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화. 무대 뒤(Back Stage) >
아드리아스가 우로보로스의 내부로 들어간 이후에도 하얀 괴물들의 공격은 계속 되었다.
“끝도 없군.”
“언데드가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로는 절대 막아내지 못했겠지.”
워록들이 새삼 느껴지는 아드리아스의 영향력에 감탄을 흘리고 있을 때 루시아는 루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요?”
“으응.”
루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했다.
이제는 몸조차 혼자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하는 그녀를 루시아가 부축해주었다.
“미안해, 내가 동생을 지켜야 되는데······.”
“전 괜찮아요.”
루시아는 마력을 이용해 루나의 체내에 마법진을 분석하려고 했다.
‘힘들어하는 원인은 마법진에 있으니까 마법진이 뭘 위한 건지만 알면······.’
그때 이전에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있던 케슈른 비올가가 다가왔다.
“저도 돕겠습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케슈른은 루시아의 눈빛에 담긴 의심을 읽어내고 고개를 숙였다.
“수상하다고 느꼈다면 죄송합니다. 제 전문 분야가 마법진에 관한 거라 성급하게 다가갔군요.”
케슈른은 그리 말했지만 물러날 기미도 없었다. 그는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눈마저 감아버린 루나를 보며 말했다.
“제 스스로가 이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역시 그 분을 돕는 일 뿐입니다. 한 번만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안 되는 건 안 되······.”
“괜찮아.”
루나가 루시아를 말렸다.
그리고는 반쯤 뜬 눈으로 케슈른에게 힘없는 손짓을 보냈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걸 해줘.”
“언니.”
루시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 펜드래곤.
루시아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정체를 눈치 챘었다. 미치광이의 그믐이라 불리는 유명한 흑마법사이자 전설적인 마녀인 이브 밀레니엄의 딸. 맥스웰의 딸인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불쌍해.’
루시아는 루나의 화려한 겉모습에 감춰진 슬픔을 엿보았다. 그것은 언젠가 나태함으로 본심을 숨겨왔던 루시아, 자신과 비슷했기에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흑마법사? 그런 건 루시아에게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조금 전에 아드리아스가 언데드를 소환했을 때도 잠깐의 혼란은 있었지만 그게 전부.
일종의 동질감.
지금은 아드리아스 덕분에 한 꺼풀 벗겨낸 자신과 달리 이 작은 소녀는 여전히 껍질에 싸여있었다.
“루시아, 나 언니야. 언니니까 괜찮아.”
애써 괜찮은 척하는 루나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모든 걸 혼자서 견뎌내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생각난 루시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으며 루나를 끌어안았다.
“루시아?”
“언니, 제가 언니랑 오래 지내온 사이는 아니지만······.”
루시아는 자기보다 나이는 많지만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소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전 언니 편이니까요. 그러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게요.”
“······.”
힘에 겨워 반쯤 감겨있었던 루나의 두 눈이 온전하게 뜨였다. 은하수와 같은 눈망울이 곧 루시아와 같이 젖어들었다.
“······으응.”
차마 둘 사이에 끼지 못한 케슈른은 여전히 정신이 없는 주변을 경계하며 한쪽 무릎을 꿇어 루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스윽스윽-
“후아, 나한테 마법진이 있는 거지?”
루나가 눈을 비비고 케슈른에게 물었다.
케슈른은 말없이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마법진에 자신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루시아, 난 이대로 짐이 되기 싫어.”
루나의 말에 루시아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짐이 아니에요.”
“난 친구한테 루시아를 지켜준다고 약속했어. 그런데 이런 꼴이면 안 되겠지. 그리고 내 몸 속의 마법진을 알아내는 게 이 일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길일 수도 있잖아.”
루시아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루나가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을 어렴풋이 짐작하기에 더더욱 말릴 수가 없었다.
“마나에 맹세코, 저는 해를 입히려는 게 아닙니다.”
“······알았어요. 그 대신 저랑 같이 확인해요.”
안 그래도 마력을 사용해 마법진을 알아보려던 참이었다. 단지 케슈른을 믿지 못했기에 막은 것이지 발상 자체는 모두가 같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케슈른이 조심스럽게 루나의 손목을 짚었다.
동시에 루시아의 마나와 동조해 루나의 마법진을 살폈다.
“······심장.”
루시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짐작은 했지만 고약하군요.”
루나의 체내에 새겨진 마법진은 심장에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심장에 있음을 발견하자 확인을 하던 둘은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 마법진의 정교함······이런 말을 하기 죄송하지만 새기던 중에 수 천 번은 죽었어야 할 정도의 난이도입니다.”
마법진에 관해서는 천재라 자부하는 케슈른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루나는 무언가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막내야.”
“네?”
“아마 내 언니, 오빠들은 다 죽었겠지.”
덤덤하게 말하는 루나의 모습은, 오히려 덤덤했기에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난 운 좋게 마법진이 새겨져서 산거고.”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케슈른의 물음에 루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랐어. 그래도 마법사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잖아.”
마법사라면······.
묘한 여운이 남는 말에 루시아와 케슈른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마법진이 뭐야?”
“잠시만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루시아는 마나로 케슈른의 마력을 쫓아 감시만 할 뿐 마법진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그녀로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불가능한 마법진이었다.
“일단 이 마법진의 가장 큰 목적이······솔직히 저도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흡수입니다.”
“흡수?”
“사실 복합적으로 얽혀들어 있어서 흡수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흡수라는 단어에 루나와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흡수한다는 거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흡수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 목표나 목적이 무엇인지까지는······.”
케슈른은 거기까지 말하며 이내 다른 설명을 곁들였다.
“흡수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흡수 이외에도 전송이나 연결이 가장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고대 룬 문자들이 보였습니다. 현재로서는 그 기능이나 의미를 상실한 문자들이죠.”
“어떻게 그런 문자가 심장에······.”
루시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루나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루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해결 방법이 없네.”
“죄송합니다. 자신 있게 나선 것 치고는 말씀하신대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상관없어.”
루나는 심호흡을 하며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너무나 거대한 크기로 외형이 파악되지 않는 우로보로스가 있었다.
“어차피 친구가 다 해결해줄 거야.”
“네. 선배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줄 거예요.”
쿠르르릉------!
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그 소리에 싸우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뭔 소리냐!”
“우로보로스 쪽에서 난 소리 같은데?”
굉음은 끝나지 않았다.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몸을 일으키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에 모두가 슬슬 걱정을 할 때쯤,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어이쿠!”
“해, 해낸 건가? 아니면 잘못 된 건가?”
“으아아! 빨려 들어간다!”
빛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몸이 휘말려 들어가는 걸 느낀 사람들은 한껏 긴장을 했다.
우우웅---
이내 몸이 어디론가 완전히 도착한 것을 느낀 사람들은 밝았던 시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눈을 잠시 적응시켰다.
“돌아······왔어?”
“원탁이잖아! 돌아왔구만! 하하! 돌아왔다고!”
“으하하! 으하하······허허헝!”
조금 전에 있었던 공간이 마치 거짓이었다는 듯 원래 있던 원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횡설수설했다.
“마치 꿈이었던 것 같군.”
“내가 살아있는 건가? 사실은 이게 저승?”
“살았다! 하하하! 내가 살아있다니, 맙소사. 이게 다 그, 뭐시기냐. 그······.”
“아드리아스?”
“그래! 거 아드리아스 크롬웰 덕분이구나! 하하하!”
“근데 아드리아스는 어디 있죠?”
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기쁨의 함성을 지르던 자들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변을 살폈다.
“없어?”
“없어! 어디 있지? 설마 함께 오지 못한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그 순간 루시아도 당황하여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품에 있었던 루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탓이었다.
“언니? 루나 언니? 어디 있어요?”
그녀의 외침은 허무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워록들은 되돌아온 마나로 마법과 스캔을 사용하며 사라진 둘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없다. 걸리는 게 없어.”
“이런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아드리아스 크롬웰, 설마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을 한 게냐?”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
곧이어 워록들에게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더한 절망감이 덮쳐들었다. 워록으로 살아오며 한 평생 능력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그들에게 무력감이란 감정은 이루 말하지 못할 무언가였다.
“바하트! 어서 아드리아스를 좀 찾아보게!”
“닥쳐라.”
바하트는 누구보다 열심히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공간 마법에 관해서는 이곳에 있는 그 어느 마법사보다 뛰어난 그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그 공간에 유기된 것인가······.’
믿기 힘들었지만 그의 능력으로도 발견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리 추론하는 게 타당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하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개놈의 자식이······누구 때문에 맹세의 마법을 걸었는데······.”
“맥스웰.”
그때 멍하니 바닥을 짚고 있던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맥스웰 펜드래곤을 찾아야 해요.”
“그렇지!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있었어! 맥스웰 펜드래곤!”
“녀석이 여기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일단 심층부를 나가보지.”
대화를 듣고 있던 바하트는 곧바로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심층부 밖으로 혼자서 단숨에 나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그대로 얼어붙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게냐, 맥스웰.”
그가 발견한 것은 포트리온의 모든 마법사들이 미라처럼 말라죽어있는 모습이었다.
**
우로보로스의 핵을 깨고 정신을 차리자 나는 묘한 장소에 와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원래 있던 장소가 아닌데.’
주변을 둘러보자 보면 볼수록 기묘한 공간이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디짙은 청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구조물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미래 우주선의 내부 모습이라고 할까.
“······루나?”
그 넓고 광활한 공간에서 나는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공간의 중앙에서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루나였다.
“루나!”
루나는 두 눈을 감은 채 맥없이 떠있었다.
의식이 없는 듯 보였는데 강렬한 마나의 기운만 파동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뭐냐, 이 미친 마나는······.’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전에 느꼈던 리치킹의 마력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루나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짝짝짝-
인기척과 함께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한 명이 아니었다.
“그대도 이 공간에 온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칭찬은 해주어야겠지. 수고했다.”
“맥스웰?”
역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맥스웰 펜드래곤이었다.
그러나 나는 등장하는 이들을 보며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넌, 네 역할을 아주 충실히 수행했어. 너와 내 딸이 가장 중요한 배역이었는데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었다.”
처음에 말한 것은 아카데미에서 만난 적이 있던 늙은 모습의 맥스웰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말한 것은 원탁에서 보았던 젊은 모습의 맥스웰.
내가 알던 맥스웰은 하나.
그러나 나타난 이들은 한 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었다.
“한 명이 모습을 바꾸는 게 아니야?”
“음, 놀랐나보군. 하지만 난 맥스웰이 맞다.”
“나도 맥스웰이지.”
여럿이서 말하니까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등장한 인물은 총 여섯, 그리고 그 중에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얼굴도 있었다.
“페이드?”
“······.”
집회 소속의 흑마법사이자 음지의 주인이라 불리는 페이드.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반들반들한 재질의 가면이 너무나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소개를 다시 해야겠구나.”
완전히 얼어붙어버린 내가 생각을 애써 정리하는 사이 늙은 맥스웰이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우우웅-----!
때마침 허공에 뜬 루나가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합창을 하듯 말했다.
““우리는 니바스다.””
< 339화. 무대 뒤(Back Stage)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