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화. 복속 >
안젤라를 퀸으로 만드는 방법은 별 것 없었다.
루시펠 성 안에 존재하는 모든 직계 뱀파이어들을 그녀의 피로 복속시키는 것.
‘말로는 쉽지만 결국 모두 제압해야 가능한 일이지.’
집회가 있었다면 아주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을 거다. 누가 누구 피에 물들여졌는지도 서로 모른 채 광란의 전투를 펼치게 되었을 테지만······.
“가능하겠어?”
“물론이죠.”
이제는 그냥 안젤라를 제외한 모든 뱀파이어를 공격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안젤라의 수하들도 있었지만 새 발의 피와 같은 숫자라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명분은 이미 생겼군요.”
“그렇지. 안 그래도 바토리, 그 녀석을 가장 먼저 죽이고 싶었는데 잘됐어.”
안젤라는 내가 모든 뱀파이어를 복속시키자고 말했음에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생각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 나름대로 계획이 있겠거니 싶었다.
“바토리라는 뱀파이어는 복속시키지 않고 죽이실 생각입니까?”
“에엑? 걔를 내 수하로 만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싫으면 차라리 수하로 만들어서 괴롭히는 게 낫지 않습니까.”
내 말에 안젤라는 호오? 하는 표정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그럴 듯해. 그거 괜찮은데?”
“혼자서도 자신은 있지만 이왕이면 쉽게 가는 게 저도 좋거든요.”
무려 직계 뱀파이어의 전력인데 버리게 되면 아깝지.
뭐, 죽여도 다시 언데드로 부활시키면 그만이지만.
“내가 왜 그렇게 바토리를 싫어하는지 알아?”
“그 자가 당신을 배신한 동족입니까?”
“오오? 똑똑한데?”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질문을 해놓고 똑똑하다고 말하니 웃겼다.
“맞아. 그 년이 내 뒤통수를 깠지. 덕분에 뒤통수가 시원해. 하하!”
“왜 배신을 당한 거지.”
비비안이 덤덤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 비비안을 안젤라가 한 차례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글쎄? 아마 별 이유는 아니었을 거야. 그냥 내가 혼혈이라 마음에 안 들었나보지.”
“혼혈?”
오,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실 카론에게 붙잡혀있을 때도 입을 연 적이 없으니 뭔가를 들을 건덕지도 없었지만.
“난 인간 혼혈이야. 아빠는 누군지 몰라. 궁금하지도 않고. 뭐, 퀸을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는 싶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낳았냐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안젤라를 보며 비비안이 슬쩍 다가갔다.
“혼자구나.”
“뭐?”
“아니야, 아무것도.”
슬쩍 비비안의 눈치를 보니 안젤라에게 동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도 순탄하지는 않았지.
안젤라는 그런 비비안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까?”
“일단 명분이 있는 만큼 바토리라는 뱀파이어의 세력을 먼저 흡수하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좋아!”
“지금 바로.”
“······지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금.”
**
바토리의 세력은 성 내부 중앙에서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의 내부가 워낙 넓다보니 가는 길도 한참 걸렸는데, 난 마법을 사용해서 모두를 은밀하게 감췄다.
“근데 정말 이렇게 세 명으로 되는 거야?”
길을 가던 안젤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젤라의 기억 속의 나는 여전히 비리비리한 학생의 모습일 테니 당연한 의문이겠지.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왜 아무 의심도 없이 따라나선 겁니까?”
“넌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
진화를 말하는 건가.
그녀의 입장, 아니 이 세상의 사람들 눈에는 확실히 이상한 힘이긴 하지.
마법도 아니고 고대 아티팩트의 힘도 아닌 영문 모를 힘.
‘시스템의 힘이라······.’
지옥에서 석가모니를 만났을 때 그가 뭔가를 안다는 식으로 말했었지.
아마 시스템도 일종의 초월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진화나 이 모든 시스템들이 한 초월자의 힘이라는 이야기였다.
섬뜩!
순간 묵시록의 기수들이 떠오른 건 왜일까.
그들도 사실은 초월자에 의해 이 세상으로 보내진 존재들이었고, 그렇게 따지면 결국 나와 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아드리아스?”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비비안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민은 일단 미룬다.
지금은 안젤라를 퀸으로 만들고 죄악을 얻는 게 먼저.
어느새 우리는 바토리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뱀파이어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내 그림자 마법은 워록이라는 명성을 다시 증명했다.
“바로 덮쳐?”
“바토리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저 건물에 있겠지, 뭐.”
안젤라가 가리키는 건물은 이 영역에서 가장 화려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바토리가 거처할 법한 외형에 이들이 얼마나 안전에 대해 불감한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공격당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군.’
안젤라도 그런 건 마찬가지였지만 애초에 그녀는 노려질 만큼 세력이 눈에 띄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네 마법이 대단해도 바토리의 거처에서는 들킬 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선빵이 중요하겠지.
나는 그림자 마법으로 몸을 숨긴 채 은밀하게 마법을 준비했다. 강대한 마력이 내 몸을 휘감아들며 이내 최상급 흑마법이 준비되었다.
“음?”
아무리 은신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강대한 마력의 흐름을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모를 수가 없었다.
“뭐지?”
“이 마력은······.”
그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나는 비비안과 안젤라를 향해 말했다.
“제 마법이 떨어지면 비비안은 곧바로 주변의 뱀파이어들을 처리해주십시오. 아마 정신이 없어서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안젤라는······.”
“내가 알아서 할게.”
"예, 맡기겠습니다."
이내 바토리가 머무를 법한 건물 주위로 마법진이 그려지며 마법이 시전되었다.
‘악의 구덩이.’
구와아아악------!
건물 밑에서 마치 그림자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아가리가 나타나며 그대로 집어삼켰다.
콰직----!
“적이다.”
보이지 않던 뱀파이어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첫 타격은 예상했던 대로 정확히 먹혀들었다.
으드득!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내 마법에 빨려 들어가며 몸이 분쇄되었다. 과연 흑마법, 그 중에서도 최상급 마법다웠다.
쇄애액---!
동시에 비비안이 치고 나가며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바람보다 빠르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그 움직임은, 지켜보던 안젤라마저 놀랄 정도였다.
“이야, 둘 다 내 예상 밖인데?”
“안젤라도 좀 보여주시죠.”
“그럼!”
안젤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실망시키지 않을게.”
콰앙!
그녀가 땅을 박차자 바닥이 부서졌다.
그와 함께 옅은 핏줄기가 사방으로 뻗치며 안젤라가 지나가는 경로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산산조각 났다.
“아하하하하!”
광기 어린 폭소를 터트리며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자 카론의 연구실에서 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싶었다.
“아드리아스.”
임무를 마친 비비안이 내게 다가왔다.
“저희 목표는 안에 있는 대장입니다.”
“알았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살기가 터져 나왔다.
“감히······누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담긴 분노와 살기만큼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여, 바토리.”
“안젤라, 이 개 같은 잡종년이!”
표독스러운 표정의 뱀파이어 하나가 안젤라를 보며 치를 떨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마력을 뿜어냈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저걸 죽이면 되는 거지?”
비비안은 그런 바토리의 살기에도 전혀 아무렇지 않게 물어왔다.
“예.”
후웅-!
내 말을 들은 비비안이 순간이동을 하듯 순식간에 바토리의 면전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난무.
파바바바박!
검술의 폭격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 모든 검은 상대가 만들어낸 핏빛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꼴에 한 수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결국 인간······.”
바토리가 두 눈을 부릅뜨며 웃었다.
“꺼져라.”
퍼억!
굵은 핏줄기가 주먹의 형태로 비비안에게 꽂혔다. 다행히 검면으로 공격을 막은 비비안은 저 멀리 떨어져 착지했다.
“흐읍!”
그 사이에 도착한 안젤라가 온몸에 핏빛 실선을 매단 채 바토리에게 도달했다.
“넌 나를 봐야지!”
“흥, 상대할 가치도 없는 잡종 따위가.”
“그래, 그 잡종한테 한 번 맞아봐라.”
퍼엉-------!
보호막이 출렁였다.
그리고 그 충격은 보호막 뒤에 있던 바토리에게까지 닿았는지 그녀의 작은 신형이 날아갔다.
‘이게 바로 직계 뱀파이어의 힘.’
비비안조차 뚫지 못한 보호막을 무시하고 그대로 공격을 때려 박은 안젤라가 웃으며 팔을 붕붕 휘둘렀다.
“처음이지? 내 주먹에 맞아본 거. 예전이랑 다를 거야.”
피식-
그러나 바토리는 웃음을 흘리며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겉보기에도 전혀 피해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봤자 결국 잡종. 너 따위가 나를······.”
“빨리 끝내야겠군요.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의 구경은 끝이었다.
역시 직계 뱀파이어들은 강했고······.
······그저 딱 내 예상대로였다.
“인간, 주제 파악을······.”
우웅--
검은 아공간 너머로 니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바토리가 말을 하다 말고 그대로 굳은 채 니켈을 바라봤다.
“아?”
뭔가를 느낀 걸까. 확실히 직계는 다르네.
“와아······.”
안젤라도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니켈을 바라봤다.
“자신만만하던 이유가 있었구나! 우리 아드리아스는 다 계획이 있었어!”
그렇게 거창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니켈.”
스릉-
니켈이 검을 뽑고 천천히 바토리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그런 니켈을 향해 바토리가 수십 가닥의 핏줄기를 주먹의 형태로 만들어 날렸다.
스윽!
그러나 니켈은 가볍게 피하거나 베어주며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검은 닿은 모든 것을 흩뜨렸다.
파사삭!
“오지 마!”
푸화아악!
사방이 피로 물들었다.
바토리의 본 실력이 드러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안 되지.
-가라앉아라.
입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언령 마법이 시전되었다. 사방으로 솟구치려하는 바토리의 혈마법이 그대로 엉켜버렸다.
“······뭐?”
혈마법이 멈추자 그녀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손까지 떨고 있었다.
“흐흐, 이건 내가 잘 쓸게.”
바닥으로 흩뿌려진 피가, 곧 안젤라의 명령을 듣고 움직였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피가 뭉치며 안젤라의 몸을 덮었다.
“이게 바로 혈무장이다! 아드리아스! 저 녀석 잠깐 멈춰봐! 내가 팰 거야.”
피의 갑주를 입은 안젤라가 사악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바토리, 이 개 같은 년아. 너 때문에 내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하다.”
퍼어엉-----!
가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안젤라의 주먹이 멍하니 서있는 바토리에게 적중했다. 공격은 한 번 시작되자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퍼버버버벅!
“속 시원해!”
싸움은 이미 끝난 듯싶었다.
나는 다가오는 비비안을 느끼며 니켈을 역소환했다.
“안 말려도 돼?”
“글쎄요.”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안젤라의 광분을 지켜보았다.
< 363화. 복속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