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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02화

“음?”

의기양양하게 안으로 들어선 것도 잠시.

1층 로비에선 밖에 있을 땐 눈치채지 못한 위화감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던 내부는 분명 백색을 기조로 한 편안하고 모던한 느낌이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오래된 은행이 그곳에 있었다.

얼굴이 비치는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에 높은 천장, 그리고 거기에 매달린 샹들리에. 로비 중앙에는 커다란 조각상까지.

첫인상을 요약하자면, 은행보단 신전이나 성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좋아.”

상당히 고무적인 광경이다. 은행이 인테리어에 이만한 자금을 쓸 수 있다는 거니까.

여유가 없는 은행이라면 로비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못할 터.

최소한 이곳은 내가 대출받으러 돌아다닌 은행들보다 믿음직하다.

이 정도 되는 은행이 서류 전형 합격했으니 면접 보러 오라고 장난 문자를 보내진 않겠지. 아무 득도 없는데.

지금은 신입 행원 초봉 5,000만 원 시대.

운 좋게 면접을 통과하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붙어야 해.”

면접 장소는 7층.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승강기에 올라타는데 문이 닫히기 전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 은행원이 같이 탑승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영혼 담보 대출은 저번 세기부터 금지되어서요…. 제가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서 1분 뒤에 다시 걸겠습니다. 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다 전화를 끊은 행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짓는 그녀의 송곳니는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뭐지? 덧니인가?

* * *

7층에 도착한 나는 면접을 앞두고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주눅 들지 않고 고개 똑바로 들기. 목소리 움츠러들지 않기. 말 더듬지 않기.

“들어오세요.”

허리를 쭉 펴고 곧은 자세로 걸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녕하세요, 김지안입니다―”

면접관들과 눈을 마주친 나는 잠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앉으시죠.”

앉을 수 없었다. 아니, 저건 대체 뭐냐.

지금 내 두 눈이 보고 있는 광경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예.”

간신히 대답을 짜내고 의자에 앉아 맞닥뜨린 상황을 분석했다.

면접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인간이 아니었다.

그 한 명마저도 뭔가 조금 이상했고.

채용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불려 왔다는 면접관이 둘.

한 명은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나이 든 이족 보행 늑대.

다른 하나가 빨간 눈동자와 긴 송곳니를 가진 창백한 얼굴의 여자였다.

늑대인간 옆자리니까 당연히 흡혈귀 같은 거려나.

한편 자신을 인사부 소속이라고 밝힌 난쟁이는 진짜 말도 안 될 정도로 키가 작았다.

마지막으로 실무자로 추측되는 자는 인간.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지라 딱히 반가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쪽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민머리 동양인 미중년.

같은 인간이어도 자긴 지구 출신이 아니니까 가산점을 기대하진 말라던데, 상당히 성격이 나빠 보인다.

“…….”

가뜩이나 정신 사나운데 흡혈귀가 의자에 앉은 채로 자유롭게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피아노 줄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계속 고민해 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긴 해도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몰카 이벤트나 코스프레 파티 같은 게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는….”

그런데. 막상 면접이 시작되자 만년 취준생 겸 화가로 보낸 지난 3년 동안 누적된 머슬 메모리가 멋대로 반응해 대답을 짜내고 있었다.

긴장한 티가 존나 났지만.

“괜찮아요, 긴장 푸세요. 준비해 온 대로 편하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귀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목소리. 심호흡을 하자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긴장이 풀리니 굳어 있던 혓바닥도 그럭저럭 돌아가기 시작했다.

숨을 가다듬고 준비해 온 자기소개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면접관들이 하나씩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면접관 중에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부터.

중2병 냄새 풀풀 나는 뱀파이어 미녀가 물어본 ‘겪어 본 가장 큰 절망’ 같은 것까지.

늑대인간은 생긴 것과 달린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대답하기 쉬운 질문만 던졌다.

인사부 근육질 드워프는 터질 것만 같은 작은 사이즈의 정장을 부풀린 채 프로틴을 평소 어떻게 부르냐고 물었다.

“프로틴 말씀이십니까?”

“그래. 신의 가루 말이지.”

분명 내 대답을 듣고 웃었던 것 같은데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첫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린 이후로 면접은 굉장히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면접관들의 생김새가 미쳐 돌아가는 것과는 별개로 오가는 대화가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탓에 말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나 이 면접 잘 넘어갈 수 있을지도.

다만, 고비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면접관 중 유일한 인간인 중년 사내는 끝까지 짜증 나는 질문만 해 댔다.

“그래서 그쪽이 은행에서 잘할 수 있는 게 뭔데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면접장 들어올 때 보니 긴장하기 쉬운 타입 같은데 평소에도 그럽니까?”

니가 내 입장이면 긴장 안 하겠냐.

전형적인 압박 면접. 나는 최대한 자신의 인문학 감성을 발휘해 대답하기로 했다.

“업무는 입행 후에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유니크한 경력을 통해 체득해 온 감수성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은행에서도 저만의 무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가계 부채를 줄이겠다는 정부와 은행의 입장 탓에 대출을 거절당한 소시민이 있습니다.”

“네.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도움이 필요한 고객의 시선에서 여신 업무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식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당연하지만 내가 인문학 감성을 발휘했다고 말한 건 반쯤 자조적인 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스스로도 내가 뭔 소리를 지껄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소리다.

은행에게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인재인가 어필해도 붙을까 말까인데, 고객 입장에서 대출 업무를 생각하겠다고 말해 버렸다.

과연 이딴 얘길 면접에서 지껄이는 풋내기를 닳고 닳은 면접관들이 채용해 줄까.

그런 걱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던 와중 면접관들은 내 경력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김지안 씨. 3-1차원의 출신 국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셨더군요.”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안 거지.

3-1차원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리키는 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어째서 이력서에 지원 부서를 적지 않은 거죠? 아깐 상관없는 여신與信 쪽 업무 맡고 싶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그건….”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나는 인외들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걸까.

대답만 잘하면 10만 원 챙겨 주니까?

반듯한 건물에서 오랜만에 인간답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고 있다는 충족감 때문에?

둘 다 아니다.

최소한, 이들은 이력서만 보고 날 내치지 않고 있다.

화가라면 사교성 따위 내다 버리고 그림만 그리는 직업이 아니냐고.

예술적인 감성이 있어 봤자 우리 회사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서울의 여느 회사들처럼 내 인생을 몇 마디 말로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적극적으로 지원 동기를, 지원 부서를 묻고 헬스 트레이닝 경험의 유무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신 업무 말고 홍보부나 마케팅부는 어때요. 예술 전공한 감수성 뛰어난 직원들이 다수 일하고 있는데.”

“캐리커처 화가면 고객과 대화하는 것도 익숙하겠죠. 소호고객부에서 컨설팅 맡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이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가.

내가 만난 어떤 존재보다도 인간과 거리가 먼 이들이, 서류 너머의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답지 않은 모습을 한 존재들이, 가장 나를 인간답게 대해 주고 있었다.

“차원신용금고가 필요로 하던 유형의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회사에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군요. 김지안 씨는 어느 부서에 지원하실 생각인가요.”

이에 대한 대답을 떠올릴 즈음엔, 면접관들을 처음 봤을 때 느끼던 긴장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면접에서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전부 보여 줄 생각이다.

나는 이곳에서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은행에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입증한다면, 면접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

“은행원이 되면 꼭 하고 싶은 업무 같은 거,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에요.”

“꼭 하고 싶은 업무, 인가요.”

사실, 어느 부서에 지원할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올 때부터 진짜로 취직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지난 금요일 은행에서 창구 직원에게 비상금 대출이 거부당했을 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화가나 전업 투자자 같은 직업은 일괄 무직으로 취급하고 있거든요.’

‘죄송하지만 다른 은행을 찾아가 보시는 게….’

그때 내가 대출을 받았다면, 생계의 위기를 넘어섰다면.

나는 위기를 견뎌 내고 화가로서 재기하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내 그림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꿀지, 적당히 팔리고 끝날지, 조용히 잊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순 있었겠지.

“…….”

하나,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특채잖아요. 처음부터 어지간하면 채용할 생각으로 서류 통과시킨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보세요.”

이젠 알 것 같다.

은행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예.”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꺼내 보기로 했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원한다.

나처럼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그러니까.

나를 주시하는 여덟 개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한 글자씩 신중하게 전하기로 했다.

“저는―”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에게.

벽에 부딪힌 나와 달리 오만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의지와 잠재력을 가진 이들에게.

그리고 나, 김지안처럼 절망과 마주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손을 내미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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