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모방 그리고 대적(大敵) >
나는 안개 너머로 보이는 기괴한 손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입으로 열심히 중얼거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
“조용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게 이런 의미였군요.”
“그게 무슨 뜻이지?”
답답한 표정의 바하트가 묻자 나는 저 멀리 손짓했다.
“알 수 없는 손들이 저희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조용해지는 순간 움직이는군요.”
“허, 손이라고?”
바하트는 곧장 발걸음을 돌려 손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바, 바하트! 위험하네!”
“흥, 시끄럽게만 하면 안전하다는 것 아니냐? 위험할 것 없다.”
계속 혼자 쫑알대면서 손들을 향해 걷는 바하트가 불안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떠들기 시작하자 손들은 동상이 된 것 마냥 가만히 있었다.
“모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이 틈에 사람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놔두고 바하트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 공간에 들어온 후로 부쩍 늙은 듯한 바하트는 열심히 공간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흐음, 기괴하군. 생물은 아닌 듯한데······.”
마나로 안력을 높이지 않아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지자 창백한 손들의 모습이 더 자세히 보였다.
손목 부분까지만 존재하는 손들은 희뿌연 연기에 연결이 된 채 가만히 있었다.
“마법? 아니야, 그것보단 이상 현상에 가깝겠군.”
“위험하겠죠?”
“우로보로스가 경고한 거니 당연히 위험하겠지. 어쨌든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
바하트가 주저앉아 손을 자세히 살피며 피곤한 듯 얼굴을 쓸었다.
“괜찮으십니까.”
“흐흐. 날 걱정하는 게냐? 날 걱정하려면 한참 멀었다, 애송아.”
센 척하는 거여도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바하트 같은 인물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나도 힘들었을 거다.
“검으로 한 번 베어보지 그러냐?”
“괜히 건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더더욱. 만약 이 손들이 저희를 덮치게 된다면 그때 검을 휘둘러보죠.”
“알겠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바하트는 이내 다시 대열로 향했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피곤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떠들게 만드는 건 너무 고약했다.
‘내가 떠들어야겠군.’
체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내가 열심히 혼잣말이라도 하고 다녀야겠다.
우드드득!
콰득-
주위는 여전히 금이 가는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에게까지 피해가 오지는 않았지만 저 속도라면 3일 안에 다 무너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어이쿠!”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안 좋은 신호가 울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최고령의 워록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괜찮아?”
그동안 조용히 있던 루나가 그 모습을 보고 쫄래쫄래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허어, 아무래도 본인은 여기서 끝인 듯싶구나. 그냥 포기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그의 좌절어린 말에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누구든 저리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성적인 워록의 두뇌로는 그의 판단이 옳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업어줄게.”
루나가 쪼그려 앉아 작은 등을 내밀었다.
그런 루나를 보며 늙은 워록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본인은 괜찮네. 어차피 살만큼 산 노인네야. 그러니 그냥 가게나.”
“내가 안 괜찮아.”
루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워록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결국 내가 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닙니다. 포기하기에는 일러요.”
“본인도 알고 있다네. 하지만 이 이후의 일을 미리 생각하고 판단한 게야.”
“마법사들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늙은 워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루나도 얼른 일어나 반대편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게 문제입니다. 뭐든지 머리로 해결하려고 하죠. 그렇지만 머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종종 있다는 걸 당신도 알 겁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죠.”
그는 나와 루나의 손을 망설이다 끝내 손을 잡았다. 양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운 뒤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용아병들을 소환하면 모두를 업고 이동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들켜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흑마법사인 사실을 알리는 건 너무나 큰 위험이었다.
“옳은 결정은 아닌 것 같다만 힘을 내도록하지.”
“잘 생각했어!”
루나가 방긋 웃어보였다.
원래의 루나로 돌아온 듯해서 걱정이 가는가 싶었지만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땀?’
루나의 목덜미로 땀이 흐르고 있었다.
걷는 게 그렇게 힘들었나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루나.”
“응?”
“몸이 불편하십니까?”
내 물음에 루나는 표정을 굳히더니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혹시라도 어딘가 불편하면 말씀해주세요.”
“응.”
아무리 봐도 거짓말이었다.
나는 루나의 상태를 계속 살피기로 마음먹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틀. 조금만 더 힘내주십시오.”
**
워록들은 생각보다 잘 버텼다.
확실히 초인이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정신력으로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육체를 지니고도 결국 이틀을 버텼다.
그러나 늙어버린 육체는 뛰어난 정신력으로도 버텨낼 수 없었다.
털썩!
이제 만 하루가 남은 시점에서 결국 가장 늙은 워록이 주저앉아 버렸다. 그 뿐이 아니라 그는 정신을 잃은 듯 눈마저 감아버렸다.
“패트릭!”
“연로한 양반이 오래 버티긴 했군. 일단 억지로라도 깨워봐!”
이틀 내내 내가 떠들어댄 탓에 창백한 손들의 추격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체불명의 위험들이 남아있었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잠에 들면 괴물이 나타난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나는 가장 연로한 워록, 패트릭의 상태를 살피며 대답했다. 새근새근 숨을 고르는 게 상태는 괜찮아보였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를 못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미리 사과를 하며 마나로 충격을 가했다.
그러자 패트릭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전 슬슬 회의감이 느껴지고 있어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비앙테가 결국 한 마디 했다.
“저도 굳이 자처해서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아, 그래요. 그렇겠죠.”
머리가 좋은 이들이니 지금까지 큰 불만 없이 나를 뒤따라와 준 거다. 자존심과는 별개로 객관적으로 판단할 두뇌가 있는 양반들이니까.
“허억, 허억. 내가 잠시 정신을 잃었었군. 미안하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잘 버티고 계시니 자책하지 말아주십시오.”
“말만이라도 고맙네. 음?”
패트릭이 말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휘저었다.
우웅!
“오오?”
“어떻게 마법을?”
뭐지? 충격요법인가?
······싶었지만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도 너도 나도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사용은 못하지만 기초적인 마법은 사용할 수 있겠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이리도 기쁜 일이 될 줄이야.”
루시아를 보자 그녀도 작은 불덩이를 만들어 손 위에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답답했던 기운이 조금 사라졌어요.”
“갑자기?”
“갑자기라기 보다······.”
그녀는 시선을 올려 금이 간 공간들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저 일이랑 연관이 된 것 같은데요?”
“그렇군.”
이 공간이 부서지니 제약도 부서지기 시작한 건가.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체에 마나를 돌려 피곤함을 좀 가시게 만들 수 있겠어. 앞으로 남은 하루는 거뜬해.”
“다행이야.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어.”
끼릭- 끼릭- 끼릭-
무슨 소리지?
모두들 마나를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낄 무렵,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또 다른 소음에 집중했다.
“저게 뭐지?”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장난감이었다.
이 공간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물체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도 그쪽으로 쏠렸다.
“뭐지?”
“기괴하게 생겼군.”
장난감은 세 발 자전거를 탄 작은 광대였다.
등에 태엽이 달려있었는데 태엽이 돌아가며 천천히 우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그때 가장 먼저 마법의 사용을 깨달았던 패트릭이 몸을 떨며 주저앉은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의 반응에 모두가 황당하게 바라볼 때,
-까꿍.
광대의 머리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오는 동시에 거대해지며 근처에 있던 워록 한 명을 집어삼켰다.
“에?”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모두 멈췄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앞을 막았다.
콰가강--!
“크읍!”
거대한 둔기에 맞은 것처럼 굉장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검으로 막았음에도 느껴지는 힘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드림 이터!’
설마 그 잠깐 정신을 잃었었다고 곧바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검을 다시 제대로 쥐며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물러나십시오!”
“저, 저건 대체 정체가 뭐지?”
“저게 잠을 자면 안 되는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은 제 뒤로 피하세요.”
콰작!
다시 한 번 머리가 스프링처럼 뛰어올라 나를 공격했다. 광대의 얼굴은 주둥아리를 크게 찢으며 나를 통째로 삼키려들었다.
‘별 괴상한 모습으로 공격하지만······.’
너무나 단순했다.
스륵-
서걱!
드림 이터의 공격을 가뿐하게 빗겨내며 스프링 부분을 베어냈다. 그러자 광대의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쿵!
“뭐야. 별 거 아니잖아! 저딴 거 때문에 그동안 우리보고 잠을 자지 말라고 한 거냐?”
바이슨이 또 지랄을 하는 게 들려왔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꾸물-
광대 인형은 머리가 떨어진 이후에도 움직였다. 이내 찰흙처럼 형태가 변하며 꾸물거리더니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상대의 꿈을 염탐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드림 이터였다.
아마 저 장난감 모형은 패트릭이 무서워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다시 모습을 바꾸는 건 어떤 형태로 변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쇄액--!
기다릴 필요는 없지.
나는 곧바로 찰흙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드림 이터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철벅!
역시 물리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괴물답게 내 검은 틀어박히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화르륵--!
검은 오러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푸쉬이이익! 끼어어억!
드림 이터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의 일부를 송곳처럼 변형시켰다. 튀어나오는 송곳들을 가볍게 피해주며 나는 다시 한 번 오러 마법을 사용했다.
퍼억!
드림 이터의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자 드림 이터가 터져나가며 바닥에 흩어졌다.
“오오오!”
“잘한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래, 그렇게라도 응원을 해라.
조용해지면 또 그 이상한 손들이 찾아올라.
휘리릭-
그때 드림 이터의 조각 일부가 내 몸을 휘감으려했다. 나는 곧바로 몸을 빼냈지만 스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꾸득-
“음?”
날 스치고 돌아간 드림 이터가 곧바로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찰흙 덩어리와 같았던 모습이 뚜렷한 형태를 갖췄다.
그리고 드러난 모습은······.
“꼴값을 떠네.”
다름 아닌 막시민 크로넬이었다.
< 335화. 모방 그리고 대적(大敵)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