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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411화 (411/415)

< 411화. 아드리아스의 오러 비기 >

콰직!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지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마왕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핵이 내 오러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음을.

후웅-

콰아아앙----!

핵이 부서졌음에도 잔여 마력으로 인해 마왕의 몸이 최후의 발악을 했다.

마침 조금 전의 일격으로 특수 기술 지속 시간도 끝난 나는 간신히 몸을 굴러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반동 후유증이······.’

뒤늦게 사용한 색욕까지 더하면 무려 특수기술을 5중첩으로 사용했다. 여러 부속 특성과 날개의 효과들로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멀쩡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크흡.”

이전에 느꼈던 것처럼 시야가 빨갛게 물들었다. 코와 입에서도 뜨끈한 액체가 흐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후웅!

양날 도끼가 붉어진 시야를 가득 메웠다.

기껏 핵을 부쉈더니 결국 나도 데려가는 거냐.

[“피해!”]

네브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처음에 피했던 건 천운이었다. 더 이상 움직일 힘이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존나 허무하네.

온갖 감정과 함께 주변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졌다. 양날 도끼에 한 올, 한 올 비친 내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나는 네크로맨서. 비록 검을 더 많이 사용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정체성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원래부터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둔 직업이었기에 오히려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네브로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다가 간 것 같았다. 물론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겠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마왕을 막을 방법은······.

‘마나도 움직이지 않아서 언데드도 소환 못하네.’

허허, 이딴 게 네크로맨서?

카아아아앙-----!

후와아앙!

떨어져 내리는 도끼를 보는 순간 강한 마찰음과 함께 풍압이 내 몸을 쓰러트렸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뒤에서 붙잡아주었다.

마왕의 공격이 막혔다.

“늦지 않았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눈앞에는 무려 다섯 명으로 불어난 막시민이 마왕의 도끼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딴 괴물을 상대로 이기고 있었다는 게 웃기는군.”

막시민의 중얼거림이 들리고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나를 지키듯 주위에 서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보였다.

[“그동안 헛짓거리만 한 게 아니었네.”]

네브로가 내 주위를 감싼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일일이 둘러보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서있었다.

“몸은 어때요?”

루시아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나를 지탱하고 있던 디에네가 재촉했다.

“포션부터 먹어, 아드리아스.”

“제가 가지고 있어요. 잠시만요.”

언젠가 루시아한테 줬었던 포션이 내 입으로 들어왔다. 그나저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치고 들어왔네. 디에네의 공간 이동 마법인가.

무리한 언령 마법의 운용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꾸역꾸역 포션을 받아먹으며 주변 상황만 살폈다.

‘베리얼은 아직도 살아있는 건가.’

마왕까지 쓰러트린 마당에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지독한 생명력이었다. 원래 저렇게 강했나.

“감히 우리 서방님을 이 모양으로 만들다니!”

피의 갑주를 입은 안젤라가 울분을 토해내며 막시민에게 합류하는 게 보였다. 지금 보니 베리얼을 상대하는 살렘을 빼고 전부 여기로 모였군.

“흠! 지금부터 친구는 내가 지켜!”

육탄전이 가능한 인물들 대부분이 마왕에게 뛰어가는 사이, 루나가 팔짱을 끼며 내 앞을 막아섰다. 옆에서 보이는 얼굴을 얼핏 살피니 귀여운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드리아스, 고생했어. 이제 우리한테 맡겨.”

“선배가 이미 다 해놔서 생색내기도 뭐하지만 마무리는 우리가 할 게요.”

디에네와 루시아의 말에 뭐라고 입을 열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포션을 먹었음에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곧이어 루시아가 마왕과의 전투에 합류하고 디에네도 나를 에반에게 맡겼다.

어차피 곧 있으면 쓰러질 마왕의 신체인 만큼 굳이 무리해서 싸우러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주군.”

“······.”

“보이십니까, 저들 전부가 주군이 모은 자들입니다.”

에반의 말이 피부를 저렸다.

난, 틀리지 않았던 건가.

지금껏 해온 모든 행동들을 의심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난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확신을 지닌 채 움직였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내게 또 다른 의미를 주었다.

기를 쓰고 지키려고 했던 플레이어블들이 나를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고 온갖 네임드 캐릭터도 내 뜻을 따라 움직여주었다.

“주군의 진심은 주군이 흑마법사이든, 네크로맨서이든, 제국의 반군이든 상관없이 통했습니다.”

“으음······.”

“당신은 빛입니다.”

쿠웅!

마왕이 쓰러졌다.

핵이 부서진 녀석은 고작해야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질긴 녀석이었구나! 자네의 분신을 설마 모두 없앨 줄이야.”

메르쿠르의 말에 막시민이 아무 말도 없이 쓰러진 마왕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왕, 아니 네브로의 신체는 내 진화로 만든 초월자의 결정체.

그런 걸 결국 쓰러트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오만.’

나는 에반의 몸을 두드려 오만을 가리켰다.

“저 검 말입니까? 가져오겠습니다. 루나, 잠시만 주군을 맡아다오.”

“응!”

칠대죄악을 드디어 다 모았다.

라플라스의 악마와 맺은 계약이 드디어 완료되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어?”

루나가 화들짝 놀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몸이 망가진 나도 갑자기 느껴지는 기운에 살펴보자 바닥이 무언가로 덮혀서 빛나고 있었다.

“마법진!”

루나의 말대로 그것은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작은 규모가 아닌 이 일대, 크롬웰 성이 있는 도시와 그 주변을 전부 차지할 만큼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지금껏 느껴본 적도 없고 파악도 안 됐었던 정체불명의 마법진이 등장하자 모두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우리 영지에는 나를 비롯해서 모른하고 살렘이 있었다.’

근데 이렇게 큰 마법진이 숨어있던 걸 몰랐다고? 애초에 언제 설치가 된 거지?

콰아앙!

한쪽에서 폭음이 터지며 베리얼이 바닥에 처박히는 게 보였다. 베리얼을 박아 넣은 살렘은 온갖 악마를 소환한 채 소리쳤다.

“이 개 같은 새끼가!”

“쿨럭, 흐흐.”

베리얼은 망신창이가 된 상태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제자님, 당신은 정말······정말로 대단합니다. 제가 설계해놓은 최후에서도 아주 최후의 수단까지 발동시키시다니 감격스럽네요.”

이 마법진이 베리얼의 짓이라고?

정말 끝까지 지랄 맞은 인물이었다.

“마법진을 멈춰라.”

살렘이 베리얼의 멱살을 잡으며 들어올렸다. 타오르는 악마의 불길에 고통스러울 법도 했지만 베리얼은 아까부터 웃고만 있었다.

“이건 저도 멈출 수 없습니다. 애초에 핵이 파괴되면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거라서.”

“핵?”

······마왕의 핵이 도화선이었나.

그렇다고 마왕을 그냥 놔둘 수도 없었으니 선택지가 없는 문제였다.

일단은 이 마법진의 정체가 뭔지부터 알아야하는데.

“쓸모없는 놈. 죽어라.”

화라락------!

업화의 불길이 베리얼을 불태웠다. 그럼에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검게 타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비록 마지막 호기심은 해결하고 가지 못하지만 족적을 남긴 것만으로 만족하죠.”

“이 마법진이 뭔지나 말해라.”

“어차피 막지도 못하는데 말 못해드릴 것도 없죠. 이계의 문을 여는 마법진입니다.”

“이계의 문?”

푸스슥!

키메라의 시체들이 가루가 되어 마법진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키메라들조차 이 마법진에 계획 중 일부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모른이나 내가 네크로맨서인 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 물량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는 점에서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피잉-

파아앗!

크롬웰 성벽 앞의 넓은 공터 허공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아공간이 열릴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는데, 이내 네브로의 신체도 마법진에 녹아들며 빛은 더욱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아아······!”

베리얼이 감격에 찬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지만 두고 볼 살렘이 아니었다.

화륵!

단숨에 배리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살렘은 이내 내게 달려왔다.

“피해야한다.”

피하다니? 어디로?

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미친놈아!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마왕의 육체를 제물로 바쳐서 만든 마법이다. 일단은 후퇴하는 게 전략상 옳다.”

살렘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크롬웰을 두고 갈 수 없었다.

내가 성 쪽을 눈짓하자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살렘이 중얼거렸다.

“이런 시부럴.”

살렘이 시선을 돌려 성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아마 안쪽에는 영물만 소환했던 드미트리나 성벽에서 화살만 쏜 아가타가 있겠지. 그뿐 아니라 에이미와 마리아, 그리고 잠들어있을 비비안이 남아있었다.

“내가 데리고 나올 테니까 넌 빨리 꺼져라!”

살렘이 외치며 루나에게 손짓했다.

끼익-

그러나 나름 빨랐다고 생각했던 살렘의 행동력도 마법진의 발동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그으으.”]

기형의 존재들이 사방으로 의지를 뿌려대며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월자도 무엇도 아닌 되다 만 것들.

그러나 그 격 자체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치이익!

기형적으로 뒤틀린 뿌연 팔이 바닥을 짚자 타들어가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이 녹아내렸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의 팔만 수십 개가 달린 거대한 존재가 첫째로 튀어나왔다.

퍼걱!

그때 막시민이 말도 없이 달려가 검을 휘두르자 그 거대한 동체가 기우뚱거렸다.

“몸 상태가 불안정하군. 할 만하겠어.”

그러나 그런 막시민의 말을 비웃듯 마법진이 만든 이계의 문은 계속해서 기형의 존재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흐음.”

데슈른의 삼라만상이 다시 펼쳐지며 두 번째로 나온 존재를 난도질했다. 이내 오만을 가지러 갔던 에반도 빛의 검을 사용하며 이계의 문에서 나오는 존재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파훼해야 해요.”

디에네가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길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모른과 살렘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시간이 많이 없겠구나. 어서 시작하지.”

“루나, 넌 아드리아스를 살펴라.”

이내 나와 루나를 제외한 마법사들이 전부 마법진을 연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집회에서 모인 흑마법사들도 나름 실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금세 자리를 잡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운명에 맡겨라. 그 몸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네브로의 초조한 기색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한 게 이제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루, 나.”

나는 간신히 목이 트이기 시작한 걸 느끼며 루나를 불렀다.

“응.”

“저 검을······.”

에반이 가지러 갔던 오만을 가리키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다녀올게!”

네브로의 육체는 흡수됐기에 오만만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생각을 멈추지 마라.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깨닫고 있었다.

마법진은 단시간에 파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저 기형의 존재들을 막아내는 건 결국 잠깐뿐일 거다.

결국 이대로 있으면 모두가 죽고 세상이 멸망하는 건 막지 못한다.

“여기.”

오만을 들고 온 루나가 내게 내밀었다.

기묘한 고동이 느껴지는 오만을 보며 나는 오만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마나를 순환시키려 했다.

“크흡.”

무리한 마나의 운용에 각혈했다.

“친구!”

루나가 떨리는 손으로 나를 잡았다.

루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멈출 수 없다.

파앗!

폭식은 루도에게 흡수됐지만 시간 부족으로 인해 진화를 시키지 못해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건 내 손에 들린 오만.

[“미쳤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걸 미쳤다고 하는 거야.”]

오만의 주인 각인이 끝났다.

칠대죄악을 모았으니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상관없다.’

파아악!

오만의 기운이 일순 크게 일렁이며 내 몸을 감쌌다. 보랏빛 기운이 망가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친구?”

루나가 떨리는 눈빛으로 일어난 나를 보았다.

“하아.”

오만이라.

왜 오만이라 불리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벽이 사라졌다.”

한손에는 갈락슈르를, 다른 한손에는 오만을 들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검술의 벽을 느끼며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내 오러 비기였어?

우웅-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내 모든 시작을 이것과 함께 했으니.

파지직!

갈락슈르에서 빛이 나며 떨리기 시작했다.

내 오러 비기와 공명을 하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너······.”]

“너가 아니라 천사님이겠지.”

오만에 물들은 나는 천천히 허공을 향해 검을 내려긋기 시작했다.

갈락슈르의 숨겨져 있던 힘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검술도 이전과 다른 형태로 발동되었다.

“오러 비기, 진화(進化).”

한계점을 넘겨버린 무형의 의지가 오러로 발현되었다.

< 411화. 아드리아스의 오러 비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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