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80화 (380/415)

< 380화. 멸망의 첫 걸음 >

[“일단 이 집구석부터 벗어나라.”]

내가 가장 먼저 제시한 의견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예? 하, 하지만······.”

[“너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두 다리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 중 하나가 네브로의 두 다리였다.

‘초월자가 실존하는 세상에서 다리를 못 고치고 있다니?’

초월자의 힘을 대충 알고 있는 난 왜 네브로가 불편한 몸으로 살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치유와 연관된 초월자만 찾아가도 금세 고치겠구만.

물론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녀석의 가족들이 네브로에게 큰 애정이나 관심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리요?”

[“그래, 강해지는 건 그 다음이야.”]

나는 머리를 굴렸다.

초월자의 대한 정보는 굉장히 희귀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던 것이 아니었다.

‘분명 치유와 연관된 초월자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존재했다.

그들 중 아무나 찾아가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두 다리를 고친다면, 적어도 지금 상태보다는 나아지겠지.

“제 다리를 어떻게······.”

[“당연히 다리를 고칠 수 있는 녀석을 찾아가야겠지. 이를 테면 옥산을 비녀로 꽂은 귀부인이라던가.”]

옥산을 비녀로 꽂은 귀부인은 내가 알기로 서왕모라는 중국 신화의 신이었다. 게임에서는 게임이니까 여러 문화가 섞였겠지 싶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보자고 말할 줄은 몰랐네.

“······마, 말도 안 됩니다. 초월의 격에 이르신 분들께서는 남에게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않아요. 제 가족들이라고 시도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포기하고 있을 거냐? 평생 그러고 살래?”]

내 말에 네브로는 대답 없이 망설였다.

아무래도 나가기 전에 자신감부터 챙겨줘야겠는데.

[“그래, 어차피 이 몸으로 나가서 그런 초월자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겠지. 일단 공부부터 하자.”]

“공부?”

3년간 보아온 이 녀석은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니 당연히 육체적 능력은 없었고, 그나마 마법과 비슷한 능력을 다루었는데 뭔가 어설펐다.

아마 이 시대에는 마법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지기 전인 듯했다.

‘이 세상은 선천적인 힘으로 강해진 이들이 많아 보이지. 초월자들도 그렇고, 뭔가 체계적인 게 없는 분위기다.’

초월자들은, 말 그대로 초월자로 태어난 이들이었다. 검술을 익히거나 마법을 배워서 강해진 것이 아닌 그저 신화적인 존재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학문적으로 정리된 마법은 없어보였다.

[“내가 마법이라는 걸 알려주마.”]

“마법?”

네브로가 고개를 갸웃했다.

과연 이 녀석이 얼마만큼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나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나도 마법을 기초부터 다져왔다, 이 말이지. 게다가 나름 인정받을 만한 논문도 작성했고.’

물론 논문의 8할은 디에네와 루시아가 만든 거지만.

여하튼 난 음흉한 미소를 속으로 지으며 네브로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특훈이다, 애송아.”]

**

시간이 참 빨리 지났다.

내가 네브로의 몸속에 들어온 지도 어언 5년이 지나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튀어나와서 말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조금 불편했지.’

마치 쿨타임이 도는 것처럼 나는 드문드문 네브로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게 순수.”

화르륵-

“이게 이해.”

우웅-!

“이게 모순.”

꽈드득!

내가 마법을 가르친 지 고작 2년.

그 2년 사이에 네브로는 굉장한 속도로 마법을 습득했다.

‘역시 초월자의 핏줄인가.’

영 재능이 없어보였던 네브로였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거치자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속도로 마법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난 네브로에게 세 가지 기원만 가르친 게 아니었다.

“이건 조화.”

윙윙윙!

“이게 제어.”

피잉--!

무려 5가지의 기원을 모두 익힌 네브로는 마법을 마치 제 육체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오리지널 마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이러니할 지경.

[“고생했다.”]

“덕분입니다, 천사님.”

준비는 모두 마쳤다.

오늘은 드디어 출가를 하는 날이었다.

물론 주변에는 전혀 알리지 않은 상황이지.

‘또 무슨 방해를 받으려고. 절대 알리면 안 돼.’

어차피 네브로의 출가를 크게 신경 쓸 사람은 이 집안에 없었다. 5년 동안 방 안에서 두문불출했음에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만으로 증명이 됐지.

네브로도 가문에 대해 큰 걱정은 없어보였다.

실제로 그는 걱정보다 생에 처음으로 나서보는 바깥 세상에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근데 천사님, 제 다리를 고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격이 높으신 분들이 과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저를 고쳐주실까요?”

요 근래 2년 동안 더 알게 된 정보가 있었다.

초월자들이 세상에 실존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로, 그들은 본인들의 힘을 사용함에 있어서 큰 제약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네브로가 다리를 고치지 못한 이유도 그로 비롯된 문제지. 네브로를 위해서 그만한 제약을 감수할 치유 계열 초월자가 있을 리 만무하니······.

[“일단 동쪽으로 가자.”]

“동쪽?”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는 게 내 모토였으니까.

[“너희 가문의 영역은 벗어나야지. 또 무슨 꼬투리를 잡히려고.”]

“하긴, 제가 밖으로 나갔다는 걸 알면 집안의 수치라며 난리를 칠 게 뻔해요. 이왕이면 멀리 가는 게 좋겠죠.”

네브로는 마법을 익힌 뒤로 꽤 자신감이 붙은 모습을 보였다. 처음과 비교했을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천사님, 굳이 다리를 고칠 필요가 있을까요? 천사님께서 알려준 마법이면 그냥 이런 식으로······.”

네브로가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마치 서있는 것처럼 땅을 디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때요?”

마법을 가르치며 보낸 2년 동안 알아낸 또 다른 정보.

[“강해지고 싶은 거 아니었냐?”]

“······맞습니다.”

[“난 검술도 가르쳐줄 수 있다. 그리고 넌 검을 익힐 수 있지. 그 두 다리만 멀쩡하면 말이야.”]

네브로는 마나의 구분이 없었다. 그렇기에 마법과 검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체질이었다.

초월자의 핏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네브로가 특별한 건지는 따로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왕 배울 수 있는 거면 가르쳐야지.

‘적어도 사마엘이 인정할 정도는 돼야한다. 그게 목표니까.’

초월자를 뛰어넘는다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렇지만 고작 마법 하나로 사마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면······글쎄다.

사마엘의 인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네브로의 현재 목표는 그의 인정이었다.

“배워야죠.”

[“근데 왜 딴소리야. 그새 마음이 놓이냐?”]

“죄송합니다. 그냥 농담 한 번 해봤어요.”

네브로가 마법을 풀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웃었다.

전혀 농담을 못할 것 같은 놈이 농담을 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슬슬 시간이 다됐군.’

난 점차 의지를 유지하는 시간이 사라지는 걸 느끼고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첫 번째 목표는 우선 가문의 영역을 벗어나는 거다. 다시 돌아오는 건 다리를 고치고, 네가 만족할 만큼 실력을 쌓은 뒤다.”]

“알겠습니다.”

[“난 이만 들어가 본다. 조심해서 행동하고,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예, 천사님.”

그건 그렇고 내 말은 잘 따라주니 다행이었다.

나였으면 갑자기 말을 걸어온 괴인을 의심부터 하고 봤을 텐데.

‘······그만큼 의지할 인물이 없었던 걸 수도.’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끼익-

네브로의 시야를 공유하는 나는 어딘가 어설픈 네브로의 탈출을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후우.”

네브로도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마법을 사용해 조심조심 가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심장 고동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운 밤이었다.

“나, 나왔다.”

신전과 같은 외형의 보금자리를 나오자 처음 보는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왔다.

‘같은 곳인가?’

내가 있었던 대륙과 같은 장소인지 조금 의문이었지만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동쪽······동쪽으로 가라고 하셨지.”

혼자 중얼거린 네브로는 자신의 몸을 허공에 살짝 띄운 채 유영했다. 그 속도가 걷는 것과 비슷했지만 살짝 답답함을 느꼈다.

“와아아······.”

녀석이 느린 이유는 단순히 주변 구경으로 정신이 팔려서였다. 새벽이라 그런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불빛 한 점도 없는 거리였지만 네브로는 그저 입을 벌린 채 돌아보고 있었다.

‘평생을 저 신전 같은 곳에서 지내왔으니······.’

이해는 하지만 아직 시야에 들어오는 네브로의 가문을 보며 마음이 급해졌다.

여유가 넘치는구먼, 애송이.

짜악!

그때 네브로가 자신의 두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야해.”

그래, 그거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네브로를 보며 나는 쾌재를 불렀다.

“밤은 위험하다고 했어. 악귀망령들이나 티폰, 가름들이 나타나는 시간이니까······.”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네브로를 보며 뭔 소리지 싶었다. 밤에만 나타나는 몬스터라도 있는 건가?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없는 거고?

나는 그런 정보를 알지 못했기에 그냥 들키지 않을 만한 밤에 나가라고 했던 건데 조금 불안하게 됐다.

‘내가 아는 정보는 네브로가 5년 동안 겪은 게 전부다. 이 녀석이 주변하고 교류를 안 하니까 정보를 얻을 구석이 없었어.’

왠지 불안한 감정이 생기는 가운데, 네브로가 드디어 마을의 경계선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촤아악-!

-구어어억!

그리고 경계선 밖으로 나오자마자 풍경이 뒤바뀌며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당황한 네브로가 주변을 급히 살피며 소음의 근원지를 확인했다.

쇄애액-!

스걱!

그곳에는 달빛을 받아 찬란한 빛을 뿌리는 은빛 검을 든 검사가 괴랄한 외형의 괴물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숫자가 많은데.’

검사가 고군분투했지만 주변에 존재하는 괴물들은 수십 마리가 넘어 위태롭게 보였다.

“어, 어쩌지?”

실전 경험이 전무한 네브로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 그런 네브로를 발견한 검사가 황당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넌 뭐야! 위험하니까 다시 돌아가!”

여자였네?

입고 있는 옷이 두터워 알 수 없었는데 목소리는 명백하게도 여성의 그것이었다.

“도, 도망······.”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네 집으로?”]

나는 의지를 쥐어짜내며 소리쳤다.

[“맞서 싸워라. 사마엘은 저딴 괴물들을 손짓 한 번에 정리할 만큼 강하다. 그런 사마엘의 인정을 받는 게 네 목표 아니었어?”]

“하, 하지만······.”

[“네 자신을 믿지 못하겠으면 나를 믿고, 그런 내가 알려준 네 마법을 믿어라.”]

네브로의 떨림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용케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가라, 네브로.”]

“으윽!”

마나가 모였다.

동시에 어두웠던 세상을 밝히는 거대한 화염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아아······?”

네브로에게 소리쳤던 여검사는 갑작스런 화염구의 등장에 놀란 기색을 띄우며 급히 물러났다.

“저, 전 천사님을 믿습니다!”

화르륵--------!

태양이 손 안에 들어온다면 이러할까.

웬만한 상급 마법보다 강력한 화염구가 이글거리며 떠올랐다.

‘역시 이 녀석은······.’

네브로는.

마법의 천재였다.

콰아아앙----------!

쏟아져 내린 태양이 지상을 덮쳤다.

그 와중에 마나를 절묘하게 제어한 네브로는 여검사에게 피해가 없도록 조절했다.

치이익--

화르륵!

괴물들이 들끓던 숲이 환해졌다.

마치 불지옥이 지상에 현현한다면 이러한 모습일까.

“이게 무슨······.”

단 한 방.

수십이 넘는 괴물들을 쓸어버리는 데는 고작 하나의 마법으로 충분했다.

“······넌 대체 뭐지? 초월자인가?”

“예, 예? 아, 전, 그게······.”

달빛과 환한 불길에 의해 드러난 여검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엘프였다. 그리고 그런 엘프의 물음에 네브로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 380화. 멸망의 첫 걸음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