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여러 결심 >
루나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내가 핵?’
몸이 고통스러웠지만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외침이 이명처럼 울려 퍼지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이 괴물 같은 녀석! 맥스웰하고 한 패였구나!”
“허어,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지?”
내가? 나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루나는 괴로웠다.
포트리온에 입장하고 나서,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계속 느껴왔던 불안.
‘다들 날 좋아하지 않아.’
이 세상은 그녀를 환영하지 않았다.
적어도 루나만큼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나 펜드래곤은 이 세상이 너무나 좋았다.
“나 때문이야······?”
그녀는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이번 일이 자신의 탓이라는 게 더 괴로웠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하나인 아드리아스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
자신을 바라보는 아드리아스의 눈빛이 혼란스러웠다. 평소 같았으면 재밌는 반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드리아스가······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부정적인 예감이 맴돌았다.
“이런······막아라!”
괴이한 몬스터들의 공격은 점차 다양해져갔다.
처음에는 인간의 형태를 띤 느릿느릿한 개체들 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어떤 것들은 날아서 오기도 했다.
화르륵!
콰징--!
워록들의 다채로운 마법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러나 고작 기초 마법, 하다못해 초급 마법 밖에 되지 않는 위력에 몬스터들은 마법의 장막을 뚫고 넘어왔다.
“이러다 다 죽어!”
처절한 외침이 들려오고 실제로 누군가가 허연 덩어리 형태의 괴물에게 먹혔다.
“루나 펜드래곤을 죽여. 그러면 다 살 수 있어!”
바이슨이 그때까지도 모두가 입 밖으로 꺼내기 주저했던 말을 꺼냈다.
“아직 핵이라는 게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다! 어찌 함부로 그런 망측한 발상을 하는 게냐!”
루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패트릭이 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9명으로 줄어든 나머지 워록들의 시선은 애매했다.
“이런 파렴치한 놈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초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아니면 패트릭, 그대가 이 상황을 해결해보던가. 저 괴물들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봐.”
바이슨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패트릭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고스란히 루나에게도 들렸다.
‘내가 죽으면······.’
모두가 살 수 있는 건가?
루나는 시선을 옮겨 아드리아스를 보았다.
그는 수많은 괴물들을 홀로 막아내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들은 끊임없이 재생하며 그 수가 줄어들지를 않았고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
“······친구가 위험해.”
나 때문에······친구가 죽는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가정이 루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패트릭의 말대로 아직 자신이 확실한 원인이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내심 직감하고 있었다.
스릉-
아드리아스가 언젠가 주었던 공포검이 검집을 빠져나왔다. 예리한 검신이 번뜩이며 그녀를 노려봤다.
“루나 펜드래곤?”
그녀가 검을 뽑는 모습을 본 케슈른 비올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케슈른을 보며 루나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무엇을 위한 사과일까.
케슈른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저 검으로 몬스터를 쓰러트리지는 않을 거란 사실.
“언니!”
그때 열심히 마법을 난사하던 루시아가 몸을 날렸다.
철푸덕!
“지금 뭐하시려는 거예요!”
처음으로 목청을 드높인 루시아가 루나를 넘어뜨리며 깔고 앉았다.
“검, 손에서 놔요.”
“루시아······.”
루나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이내 송골송골 맺히는 눈물이 루나의 큰 눈망울을 가득 메웠다.
“나 때문에 다 죽어. 그건 안 돼.”
“무슨 말씀이세요. 왜 언니 때문에 다 죽어요. 그리고 죽기는 누가 죽어요.”
“······나도 힘들게 결심했단 말이야. 이렇게 막으면 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루나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막아준 게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역시 세상은 아름다웠다.
이 세상에 있어서 오점과도 같은 자신이었지만, 이러한 자신도 누군가가 생각해주고 걱정해준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퍼억!
뜬금없이 누군가가 루시아를 발길질했다.
갑작스런 발길질에 맥없이 쓰러진 루시아의 뒤로 바이슨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등장했다.
“아주 지랄들을 하는구나. 그리고 너넨 그렇게 구경만 할 거냐? 왜? 막상 네들 손으로 죽이지는 못하겠어? 고상한 척 하기는.”
그의 말에 워록들은 고개를 숙였다.
몇몇 이들은 아예 시선을 돌리고 몬스터에게 집중하는 척을 했다.
“루나 펜드래곤. 너한테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좀 죽어줘야겠다.”
“안 돼.”
루시아가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바이슨은 가볍게 막아내고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루나 펜드래곤, 맥스웰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 거지? 죽이기 전에 그거나 좀 들어보자.”
“나도 몰라.”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널 죽이고 살아나가서 본인에게 직접 추궁하면 되니까.”
바이슨의 손끝에서 마나의 순수한 파괴력이 응집되었다. 그 와중에도 루시아가 계속 방해했지만 바이슨은 더블 캐스팅으로 가볍게 막아냈다.
“저항하지 않는 거냐, 흐흐.”
“······.”
루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갈 곳 잃은 눈물이 자국을 만들어내며 낙하했다.
꾸득!
“음?”
퍼엉!
갑자기 파공음과 함께 바이슨의 신형이 날아갔다. 동시에 깜짝 놀란 루나가 눈을 뜨자 그곳에는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수인이 서있었다.
“티무르?”
아드리아스가 사역하던 언데드.
루나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자 소환된 것은 티무르뿐만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꾸드득!
백 마리의 용아병들이 검은 아공간에서 흉포한 기세를 터트리며 걸어 나왔다.
-까르륵!
작은 요정이 허공을 유영하며 그림자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속박했다. 늪과 같은 그림자가 그들의 발밑에 깔렸다.
“아아······.”
루나는 허망한 표정으로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아드리아스는 제국의 귀족, 절대로 흑마법사임을 들켜서는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 그가 언데드를 소환했다는 사실에 루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몸이 아픈 것보다 더욱 쓰라린 감정이 가슴을 휩쓸었다.
‘이제 친구 해주지 않겠지?’
다시 눈물이 새어나왔다.
참아보려 했지만 그녀의 감정은 의지를 배신했다.
“어, 언데드?”
“누구지? 루나 펜드래곤인가?”
사람들이 당황하는 사이 티무르가 움직였다.
조심스레 움직인 티무르는 물고 있는 루나를 안아들었다.
“티무르?”
-크릉.
그리고 그런 티무르의 곁으로 아드리아스가 나타났다.
“······경고하겠습니다.”
최전방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돌아온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차갑게 일별했다.
“루나 펜드래곤을 공격하는 자는 제 적입니다. 그녀를 죽이려면 저부터 죽이셔야 할 겁니다.”
“이 개 같은 놈이······.”
티무르에게 맞고 날아갔지만 보호 마법으로 멀쩡한 바이슨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녀석 하나 살리겠다고 모두 죽이려는 거냐!”
“죽긴 누가 죽습니까.”
퍼버버벅!
주변은 언데드들로 인해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였다. 외형과는 달리 무시무시한 신위를 내보이는 용아병들을 보며 워록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부터는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설마 이 언데드들······네가 소환한 거냐?”
바이슨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드리아스는 부정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관망하기만 했다.
“어찌 제국의 귀족이 흑마법을······.”
“아니, 그 전에 이리도 수준 높은 언데드들을 사역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워록이 되었다는 것이 설마 흑마법으로 되었다는 뜻이었어?”
“말도 안 되는군.”
아드리아스의 정체가 드러나자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그 중에서도 그와 함께 했던 루시아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선배가······흑마법사.”
언제나 무언가를 숨기는 듯했던 수수께끼의 선배. 홀로 가득 짐을 지고 있는 듯하던 모습이 사실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까?
“······.”
그리고 바하트 또한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드리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루나가 울면서 티무르의 품을 파고 들었다.
차마 아드리아스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루나, 괜찮습니다. 루나 때문이 아니에요.”
아드리아스의 목소리.
루나는 두려운 마음을 안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미소 짓고 있는 아드리아스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으, 친구우······.”
“루나 때문이 아니에요.”
“나랑 이제 친구 해주지 않을 거야?”
“저희는 영원히 친구에요. 죽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아드리아스의 말을 들은 루나의 눈물샘이 다시 폭발했다.
“으아앙! 친구우!”
“그러니까 아무 걱정마세요. 다 괜찮을 겁니다.”
루나를 다독인 아드리아스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나직하게 말했다.
“모두 의문이 많은 건 알겠지만 살고 싶으면 일단은 제 말을 따라주십시오.”
“아드리아스 크롬웰! 루나 펜드래곤을 감싸는 것도 그렇고 정체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구나.”
바이슨이 그런 아드리아스를 향해 말했다.
“너도 사실은 맥스웰의 수하인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흥, 네가 맥스웰 놈의 수하가 맞건 아니건 여기서 빠져나가는 순간 다 끝이다. 더러운 흑마법사놈이었다니 이제 넌 모든 걸 잃게 될······.”
“처음부터 느꼈던 거지만.”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바하트가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하트의 말은 아드리아스를 향한 것인지 바이슨을 향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일어나는 마나의 유동이 바하트의 전신을 휘감자 바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드디어 말이 좀 통하는군, 바하트. 역시 제국의 공작다워.”
바하트에게서 마법의 징조가 보이자 바이슨은 물론이고 다른 워록들도 당연히 아드리아스를 향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군.”
“바하트 알븐! 안 된다!”
패트릭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그가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할 생각인가! 그렇게 따지면 지금껏 자네가 축제에서 만나온 흑마법사들은······.”
“어이, 패트릭. 조용히 좀 하지? 제국 내부의 사정에 우리가 끼어들면 되겠어?”
바이슨이 그런 패트릭을 나무랐다.
그러나 그런 둘을 바라본 바하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흑마법? 여기 어디에 흑마법이 있다는 게지?”
“······뭐?”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던 건 너야, 바이슨.”
콰장!
공간이 출렁였다.
어느새 중급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바하트의 마법은 그대로 바이슨에게 적중했다.
“크헉!”
공간을 뒤트는 충격파가 바이슨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뒤이어 바하트는 뚜벅뚜벅 걸어가 복부를 움켜쥔 채 쓰러진 바이슨을 지그시 밟았다.
“넌, 너무 시끄러웠어.”
퍼엉!
< 337화. 여러 결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