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38화 (338/415)

< 338화. 구원과 파멸 >

사위가 싸늘해졌다.

물론 여전히 언데드들과 몬스터들이 싸우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죽였어?”

누군가의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에 드디어 정적이 무너졌다.

“그래, 죽였다.”

바하트는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식으로 말하며 구두에 묻은 피를 바닥에 닦았다.

“불만인가?”

“바하트! 아무리 자네가 막무가내여도 어찌 그런······!”

한 워록이 삿대질을 해가며 소리치자 바하트가 비웃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이상하군. 바이슨 녀석이 루나 펜드래곤을 죽이려 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나?”

“······그건······.”

루나가 죽음으로서 자신이 살아남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지. 삿대질을 한 워록도 그리 생각했는지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들 누구 덕분에 살아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군.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그야······.”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바하트의 갑작스런 행동에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 그 대상이 아드리아스 크롬웰인 줄 알았을 때는 가만히 있더만. 바이슨이 그리도 좋았나?”

“그, 그런 게 아니라······.”

“네 녀석들 같이 은혜도 모르는 것들은 그냥 싹 다 죽게 놔둬야 하는데 아쉽군. 아드리아스가 너무 착해빠졌어.”

바하트가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절 공격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널? 내가? 왜?”

“······알겠습니다.”

암묵적인 눈가림이었다.

조금 전에도 어디에 흑마법이 있냐고 뻔뻔하게 말한 걸 보면 그냥 넘어가주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가자고.”

바하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 맹세의 마법으로 여기서 있었던 일은 모두 묻어버리는 걸로 하지. 어떤가?”

“크, 크흠.”

맹세의 마법은 바하트의 오리지널 마법 중 하나였다.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알븐 가문의 마법을 만들어낸 재창조해낸 마법.

그러나 마법 자체는 발동이 그리 까다롭지 않은 초급 마법으로 알고 있었다.

“난 찬성하네.”

바하트의 제안에 패트릭이 먼저 나섰다.

그리고 뒤이어 비앙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우리의 은인입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이 일을 비밀로 하는 게 그나마 우리가 줄 수 있는 작은 도움이겠죠.”

여덟 명 남은 워록들 중 두 명이 동의하자 이내 다른 사람들도 맹세의 마법에 동의했다.

“그래, 그게 맞는 일이겠지.”

“하긴 당연한 일이군. 지금도 저 자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는 거니······.”

그렇게 모두가 동의하자 바하트는 워록들의 조수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마법으로 연결했다.

우웅-

“이제 여기서 있었던 일을 밖에서 발설하려 하면 맹세의 마법이 발동될 거다. 말하고 싶어도 시간이 방해를 할 거다.”

“놀라운 마법이군. 시간이 되돌아가는 원리라······.”

“허어, 역시 바하트 알븐인가. 이런 마법이 고작 초급 수준의 마법이라니······.”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지 알 수는 없어도 감사한 건 사실이었다. 나는 별 말 없이 그저 바하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흥, 네놈 좋으라고 마법을 건 게 아니라 내가 바이슨을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다. 착각하지마라.”

바하트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했다.

그런 점이 나도 대하기가 편했기에 좋았지만.

‘그나저나······.’

나는 조금 전에 언데드를 소환하려다 뜬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니켈 라이프힐의 소환이 거부되었습니다.]

[니켈 라이프힐 진화 중······.]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메시지였다.

지금껏 진화를 하면서도 잘만 소환이 됐었는데 왜 갑자기 거부가 된 걸까.

‘진화 완료가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그거 때문인가?’

일단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이번 진화는 두 번째 진화인데다가 이전과 달리 시간도 오래 걸렸었기에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닌가.”

소란은 잠재웠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로보로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

우로보로스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건 쉬웠다.

촤르륵-

차캉!

“어이, 왼쪽이 비었잖어.”

“기다려보게나. 금방 처리하고 가니까.”

언데드들은 체력이란 개념이 없었다.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몬스터들이 아무리 쏟아져도 지치지 않고 막아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나의 제한이 사라지는 워록들도 점차 진가를 발휘했다.

“아주 꼼짝을 못하는구나!”

“방법이 없으면 찾으면 되지.”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재생을 하고 마법에도 내성이 있었지만 결국 그게 전부였다. 미리내가 사용하는 그림자 마법이 잘 통하는 것을 확인한 워록들은 몬스터를 직접 공격하기보다 움직임을 봉쇄시키는 방향으로 마법을 전개했다.

서걱!

촤아악-!

그렇게 움직임을 막은 녀석들은 내 언데드가 처리하는 방식으로 아주 손발이 잘 맞게 돌아가고 있었다.

“거의 다 왔군.”

그때 바하트의 시선이 저 멀리 향했다.

우로보로스가 약속한 3일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정확히 3일이 지나자마자 도착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거의 다 된 것만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스으으윽--

저 멀리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우로보로스의 대가리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얀 안개처럼 덮인 시야도 뚫고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지금은 처음처럼 대화가 불가능한가?”

바하트가 그 거대한 대가리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만져야 가능합니다만······.”

근처에 우로보로스의 몸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달라붙는 적들로 인해 뚫기가 애매했다.

“허허,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공간도 끝이군.”

“돌아가면 곧바로 잠을 잘 거다. 졸려 죽겠구만.”

지긋지긋의 문제는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이제는 하얀 안개 같은 배경보다 우주와 같이 검은 틈새가 더 많아보였기에 언제 이 공간이 완전하게 부서질지 몰라 무서웠지.

‘저 눈깔들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가 없고.’

틈새가 많아지며 눈알들의 수도 많아졌는데, 눈들은 우리를 주시하기만 할 뿐 아무런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관찰만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도착이다!”

“왔어! 녀석이 왔다!”

쿠르르릉-

비현실적인 광경이 곧 이어졌다.

그동안 우리를 애먹였던 하얀 동체의 몬스터들이 쓸려나가며 그 자리를 대신해 어디서부터 어디가 대가리인지 모를 거대한 무언가가 도착했다.

쿠웅!

그야말로 압도적인 풍경.

뱀의 몸통에 비해 얇디얇을 아래턱이 어디까지 이어진지 모를 정도로 거대한 뱀이 우리의 앞에 등장했다.

‘저런 거대한 몸 치고는 생각보다 주변이 멀쩡했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저런 거대한 몸으로 움직였음에도 우리에게 피해가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오셨군요.”

-이제 약속대로 날 죽여줘.

우로보로스가 아가리를 벌렸다.

입속에 들어가는 것도 꽤 힘들겠구나 싶을 정도로 거대했는데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말했다.

“금방 해치우고 나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버텨주십시오.”

“우리 걱정은 말거라. 루나 펜드래곤도 이 늙은이가 지키지.”

패트릭이 든든한 조력자처럼 말했다.

그리고 꽤 믿음직한 비앙테도 슬쩍 내게 미소를 지어주며 걱정말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헛소리 말고 빨리 꺼지거라. 언제까지 우리가 고생을 해야겠느냐.”

바하트가 성질을 내자 나는 마지막으로 루나와 루시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다녀오세요, 선배.”

“친구, 나도 가면 안 돼?”

루나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루나는 여기서 루시아를 지켜주세요.”

“응. 동생은 내가 지켜.”

그렇게 모두와 시선을 맞춘 나는 곧바로 우로보로스의 턱을 타고 올라갔다.

**

-이히히히!

우로보로스의 아가리를 통해 들어간 그의 몸속은 별천지였다.

“이게 대체······.”

웬만하면 동요를 하지 않는 나조차 혼잣말을 중얼거릴 정도의 풍경.

-아하하하!

-이히히!

꽃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살아있는 무언가의 뱃속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야트막한 산들과 들판, 그리고 시커먼 천장을 수놓은 반짝이는 광석들.

-인간이다!

-인간? 인간!

그리고 내가 서있는 꽃밭에는 정령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로보로스, 이건 대체······.”

-안으로 계속 가. 심장을 미리 꺼내놨어.

우로보로스의 어조는 담담했다.

내가 놀랐다는 것도 알고 있는 듯했지만 딱히 무언가를 말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지만 나도 금방 정신을 차렸다. 아직도 바깥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우로보로스를 죽이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심장을 움직일 수도 있구나. 하긴 이런 몸 내부를 하고 있는데 뭐든 못하겠어.’

우로보로스의 말대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거대한 고동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진동을 했는데 마치 강력한 네임드 아이템을 만났을 때 같았다.

-영차! 영차!

-하낫, 둘! 하낫, 둘!

귀여운 구호 소리와 함께 드디어 우로보로스의 심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장은 수많은 정령들이 힘을 내서 옮기고 있었다.

‘심장이라기보다······.’

일종의 마력핵이었다.

마석이나 내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크기는 우로보로스에 비해 작다 싶었는데 그래도 작은 산 하나의 크기였다.

-이게 내 심장이야.

우로보로스의 말이 공간을 울렸다.

동시에 거대한 심장을 옮기던 정령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꺄르륵 웃어대며 흩어졌다.

“우로보로스.”

-응?

“제가 당신을 죽이면 여기도 끝나는 거겠죠?”

-아마 그렇겠지.

우로보로스의 몸속은 또 하나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우로보로스를 죽여야 하는 나로서는 기분이 묘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건, 이미 바깥의 세상은 붕괴되고 있어. 선택을 무를 수 없어.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날개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강한 힘이 내게 전달되었다.

“우로보로스,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뭔데?

“초월자와 연관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겠지만 구체적인 관계가 궁금했다.

설마 본인이 초월자일리는 없었다. 애초에 초월자는 화신체를 이용한 육체를 제외하고 진짜 몸이 없으니까.

‘지옥에서 봤던 염라도 화신체였지. 물론 그것도 진짜 육체가 아니었지만.’

내 질문에 우로보로스는 흔쾌히 대답했다.

-나는 원래 없던 존재야. 어떤 존재를 본 따서 만들어졌지.

“당신을 만든 게 초월자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난 초월자를 본 따서 만들어졌어. 실제로 내 심장에는 그 초월자의 일부가 담겨있지.

그래서 날개가 이렇게 강하게 반응했구나.

초월자의 일부라면 생전의 몸이라는 이야기니까 생각보다 대단한 심장이었다.

-누가 날 만들었는지는 나도 몰라. 네 말대로 초월자일 수도 있겠지.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갈락슈르를 들고 산만한 크기의 심장을 바라봤다. 동그란 외형이었지만 그 크기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네.

-그럼 부탁할게.

“예.”

하나의 세상을 내 손으로 지우는구나.

저 해맑은 정령들도 우로보로스가 죽고 나면 모두 소멸하겠지.

우웅---

“우로보로스,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갈락슈르가 결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338화. 구원과 파멸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