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화. 죽음의 청기사 >
두근!
분수대 위에 떠오른 짙은 청색의 꽃봉오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외형을 하고 있었다.
토벌대의 선전포고로 인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피신을 떠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이들이 의아함을 지니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피하거라.”
그림자 속에서 순식간에 나타난 이자벨이 사람들을 향해 경고했다.
“위험한 물건이다.”
이자벨을 과수원의 주인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심상치 않아 보이는 꽃봉오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졌다.
“신기한 아이구나.”
사람들을 물린 이자벨은 마치 썩은 듯 보이는 꽃봉오리에 다가서며 말했다.
“넌 뭐하는 애니?”
그때,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죽음의 향기가 피어났다.
코를 찌르는 시체 냄새에 이자벨은 미간을 찌푸리며 곧바로 손을 찔러 넣었다.
푸욱!
앞뒤 재볼 것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살수를 날린 이자벨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에 급히 손을 빼내고 뒤로 물러났다.
“이건······.”
그녀로서는 너무도 익숙한, 동시에 잊을 수 없는 기운이 침식해 들어갔다.
[“오너라.”]
강렬한 의지와 함께 뜻밖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것은 아이의 목소리였다.
‘이건······안 돼.’
이자벨은 표정을 관리했지만 좁혀지는 미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녀를 평생 동안 지독히도 괴롭히던 기운.
‘죽음에서 추락하는 자’의 기운이었다.
아직까지도 아드리아스의 도움을 받아 저주를 해제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저주와 관련된 무언가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오너라.”]
다시 한 번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만개한 꽃봉오리 속에서 멍이 든 것과 같은 시퍼런 피부의 아이가 걸어 나왔다.
존재만으로 주변을 진동시키는 기세가 분수대를 부수고 땅을 갈랐다.
푸화아악!
솟아오른 물줄기가 이내 썩은 물이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밥값을······.’
이자벨은 무력해지는 몸을 느끼며 애써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눈꺼풀이 무너져 내렸다.
털썩!
‘아?’
쓰러지는 자신을 누군가가 받아든 것을 확인한 이자벨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구나.’
붉은 피부의 적기사, 제롬이 자신을 받치며 서있었다.
하필이면 자신의 저주와 관련된 인물을 만난 것에 한탄하며 이자벨은 자신의 손가락을 뜯었다.
‘비록 나는 잠들지만······.’
피가 터져 나오며 짙은 혈향이 피어올랐다.
최악의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느낀 그녀는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오너라.”]
[“청기사?”]
순간 주변이 정적으로 휩싸였다.
작은 소년의 모습을 한 죽음의 청기사는 제롬을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전쟁?”]
[“난 전쟁이라고 불린 건가.”]
제롬의 중얼거림은 이어지지 못했다.
소년이 나타난 꽃봉오리는 이내 청색의 망아지가 되었다. 작은 망아지를 탄 소년은 곧바로 제롬에게 달려들었다.
[“적기사!”]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여긴 제롬은 이자벨을 한 손에 받친 채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움직인 그는 얼굴을 굳히며 소년을 경계했다.
[“다가오지 마라.”]
[“적기사?”]
소년이 의아한 눈빛으로 제롬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서 소년이 자신을 알고 있음을 직감한 제롬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를 알고 있나?”]
[“어째서? 적기사, 어째서?”]
[“날 알고 있냐고 물었다.”]
제롬의 물음에 소년이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적기사? 기억 못해?”]
[“그래.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아······.”]
깊은 탄식이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곧이어 소년의 큰 눈망울에서 눈물방울이 커다랗게 만들어졌다.
“뭐야!”
때마침 나타난 루나가 삿대질을 하며 푸른 소년을 가리켰다.
“네가 우리 이자벨을 건드린 거야?”
[“루나, 위험하다.”]
제롬은 이자벨을 루나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곧바로 손짓하며 그녀가 물러나기를 종용했다.
[“내가 막겠다.”]
[“막아? 날?”]
소년의 의문 섞인 음성이 나왔다. 이내 소년의 의문은 거대한 분노로 변해 주변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적기사, 왜 날 막으려는 거야. 왜······.”]
[“네가 뭘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들을 지킬 거다.”]
스릉-!
제롬의 오른검이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빛을 뿜었다.
[“그러니까 말해. 날 기억하고 있냐고. 난 도대체 누구였고, 뭐였던 거지?”]
[“적기사, 우리는······.”]
우우우웅!
콰아아앙-----!
허공을 수놓은 별과 같은 마법들이 소년을 향해 떨어졌다. 강력한 마법은 이내 닿은 모든 물체를 소멸시키며 강력한 중력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루시아!”
마법을 사용한 디에네는 곧바로 루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어느 건물 위에 서있던 루시아는 준비된 마법을 사용했다.
‘오리지널 마법.’
지난 3년.
루시아는 포트리온에서 워록들과 함께 지내며 포션만 만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녀는 언젠가 살렘에게 얻은 영감을 비롯해 아드리아스를 통해 겪은 경험과 자신의 재능을 더하여 자신만의 마법을 창조해냈다.
수우웅!
공기가 말려들어갔다.
그리 많지 않은 마나였지만 그 안에 담긴 온갖 계산과 마법적 장치들이 빛을 발했다.
‘저격.’
은밀하지만 강력한 한 방.
그녀의 손끝에서 마치 물방울과 같은 마나가 모여 이내 가볍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톡!
유형화된 물방울 모양의 마나는 중력을 거스르며 바닥에 닿지 않았다. 대신 빛의 선을 그리며 그대로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피잉-
뒤늦게 울리는 소음과 함께 디에네가 만든 중력장이 무언가에 의해 붕괴되었다.
콰아아앙-------!
파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 푸른 소년이 있던 중심부에서 터져 나왔다.
‘세 가지 기원, 그중에서도 순수의 극한. 설마 루시아가 오리지널 마법을 창조했을 줄이야.’
디에네는 그 압도적인 광경에 저도 모르게 전율을 느꼈다.
자신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따지자면 가문의 오리지널 마법을 익히기에도 벅찼다. 그러나 루시아는 자신만의 마법을 창조해 강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 죽일 거야.”]
그러나 파괴로 인한 연기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디에네는 안색을 굳혔다. 분명 완벽한 마법의 연계로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만들었는데······.
“맞고도 멀쩡하다니.”
디에네가 하고 싶었던 말을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이내 연기의 틈에서 시퍼런 마나 줄기가 솟구쳤다.
[“우린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나온 거야. 그런데 어째서!”]
분노에 가득 찬 고함과 함께 소년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마나 줄기가 낫의 모양으로 변하며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걸 부쉈다.
콰르릉!
[“형! 나랑 돌아가기로 약속했잖아!”]
[“형?”]
갑자기 터져 나온 소년의 말에 제롬이 되물었다. 그러나 소년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피해!”
루나가 강림을 사용하며 건물 위에 있던 루시아를 안아들었다. 디에네도 공간 이동을 사용하며 낫의 범위에서 물러났지만 소년의 낫은 점차 크기를 키워가며 위압감을 드러냈다.
콰아앙!
[“아?”]
그런 소년의 낫을 붉은 검이 막아냈다.
제롬은 소년을 보며 말했다.
[“더 이상 부수지 마라. 모두 내 소중한 사람들의 지인이다.”]
[“소중한 사람들? 어째서?”]
[“나야말로 묻고 싶어. 형이라니? 돌아간다는 건 무슨 소리지?”]
제롬이 물었지만 소년은 답답한 표정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알고 싶다. 왜 이 세상을 꼭 멸망시켜야 하는 거지? 그냥 너도 나처럼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나야말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난 여기서 행복이라는 걸 배우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어. 너도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어떻게 형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강렬한 기세가 터지며 낫 모양의 오러가 개수를 늘려갔다. 동시에 주변이 스산해지더니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
유령들의 노래.
죽음의 청기사가 드디어 제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너라.”]
마치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리는 청기사의 말에 땅이 들썩거렸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죽은 것들이 그의 명령에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콰드득!
벽돌로 된 마을의 땅들이 부서졌다.
그 안에서 하얀 백골이 튀어나오며 이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흐읍!”
루시아와 이자벨을 안전하게 피신시킨 루나가 오관의 강림을 준비했다.
“루시아, 이자벨을 지켜!”
“언니······.”
“곧 있으면 밖에서 싸우던 사람들하고 할아버지가 올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후와앙!
오관이 강림했다.
검은 안대를 쓴 오관은 루나의 뒤에 강림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옥보다 더욱 지옥 같은 기운이구나.”
감히 지옥의 대왕조차 혀를 내두르는 강렬한 청기사의 기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부식되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만해라, 청기사.”]
[“형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형이 어떻게!”]
제롬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늘어난 낫들을 상대했다. 이전에 싸웠던 흑기사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에 몸 곳곳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치이익-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제롬의 몸은 금방 재생했다.
‘할만하다.’
버틸만하다고 느낀 제롬이 이내 몸을 움직이려 하자······.
터억!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것은 새하얀 백골이었다.
퍼억!
그 잠깐의 멈춤이 곧 커다란 실책으로 다가와 제롬은 자신의 팔이 뜯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불에 대인 것 같은 통증이 온몸을 감쌌지만 날아간 것은 검이 달리지 않은 왼팔이었기에 개의치 않고 움직였다.
[“난 지키겠다.”]
비록 얼마 되지 않은 이곳 사람들과의 생활이었지만 그는 깨달은 게 있었다.
[“네가 왜 억울해하는지 몰라도 난 반드시 이곳을 지켜 보이겠다.”]
행복은 소소한 곳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행복이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화르륵!
제롬의 검에 불이 붙었다.
꺼지지 않고 번지기만 하는 불이 청기사의 낫에 달라붙어 살라먹었다.
터억!
그러나 아무리 그런 제롬이라도 수적 우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무리 태워도 온몸이 잿덩이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언데드들은 포기를 몰랐다.
화르륵!
방심하면 한 번에 골로 가는 낫을 상대하느라 불을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던 제롬은 다리부터 뜯어 먹히기 시작했다.
치이익!
금세 재생이 되었지만 한 번 물어뜯기기 시작하자 눈덩이가 불어나듯 피해가 축적되어갔다.
퍼버벅!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오관도 오랜만에 초조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공포검을 휘둘렀지만, 그녀의 검은 일대일에 특화된 검술이었기에 전진이 더뎠다.
“제발······.”
루나의 의식에 따르면 이제 곧 지원군이 도착했다. 루나가 제롬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오관의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콰직!
끝내 오른팔까지 언데드에게 물린 제롬은 온몸이 뜯겨나가며 청기사를 응시했다.
[“날 죽여도 넌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못해.”]
[“······형.”]
언데드는 여전히 제롬을 물어뜯었지만 소년의 푸른 낫은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구속된 제롬을 죽일 수 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너의 형인가?”]
[“우으으.”]
소년은 분노하던 모습을 지우고 곧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망울을 글썽였다.
“죽음의 청기사.”
콰아앙!
나지막하지만 모두의 귀에 박히는 목소리가 들리며 이내 언데드들이 터져 나갔다.
갑작스레 등장한 인물은 시퍼런 귀기를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콰드득!
그런 그를 본능적으로 막으려드는 언데드들이 다가왔지만 그의 주변에 시커먼 아공간이 생기며 용아병들이 튀어나와 적들을 박살냈다.
“너만 처리하면 한동안 편히 쉴 수 있겠네.”
검은 날개가 펄럭였다.
화르륵!
방심하면 한 번에 골로 가는 낫을 상대하느라 불을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던 제롬은 다리부터 뜯어 먹히기 시작했다.
치이익!
금세 재생이 되었지만 한 번 물어뜯기기 시작하자 눈덩이가 불어나듯 피해가 축적되어갔다.
퍼버벅!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오관도 오랜만에 초조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공포검을 휘둘렀지만, 그녀의 검은 일대일에 특화된 검술이었기에 전진이 더뎠다.
“제발······.”
루나의 의식에 따르면 이제 곧 지원군이 도착했다. 루나가 제롬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오관의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콰직!
끝내 오른팔까지 언데드에게 물린 제롬은 온몸이 뜯겨나가며 청기사를 응시했다.
[“날 죽여도 넌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못해.”]
[“······형.”]
언데드는 여전히 제롬을 물어뜯었지만 소년의 푸른 낫은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구속된 제롬을 죽일 수 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너의 형인가?”]
[“우으으.”]
소년은 분노하던 모습을 지우고 곧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망울을 글썽였다.
“죽음의 청기사.”
콰아앙!
나지막하지만 모두의 귀에 박히는 목소리가 들리며 이내 언데드들이 터져 나갔다.
갑작스레 등장한 인물은 시퍼런 귀기를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콰드득!
그런 그를 본능적으로 막으려드는 언데드들이 다가왔지만 그의 주변에 시커먼 아공간이 생기며 용아병들이 튀어나와 적들을 박살냈다.
“너만 처리하면 한동안 편히 쉴 수 있겠네.”
검은 날개가 펄럭였다.
< 358화. 죽음의 청기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