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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73화 (373/415)

< 373화. 사막의 움직임 >

검은 전갈 부족 인근에 위치한 붉은 여우 부족의 족장은 갑작스런 통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이 오셔서 교류회에 불참한다고?”

“그렇습니다.”

“허어.”

붉은 여우의 족장 뮬라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마눔이 대신 소리쳤다.

“지금 그게 교류회를 코앞으로 두고 전할 내용인가?!”

“죄송합니다.”

검은 전갈 부족에서 온 사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은 마눔이 씩씩대자 족장인 뮬라치가 나섰다.

“그만하거라. 손님이 오셨다는데 어쩔 수 없지.”

“이런 무례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부족뿐만 아니라 사막에 존재하는 모든 부족이 준비해온 큰 행사인데······.”

마눔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사자가 고개를 수그렸다. 그 모습을 잠시 살핀 뮬라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나 중요한 손님이기에 교류회를 불참한다고 하는 건지 궁금하긴 하군. 분명 4년 만에 개최되는 교류회보다 중요하신 분들이어야 할 텐데.”

“그, 그것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사자를 향해 마눔이 눈을 부라렸다. 이내 그가 호통을 치려 숨을 들이마실 때, 붉은 여우 족장의 수하 중 하나가 급히 다가왔다.

“뮬라치 님, 중요한 소식입니다.”

“무엇이냐.”

“중립 지대인 퉁가이 마을에 살렘 예디디아를 비롯한 루나 펜드래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뭣?”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뮬라치가 당황했다. 동시에 그 이름들을 들은 검은 전갈의 사자가 움찔거렸다.

“네놈, 설마······.”

마눔이 마침 그 모습을 발견하고 손가락을 들었다.

“중요한 손님이라는 말이 방금 나온 그자들을 뜻하는 건 아니겠지?”

“그분들이 맞습니다.”

결국 사자가 시인하자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아니, 검은 전갈 측에서 어찌 그런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었던 것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저도 자세한 사항은 모릅니다. 그저 교류회 참석 건으로 불참한다는 내용을 전달하라고 밖에······.”

사자가 말끝을 흐리자 다혈질인 마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이놈! 감히 이곳에서 거짓을 고하려 드느냐!”

“사, 사실입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도 어찌 그런 쟁쟁한 분들을 초대했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사자가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하는 말에 마눔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아무리 봐도 그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다른 부족들에게도 소식을 전달하러 갔겠지?”

“그렇습니다.”

“알았다. 일단 확인했으니 돌아가거라.”

뮬라치의 축객령에 사자는 다급히 퇴장했다.

이윽고 침묵이 내려앉은 방 안에는 뮬라치와 마눔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 어떻게 합니까?”

마눔이 슬쩍 입을 열었다.

하지만 뮬라치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흐음, 일이 꼬였군.”

그때 방의 사각에서 갑작스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 크랙 님. 계셨습니까?”

마눔이 당황한 눈초리로 자신의 아버지를 곁눈질한 뒤 인사를 건넸다.

나타난 인물은 인간이 아니었다.

수북한 털이 온몸을 덮고 있는 늑대의 외형을 한 수인이었다.

“죄송합니다, 크랙 님.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검은 전갈은 빠지게 되었습니다.”

“나도 듣고 있었다. 뭐, 하나쯤 빠진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겠지. 오히려 문제라면 방금 전에 말이 나온 그놈들이야.”

크랙의 눈이 호박빛으로 번들거렸다.

그 원초적인 살기에 뮬라치가 마른침을 삼켰다.

“왜 하필이면 그 녀석들이 지금 이 시기에 샤이야 사막을 방문했을까. 게다가 살렘 예디디아와 루나 펜드래곤은 유명한 흑마법사지.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그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좀 의외지만.”

“설마 저희의 계획을 눈치 채고······?”

“뭔가 냄새를 맡은 건 틀림없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으니 검은 전갈 쪽으로 간 거겠지.”

크랙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은밀하게 몸을 감췄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묘한 은신술에 마눔이 감탄하고 있을 때, 크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일단 검은 전갈은 놔둬라. 대신 항상 경계하고 그들의 동태를 살피도록.”

“확인했습니다.”

크랙이 사라지자 뮬라치는 곧바로 자신의 수하를 방으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검은 전갈을 감시할 인원들이 필요하다. 어차피 소문이 다 퍼져서 저들도 감시당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너무 각 잡고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정보만 얻으면 충분해.”

“살렘 예디디아와 그 일행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들의 일정과 동태를 확인해라. 혹시라도 다른 부족을 방문한다거나, 아니면 다른 부족이 방문하게 되면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고 나가는 수하의 뒷모습을 보던 마눔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제가 직접 확인하러 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음?”

“아버지 말씀대로 어차피 살렘 예디디아가 사막에 왔다는 사실은 이미 전 부족에 퍼졌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방문한다고 해도 검은 전갈 측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겁니다. 의도가 뻔하니까요.”

“의도가 뻔하다는 사실을 역이용해서 다른 정보를 캐내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 역할에는 족장의 아들인 제가 적격이라 생각되고요.”

마눔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뮬라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혹여나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말거라.”

“물론이죠.”

쿵!

콰장창!

마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소음이 일었다. 뮬라치는 그 소음이 교류회 준비로 인한 거라 생각했지만 이내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표정이 변해갔다.

콰직!

와르르- 콰장!

“밖에 무슨 일이냐!”

마눔이 방의 문을 활짝 열며 소리쳤다.

그러나 대답 대신 날아온 것은 누군가의 몸뚱아리였다.

“억!”

날아온 누군가와 부딪혀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마눔을 보며 뮬라치가 만곡도를 뽑아들었다.

“이, 이게 무슨······!”

그러나 문을 부수며 자신의 아들과 엉켜 들어온 인물을 확인한 뮬라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크랙 님?”

마눔을 향해 날아왔던 인영은 다름 아닌 조금 전에 나갔던 늑대 수인, 크랙이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듯 눈을 감은 채 자빠져있었으며 마눔은 그런 크랙을 자신의 몸 위에서 밀어냈다.

“크윽.”

“괜찮느냐?”

“뼈가 좀 부러진 것 같습니다.”

마눔이 갈비뼈를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큼 강하게 날아왔다는 증거였는데 인간과 비교도 안 되는 근골격을 가진 수인을 그런 힘으로 날려 보낸 인물이 짐작되지 않았다.

“꿀꺽.”

뮬라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크랙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문 근처로 다가갔다.

“아, 인사가 조금 거칠었네요. 문을 부순 건 죄송합니다.”

그때 갑자기 한 인영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 누구냐!”

“처음 뵙겠습니다. 전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마침 오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혹시 주인 되시는 분인가요?”

“아, 아드리아스?!”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뮬라치의 입이 벌어졌다.

“그, 그대가 어째서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사실 붉은 여우 부족에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그쪽에 볼일이 있어서요.”

아드리아스가 자빠져있는 크랙을 턱짓했다.

그러자 마눔이 비척비척 일어나며 눈을 부라렸다.

“감히 족장의 거처에 함부로 들어오다니! 네놈이 제아무리 이름 있는 자라고 해도 예의가······.”

“씬의 하수인이나 자처하는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는 듣기 싫군요.”

씬.

그 단어가 나오자 마눔은 합죽이가 되었다.

그리고 뮬라치는 도대체 아드리아스가 그 정보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불안해하며 몸을 떨었다.

“그,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씬의 하수인이라니요?”

갑자기 태도가 공손해져버린 뮬라치를 보며 아드리아스가 살며시 웃어줬다.

“그렇게 발뺌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다 알고 왔거든요. 마침 증거가 눈앞에 있네요.”

“저,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 수인이 누군지도 몰라요!”

뮬라치가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나 마눔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쩌저적!

“억?”

“뽑으면, 죽습니다.”

어느새 마법이 발동되어 마눔의 손이 검과 함께 얼어버렸다. 깨닫지도 못할 만큼 빠르고 은밀한 마법의 사용에 뮬라치와 마눔은 다시 한 번 상대가 워록임을 깨달았다.

“크윽! 뽑게도 안 해줄 거면서 뽑으면 죽는다고 하다니, 전사의 명예도 모르는 놈!”

“개죽음 당하고 싶으시다면 바로 마법을 풀어드리지요.”

“······.”

아드리아스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건드리며 말하자 마눔의 입이 다물어졌다.

“말했지만 전 여러분들에게 용건이 있어서 온 게 아닙니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알아서 제 할 일만 하고 사라져드리죠.”

아드리아스의 말에 뮬라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음대로 하시지요.”

아드리아스가 크랙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마눔은 저도 모르게 가까워져 오는 아드리아스를 피하며 뒷걸음질 쳤다.

“윽.”

자존심이 상한 마눔이 신음소리를 내었지만 아드리아스는 그의 존재 따위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얼굴로 크랙을 어깨에 걸쳐 멨다.

“더럽게 크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교류회도 열심히 하세요. 괜히 이상한 거 꾸미지 마시고.”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아드리아스를 보며 뮬라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니라 꿈이길 바라는 것처럼.

“다시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제 자비도 여기까지 입니다.”

그러나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뮬라치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뜨자 어느새 면전에 다가온 아드리아스가 차가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 물론입니다.”

“만약 여기에, 제가 아닌 살렘이나 다른 이들이 대신 왔으면······.”

그 뒤는 상상에 맡겨보라는 듯 말을 흐린 아드리아스가 이내 문 밖으로 나갔다.

“허억, 허억.”

뮬라치가 막혀있던 숨이 풀린 것처럼 거칠게 호흡을 내뱉었다. 어느새 마눔도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골랐다.

“도, 도대체······.”

뮬라치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조금 전의 일을 되새김질했다.

돌아간 줄 알았던 크랙이 처참하게 쓰러진 채 갑자기 나타난 아드리아스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그 아드리아스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자신들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살렘 예디디아가 왔었으면?’

살렘의 악명은 유명했다.

아마 자신의 계획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으면 굳이 살려두지 않고 죽였겠지.

“계획을······알고 온 거겠죠.”

“그렇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의 말대로 자중해야겠어.”

아무리 씬이 두렵다고 해도 당장 눈앞으로 들이닥친 재앙들이 더 무서웠다.

아드리아스 크롬웰만 해도 저리 무서울 진데 악명 높은 흑마법사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조, 조용히 넘어가자꾸나.”

“씬에서 보복이 들어오지 않을까요?”

“마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말을 못했지만 미친 것도 아니고 왜 함부로 나선 것이냐! 보복? 보오복? 지금 씬 따위가 중요한가! 씬이 사막에서만 힘을 쓰는 녀석들이라면 살렘 예디디아, 아니 저 분들은 대륙 단위로 노는 분들이다! 커헉!”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열변을 토해내던 뮬라치가 뒷목을 잡고 넘어갔다.

“아, 아버지! 크윽!”

그런 뮬라치를 향해 달려가던 마눔이 인상을 찌푸리며 갈비를 잡았다.

붉은 여우의 수난이었다.

< 373화. 사막의 움직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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