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화. 시작되는 공포 >
콰드드드드득!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공간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광경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기운들도 사방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어쩌자고 일을 이딴 식으로 벌려놓은 거냐!”
“나는 이해가 가는군. 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네. 한 번 걸어볼 만한 도박 수지.”
느껴지는 기운들이 심상치 않았기에 나는 우로보로스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언제쯤 도착하십니까?”
-인간의 시간으로 사흘?
2개월이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였지만 과연 3일이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잘 버텨봐. 너라면 버틸 수 있겠지.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충고랍시고 하는 말에 전혀 배려가 없었지만 내가 선택한 결정인 만큼 우로보로스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꾸드득-
“저, 저게 뭐냐?”
“신기하구나! 정체가 무엇이지?”
그때 갈라진 세상의 틈 사이로 기괴한 눈깔들이 드러나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깔은 사람처럼 흰자와 검은 눈동자로 이루어진 것들부터 고양이나 파충류처럼 세로로 갈라진 것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거기 가만히 서있으면 오히려 위험할 걸. 도망치는 걸 추천해. 어차피 난 널 찾아갈 수 있으니까.
심상치 않은 눈깔들과 우로보로스의 조언까지.
나는 곧바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위치를 옮기겠습니다.”
“응? 왜?”
“조금이라도 뱀의 머리에 가까이 가는 게 좋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변하는 건 없으니까요.”
굳이 위험을 말해서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난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루나를 데리고 먼저 앞장섰다. 방향은 우로보로스의 머리가 있는 곳.
‘내가 흑마법사인 걸 들키는 한이 있어도 지켜내겠다.’
잡은 손에 온기를 느끼며 다짐했다.
**
포트리온에 입장하기 위해 먼 길을 온 마법사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밀리기 시작한 줄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왜 이렇게 줄이 안 빠지는 거야?”
“아무리 니바스의 축제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군.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렸나?”
워록이 아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투덜대는 일이 전부였지만 진짜 워록들은 달랐다.
“비켜라.”
온몸에서 수증기를 내뿜는 기괴한 마법사가 섬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줄을 서있던 마법사들이 황급하게 길을 터주었다.
“아그니스 부탑주다.”
“우와······.”
아그니스 마탑의 부탑주, 염화의 쿤자비가 온몸으로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워록 중 하나인 아그니스 마탑주가 홀연히 걸어갔다.
“이야, 올해에는 아그니스의 탑주랑 부탑주 둘 다 참가했네. 설마 렉시 마홈즈가 올 줄이야.”
“난 왜인지 알 거 같은데.”
“응? 이유를 알고 있다고?”
“렉시 마홈즈가 예전에 로들렌 아카데미를 방문했었던 적이 있어. 그때 방문한 이유가 아드리아스 크롬웰 때문이었지.”
“아아, 그럼 이번에도 아드리아스를 보러 온 거겠군!”
그런 수군거림을 들으며 앞서 걷던 쿤자비가 중얼거렸다.
“버러지들이 쫑알쫑알, 쫑알쫑알, 쫑알쫑알······.”
“왜 그렇게 또 심술이 났어, 쿠인켈.”
렉시가 부드럽게 웃으며 그런 쿤자비를 달랬다. 하지만 쿤자비는 그런 렉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푸쉬이익--
수증기가 허공에 가득 피었다.
“버러지들이 너무 많아. 저런 것들은 이 세상에 하등 도움이 안 돼.”
“저런 사람들 중에서 후에 워록이 탄생하는 거야. 너무 밉게 보지는 마.”
“애초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이런 버러지들이 넘쳐나는 곳에 네가 날 데리고 왔다는 거다, 렉시 마홈즈.”
“어허, 마탑주님이라고 불러야지. 밖이잖아.”
쿤자비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무언의 표현에 렉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축제에는 대현자님께서도 참가하신댔어.”
“······.”
“저번에 만나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며칠 차에 참가하실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만나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입구에 도착한 그들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어이, 오랜만이군.”
“모이카?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문제가 생겼네.”
여러 워록들이 모여 있는 광경.
진즉에 포트리온에 입성했어야 할 이들이 마실 나온 노인들처럼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모습은 너무나 생소한 풍경이었다.
“문제라니요?”
“포트리온이 막혔어.”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렉시는 물론이고 쿤자비도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 말씀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그래. 그리고 단순히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포트리온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 듯하네.”
쿤자비가 움직였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가 포트리온의 입장을 도와주는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어이.”
“히익!”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녹여버리기 전에 대답해.”
“쿤자비! 사람들을 그렇게 위협하지 말라고 했죠!”
수증기를 내뿜는 쿤자비를 보며 목울대를 넘긴 마법사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가, 갑자기 전날부터 이동 포탈이 막혀버렸습니다. 일종의 좌표 방해로 보이는데 지금 다른 워록분들께서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별 일 아닌데 왜 아무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거죠? 기다리는 분들에게 공지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요?”
렉시가 묻자 답변은 모이카라 불렸던 워록에게서 나왔다.
“우리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잠깐 손을 대봤는데 평범한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처음에는 단순한 좌표 방해로 보았어. 또 어떤 고얀 늙은이 중 하나가 장난을 친 줄 알았지. 하지만 그게 아니야.”
모이카가 자글자글한 주름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이 분리되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나도,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믿기지가 않는 결과에 지금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니바스가 재림이라도 한 건 아닌가하면서 우스갯소리나 하고 있었지.”
“차원이 분리되었다고 하면 원래 포트리온에 있었던 이들은······.”
렉시가 말끝을 흐렸다.
이 일을 꾸민 자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결코 평범한 일을 꾸미지는 않았을 게 눈에 보였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멀쩡할 것 같지는 않구나. 차원이 분리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안쪽으로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반대로 탈출을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니.”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보다 가둬두려는 의도가 더 뚜렷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애초에 이만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지원을 두려워할 리가 없으니 말일세.”
렉시는 곧바로 본인도 문제의 마법을 확인하기 위해 이동 포탈을 확인해보았다. 그렇게 마나의 흐름을 관측하던 그녀는 문득 그녀가 여기까지 방문한 이유를 떠올렸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포트리온에 있었던 걸까?’
아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워록들 중 하나였으리.
“이쪽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야겠어요.”
포탈을 확인한 렉시가 말하자 모이카는 그저 웃기만 했다.
“왜 웃으세요?”
“공간에 관한 전문가라면 바하트를 빼놓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거 아나? 바하트는 이미 전날에 포트리온으로 입장했다고 하네.”
“하아······.”
난처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바하트가 들어가고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건 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나마 기다려볼만한 워록은 대현자뿐이겠군. 내가 알기로 이르면 내일 쯤 도착한다고 했으니 말일세.”
“으음······.”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 없네. 우리가 앉아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상황을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야. 자네도 온 김에 거들어주지 그러나?”
“물론이죠.”
렉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쿤자비를 보았다. 그 눈빛을 본 쿤자비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요? 같이 하시죠, 부탑주님?”
“흐으.”
**
무턱대고 걷기 시작한지 하루가 지났다.
사실 시간을 확인할 수도 없었기에 감으로 하루라고 한 거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허어······.”
“하이고.”
워록들은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게다가 오러 마스터와는 달리 육체를 단련한 이들도 아니었기에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니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노인들이 꼬박 하루를 잠도 자지 않고 걷기만 했으니 문제가 발생했다.
“더 이상은 안 돼. 조금만 쉬지.”
“이 놈아! 여기서 쉬면 나머지 이틀은 어찌 버티려고 그러느냐!”
“당장 죽겠는데 이틀이 뭐가 중요해! 난 모른다! 날 버리고 가든 알아서들 해!”
충분히 이해는 갔다.
애초에 괴팍한 노인네들이었는데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도 그 성격이 어디 가는 게 아니지.
오히려 지금까지 잘 따라와 준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럼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하죠. 너무 오래 쉬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10분만 쉬겠습니다.”
“10분? 시간은 어찌 확인하려고?”
“감으로요. 제가 출발하겠다고 하면 출발하는 겁니다.”
“전날부터 보자보자하니 아주 제멋대로군!”
힘들어서 그런지 다들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좀 어때?”
“전 괜찮아요. 선배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죠?”
“나는 마나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루시아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루나를 살폈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이 공간에 들어온 이후로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생기를 잃어갔는데 어디 아픈 게 아닌지 물어보아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
“······.”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이 부서지는 소음으로 인해 주변은 시끄러웠다.
“10분 됐습니다. 일어나시죠.”
“벌써 10분이 됐다고?”
“난 안 돼. 그냥 두고 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났지만 몇몇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딱히 모두를 챙기려는 생각은 없었기에 일어나지 않는 이들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이 놈아! 조금만 더 쉬자니까!”
“움직여야 합니다.”
“도대체 왜? 어차피 우로보로스가 직접 찾아온다며? 왜 굳이 이런 강행군을 펼치는 건가!”
“우로보로스가 경고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위험하다고요.”
“아주 그 녀석이 말했다고 하면 다 믿어버리는군. 그게 거짓이면 어찌 책임질 텐가?”
우로보로스의 말을 안 믿는 것보다 믿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믿지 않았을 때의 위험이 훨씬 컸으니까.
난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결국 불만을 말하던 워록이 소리쳤다.
“그대로 날 두고 가버리면 자버리겠어!”
“협박하시는 겁니까? 한 번 해보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못할 줄 알아?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잘 됐군!”
아주 진상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꺾이면 이후에 다른 이들도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할 게 뻔하니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 이곳을 탈출하게 되면 가만 두지 않을 테다!”
결국 잠으로 협박을 하던 워록은 황급히 우리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한 바탕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왔던 탓인지 분위기가 영 좋지 못했다. 거기다 지치기까지 하니 사람들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조용히 있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괜찮은 건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주변이 시끄러우니 딱히 우리가 떠들지 않아도 상관없나 싶었다.
그것보다는 앞으로 남은 이틀을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인데······.
타다다닥!
“음?”
환청인가?
균열이 일어나는 소음 너머로 갑자기 맨살이 바닥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기에 나도 신경을 끄고 다시 걸었다.
“······.”
바하트도, 루시아도, 루나도 말없이 그저 걷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남은 시간에 대한 불안이 가득 차는 가운데 환청이라 여겼던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탁탁탁탁탁!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한 소리.
그리고 그것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만요. 혹시 아무도 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으응?”
내가 멈춰 서서 말하자 모두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주변은 고요했다.
갑자기 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나만 이상해진 느낌이었다.
“미친 건가?”
“이 공간이 무너지는 소리라면 아까부터 잘 들려왔구나.”
왜 또 갑자기 소리가 멈춘 거지.
분명 무언가가 급하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난 대충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한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들 입을 다물고 다시 걷기 시작하자 또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탁-
환청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무시하려하자 이내 내 곁을 걷던 루나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세요?”
“들려.”
우리가 말하자 다시 사라진 소음.
그 과정에서 난 무언가를 어렴풋이 눈치 챘다.
‘설마 조용히 있지 말라고 한 이유가?’
루나와 내가 소리에 집중하려 다시 말을 멈추자 그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타다다다닥-----!
“어어?”
드디어 다른 이들에게도 그 소음이 들렸는지 기겁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나는 그 사이 마나를 사용해 안력을 높였다. 그러자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였다.
‘······공포 영화냐.’
수천 개가 넘는 창백한 손들이 바닥을 짚은 채 기어 오고 있었다.
< 334화. 시작되는 공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