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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88화 (387/415)

< 388화. 라플라스의 악마 그리고 계약 >

왜지?

뭐가 변한 거지?

천사(아드리아스)의 단 한 마디만으로 일리아스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던지며 네브로를 바라봤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회귀를 겪어오며 아무도 그녀가 회귀자임을 눈치 챈 적이 없었다.

“어떻게?”

다시 물어본 그녀는 이내 두 눈이 점점 커지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알려져서는 안 되는 정보였다.

그래서일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웬만한 일에도 놀라지 않게 된 그녀조차 순간 실수를 하고 말았다.

“회귀자?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브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일리아스는 입을 잠근 채 말없이 시선만 돌렸다.

“이건 또 뭔 소리야. 회귀자? 일리아스가 과거로 회귀한다는 소리야?”

프레위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화에 참가하자 일리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헛소리야.”

“그렇지만 천사님이······.”

아드리아스를 뼛속까지 신뢰하는 네브로가 얼떨떨한 모습으로 말하자 일리아스는 최대한 대화의 주제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늦었어. 빨리 가야 돼.”

“천사님, 말씀해주세요. 일리아스가 회귀자라니요?”

네브로의 물음에 아드리아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의지가 전해졌다.

[“일리아스.”]

“······.”

[“널 이해한다.”]

아드리아스의 의지에 일리아스가 멈춰 섰다.

[“헛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일리아스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이전까지는 없었던 일이었기에 일리아스는 도저히 이번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네브로, 정확히는 아드리아스를 바라봤다.

일곱 개의 날개가 있는 천사.

영혼을 볼 수 있는 일리아스의 눈에 비친 아드리아스는 그런 형상이었다.

[“나도 살아가면서 후회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살아가면서?”

일리아스의 고개가 갸우뚱 꺾였다. 네브로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초월자 주제에 살아간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웃겨!

“뭐야! 왜 나만 놔두고 너희들끼리 얘기하냐?”

그린나래와 프레위르가 간섭해왔지만 아드리아스는 꿋꿋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 중 하나가 나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한 거지.”]

네브로와 함께 해 온 지난 5년.

변한 것은 네브로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없기에 고민과 사색은 깊어졌고, 그렇기에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짊어진 무게와는 상관없어. 그 무게가 얼마나 되던 간에 홀로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천사님은 일리아스를 몰라.”

[“그래. 나는 널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도 나를 모르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상황을 헤쳐 왔는지 모를 거야.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야.”]

아드리아스의 의지는 강하지 않았다.

마치 소곤대는 것과 같이 부드러운 말투였다.

[“일리아스, 넌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어. 고생 많았다.”]

“······.”

[“짐을 혼자 다 짊어지지 않아도 돼. 네 곁에는 우리가 있다.”]

“일리아스는 더 이상 희망에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아.”

일리아스는 굳은 얼굴로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작지만 굳센 의지가 느껴지는 기백에 모두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일리아스는 일리아스만을 믿어. 일리아스만이 이 모든 일을 고칠 수 있어.”

[“맞는 말이야. 결국 네가 계속 회귀를 해왔다는 것도 이게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이건 오직 너만 바꿀 수 있는 미래다.”]

“조금 전에는 일리아스한테 천사님이······.”

[“너만 바꿀 수 있는 것과 짐을 나누는 건 별개의 이야기야.”]

아드리아스의 의지가 점차 강해졌다.

그와 함께 존재감도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나를 데리고 있는 네브로를 믿어라. 프레위르와 그린나래도 있다. 회귀를 한 네가 선택한 동료들이다.”]

“일리아스가 선택한 건 맞아. 일리아스도 동료들을 믿어. 하지만······.”

[“네브로는 강하다. 너도 강하지.”]

-나는?!

가만히 듣고 있던 그린나래가 눈치 없게 끼어들었지만 일리아스는 조용히 아드리아스의 말을 곱씹었다.

바뀐 미래. 어쩌다 변했는지는 몰라도 그 덕분에 지쳤던 마음이 조금은 이해받는 기분이었다.

“일리아스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입술을 열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겠습니다악!”

네브로가 급하게 말하다가 삑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본 프레위르가 한심하다는 눈길을 보낸 뒤에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리를 해댔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심각할 일이야? 회귀를 했든 어쨌든 난 네 동료야. 네가 뭔 짓을 하던 난 최선을 다해서 나한테 맡겨진 일을 해낼 거야.”

“프레위르.”

일리아스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린나래를 포함해 이들과 함께한 세월은 생각보다 길었다.

“일리아스는 51번을 회귀했어.”

“51번······?”

“평균적으로 1년 정도 버텼던 거 같아. 그전에 죽은 적도 많지만.”

네브로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 일리아스는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일리아스 생각에 이렇게 말하는 것도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해. 어차피 또 실패하고 회귀하면 네브로나 프레위르, 그린나래도 전부 기억을 잊을 테니까.”

“아아······.”

프레위르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회귀를 한다는 건 결국 시간 축을 건드리는 일이야. 평범한 인간이 그게 가능하다고?”

“일리아스는 첫 회귀 때 초월자랑 계약을 했어. 그 계약 덕분에 계속 회귀를 할 수 있고.”

“계약?”

일리아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라플라스의 악마.”

“라플라스의 악마? 그게 뭐야?”

“갈락슈르에 없는 초월자. 인과율에서 벗어난 존재.”

일리아스의 입에서 어떠한 존재의 이름이 나온 순간 아드리아스는 다시 한 번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의 시야에 비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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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 진행 중]

갑자기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며 이게 뭔가 싶었다. 하필이면 일리아스가 말을 하던 중에 생긴 거라 더욱 신경 쓰였다.

‘계약?’

무슨 계약? 내가 언제?

시스템창이 고장이라도 난 것 같았다. 싯다르타를 만났을 때에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았는데 확실히 맛이 간 듯싶었다.

일리아스가 말한 라플라스의 악마.

설마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51번을 반복한 겁니까?”

“매번 둘이랑 같이 다닌 건 아니야.”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일리아스가 묵묵히 말을 이어갔고 네브로와 프레위르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50번의 회귀 동안 단 한 번도 일리아스가 회귀를 한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었어. 근데 이번에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래보였으니까.”]

50번 동안의 나는 눈치를 못 챘다는 건가?

아무리 봐도 위화감이 넘치는 일리아스의 행동을 보면 짐작쯤은 했을 텐데.

‘회귀를 한다는 건 짐작하지 못했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았겠지.’

일리아스가 회귀를 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러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었다.

기억 끝에서 망각하는 자, 레테가 만든 던전.

그곳에서 끊임없는 회귀를 겪어봤기에 일리아스가 회귀자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스케일이지.

난 고작 도시 하나에서 활동했다면 그녀는 세계가 무대니까.

[“51번의 회귀 끝에 변화가 생겼다.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어.”]

내 말에 네브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전과 다른 일이 벌어졌으니 분명······.”

“일리아스도 해봤어. 미리 다 설명도 하고 준비도 철저히 해본 적. 50번 중에 한 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일리아스는 냉소적인 태도로 말했다.

“한 번 뿐일까. 초반에는 매번 설명하고 준비했어. 그래도 전부 실패했지.”

“그, 그렇지만 이번에는 저희가 먼저 알아내고······.”

“일리아스도 끝내고 싶어.”

씁쓸하게 미소 지은 일리아스가 네브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일리아스도 행복해지고 싶어.”

“제, 제가 반드시 도와드리겠습니다.”

“······.”

이제 보니 일리아스는 굳센 마음을 지닌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에 마음이 단단히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51번의 회귀.

평균적으로 1년의 시간을 지내고 다시 회귀를 했다고 해도 무려 50년이라는 세월을 반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미치지 않은 그녀가 용하다고 해야 할까.

“더 이상 수다를 떨 시간이 없어. 일리아스의 계획이 망하지 않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해.”

“알겠습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일리아스가 먼저 움직이자 일행들은 고분고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린나래가 문득 말했다.

-실패를 해왔다는 건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야?

“응.”

-나도 죽어?

갑작스런 질문이었지만 모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이 녀석도 죽고, 저 녀석도 죽고, 너도 죽는 거야?

“······.”

일리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곧 긍정의 의미로 해석이 되어 주변을 차갑게 잠식해나갔다.

“······우리도 50번을 죽어온 거네. 미치고 환장하겠어.”

프레위르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겁을 내지는 않았다.

“저, 저도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상관없지 않아.”

일리아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리아스가 회귀를 반복하는 이유가 그거야.”

그녀의 오팔빛 눈이 유독 어둡게 느껴졌다.

“아무도 죽지 않게 하는 거. 누구 하나라도 죽으면 일리아스는 회귀를 할 거야.”

“뭐야. 일이 실패해서 회귀하는 거 아니었어?”

프레위르의 물음에 일리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욕심이 많아.’

그리고 나는 그런 일리아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귀라는 능력을 가진 이상, 실패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두를 살리고 일까지 완벽하게 끝내려 하겠지.

무려 50년이었다.

비록 네브로나 프레위르는 일리아스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일리아스에겐 그들과 만들어진 50년의 추억이 존재할 터였다.

‘포기할 수 없을 거야.’

아마 영원을 반복한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반복하면 할수록 그들의 대한 애정과 갈증은 깊어져만 갈 것이다.

쌀쌀맞았던 그녀의 태도도 그로 인해서 생긴 반사작용이겠지. 이들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회귀의 괴로움은 늘어만 갈 뿐이니까.

“천사님.”

네브로가 나직하게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도와주세요.”

[“걱정하지 마라.”]

이전 50번의 나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다르다. 비록 몸도 없고 네브로에게 기생하며 붙어있는 꼬라지였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낼 거다.

[“이제 약은 얼마나 남았냐?”]

“일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네브로의 다리가 완치되는 것은 일주일.

그리고 그 일주일 후면 네브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동안은 강제로 더블 캐스팅을 해야 했으니까.’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운 채 매번 마법을 사용해왔던 네브로였다. 그러나 다리가 낫는 다면 그러한 제약도 사라지겠지.

[“아무도 죽게 놔두지 않는다.”]

“믿습니다, 천사님!”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모든 일을 끝마친 이후다. 그전에 갈 수 있어도 내가 안갈 거다.

한 번 맡은 임무는 끝장을 보던 김진환으로서의 내가 불타올랐다.

< 388화. 라플라스의 악마 그리고 계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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