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5화. 어둠 속의 빛을 쫒는 자 >
몽환적인 풍경의 숲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어느새 우리를 가득 에워싼 요정들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톡톡 건드리고는 꺄르르 웃었다.
“여긴 대체······.”
네브로는 그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일리아스가 손을 휘저었다.
“운반자 일. 정신 차려. 우린 샤이야에 가야 돼.”
“아, 그, 그렇죠.”
-샤이야? 샤이야!
일리아스가 페어리 퀸이라 불렀던 요정이 주변을 맴돌며 외쳤다.
-샤이야로 가는 거야?
“그, 그렇습니다.”
-아하! 아까 수호자가 잡으러 간다는 애들이 너희들이구나! 하핫!
“예?”
페어리 퀸의 말에 네브로와 프레위르가 경직되었다.
어떻게 저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안 죽었네! 대단해! 마나가름이 잡으러 갔다가 당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대단해! 어떻게 마나가름을 무찌른 거야? 대단해!
순수한 얼굴로 환호하는 페어리 퀸을 보며 네브로의 말문이 막혔다. 그런 그 대신에 말을 꺼낸 것은 일리아스였다.
“우린 샤이야에 가야 돼.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나도 몰라! 이 숲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그러니까 나가는 방법도 모르지!
-까르륵!
페어리 퀸의 말에 요정들이 깔깔댔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전혀 악의가 없었다.
[“네브로, 좌표 설정은?”]
“예? 아, 그게 너무 급했던 상황이라 그냥 적당한 허공에 좌표를 찍었습니다.”
-나가고 싶어? 응? 나가고 싶은 거야?
페어리 퀸이 네브로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놀리듯이 물었다.
-나가고 싶으면! 우리 좀 도와줘!
페어리 퀸의 말에 일행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프레위르가 입을 열었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별사탕을 모아줘!
“별사탕?”
프레위르가 그게 뭐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으로 몇몇 요정들이 날아오더니 주먹 크기만 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이게 별사탕이야!
-저기서 돌아다니는 애들이 가지고 있어!
-해줄 거지? 꺄르르!
겉보기에는 그냥 형형색색의 보석 같았다. 요정들이 손짓한 방향을 보니 숲의 외곽에 이들 말고도 또 다른 무언가가 살고 있는 듯했다.
“이걸 구해다주면 나가도 되나요?”
-장담은 못하지만 나가게 도와줄게! 아마 내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히히.
페어리 퀸의 말에 일행들은 모여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했던 기술은 여기서 사용 못하는 거지?”
“예, 이 장소 자체가 특이한 것 같은데 좌표가 일그러져 있어요. 저희가 이곳으로 이동된 것도 그 힘 때문인 거 같아요.”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저걸 구해다주는 수밖에 없겠네.”
“일리아스도 도와줄게.”
결국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확인한 그들은 페어리 퀸에게 말했다.
“저걸 구해주면 되는 거지?”
-해주게? 좋아! 음······우리가 몇 개 필요하더라?
“하나만 구해다주면 되는 게 아니었어?”
-하나로는 부족해! 기다려봐. 대충 30개 정도면 될 거야!
퀸의 말에 프레위르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일리아스가 먼저 나섰다.
“일리아스가 구해줄게. 대신 길안내를 붙여줘.”
-그래! 잘 생각했어!
뭐, 어쩔 수 없나.
그리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도 않았기에 나는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오러 마스터급 검사와 미친 재능의 마법사라면 방금과 같은 초월급 존재만 아니라면 별 걱정이 없었다.
-날 따라와. 헤헤.
요정 중 하나가 헤실헤실 웃으며 일행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가자 이내 몽환적인 숲의 풍경이 점차 어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한 순간에 변하네요.”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듣지를 못했네. 여기 이름이 뭐지?”
프레위르의 물음에 길을 안내하던 요정이 빙긋 웃었다.
-우리는 비명나무 숲이라고 불러. 흐히.
“비명나무 숲? 비명나무 숲이면······.”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프레위르가 말끝을 흐렸다. 엘프라서 이런 숲의 정보는 빠삭한 건가.
“트롤이 잠든 숲?”
-트롤! 맞아, 트롤들이 별사탕을 가지고 있어. 헤헤.
“아니, 그걸 이제 말하면······!”
프레위르가 걸음을 멈추고 경악했다.
트롤이 뭐지? 난 처음 듣는 이름이라 그게 뭔지 몰랐다.
“트롤이면 거인종의 일종이죠?”
“······트롤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프레위르가 무리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요정이 안색을 돌변하며 중얼거렸다.
-너흰 약속했어. 우리한테 별사탕을 구해주기로.
“트롤들이 별사탕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아니, 잠시만. 그 별사탕이라는 거 설마······.”
프레위르의 두 눈이 커지더니 이내 소리쳤다.
“트롤의 심장?”
-우린 별사탕이 필요해. 30개가 필요해. 너희가 구해다 줘야해. 약속했어.
집착을 보이며 중얼거리는 요정의 모습이 이제 슬슬 섬뜩하게 보였다. 그때 일리아스가 손을 뻗어 요정을 쓰다듬었다.
“착하지.”
-우웅.
다시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온 요정은 이내 글썽이는 눈망울로 일리아스에게 안겼다.
-구해다 줄 거지? 우리는 할 수 없어. 도와줘야 돼.
“응. 일리아스는 약속했어.”
일리아스의 말에 프레위르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일리아스! 넌 트롤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
“어차피 우리는 샤이야에 가야 돼.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
일리아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곧이어 그녀는 항상 품에 안고 다니던 헝겊에 싸인 기다란 물건을 풀었다.
“검?”
그건 손잡이가 없는 검이었다. 정확히는 검신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가공되지 않은 보석의 원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형태만 검신의 모습이고 우둘투둘한 게 인상적이었다.
‘석기 시대 돌검 같네.’
돌이 아닌 오팔원석을 사용한 것 같지만.
일리아스의 눈동자랑 같은 색이군.
“일리아스가 이걸 쓰면 돼.”
“그게 뭔데? 샤이야까지 옮겨야 하는 소중한 물건 아니었어?”
“물건은 쓰라고 있는 거야, 운반자 이.”
아이가 어른에게 조언하듯 말하는 모습이 뭔가 언밸런스했지만 묘하게 자신 있어 보이는 그 모습이 알 수 없는 믿음을 주었다.
“일단 해보죠.”
“네브로, 너까지······하아.”
프레위르가 한숨을 내쉬며 암울한 눈으로 일리아스를 보았다.
“트롤은 평범한 녀석들이 아니야. 네브로의 말처럼 거인종이라 신체 능력 자체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어.”
“제가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모르겠지. 그래도 너라면 어떻게든 방법은 있겠다.”
프레위르가 결국 의견을 접고 일행들을 따랐다. 그러나 그녀의 몸짓에서 강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좋아. 히히. 나만 따라와.
요정이 다시 웃으며 안내를 시작했고 숲은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꾸륵.
괴이한 생김새의 회색 괴물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게 거인종이라고? 아예 사람의 외형이 아닌데?’
회색 진흙으로 대충 빚은 듯한 외형. 머리와 두 팔은 있었지만 허리 아래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몸을 질질 끌고 다니는 모양새였다.
파르르--
그리고 몸 이곳저곳에 난 가시와 같은 돌기가 박자에 맞춰 부르르 떨리는 게 기묘했다.
“······.”
일행들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대한 동체의 괴물이 숨을 고르게 내쉬며 잠을 자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주었다.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공격할 거면 지금이 기회다. 가장 강력한 한 방으로 준비해.”]
네브로가 내 의지를 듣고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기색을 읽었는지 프레위르가 조심히 검을 뽑아들며 일리아스의 앞을 지켰다.
콰드드득!
거대한 얼음의 창이 허공에 만들어졌다.
자고 있는 트롤을 관통하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였다.
파지직!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이내 거대한 얼음 창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원래였다면 전류를 견디지 못한 창이 부서졌겠지만 얼마나 마나의 배열을 잘했는지 조화가 잘 된 모습이었다.
-꾸르륵?
심상치 않은 마나의 유동은 자고 있는 트롤조차 깨우고 말았다. 그러나 녀석이 눈치 챘을 때쯤에는 늦고 말았다.
-꾸르륵!
커다란 나무와 비슷한 높이를 지닌 트롤이 뒤를 돌아보려 몸을 뒤척이는 순간, 네브로의 창이 내리꽂혔다.
퍼어엉!
탄환 마법과 같은 원리로 회전을 하며 날아간 창은 허공에서 폭죽과 같은 소리를 터트리며 쏜살같이 움직이며 트롤에게 박혔다.
-꾸어어어억!
거의 배꼽까지 벌어지는 거대한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른 트롤이 발버둥 쳤다.
“끝이 아니야! 트롤은 엄청난 생명력을 가졌어. 고작 기술 하나로 쓰러뜨릴 수 있는 괴물이······.”
콰직!
콰장창!
프레위르가 다급히 소리친 순간 네브로의 얼음 창이 폭발했다. 이내 깨진 얼음 창은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되어 폭풍을 만들어냈다.
퍼버버벅!
트롤이 순식간에 갈가리 찢겨졌다.
그 광경은 자연재해라 불려도 무방할 만큼 굉장한 충격을 선사했다.
“괴물이······.”
프레위르가 채 말을 잇지 못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함께 온 요정도 손뼉을 치며 외쳤다.
-강해! 대단해! 마나가름을 물리쳤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이내 폭풍이 잠잠해지고 트롤이 있던 자리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회색의 살점과 별사탕이라 불리던 심장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별사탕이다. 헤헤.
그걸 본 요정이 쫄래쫄래 날아가 주먹 크기의 심장을 들어올렸다.
몸뚱이는 산더미만 하더니 심장은 고작 저 크기인 건가.
“말도 안 돼. 이렇게 강했다고?”
“계속 강해지고 있어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세진 거예요. 헤헤.”
네브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마무시한 광경을 만들어낸 것치고는 너무나 멍청해 보이는 반응에 믿기지가 않네.
‘그러고 보니······.’
네브로는 확실히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내게 마법을 모두 익힌 것과 별개로 마나 배열이나 술식 사용의 센스, 그리고 마나 자체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난 느낌이었다.
‘네브로가 강해질수록 나도 존재감이 강해지는 기분이란 말이지.’
나도 덩달아 강해지는 걸까? 그것까지는 아직 모르겠다. 단순히 내 착각일 수도 있었으나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내 의지도 강렬해지는 기분이었다.
“잘했어. 운반자 일.”
“모두 저한테 맡기세요! 30개쯤은 금방 구해주고 여기를 탈출하죠!”
신이 난 듯한 네브로가 자신 있게 말했다.
[“기분이 좋은 건 알겠지만 방심하지마라.”]
“아, 천사님! 절대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자고 있던 녀석 하나를 죽인 거니 무사했지만 항상 이럴 리는 없으니까. 한 마리씩 다닌다는 보장도 없고.”]
“확실히 그렇네요. 명심하겠습니다.”
네브로가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확실히 이 녀석은 평범하지 않았다. 초월자의 아들이라 그런 걸까. 따지고 보면 신의 아들인 셈이잖아.
‘아이온이라는 신은 들어본 적 없지만.’
어쨌든 이제 남은 심장은 29개.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
움찔!
멀지않은 동굴에 틀어박혀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온몸이 뱀과 같이 길쭉한 무언가로 덥혀있는 그 거대한 형체는 이내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밤들의 운용하는 갈비가 뱉어버린 끝처럼 미워.
괴상한 말을 해댄 그 무언가는 이내 두 눈을 빛냈다.
-찾았다, 빛. 찾았다, 빛. 찾았다, 빛.
-꾸르륵!
그것의 말과 함께 주변에 있던 수십 마리의 트롤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어도 돼?
< 385화. 어둠 속의 빛을 쫒는 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