이작이랑 밥 먹은 호텔인 더 래리어트 키키와이의 총지배인을 비롯한 재계 인사.
그리고 키키와이 자치의회의 양대 정당 대표까지.
“…기라성이 따로 없네.”
“다 아는 사람이구먼.”
어쩐지 나보다 명단 빨리 외운다 싶었는데 아빠 지인들이었냐.
기념 식수와 테이프 커팅까지 끝난 걸 확인한 우린 곧바로 귀빈들을 데리고 건물 관람을 시작했다.
어제 보고 놀란 점이었지만 다차원 출장소의 규모는 평범한 출장소의 몇 배는 컸다. 창구의 개수 역시 다른 지점만큼 있었고.
그러고 보니 어제 본 창구 상담사는 한 명뿐이었다.
창구 맡을 인원이 모자란 것 같은데 다른 지점에서 지원이 오기라도 하는 걸까.
출장소 내부를 둘러본 손님들을 음식이 준비된 야외 테이블로 안내한 참이었는데 갑자기 아이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김지안.”
“왜.”
“저 인간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
녀석이 가리킨 방향을 본 나는 경악했다.
아까부터 아무리 찾아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엘라마 출장소장이 키키와이 원주민 출신 의원들과 즐거운 얼굴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정치가와 연줄을 만드는 건 출장소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긴 하다.
문제는 그의 모습이 어제 본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키키와이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시는 의원님들을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외조모의 고향에서 두 분과 만난 건 섬의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인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붉어진 눈시울을 어필하는 엘라마의 헤어스타일은 그가 대화 중인 양당 대표와 완전히 일치했다.
뒷머리를 틀어 올리고 옆을 짧게 미는 키키와이 원주민의 전통 머리.
피부색이 옅은 갈색으로 변한 것도 모자라 손등과 목덜미에 키키와이 전통 문신까지 한 엘라마는 누가 봐도 키키와이 혼혈처럼 보였다.
“소장의 머리가 자라났군.”
“누가 봐도 가발이잖아 X신아.”
아무리 정계 거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싶어도 그렇지 할머니를 팔아먹다니, 독하다 독해.
“근데 저게 효과가 있나 모르겠네.”
“효과가 없다면 소장이 저렇게까지 할 리는 없겠지.”
아이작은 그렇게 단언하고 턱 끝으로 슬쩍 의원들을 가리켰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목멘 소리로 대화하는 여당과 야당 총수 곁에서 그들의 부인이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치고 있었다.
“…나도 몇 개 사 둘까, 가발.”
아니, 이게 아니지.
내가 무슨 미친 소리를. 잠시나마 엘라마의 광기에 잡아먹힐 뻔했다.
앞으로 저 인간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해질 따름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구C와 구E가 미친놈들만 모인 파벌이라고 들었지만 엘라마를 보니 한 구D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최소한 이 출장소에 모인 놈들이 죄다 진심이라는 건 확실하군….”
아이작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조용히 불파사 비슈티와 엑톨프 라즈마에게 시선을 던졌다.
둘은 각각 같은 파벌의 간부들과 모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아하니 비슈티 과장과 그 주위를 에워싼 구E 파벌의 행원들이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핑거 푸드를 먹는 동작까지 칼같이 각이 잡힌 그들의 시선은 라즈마를 비롯한 구C 행원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는데 묘한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쟤네 보면 무슨 생각 드냐?”
나는 전원이 포머드로 머리를 넘기고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지닌 구E 행원들을 보며 물었다.
“종족이 다양하지만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차림새가 통일되어 있는 데에다 행동에 절도가 있다. 군인 출신인가.”
뭐지. 나 그거 아직 말 안 했는데.
“맞아. 구E 행원들은 대부분이 전쟁터에서 구르던 군인이나 용병 출신이야.”
나는 아이작의 눈썰미에 감탄한 티를 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은행원이 된 군인인가.”
“에라스무스요정은행은 군인들이 만든 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어. 오래전 신용사업 부문이 분리되어 은행 법인이 설립되었다고 해.”
“퇴역 군인들이 주축이 된 건 그래서였군.”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권익 증진이 목적이다. 전직 군인 위주로 직원을 뽑았으니 그들이 은행원이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팔다리나 눈이 없는 이들을 볼 때마다 본점 근무자들이 폴더 인사를 하는 건 상대가 높은 확률로 구E의 중진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들은 사선을 넘어선 베테랑이자 존경받는 역전의 용사들.
구E는 가장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진 파벌이자 군 복무 호봉이 합산되는 까닭에 입행 후 승진이 괴랄할 정도로 빠르다.
다만, 구E의 위험성은 이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혹시 에라스무스요정은행의 예전 별명, 들어 봤어?”
“아니.”
“군인들의 은행이잖아. 어떤 식으로 굴러갔는지 짐작 가지 않아?”
아이작은 구E 행원들의 얼굴에 난 상처와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발하는 기백을 살핀 다음 대답했다.
“…무장은행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화된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25차원은 은행 강도와 불법 사채업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에라스무스요정은행의 행원들은 고객의 자산과 은행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주특기를 발휘했다.
무장한 창구 담당자들은 강도를 사살했고 외근 나간 행원들은 은행 동료를 린치한 불법 사채업자의 사무실을 폭파해 경쟁자를 제거했다.
비판하는 게 아니다. 거기까지 하지 않고선, 그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비슈티 과장도 상당한 베테랑일 거야. 구E 얘긴 이쯤 해 두고 다음은 구C인데….”
“저 동공 풀린 녀석들 얘긴가.”
아이작은 라즈마 과장 쪽을 향해 슬쩍 눈짓했다.
통일된 느낌을 주는 구E와 달리 구C 행원들의 외모는 개성적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구C 출신 행원들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음침한 아우라를 두르고 있었다.
“과로. 아니, 더한 무언가에 시달리고 있군. 적어도 행원 복지가 형편없던 건 확실해 보인다.”
“아무래도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
과로 같은 것보다 훨씬 무서운 걸 겪은 결과지만, 저건.
“초차원넵튠은행은 아주 오래전부터 차원 도약을 통해 여러 차원에 점포를 전개해 왔어. 다른 은행들이 같은 전략을 채용하기 훨씬 전부터.”
“오래전부터, 라.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
“글쎄? 200년 전?”
다른 차원에 점포를 열기 위해선 당연히 차원 이동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안전한 차원 이동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발견된 게 고작 수십 년 전이라는 거다.
“저 몰골은 완성되지 않은 차원 이동 기술을 사용한 대가였군.”
라즈마 과장이 투명한 헬멧을 쓰고 다니는 것도 육체를 잃은 영혼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차원 이동이 얼마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0년 전엔 이미 죽었거나 몸을 버렸거나 미쳐 버린 놈들 말곤 차원 도약의 반동을 견딜 수 없었겠지.”
몸이 사라지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저들이 끊임없이 차원을 넘을 수 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돈을 향한 집념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돈을 추구하는 열망과 전통만큼은 세 파벌 중 구C가 으뜸이라고 해. 몸이 조각나는 고통을 수백 년 동안 견디는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덕에 행 내 파벌 중 가장 세력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러운 고객을 거느리고 있다. 그만큼 실적도 뛰어나고.
“…….”
“갑자기 왜 말이 없어.”
“걸리는 구석이 하나 있다.”
라즈마 과장을 보는 아이작의 동공이 평소보다 크게 찢어졌다. 경험상 저건 의심의 눈초리 같은데.
“라즈마의 직급은 과장이다. 입행 시기가 10년 이내라면 몸을 잃은 이유가 없지 않나.”
듣고 보니 위화감이 든다. 다른 구C 파벌이 죄다 초장기 근무자에 요직에 앉아 있는 걸 생각하면 라즈마의 직급은 너무나도 낮다.
“나도 모르지. 구C 중에선 제일 막내인 건 확실할 텐데.”
그런 얘길 하고 있었는데 라즈마 과장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리가 꽤 되는데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들린 걸까.
“…….”
“…….”
유리 어항 속 일렁이는 불길한 연기.
얼굴도 표정도 없었지만 바라보는 내 등줄기에는 계속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잠깐 나 담배 타임.”
불편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던 우린 조용히 출장소 후문으로 향했다.
“한 번 죽어 본 놈에 여럿 죽여 본 놈인가. 이쯤 되면 출장소장이 정상인처럼 보이는데.”
알아선 안 되는 비밀을 건드린 기분이 든 건 아이작도 마찬가지인지 금방 다른 화제가 튀어나왔다.
“그 사람이 제일 비정상일 수도 있어. 아까 봤잖아.”
세상에 어느 은행원이 고객한테 잘 보이려고 그때그때 가발을 바꿔 끼우겠냐고. 어지간히 미친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담배 피우고 갔으면 얌전히 꽁초만 털고 나올 것이지 겁도 없이 상사 뒷담화를 까고 있다니. 대리 팔자도 참 좋아졌군.”
그때였다. 엘라마가 출장소 건물 모서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오해입니다, 저흰 어디까지나 소장님의 프로 의식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대단하다고 느낀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윤리적으로 문제는 있어도 이 남자는 분명 뱅커로선 1류인 게 틀림없다.
이곳에서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어깨너머로 무언가 배울 수 있을 거란 확신까지 들기 시작했을 정도였으니까.
“프로 의식이라. 이걸 말하는 건가.”
엘라마는 가발을 두 손으로 붙잡고 위치를 조정했다.
“원주민들을 상대하려면 이런 일도 해야 하는 법이지. 성의를 보이는 건 영업의 기본이다.”
“피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지져서 태웠다. 두세 번 기절할 뻔했지만.”
“불로요?!”
내가 경악하자 엘라마는 흉폭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태닝 머신이지. 다 피우면 시재함 체크하고 오픈 준비 마쳐 두도록.”
“서두르겠습니다.”
“우대 금리 통장 특판을 노린 상어들이 들이닥칠 거다. 살아남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걸? 그리고 김지안.”
“네?”
“너는 오늘부터 대출 창구 지박령이다.”
나보고 바로 대출 창구 맡으라고? 과장이 둘이나 있는데?
“저 갓 대리 달았는데요?”
“그래서, 못하겠다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일정 규모의 전결권이 허락될 거고 네놈이 서류 들고 오기 전까진 누구도 개입하지 않을 거다. 직무권능이 장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라.”
생각지도 못한 기회. 엘라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대 빼내 입에 물었다.
“불.”
“…….”
그거 돗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