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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54화 (354/415)

< 354화. 빌런? >

비비안은 집무실로 돌아와 대화를 나누는 아드리아스와 미누스를 보았다. 앞으로의 계획과 지금까지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시선을 돌리자 멍하니 앉아있는 적기사가 눈에 띄었다.

“넌 정체가 뭐지?”

[“······이미 말했지만 나도 모른다. 그 답을 알기 위해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만난 거고.”]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말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그리고 그런 적기사의 모습을 보며 비비안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언젠가 자신이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이 눈앞에 있는 적기사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넌 뭐가 하고 싶어?”

[“모른다.”]

그때 이야기가 끝난 아드리아스가 뚜벅뚜벅 걸어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단 이름부터 정해야겠죠. 이제 막 태어나신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제 막 태어났다고?”

비비안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적기사를 바라봤다. 하지만 적기사는 아드리아스의 말에 꼬투리를 잡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적기사라고 불리고 싶습니까?”

[“아니.”]

적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아드리아스를 보았다.

[“내 이름은 어떻게 짓지?”]

“음······.”

아드리아스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고 애매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비안이 고민하는 아드리아스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그러네요. 그럼 일단은 급하게 정하지 말고 생각을 좀 해보죠.”

거기까지 말한 아드리아스가 적기사에게 물었다.

“어디서 지내실 생각이십니까?”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아련하게 들리는 물음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여기는 위험해.”

마침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누스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소모전은 거의 다 끝나고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될 거다. 초인들이 나서겠지. 그때가 되면 나도 여기저기서 끌어들인 초인들을 투입할 거고. 그 상황에서 초인들이 저 녀석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초인.

적기사가 조심스레 되뇌었다.

[“초인이라는 건 뭐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강자들이다. 마법사는 오리지널 마법을 만든 마법사들을 말하고 전사는 오러 비기를 깨우친 자들이지.”

[“오리지널 마법······오러 비기······.”]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아드리아스를 쳐다보았다.

[“너도 초인인가?”]

“그럼! 아드리아스는 무려 오리지널 마법과 오러 비기를 둘 다 깨우친 역사상 최초의 동시 초인이다.”

미누스가 신난 표정으로 대신 대답하자 적기사는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사를 단숨에 죽였다니 그럴 만도 해.”]

적기사는 말을 마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드리아스에게 말했다.

[“나를 데리고 가 줄 수 있나?”]

“당신을 제가?”

[“너 밖에 없을 것 같다. 너라면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곁에 둘 수 있지 않아?”]

아드리아스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는 만큼 나도 널 도와주겠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

아드리아스는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대로라면 적기사보다 흑기사가 강하지. 그런데 그런 흑기사를 아무 상처도 없이 혼자 잡았다.’

여러모로 이번 적기사는 특이한 점이 많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도 있었고, 그 힘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데리고 가자.”

비비안이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냈다.

덕분에 아드리아스는 혼자만의 생각에서 깨어나 비비안을 돌아봤다.

“내가 관리할게.”

“비비안이요?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맡죠.”

[“내가 방해인가?”]

둘의 대화를 듣고 적기사가 나직하게 물었다.

“글쎄요. 인간이란 것들은 대개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경계합니다. 외모가 같더라도 행동이 조금만 특이하면 배척하죠.”

[“나는 외형마저 다르네.”]

“그렇습니다. 제가 당신을 딱히 방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먼저 말했지만 저는 힘이 있는 만큼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

“제가 걱정한 건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와 같은 여유를 가진 게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겠다.”]

적기사의 말에 갑자기 루나가 생각난 아드리아스는 인상을 굳혔다.

특이한 외모로 인해 나가 놀고 싶어도 마음껏 놀지 못했던 안타까운 루나의 모습들이 아드리아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적기사와 오버랩 되었다.

[“왜 그러지? 내 말이 거슬렸어?”]

“아닙니다.”

표정을 푼 아드리아스는 이내 미누스를 향해 말했다.

“적기사는 그럼 저희가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그리고 흑기사라고 했나? 그 시체도 가는 길에 치워주고.”

“감사합니다, 전하.”

“연락도 바로바로 받아주고. 내가 준비한 초인에는 너도 포함이니까.”

“아무렴요.”

이내 모하임에서의 용무가 모두 끝난 아드리아스 일행들은 조심히 영지를 빠져나왔다.

흑기사의 시신까지 챙긴 아드리아스는 뒤따라오는 적기사를 살폈다.

‘이 일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적기사를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 무려 묵시록의 4기사 중 하나이자 강력한 보스 몬스터로서 초인 하나 쯤은 가볍게 이기는 괴물이었으니까.

······.

······괴물?

한 번 루나를 떠올리게 되자 자꾸만 루나에게 이입을 하게 됐다. 내가 적기사를 괴물처럼 생각하듯 다른 사람들도 루나를 그렇게 생각할까.

“멀지 않아서 다행이야.”

크롬웰까지 오는 길은 순탄했다.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짐부터 풀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미리 전해 듣기는 했는데······.”

모하임에서 연락은 먼저 해두었기에 놀랄 일이 없게 했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에이미였다.

“넌 겁도 없구나.”

적기사를 앞에 두고 당당하게 쳐다보는 걸 보면 확실히 내 여동생이라는 게 느껴졌다.

“재미난 걸 가져왔군. 이리 내놔라.”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리고 따로 선물을 가지고 왔으니까 참아주십시오.”

살렘의 헛소리를 차단하고 주변을 스윽 둘러보자 막시민 커플을 제외하고는 영지 안의 중요 인물들이 다 모인 듯했다.

“그래? 기대하고 있지.”

“소개를 좀 해다오.”

쓸데없는 말을 차단하려는 듯 모른이 나서주었다. 나는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옆에 있는 적기사를 가리켰다.

“언제까지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같이 지낼 분입니다. 이름은 아직 없어요.”

“이름이 없어?!”

루나가 불쌍하다는 눈초리로 적기사를 바라보았다.

“예. 안 그래도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내가! 내가 할래!”

루나가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외쳤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불안하긴 했지만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이상한 이름으로 하지는 않겠지?

“제롬 드라쿨!”

진지, 근엄한 표정으로 마치 선언을 하듯 외친 루나가 이내 두 눈을 빛내며 적기사에게 물었다.

“어때?”

[“제롬 드라쿨.”]

내 예상보다 멀쩡한 이름에 솔직히 놀랐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꽤 나쁘지 않아보였다.

[“제롬이 내 이름인가?”]

“응!”

[“제롬, 난 이제 제롬 드라쿨이다.”]

둘의 모습이 마치 기사 서임식을 하는 주군과 기사를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루나가 제롬을 잘 챙겨줄 수도 있겠는데.

“재밌는 아이를 데려왔네요.”

순간 기척도 없이 나타난 이자벨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괴물 같은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초인?”]

“아가야, 날 보고 말한 거니?”

[“난 아가인가?”]

서로 엇갈리는 대화를 보며 나는 이자벨에게 적기사, 아니 제롬을 소개했다.

“루나가 방금 이름을 지어준 제롬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잠시 동안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흐음······. 왜 그러셨을까요?”

“예?”

“굳이 왜 자처해서 이 아이를 데려왔냐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자 옆에 있던 비비안이 나섰다.

“내가 데려오자고 했어.”

“흠? 왜 그랬니?”

“······나랑 닮아서.”

비비안이 고백을 하듯 쑥스럽게 말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랐는데 의외였다.

‘생각해보면 비비안도 빌런이었지.’

아니, 애초에 내 곁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빌런이었다. 빌런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인데?

“그래서 데려온 거예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강하니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데려온 것도 있죠.”

사실대로 말하면 왠지 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에 얼버무렸다. 루나가 생각나서 연민이 생겼다는 나약한 말은 하기가 좀 그랬다.

[“!!”]

그때 제롬이 강렬한 기파를 풍기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제일 늦게 도착한 인물이 방문을 열고 스윽 들어왔다.

“······.”

“오셨습니까.”

막시민 크로넬이었다.

제롬은 막시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불안한 몸짓을 해보였다.

“이건 또 뭐지.”

“주워왔습니다.”

“이상한 걸 주워오면 너만 피곤해진다.”

막시민은 충고하듯 그리 말하며 제롬에게 물었다.

“이름은?”

[“제롬 드라쿨.”]

“유치한 이름이군.”

“뭐!?”

막시민의 말에 루나가 방방 뛰었지만 막시민은 볼일 다 봤다는 듯 사람들의 면면을 살핀 뒤 다시 방 문 앞에 섰다.

“아드리아스. 약속했던 라스틸리아 식물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금방 구해오겠습니다.”

덜컹!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막시민을 보며 살렘이 웃었다.

“하여간에 싸가지하고는. 흐흐. 어째 하는 짓이 널 보는 것 같냐?”

“저처럼 예의바른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어쨌든 이로서 제롬의 소개는 끝났다.

아무래도 외형이 특이한 만큼 모두가 놀라지 않게 미리 소개하려는 의도였는데 모두들 거부감은 없어보였다.

“제롬은 아가야?”

[“난 아가인가?”]

루나와 덤앤더머처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잘 적응할 것 같기도 하고······.

용무를 마치고 모두가 떠났다.

그때 마지막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이자벨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제롬 말입니까?”

“아니요. 제가 그걸 말한 게 아니란 걸 아시면서 그러시네요.”

“······저도 사람인가 봅니다. 불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제롬을 데려온 건 여러모로 불안 요소가 많았다. 당장 그를 발견한 누군가가 소문을 퍼트려 크롬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릴 수도 있었고, 자칫하면 제롬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초인들이 몰려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런 면 때문에 모두들 당신을 신뢰하고 힘이 되어주려는 거겠죠. 저랑 막시민도 그렇고요.”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요?”

“그러지 않게 하려고 저희가 당신 곁에 있는 거예요. 때로는 우리한테 기대기도 하세요.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이 세상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신경 써왔으면서도 정작 나는 언제나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다.

‘잃을 수 없다.’

난 욕심쟁이였다.

전생에서 잃었던 소중한 동료들을 이제는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걱정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불쌍한 분.”

이자벨은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있는 비비안에게 다가가 말했다.

“부디 잘 챙겨주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잘 해주고 있지만.”

“응.”

이자벨은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마저 떠나자 방에는 나와 비비안만이 남았다. 제롬은 루나가 성 내부를 소개시켜준다며 데리고 나간 상태였다.

“아드리아스, 좀 쉴까.”

“그럴까요. 아, 비비안. 혹시 연무장에서 수련할 일이 있으면 루이스한테도 제롬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알았어.”

이제 남은 묵시록의 기사는 죽음의 청기사 밖에 없었다. 사실상 묵시록 자체는 막은 셈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엔딩까지 거의 다 끝나가나.’

집회도 이제는 거의 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이니 집회 내부에 숨겨진 죄악인 ‘질투’도 곧 손에 들어올 것이다.

남은 죄악들은 이제 색욕과 폭식, 그리고 오만뿐인데 색욕과 폭식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북부의 멸망급 에피소드도 북부인들을 살려 보낸 덕분에 미리 막아버렸고, 또 다른 멸망급 에피소드인 라스틸리아의 타락한 세계수도 미연에 방지했다.

‘제파르의 화신도 성장하기 전에 죽여 버렸지.’

정말 그때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한 것 같았다.

남은 멸망급 에피소드는 사실상 집회가 소환하는 마신이었는데 그것도 내가 모든 죄악을 수집하면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

“쉬자.”

그때 천천히 내 등을 감싸오는 감촉에 깜짝 놀라 옆을 보자 비비안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러나 새빨개진 볼을 한 채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죄송합니다. 쉬기로 했죠.”

게임 스토리상으로 엔딩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예민해지고 머리도 복잡해졌다.

예상보다 훨씬 진행이 빨랐는데,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블들이 성장할 틈도 없었다.

‘성장할 만한 시련들을 내가 다 부숴버린 탓도 있지만.’

콕!

“아드리아스.”

“죄송합니다.”

조금 쉴까.

일단은 다 제쳐두고 이 짧은 행복을 만끽해봐야겠다.

< 354화. 빌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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