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화. 우로보로스 >
그 외에도 이 공간에 걸려있는 제약은 더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녀석이 있으면 조심해.
-마법을 억지로 사용하려고 하면 심장이 터질 거야.
-나한테서 멀어지면 이 공간을 영원히 헤매게 돼. 어차피 영원히 갇힌 신세지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자 모두들 반신반의했다.
“애초에 넌 어떻게 저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지? 마법은 너도 사용하지 못할 텐데?”
“선천적인 능력입니다.”
하여간 워록이 아니랄까봐 이 상황에서도 탐구심을 발휘한다. 그리고 내 말을 믿든 말든 상관은 없었다. 나로서는 루시아와 루나, 케슈른, 그리고 굳이 챙기자면 바하트까지만 어떻게든 살려나가면 됐으니까.
‘아니지, 상관있지. 만약 내 말을 무시하고 잠을 자버리면······.’
드림 이터가 등장할 거다.
그리고 드림 이터는 잠을 자고 있는 사람에게만 유해한 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위험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항상 시끌벅적해야하고, 잠도 자면 안 되고, 마법도 억지로 사용하려하면 안 되고, 저 뱀에게서 멀어지면 안 되고, 빙글빙글 도는 녀석을 조심하면 된다는 건가?”
“조건도 더럽게 많군.”
듣다보니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빙글빙글 도는 사람은 왜 조심해야 하지? 그리고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야?
“일단은 이곳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겠군. 우리가 언제까지고 잠을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니.”
바하트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충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탈출 방법은 저 뱀을 죽이는 것이겠군. 정확히 뭐지, 아드리아스?”
“맞습니다. 저 뱀의 말에 의하면 자신으로 인해 이 공간이 유지되고 있으니 본인이 죽으면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내 말을 들은 워록들은 다시 저마다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허, 자신의 죽음을 그리 쉽게 말하다니 신기한 존재로군.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겐가?”
“어쩌면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걸 수도 있겠지. 우리가 저 뱀을 죽일 수 없다는 자신. 우린 지금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비루한 늙은이들일 뿐이야. 허허.”
사람들이 떠들게 놔둔 채 나는 검을 뽑았다.
스릉-
새하얗게 빛나는 검신이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검을 사용할 수 있었군.”
“설마 기사의 마나는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시커먼 오러가 넘실거리며 상대를 꿰뚫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표출했다.
“오오오?”
“연구할 만한 과제로군. 심장의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소에서 단전의 마나는 멀쩡할 줄이야.”
조용히 있으면 안 된다는 조건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다쟁이들이로군.
난 그대로 검을 우로보로스의 몸에 긁었다.
물론 최선을 다한 검격으로.
콰지지지직------!
검이 부딪혔다고는 믿기지 않는 괴이한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강렬한 반발이 검 손잡이를 타고 몸을 흔들었다.
-스스슷······.
우로보로스의 기괴한 웃음이 들렸다.
그것이 웃음이라는 사실만 알 뿐 왜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패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우로보로스의 몸은 뚫리지 않았다. 단지 내 몸보다 큰 크기의 비늘에 옅은 흔적만 남겼을 뿐.
-인간치고는 강해. 대단한데?
우로보로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재차 검을 휘둘렀다. 뚫을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한 번으로 파악하기에는 애매했다.
‘분노를 사용하면 뚫을 수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죄악을 사용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부작용이나 후유증 때문이 아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역시 무리군.”
“고대 초월종이니 당연한 결과지. 사실 인간이 대적할 수 없다고 알려진 괴물들이니까.”
어느 정도 파악을 한 나도 공격을 멈췄다.
날개를 펼치고 죄악을 중복 사용하면 어찌어찌 뚫을 자신은 있었지만 그 이후도 생각해야했다.
어쩌면 나가자마자 맥스웰과 싸우게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죄악의 중복 사용은 아무리 부작용이 덜해졌어도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드리아스, 이 녀석이 자신을 죽이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지?”
“그렇습니다. 오히려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내가 검을 다시 넣고 숨을 고르는 사이 바하트가 다가와 물었다.
“네 힘으로도 뚫을 수 없으니 방법을 달리해봐야겠군. 녀석의 주둥이로 들어가자.”
“속으로 들어가서 안쪽을 공략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죽여 달라고 했다면서? 그럼 오히려 문제가 쉽지. 저 녀석한테 머리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라. 우리한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
우로보로스의 입으로 들어가 속을 공략한다라······.
가능한지는 둘째 치고 바하트가 제시한 방법이 유일한 것 같았다.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이야기?
“당신의 입을 통해 내부를 공략해보겠습니다. 심장이라도 찌르면 당신도 결국 죽겠죠.”
-스슷······.
우로보로스의 옅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내 머리? 올 수 있으면 와봐. 네가 선 방향에서 왼쪽 방향으로 쭉 올라오면 머리야. 스스슷.
“왜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겁니까?”
계속해서 자조적으로 웃는 게 이상해서 묻자 우로보로스는 순순히 답했다.
-내 머리가 있는 곳까지 오다가 결국 잠이 들 게 뻔하니까. 설마 얼마 안 걸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식은땀이 등 뒤로 흘렀다.
단순히 몸통의 체고만 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벽처럼 보이는 뱀이었다.
그런 뱀의 머리까지 과연 금방 도착할 수 있을까?
“머리가······얼마나 멀리 있습니까?”
내 물음에 다시 좌중이 조용해졌다.
다들 빨리 출발하자며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는데 내 말 한마디에 금세 싸늘해져버렸다.
-그나마 가까워. 그러니까 네 말소리가 들리는 거고. 거기서 인간의 걸음으로 2개월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스스스스.
“······.”
2개월.
내가 전력으로 달려도 잠 한 번 자지 않고 달리기에는 불가능한 거리였다.
“얼마나 걸린다고 하지? 빨리 말해!”
바이슨이 발작을 일으키며 내 멱살을 잡았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정신이 없었다.
“바이슨, 가만히 좀 계세요!”
“넌 지금 워록이 아니야, 바이슨! 죽고 싶은 거냐?”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바이슨을 뜯어 말렸다.
그리고 나도 답을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뱉었다.
“2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뭐?”
“걸어서 2달이 걸리는 거리라고 합니다.”
내가 덤덤하게 말하자 사람들은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우로보로스를 쳐다보았다.
“허, 허허허······.”
“그럴 만한 크기이긴 하군. 오히려 저 크기를 보면 가까운 축에 속하는 걸 수도 있겠어. 하하!”
실성한 건가.
모두의 반응이 조금 망가졌다.
“친구우······.”
그때 어느새 다가온 루나가 내 손을 살며시 움켜잡았다.
“내가 도와줄 일 없어······?”
“······.”
루나 덕분에 당황하고 있을 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보자 그녀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둘 만큼은 살린다.
다시 한 번 강렬한 의지가 되살아났다.
“우로보로스.”
-응?
“제가 당신을 죽여 드리겠습니다.”
조금은 어이없게도 들리는 말이었지만 나는 자신만만하게 지껄였다.
“그러니 당신도 저희를 도와주시죠.”
-재밌네. 아드리아스라고 했지? 스스.
우로보로스가 옅게 웃었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저희가 가는 것보다 당신이 이쪽으로 오는 게 훨씬 더 빠르겠죠. 만약 저희가 버틸 때까지 도착하신다면 원하시던 대로 죽여 드리겠습니다.”
-스스스스. 재밌는 발상이었어. 하지만 넌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지.
“움직이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 움직일 수 있어. 하지만 난 지금 내 꼬리를 물고 있거든. 너한테 가려면 이 꼬리를 뱉어야겠지. 그리고 이 꼬리를 내가 뱉게 되는 순간······.
우로보로스가 뜸을 들였다.
생각해보니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었지. 만약 꼬리를 뱉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세계가 부서질 거야.
“예?”
-이 공간이 부서진다고 해야 하나? 내가 죽음으로서 공간이 소멸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지.
“그러면 어찌 되는 거죠?”
-온갖 괴현상이 일어날 거야. 그리고 네가 말했던 드림 이터라는 녀석들도 훨씬 많은 숫자가 밀려오겠지. 어쩌면 드림 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올 수도 있어. 스스슷.
우로보로스가 흥미롭다는 듯 소리를 냈다.
-과연 내 머리가 너에게 닿고, 네가 날 죽일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너는 검을 사용하는 걸 보니 버틸 수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힘들 거야.
“그렇게 하시죠.”
다른 사람들? 내 알 바 없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루나와 루시아, 두 명 정도는 충분히 지킬 자신이 있었다.
-뭐냐. 이제 보니 이기적이었구나.
“안 됩니까?”
-상관없어. 근데 한 가지 의문인 건 네가 정말로 날 죽일 수 있을까?
“방금 그걸로는 증명이 안 됩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치고는 강해. 그건 인정할게. 하지만 날 죽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이 세계가 부서지는 건 나도 좀 꺼려지는 일이거든. 세계가 부서지면 난 죽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게 되는 일이라······.
내가 한참 우로보로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사람들은 다시 조용히 내 혼잣말과 같은 말을 듣고 있었다. 조용해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딱히 아무 일도 없는 걸 보면 내가 떠들고 있어서 괜찮은 건가?
“선배, 된 건가요?”
“아니, 잠시만.”
우로보로스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는 힘을 더 쓰긴 해야겠다.
[???의 날개]
촤락!
한 쌍의 날개가 소환되며 육체능력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응?'
근데 내 예상을 벗어난 게 한 가지 있었다.
능력의 상승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올라갔다는 것. 그리고 이런 반응은 내가 상대할 대상이 초월자와 관련된 것일 때만 일어났다.
‘우로보로스가 초월자와 관련됐다고?’
고대 초월종이라는 이름은 인간이 그냥 지은 것. 진짜 초월자와는 달리 고대시대에 존재한 재해와 같았던 짐승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었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우로보로스라는 명칭은 지구에도 존재했던 것. 다른 세계와도 이어질 정도의 이름이 초월자와 연관이 되어있다고 해도 놀라울 건 없었다.
‘오히려 좋아.’
나는 갈락슈르를 예열시키며 날개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오! 저게 그 오러 비기인가!”
“조금 전에는 사용하지 않아놓고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저러지?”
조용했던 사람들이 다시 말문을 열었고 그 틈에 난 검을 내리 그었다.
콰직!
이전보다 짧은 파열음.
그리고 충격이 가해지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으악! 아퍼!
동시에 우로보로스의 몸이 요동을 쳤다.
깜짝 놀란 반응이 그대로 느껴졌는데 파급력은 훨씬 대단했다.
쿠와아아아앙-----------!
“으어어어!”
“날아간다!”
약간의 풍압만으로 우리를 전부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날아가고 나도 급하게 뒤따라가서 루나와 루시아를 구했다.
‘미안하다, 케슈른.’
이제 케슈른은 중요도에서 밀려났다.
그 정도로 위기라는 소리여서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끄억! 허, 허리가!”
“이, 이러다 저 뱀의 옆에 있으면 다 죽겠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니 평범한 노인네들이 되어버린 워록들이 우는 소리를 했다.
-방금 그건 뭐야! 아팠어!
그리고 난 워록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뢰가 없는 듯해서 증명해봤습니다. 이 정도면 당신을 단숨에 죽일 수 있겠죠.”
-깜짝 놀랐어. 그리고 생각보다 아프네. 만약 날 죽이려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심장을 단숨에 파괴해줘.
“그 말은······.”
-그쪽으로 갈게.
해냈다.
우로보로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심장을 파괴해달라는 말을 했지만 일단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그냥 어떻게든 죽일 거다. 언제 또 심장을 찾고 앉아있어.
“우로보로스가 저희에게 직접 온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제가 죽이고 저희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워록들이 기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제발 뭐라도 하라는 표정이었는데 풍압을 한 번 겪고 나자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쿠르르르릉----------!
“설마 저 소리가 우리한테 오는 소리인가? 그런 것 치고는 심상치가 않구나.”
“아, 우로보로스가 말하길 자신이 움직이며 이 공간도 부서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올 때까지 버텨야겠죠.”
“이런 미친······! 그걸 왜······.”
욕을 하던 워록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내 예상보다 심각해지는 주변의 상황에 안색을 굳혔다.
콰드득! 콰득!
새하얀 안개와도 같던 세상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금이 간 곳에서 온몸을 전율시키는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로보로스가 경고했던 게 생각보다······.’
이 세상이 부서진다는 의미가 내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던 것 같다.
< 333화. 우로보로스 > 끝