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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410화 (410/415)

< 410화. 최후의 일격 >

세상이 뒤흔들리는 착각이 들 정도의 전투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 후폭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멀리 물러난 일행들은 어느새 그 광경을 손가락만 빨며 구경하고 있었다.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물어보는 루시아도 알고 있었다.

저 전투에 감히 끼어 들 수 없다는 걸.

그러나 견디지 못할 만큼 무력한 마음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고 말았다.

“워록이 된다면 선배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전 여전히 선배를 도와줄 수가 없네요.”

그녀의 씁쓸한 말은 모두의 귀에 전해졌다. 그러자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벤자민이 애꿎은 땅만 걷어찼다.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천하의 대륙 10인조차 저 전투에 끼지 못하고 있으니.”

“대륙 10인? 그것보다 너구리 아저씨는 누구세요?”

메르쿠르의 말에 루시아가 물었다.

그때 엄청난 기파가 터져 나오자 주변으로 핏빛 그물이 펼쳐지며 기파를 막아냈다.

“언니, 이거 맞아? 기파만 막는데도 힘이 딸리는데?”

안젤라가 기파를 막아내며 어이없다는 듯 웃자 이자벨이 힘을 더했다. 안젤라의 혈마법이 강화되며 기파의 저항이 잠잠해졌다.

“꼬마 아가씨, 봤어? 내가 이래봬도 뱀파이어 퀸이야. 근데도 여기서 고작 기파나 막는 게 전부인데 도움이 안 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

전설이나 동화로만 들어본 뱀파이어 퀸이라는 말에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이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자벨의 존재도 지금껏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충분히 놀라웠는데······.

“아드리아스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데려오는 거야.”

디에네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모인 이들만 해도 엘프에 수인들, 그리고 뱀파이어와 사막의 부족까지 이보다 다양할 순 없었다.

‘흑마법사들도 있지만······.’

디에네는 흑마법사들의 존재는 인정하기 싫었다. 이미 아드리아스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지만 애써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마나를 모두 소진하고 지쳐버린 루이스가 피곤한 안색으로 물었다.

“황제가 저런 괴물이 돼버렸다면 제국은 이제······.”

“혼란에 빠지겠지. 이미 충분히 어지럽지만.”

디에네는 대답을 하면서도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지금 당장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의 전투가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에서 황제의 죽음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체면과 명예, 귀족으로서의 긍지.

크롬웰에 온 이후로 항상 고민해왔던 일이었다.

크롬웰은 실제로 악행을 저지른 적도, 직접적으로 제국을 적대시한 적도 없었으나 결국 제국의 반란 세력이었다. 그런 크롬웰을 돕는다는 건 로들렌 4대 기둥이라 불리는 알븐 가문의 후손으로서 사실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드리아스가 싸우는 모습을 보자 모든 게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그 전투는 언젠가 자신이 숭고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을 잿더미로 만들만큼 강렬했다.

“지금 당장은 저 싸움이 어떻게 끝나느냐가 문제지.”

“하긴, 선배님이 이기지 못하고 저 괴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황제의 죽음은 딱히 상관도 없겠네요.”

어차피 모든 게 멸망할 테니······.

범인들은 저 괴물이 아무리 강하더라고 그게 말이 되냐고 묻겠지만 루이스는 알 수 있었다.

고작 하나의 괴물이지만 여기서 죽이지 못한다면 대륙을 멸망에 몰아넣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선배님께서 흑마법사가 되신 것도, 지금까지 행동해온 모든 일들도 다 이걸 노리고 움직이신 것 같다는 착각이 드네요.”

“그건 너무 갔다.”

디에네가 그럴 리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내심 흠칫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아드리아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속에서 피어오르는 의심의 싹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내다보고 행동을 했었다고?’

콰직!

생각에 깊게 잠긴 사람들을 깨어내듯 다른 쪽의 전투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투술을 섞은 오리지널 마법으로 살렘, 에반, 데슈른, 그리고 모른까지 네 명을 한 번에 상대하던 베리얼은 성한 구석이 없는 상태로 바닥에 처박혔다.

“하아, 이건 정말 예상치 못했군요.”

처박혔음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낭패를 본 기색 없이 말하는 베리얼을 향해 모른이 물었다.

“저 키메라는 도대체 무엇이냐. 저것이 정말로 마왕인 것이냐?”

“마침 나도 궁금했다, 이 빌어먹을 제자야. 그렇게 웃고 있는 걸 보면 널 죽여도 저건 멈추지 않겠지?”

살렘도 모른의 말을 받으며 사악한 뱀을 이용해 베리얼을 구속했다.

“키메라? 그런 저급한 것이 아닙니다. 그쪽 말씀대로 저건 마왕. 대륙을 멸망시키기 위해 현세에 강림한 최악의 존재죠.”

“그렇게 해서 네게 남는 이득이 뭐지?”

에반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묻자 베리얼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득? 하하하! 에반 경께서는 마법사라는 존재를 너무 인간적으로 보시는 것 같군요. 다들 능력이 되지 않아 못할 뿐이지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는 저와 같은 이상을 품고 있을 겁니다.”

“이상? 세상의 멸망이 이상이라는 건가?”

“아니요. 정확히는 호기심입니다. 세상의 멸망도 궁금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피조물이 과연 얼마나 강할까도 궁금하죠.”

베리얼의 팔이 비틀리며 거대하게 변했다. 그를 구속하고 있던 사악한 뱀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이 새끼, 몸에다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베리얼에게서 뿜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살렘이 기겁하며 창을 회수했다.

“스승님이 하실 말씀이십니까? 정작 본인의 몸에는 더한 짓도 하셔놓고.”

“네 꼬라지를 보고 말해라. 난 돌아오기라도 하지 넌······됐다, 너 같은 또라이한테 뭔 말을 하냐.”

화르륵!

살렘의 왼팔이 불타오르며 악마의 손이 소환됐다. 그러나 이전에는 제어를 못할 정도로 불안정했던 기운이 많이 잠잠해진 상태였다.

“잘 됐네. 안 그래도 새로운 걸 익히고 실험만 해봤지 실전에서 써먹은 적은 없었는데.”

조화의 기원을 접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된 살렘이 씨익 웃었다.

“너도 쉽사리 죽지 않는 몸이 됐으니 패볼만 하겠어. 어이, 지금부터 저놈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살렘 예디디아.”

에반의 말은 이내 거대한 후폭풍에 묻혀버렸다. 두 번째 악마를 소환한 살렘의 다리가 역관절의 형태를 한 염소의 그것이 되어 박차고 달려 나갔다.

“어차피 베리얼을 쓰러트려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걸세.”

“주군을 도와야합니다.”

“자네가 저 속으로 들어간다고?”

모른이 가리킨 방향에는 시커멓게 변한 땅 위로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붉은 문이 서있었다. 그리고 아드리아스와 마왕은 그 근처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마기와 사기가 뒤엉켜 주변의 접근을 허락지 않았다.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주군에게 검 한 번 휘두를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리 할 겁니다.”

“검 한 번 휘두를 기회를 자네가 없애버릴 수도 있지.”

짐이 된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모른을 향해 에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데슈른은 그런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팔짱을 낀 채 아드리아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삼라만상을 사용한다고 해도 인지를 벗어난 전투라 버틸 수 없음을 직감했다. 저 괴물의 무력도 믿기지 않았지만 그런 괴물에게 맞서는 아드리아스도 믿기지 않았다.

“허허, 많이 큰 정도가 아니라 이젠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됐구나.”

“데슈른 경, 아무래도 착각하는 것 같네만 아드리아스는 지금 목숨을 태우고 있는 걸세.”

“그게 무슨 말이지?”

죄악에 대한 정보가 없는 데슈른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모른에게 물었다.

“죄악에 대해 아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죄악은 강력한 아티팩트. 물론 물건의 형태가 아닌 것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물건의 형태로 존재하지. 그리고 보통의 인간은 제대로 사용조차 할 수 없다네.”

아드리아스의 상태를 멀리서 지켜보는 모른의 눈이 아련해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드리아스는 죄악을 온전히 사용하는 것 같구먼.”

“죄악을 사용하면······죽는 건가?”

모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만으로 이해를 하게 된 데슈른은 갑자기 발걸음을 옮겼다.

“뭐하는 겐가.”

“이대로 제자가 죽게 둘 순 없네.”

“이미 사용한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다. 괜히 끼어 들어서 방해하지 말게.”

“그럼 제자의 죽음을 그냥 지켜보라는 건가!”

데슈른이 살기를 불태우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모른은 잠잠한 얼굴로 그의 살기를 흘러 넘겼다.

“난 그의 선택을 존중하네. 아드리아스도 자신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고 사용한 건 아닐 테야.”

“존중? 얼어 죽을 존중은······.”

“데슈른.”

모른이 싸늘하게 말했다.

“아드리아스는 내 손자다. 비록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난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가족과도 같이 여기고 있네.”

“······.”

“손주가 눈앞에서 죽음을 각오한 결정을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본 심정이 어떤지 알고 있나? 그런 선택을 한 아이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심정은?”

모른의 말에 데슈른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그런 데슈른을 모른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자네가 아드리아스를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로 고맙게 느껴진다네. 하지만 이 늙은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싸움으로 다른 이가 가는 것을 막을 것이라네. 애초에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내 손주의 의지이니.”

“의지?”

“아드리아스는 그 누구도 죽는 걸 원치 않는다네. 굉장한 욕심쟁이이지.”

전투에 끼어들면 무조건 죽는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표현한 모른의 눈가가 점차 촉촉해졌다. 천하의 모른이 눈물을 보이자 데슈른의 얼굴도 침울해졌다.

“이 늙은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평소에 부단히 언데드를 만들었다면. 조금만 더 빨리 정보를 얻고 베리얼놈의 계획을 저지했더라면······.”

후회되는 감정을 나열한 모른은 시선을 돌려 양손을 맞잡은 채 기도를 하듯 아드리아스를 바라보고 있는 루나를 보았다.

“이 늙은이는 쓸모도 없구나.”

“흥,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있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모른의 고개가 돌아가자 그곳에는 어느새 도착한 막시민이 서있었다.

“왔는가, 자네.”

“걱정하지 마라, 늙은이. 아드리아스는 이긴다. 그리고 살아남을 거야.”

아무렇지 않게 말한 막시민은 자세히 보니 멀쩡하지 않았다. 그걸 눈치 챈 모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자네, 괜찮은 겐가?”

“조용히 아드리아스나 지켜봐라. 어쩌면 우리가 나설 차례가 올 수도 있으니까.”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아드리아스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져왔다.

“거의 다 이겼군. 준비해라.”

“으음?”

막시민의 말에 데슈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전투에 집중할 때······.

콰아아아아앙--------!

끝을 알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

원죄의 힘을 끌어와 사용한 나생문은 큰 도움이 되었다.

빠직!

마왕의 팔 한 쪽이 부러지며 덜렁거렸지만 순식간에 회복을 하는 게 보였지만 나생문의 기운은 그 회복을 저지했다.

‘10분······.’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갔다.

그러나 전투도 끝 무렵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왕이 들고 있는 4개의 무기들은 오만을 제외하고도 흉악한 네임드 아이템들이었는데 죄악이라는 사상 최강의 네임드 아이템을 중복으로 사용한 나에 비하면 역부족이었다.

위이잉---!

오른손에는 갈락슈르, 왼손에는 색욕의 지팡이를 들고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했다.

마치 네브로가 했던 것처럼 검과 마법이 조화를 이루며 초월의 격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보여주었다.

파지지직!

마기가 휘몰아치며 저항했지만 모두 날개에 막혔다. 그야말로 완벽한 상성이 여기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능력은 사실 마왕을 막기 위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네브로와의 만남부터 라플라스의 악마와 맺은 계약, 그리고 죄악을 모으는 일까지.

-모든 것은 인연이다.

언젠가 들었던 석가모니인지 관세음보살인지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인과율조차 깨부쉈는데 운명이란 게 남아 있는 건가.

[“끝이다.”]

퍼억!

네브로의 말과 함께 오만을 들고 있던 마왕의 팔이 잘려나갔다. 가장 큰 위협이었던 오만이 떨어져나가자 정말로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

[“오만을 줍는 것보다 내 몸의 처리가 먼저다.”]

“······.”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죄악들에게 몸을 맡긴 채 그저 싸우는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

“흐으.”

날숨을 깊게 내쉬었다.

본능적으로 타이밍을 알아차린 내 몸은 자세를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을 순식간에 준비했다.

‘천마의 검.’

아니다. 이건 천마의 검이 아니었다.

데슈른의 무아검, 세계수에서 익힌 무결, 남궁일영의 창천일검, 그리고 그 외에 겪었던 온갖 경험들.

메르쿠르, 막시민, 살렘, 루이스, 벤자민, 세레나, 크리스, 네브로, 천마······토르.

비록 마지막까지 오러 비기가 발현되지는 못했지만 난 만족했다.

이것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비기나 마찬가지니까.

츠츠츠-

검이 천천히 공간을 가르며 움직였다. 공간이 갈라질 때마다 번개와 같은 불똥이 미세하게 튀어 오르며 허공이 요동쳤다.

파바박!

마왕의 남은 손들이 그런 나를 공격했지만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마치 내 검 앞으로 거대한 벽이 세워진 듯.

-끝.

언령 마법이 최후를 선고했다.

< 410화. 최후의 일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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