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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81화 (381/415)

< 381화. 복선 회수 >

희미하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을 지새우는 짧은 시간동안 네브로는 스스로의 힘에 대해 얼추 감을 잡은 듯했다.

“이게 내 힘······.”

“다시 봐도 신기하군.”

네브로의 손에서 번쩍이는 마법을 확인한 엘프 여검사도 마찬가지로 놀란 듯 중얼거렸다. 역시 이 시대에는 마법이라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초월자가 아니라면 어느 가문의 자제지?”

더 이상 괴물들의 습격은 없었다.

아니, 네브로의 마법이 몇 번 터져나가자 알아서 피해가기까지 했다.

그동안 네브로와 함께 괴물들을 처리했던 엘프는 드디어 숨통이 트였는지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그건······.”

“어차피 이 근처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하나지. 그노시스의 자식인가?”

대인관계가 서툰 네브로가 허둥지둥 대는 게 훤히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난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었기에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당황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니까.”

“다, 당신은 왜 여기서 이러고 계셨던 거죠? 바, 밤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만약 제가 없었으면······.”

“네가 없었으면? 하!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니야? 하긴, 초월자의 아들인데다 그런 힘까지 지녔으면 잘난 척을 안 하기도 힘들겠다.”

“자, 잘난 척이 아닙니다!”

네브로의 혈압이 올라가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자신감이 붙은 건 좋은데 왜 갑자기 쓸 데 없는 오지랖이냐. 어서 갈 길이나 가라.

“하하, 뭐, 그렇다고 해줄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엘프는 검에 묻은 피를 깔끔하게 닦아내고 정비를 마쳤다.

“뭐하고 있는 중이냐고 했지? 야반도주 중이었어.”

“예?”

“밤중에 도망을 치고 있었다고.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마. 가족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뛰쳐나온 거니까 심각한 일은 아니야.”

너도 가문에서 도망쳐 나온 거냐.

묘하게 네브로의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통성명부터 하지? 난 프레위르 뇨르드 제 팔라렘.”

“팔라렘? 저한테 초월자의 자식이라고 말해놓고 그쪽도 초월자의······.”

“그래서 말했잖아. 이제 네 이름은?”

“저, 전 네브로입니다.”

“네브로? 처음 듣는 이름이네. 성이 없는 걸 보면 그노시스 가문은 맞는 모양이고.”

아이고, 당장이라도 가문의 영향력을 벗어나야 할 놈이 통성명이나 하고 자빠졌네.

하지만 저 엘프의 이름을 들으니 나도 감회가 새로웠다. 팔라렘이라면 라스틸리아의 중요한 조력자 캐릭터인 아이미르의 가문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아이미르가 15대손이었나? 그러면 이 녀석은 몇 대손이지?

“그래서 넌 뭐하는 중이었어?”

“······여행을 다니려고······.”

“여행을 다니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다니려고는 뭐야? 아! 너 집에서 방금 나왔구나?”

엘프, 프레위르의 말에 네브로가 움츠려들었다.

“아니 뭔 말만 해도 그러게 어깨가 좁아지냐.”

“사, 사실 여행보다는 치료가 목적입니다.”

“치료? 무슨 치료?”

“······전 다리를 사용하지 못해요.”

아주 다 말해버려라, 응?

그냥 내가 네 몸속에 있는 거도 다 불어버리지 그러냐.

처음 만난 사람, 아니 엘프한테 구구절절 다 털어놓고 있는 네브로를 보니 경계심 많은 내 입장에서는 속이 답답했다.

“다리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지금은 그러면······.”

“제 능력으로 떠있는 거예요.”

“허, 정말 다재다능한 능력이네. 부모님한테 감사해야겠다?”

“······.”

네브로의 입이 근질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차마 내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와 약속했던 일이기도 하니 당연했지만 지켜보는 나는 한숨이 나왔다.

“그래. 치료를 위해서 여행을 다니는 거면 이미 목적지는 정해뒀겠네.”

“그게······사실은 아직 정확한 목적지가 없습니다. 저를 치료해줄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고······.”

네브로의 자신 없는 말에 프레위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턱을 쓰다듬으며 툭하고 제안을 건넸다.

“나랑 같이 갈래?”

“예?”

“원래는 혼자서 갈 생각이었는데 너 정도 실력이면 그쪽에서도 좋아하겠다.”

“그게 무슨······.”

프레위르가 호탕하게 어깨동무를 해오며 외쳤다.

“다리 고치러 가보자고!”

**

후우웅-!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네브로가 프레위르와 함께 움직인 지 대략 한 달. 도착한 장소는 내가 처음에 말했던 동쪽이었다.

그중에서도 북구로주(北俱盧洲)라 불리는 지역이었는데 솔직히 난 뭔지 모르겠다.

‘여기가 내가 있던 곳이랑 같은 곳인가?’

내가 있던 대륙과 같은 장소인지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아예 다른 곳인가 싶었지만 프레위르가 팔라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 곳이 맞겠지? 싶은 상태였다.

“와아아.”

도착한 북구로주는 동양풍의 장소였다.

운무가 짙게 깔린 유려한 산맥들이 고고한 자태를 뽐냈고 주위로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등이 허공에 띄워져있었다.

붉은 사찰과 절과 비슷한 건물들이 자연과 공존하며 늘어져 있었고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네브로의 격정적인 감정이 내게도 전달되었다.

“여기가 북구로주!”

“어. 우리 목적지지. 구경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따라와.”

프레위르가 앞서가자 네브로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그녀의 뒤를 쫓았다.

프레위르가 이곳까지 네브로를 데려온 이유, 그것은 이곳을 관할하고 있는 초월자의 의뢰 때문이었다.

‘의뢰의 내용이 뭔지는 몰라도 다리를 고쳐줄 확률이 높다고 했지.’

프레위르의 말을 굳이 다 믿을 필요는 없지만 나로서도 이곳의 정보가 없었으니 그녀를 따라서 손해를 볼 건 없었다.

근 한 달간 지켜본 프레위르는 내가 판단하기에도 악한 녀석이 아니었다. 조금 까칠하고 본인 위주이긴 했으나 단점까지는 아니었다.

“저쪽인가?”

앞서 걷던 프레위르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멈춰 섰다.

“알고 계시는 것 아니었어요?”

“나도 여길 처음 와봤는데 어떻게 아냐? 걱정 마. 대충 저기겠지.”

프레위르가 가리킨 곳에는 조금 더 화려하고 큰 건물이 존재했다. 역시나 동양식 건축물이었는데 기와로 된 지붕 위에 해태와 같은 짐승들이 퍼질러 자고 있었다.

-키잉?

유독 그 건물 주위로만 인적이 드물었는데 그런 장소에 프레위르와 네브로가 다가서자 지붕 위에 있던 해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다······.”

유독 동물을 좋아하는 네브로가 해태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기다렸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죠.”

“음? 뭐야, 너 나 알아?”

프레위르가 갑자기 나타난 인물을 향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반응에도 상대는 미소 지은 얼굴로 공손히 답변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문지기인 혜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오실 거라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내가 누군지 알고?”

“프레위르 님 아니십니까? 그리고 그쪽은······.”

자신을 혜각이라고 말한 대머리가 미소 짓느라 실눈이 된 눈을 게슴츠레 떠올렸다. 그 시선은 명백히 네브로에게 향해 있었다.

“들은 바가 없군요.”

“내 일행인데.”

“손님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혜각이 다시 초승달과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건물의 부지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절과 같은 건물들이 대충 수십 채는 넘어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내가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안 거지?”

“붓다 중 한 분이 이런 쪽으로 신통력이 있으십니다. 하하.”

붓다? 부처? 부처님?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내가 벙 찐 상태로 생각에 잠겼을 때쯤, 드디어 건물에 도착했다.

“이곳입니다.”

건물은 겉에 있던 것들과 달리 낡고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네브로를 통해서 느껴지는 안쪽의 기운은 그 어느 곳보다 강렬했다.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까지 안다는 건가?”

“의뢰를 받으러 오신 것 아니십니까?”

“맞아. 알고 있네. 재수 없어.”

굳이 뒷말을 붙일 필요가 있나.

혜각은 밖에서 대기하고 네브로와 프레위르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로 입장하자 외관과 같은 낡은 내부가 우리를 반겼다.

안에는 단 한 명이 존재했는데 비쩍 말라 마치 뼈에 살가죽만 달라붙은 듯한 모습의 고승이 차를 따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긴여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구지?”

“전 싯다르타라고 합니다. 두 분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친.”]

나도 모르게 생각이 의지로 표출되었는데 타이밍 좋게 의지가 통하는 시간이었다.

“천사님?”

네브로가 의아한 감정을 지닌 채 작게 속삭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상대의 정체가 너무나 충격적이라 평정심이 깨지고 말았다.

싯다르타, 흔히 우리가 석가모니라 부르는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

그때 고승의 시선이 네브로에게 향했다.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동자는 보고 있으면 텅 빌 것 같이 아찔했다.

“씨앗.”

“예?”

“예상치 못한 분이 오셨지만, 이것도 다 인연이군요.”

싯다르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의자를 손짓했다.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그 전에 한 가지만. 난 라스틸리온에서 의뢰에 대한 정보를 듣고 여기까지 온 거야. 꽤 은밀한 의뢰로 알고 있는데 내가 그것 때문에 왔다는 것도 알고 있는 거야?”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와 만난 순간 꺠달았죠.”

라스틸리온, 또 아는 단어가 나왔다.

역시 이곳은 내가 알던 대륙인가. 그렇다면 고대 시대에는 이러한 모습이었단 소리군.

네브로와 프레위르가 자리에 앉자 싯다르타도 맞은편에 앉았다. 겉모습만 보면 니켈이 친구라고 불러도 되겠는데.

“의뢰는 간단합니다. 사람 한 명과 물건 하나를 샤이야로 옮기면 되지요.”

“샤이야? 꽤 머네.”

······샤이야 사막.

내가 마지막에 있던 장소였지.

이때는 아마 사막이 되기 전일 거다.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직접 옮기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거야?”

“저희 같은 이들은 속세에 너무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인연이라는 게 있지요.”

“뭐, 우리야 일을 해결해주고 보수만 얻으면 좋으니까. 보수는 준비됐지?”

“어떤 걸 원하십니까?”

싯다르타의 물음에 프레위르가 네브로를 눈짓했다. 마치 먼저 말하라는 태도에 네브로가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다리를 고치고 싶습니다.”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예.”

싯다르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네브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차분히 눈을 마주쳤다.

‘아!’

싯다르타,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시, 싯다르타 님?”

“······운명이란 참 복잡하죠. 옳고 그름의 문제는 항상 어려운 주제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나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유명한 석가모니라면 내가 여기 있는 이유나 다시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또한 모두 인연.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가······.”

네브로가 곤란한 기색으로 옆에 앉은 프레위르를 바라봤다. 그러나 프레위르도 지루하다는 표정을 한 채 차만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나한테 하는 말인가?

“이 다리는 저희의 힘으로 고쳐드릴 수 있겠군요. 다만 강력한 저주라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예, 예······.”

네브로가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멈췄다.

“저, 저주?”

“그렇습니다. 강력하면서도 아주 섬세한 저주, 죽음과 연관된 저주군요.”

“그, 그러면 이건 선천적인 게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선천적으로 저주에 걸려 태어날 수도 있지만 그 주체가 존재함은 확실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에 네브로가 얼어붙었다.

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국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네브로의 다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똑. 똑.

그때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샤이야까지 모셔야할 분이 오셨군요.”

싯다르타가 나직하게 말했다.

네브로는 저주라는 단어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들어온 인물을 확인했다.

“아아······.”

은백색의 머리카락.

오팔빛의 눈동자.

그 신비한 외모에 네브로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의미로 놀라고 말았다.

‘루나?’

그곳에는 루나와 똑같은 외모의 소녀가 천에 휩싸인 기다란 물건을 든 채 서있었다.

< 381화. 복선 회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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